우리가 일본의 골프장, 온천 등을 누비던 일은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시청 앞의 호텔마다 일본사람들로 가득했다. 환율 문제로 한국의 물가가 너무나 싸기 때문이다. 오전 이른 시각인데도 경복궁에는 여기저기서 일본말만 들렸다. 드라마의 영향인지 일본인들은 궁(宮)의 예법과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무교동 주변의 유명 식당에도 일본인들이 북적댔다.
지난 주말 나고야(名古屋) 기업인 모임인 중부전략연구회(SPAC) 회원 10명이 한국을 찾았다. 이 연구회는 26년 전 나고야 소재 기업체의 기획·홍보 부장들이 '건강한 경제를 지지하는 모임'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결성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100 여 명의 회원 외에 이미 은퇴한 OB들도 언제든지 모임에 참가할 수 있다. 이번에 서울에 온 사람들은 현역회원과 OB멤버가 각각 5명 씩 모두 10명이 왔다.
필자와 평소 절친하게 지내던 기존 회원 외에 새로운 얼굴이 3명 있었다. '한국을 처음 왔다'는 고토 아키오(後藤秋夫, 53세), 마쓰오 켄타(松尾顯太, 43세), 데라니시 다카오(寺西孝夫, 52세)씨다. 새로 만난 세 사람은 처음이라서인지 비교적 말이 없었다. 업종이 다른 사람들이 30 여년이 가깝도록 이토록 끈끈한 모임을 유지하는 것이 특이할 따름이었다. 필자는 사전에 예약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고, 고급집이 아니더라도 모두가 만족하는 메뉴를 선택하기로 했다. '좋아하는 메뉴가 무엇이냐'고 묻자, 이구동성으로 '갈비-'라고 외쳤다. 데모가 이어지는 시청 앞이어서 일까? '갈비-'하고 외치자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막걸리로 건배-'
갈비집의 메뉴는 일본어로도 쓰여 있었다. 종업원들도 간단한 인사말은 일본어로 했다. 서울이 일본인들에게 점령당한 느낌이었다. 아무튼, 주문한 갈비가 나오기 전에 식탁 위에 늘어선 밑반찬만 보고서도 서울에 처음 온 세 명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호호' 하면서도 매운 게장에 계속적으로 젓가락이 가는 사람, 야채샐러드에 반한 사람, 일본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도라지나물에 빠진 사람.......각양각색의 반응이 나왔다. 주문한 갈비가 나오자 모두들 침을 꿀꺽 삼켰다.
"자- 술은 무엇으로 할까요?"
필자의 말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모두가 '막코리-'라고 했다. 일본인들은 막걸리의 발음을 '막코리'라고 한다. 그런데 종업원의 반응이 의외였다.
"저희 집에서는 막걸리를 취급하지 않습니다."
한껏 고무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들이 우리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상황은 바로 감지되었다. 필자와 종업원의 신경전은 칼날처럼 날카롭게 이어졌다. 관광객이 이토록 많이 오는 곳에 손님을 위한 서비스는 빵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의 사장도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고 했다. 법이란 이토록 엄중한 것일까? 최종적으로 솔로몬의 심판이 내려졌다. 필자가 밖에 나가서 막걸리를 사오는 것이었다. 필자는 마음이 급해서 와이셔츠 차림으로 무교동을 두리번거렸다. 스치는 바람이 제법 차갑게 송곳처럼 파고들었다. 무장한 경찰들이 길목마다 지키고 있었다.
'이들도 법을 지키려고 애를 쓰고 있구나.'
필자는 마트에서 막걸리 4병을 사서 까만 비닐봉지에 쑤셔 넣고 식당을 향해 돌진했다.
일본인들은 '와-' 함성을 질렀다. 필자는 졸지에 개선장군이 되었다. 식당 주인과의 입씨름에서 승리(?)하고 막걸리를 무단으로 반입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식당에서는 막걸리 잔을 내 주었다. 맥주잔에 막걸리를 마시는 모습이 안 되었던 모양이다.
모두들 막걸리로 화제가 모아졌다. 일본의 한국식당에는 막걸리가 불티나도록 팔린다는 것이다. 막걸리가 나오자 파전, 김치전, 낙지볶음으로 메뉴가 급전했다. 이들은 한국 음식 맛을 제대로 알고 있으며, 술과 안주의 마리아주(mariage: 궁합)를 알고 있는 것이다. 4병의 막걸 리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필자는 다시나가서 새로이 6병을 반입했다. 또 법을 어기고 말았다.
