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반도주를 책임집니다

  •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 업데이트 2009-02-02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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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중학교 2학년생인 A양(15세)은 학교 친구 B양(16세)과 함께 지난해에 집을 나왔다. A양의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할아버지는 뇌 암으로 자리에 누워 있다. A양은 "가난한 게 싫었다"고 말했다(조선일보 1/30). 가난이 싫어 집을 뛰쳐나온 소녀들에게는 가난보다 더 무서운 불행이 그림자처럼 따라 붙을 수 있을 것이다. 가난이 싫은 것이 아니라 '가난이 무섭다'고 한 사람도 있다.
일본의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谷川俊太郞, 1931- )는 '무섭다'는 수필에서 "돈이 없는 것이 무섭다. 적이 있다는 것이 무섭다. 불행해지는 것이 무섭다"면서, "괴담과 같은 허황된 공포는 그것이 아무리 무서워 보이는 것이라고 해도 우리가 접하고 있는  일상생활 속에 감추어져 있는 공포와는 비교가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우리는 생활 속에 감추어져 있는 공포를 인식하지 못한 채 눈앞에 펼쳐지는 것만 으로도 '어렵다'면서 한숨을 내쉬며 하루하루 눈물을 흘리며 살아가고 있다.

일자리를 달라는 일본의 노동자들

교토부청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근로자들(사진: 서일본신문)좀처럼 단체 행동을 하지 않는 일본의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왔다. 일자리를 달라고 호소하기 위해서다. 교토(京都)의 건설현장 노동자 약 150명은 지난 28일, 교토부청(京都府廳) 앞에 자리를 틀었다.
2009년도 교토부(京都府)의 예산 편성에 부영주택(府營主宅)과 공립학교의 개보수 공사 등 지방업체가 참여하기 쉬운 부분에 예산을 많이 배정해 달라는 것이다. 전교토건축노동조합(京建勞) 소속인 이들은 19,000여 명의 조합원 중 90%가 영세업자들이란다. 지난 해 9월부터 일감이 없어서 생계를 위협받고 있는 이 영세업자들은 '불행해 지는 것이 무서워서' 한데 뭉쳤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집값도 반으로 떨어진 상황이다. 불황의 여파로 건설공사가 크게 줄은 일본에서도 건설 회사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다. 결국, 건설업자들이 의존하는 것은 공공공사 발주의 확대 뿐이다. 그래서 이들은 지방정부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이다.

한편, 나고야(名古屋)에서는 지난 휴일 일본계 브라질 근로자 1,500여 명이 고용확대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와 데모를 했다. 일감이 없는 영세업자들과 근로자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야반도주(夜半逃走) 업자(屋)'

'야반도주를 하였습니다'이러한 상황을 대변하는 듯 일본에는 야반도주(夜半逃走)를 도와주는 '야반도주 업자(屋)'가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야반도주 업자(屋)'는 불황의 여파로 고전하고 있는 경영자와, 사체업자로 부터 고압적인 빚 독촉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사람들을 소리 소문 없이 도망가게 해주고 있다. 이 업자(屋)는 몰래 보따리를 싸야하는 사람들의 가재도구(家財道具)를 트럭에 실어서 단시간에 이사를 해주고. 뒷마무리까지 깔끔하게 처리해 준다.
오사카(大坂)에 있는 한 '야반도주 업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감이 넘치고 있다. 평소 100건(年) 정도의 야반도주를 해 주고 있다는 이 업체는 전년도 보다 훨씬 많은 의뢰를 받아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약 40여명의 야반도주자가 순번 대기를 하고 있을 정도다.
'야반도주(夜半逃走) 업자(屋)'의 경쟁력은 역시 신속성이다. 오사카(大坂)의 이 업체는 일반 이사 짐 운반업체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비품이나 가재도구를 신속하게 운반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보통의 이사 짐 센터에 비해 1/2 내지는 1/3의 시간으로 승부를 낸다고 한다.

경제가 어려운 까닭에 채권자들이 폭력단을 고용하여 수시로 감시를 하고 있기 때문에 채무자들의 야반도주도 쉽지는 않다. 예를 들어 트럭의 엔진 소리만 나도 감시자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몽둥이를 들고 뛰어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반도주(夜半逃走) 업자(屋)'는 트럭 엔진소리도 나지 않게 순식간에 별도의 장소에 짐을 옮겨 양별·보관 기간별로 수수료를 받는다고 한다.
야반도주(夜半逃走)가 무엇인가. 남의 눈을 피하여 한밤중에 도망을 가는 사람을 말한다. 이러한 일을 도와주고 수수료를 챙긴다는 것은 어쩐지 꺼림칙하다는 생각이다.