막걸리와 도부로쿠(濁酒)
일본에도 우리의 막걸리와 비슷한 '도부로쿠'라는 탁주(濁酒)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막걸리와는 맛이 다르다. 일본인들도 수년 전에는 우리의 막걸리를 '한국의 도부로쿠'라고 했지만, 요즈음은 '막코리-'로 명명하고 있다. '막코리'의 브랜드로 자리한 것이다. 이날 식당에서 나고야 사람들은 우리의 막걸리 맛에 흠뻑 젖고 말았다. '본 바닥에서 마시는 막걸 리가 역시 다르다'고 했다.
"막걸리가 좋은 이유는 강한 단맛 때문이다. 그래서 마시기 좋다. 미묘한 산미(酸味)와 탄산발포(炭酸発泡)의 맛이다. 알콜의 도수가 맥주와 비슷해서 더욱 좋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중에서 판매하고 있는 병에 들어있는 막걸리보다는 작은 항아리에 담겨 있는 막걸리가 좋다는 의견도 있었다.
"저는 무더운 여름에 차가운 상태로 마시는 막걸리를 좋아합니다." 시미즈(淸水, 67세)씨의 말이다. 시미즈(淸水)씨는 한 술 더 떠서 '작은 항아리에서 표주박으로 떠서 마시는 막걸리의 맛이 더 운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필자는 다음날 인사동에 가서 막걸리의 참맛을 다시 느껴보자는 제안을 했다. '우-' 모두들 함성을 질렀다. 일본 사람들의 입맛도 까다롭다. 아니, 한국 음식의 맛을 제대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나고야(名古屋)에는 일찍이 고향(故鄕)이라는 한국 식당이 있었다. 이곳은 나고야 중부전략연구회의 단골 식당이었다. 한국 소주에 오이를 넣어서 마시는 방식을 좋아했던 이들은, 그 식당이 문을 닫은 것에 대해 대단히 안타까워했다. 이들의 입맛은 그 고향(故鄕)집에서 길들여졌던 것이다.
"아- 고향(故鄕)이 없어져서 너무 슬퍼요???"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모두들 자지러졌다. 필자는 다음날 인사동에 가서 전통방식으로 제조된 막걸리를 소개했다. 그들의 기쁨은 배가(倍加)되었다.
도쿄(東京)의 신주쿠(新宿)에는 많은 한국 식당이 있다. 한국 식당이지만, 일본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대부분 막걸리를 마신다. 남성뿐만이 아니다. 젊은 여성들도 즐겨마신다. TV에도 막걸리 광고가 '막코리~'하면서 귀엽게 나온다. 일본에서 막걸리 열풍(熱風)이 일고 있다. 문제는 '이 열풍을 얼마나 지속시키느냐'는 것이다.
'한국을 다녀와서'
<안녕하십니까? 고토 아키오(後藤秋夫)입니다. 이번 여행 너무나 신세가 많았습니다.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덕택으로 맛있는 음식과 좋은 '막코리'를 많이 마셨으나 체중의 증감은 없었습니다. 당초에는 2kg쯤 불어날 것으로 각오했었는데.....또 가고 싶습니다. 정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첫 경험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오래 간직하고 싶어 한다. 필자가 특별히 잘해준 것은 없었지만, 정성을 다했던 것이 고마웠던 모양이다. 이들은 짧은 여행 기간 동안의 이문화(異文化) 체험이 좋았다고 했다. 특히, 막걸리의 체험을 좋아했다.
막걸리에는 서민들의 추억과 애환이 서려 있기도 하다. 가슴속에 잠재하고 있던 회한(悔恨)이 막걸리를 타고 비가되어 흘러내리는 것일까? 김종철 시인은 '막걸리만 마시면 비가 온다'고 했다.
"고두밥과 누룩 넣은 독을/ 어머니는 아랫목에 잘 모셨습니다/ 한기 들지 않게 이불로 꽁꽁 감쌌습니다/ 며칠 지나 빗소리가 하도 요란해 술독을 몰래 열었다가/ 나는 알몸으로 쫓겨 났습니다/ 막걸리만 마시면 비가 옵니다/ 부슬부슬 내리는 유년의 술독에 폭삭 익은 미운 정과 고운 정/ 빗소리로만 당신을 대작하기엔 한 끼의 국밥이 너무 빨리 식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