단순히 도망치는 것은 사양

"당신은 도망 후에 어떻게 생활하며 일하고, 보험·호적 등의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 할 수 있습니까?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으십니까? 안심하고 도망가세요. 당신의 행복과 가족, 당사(當社)가 책임집니다." 지역별로 사무소를 두고 있는 오사카(大坂)의 야반도주(夜半逃走) 업자가 내세우고 있는 자사(自社) 홍보 문안이다.

하지만, 이 업체의 관계자는 "당사가 수행하는 야반도주(夜半逃走)의 서비스는 단순히 도망치는 작업을 돕는 것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남의 돈을 떼먹고 줄행랑을 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정신적 피해로 인하여 생활이 곤란한 경우에만 지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원인 해결을 전제로 일시적인 피난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지, 도망=해결책은 아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업체는 다중 채무자의 경우 야반도주(夜半逃走)를 권하지 않고 파산(자기파산) 등의 법적처리를 추천하거나, 법률적인 수속을 변호사에게 의뢰하기도 한다. 또한, 일의 성격에 따라 의뢰자와 함께 경찰서에 동행하는 서비스도 하고 있으며, 최근에 늘어나고 있는 '스토커' 등의 대응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업자는 현실도피·사랑의 도피·불륜문제 등 여러 분야에 대한 상담도 펼치고 있다. 개인별 상담을 통해서 가정파탄이나 자살 등의 최악의 사태를 예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찍이 일본에서는 야반도주(夜半逃走) 문제를 다룬 영화가 여러 차례 제작 되었다. 하라 다카히토(原 隆仁, 1951- ) 감독의 '요니게야 혼보(夜逃げ屋 本舖, 1992)'라는 영화다.
주인공 겐지(源氏, 中村雅俊 주연)는 빚 문제로 가족 모두가 야반도주를 한 가정에서 어렵게 자란 소년이다. 성인이 된 그는 자신과 같이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온갖 힘을 쏟는다. '절대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야반도주는 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본으로 하여 완벽한 서비스를 한다. '야반도주 증명서' '연대보증인 동시 야반도주' 등의 다양한 계획으로 빚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구해 준다.

결론적으로 야반도주는 영원히 종적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일시피난(一時避難)의 성격이 강하다. 고난에 처한 사람들에게 일시적으로 자리를 피하도록 하여 희망의 불씨를 살려 주는 것이다. 아무튼, 도망가는 것이 문제 해결의 핵심은 아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 할지라도 스스로 책임지고,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이 좋을 것 같다.

'가진 것이 없으면 이 많은 나의 가족들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들은 그대가 먹여 살리지 못하면 스스로 먹게 될 것이네. 그대는 자신이 베푼 은혜로는 알 수 없는 것을 가난 덕분에 알게 되겠지. 가난이 참된 벗, 확실한 벗만을 남기고 그대 자체가 아니라 다른 것을 따르던 자들은 모두 보내버릴 테니까. 그 이유만으로도 가난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누가 그대를 사랑하고 있는지 가르쳐 주는 것이니까.>

세네카 (Lucius Annaeus Seneca)의 인생론 중 '삶을 생각하며 쓰는 편지'에 나오는 대목이다. 세네카는 인생의 삶에 있어서 '출구는 열려 있으며, 싸우고 싶지 않으면 도망쳐도 좋다'고 했다. 가난에 처할지라도 도망치지 말고 부딪쳐서 어려움을 극복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참된 벗, 확실한 벗만을 남기는 것만으로 가난을 사랑하라'는 것은 '어려울 때 일수록 서로 돕고 나눌 수 있는 진정한 벗이 있다면 행복하다'는 말이다.
요즈음과 같은 어려운 경제 상황에 우리에게는 이러한 벗이 몇이나 있을까?

"인류는 작은 구(球)에서
자고, 일어나고, 그리고 일하며
때때로 화성(火星)에 벗을 갖고 싶어 한다.....

만유인력(萬有引力)이라는 것은
서로를 끌어당기는 고독의 힘이다.
우주는 일그러져 있다.
그리하여 모두는 서로를 구한다......."(다니카와 슌타로의 詩 '이십억 광년의 고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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