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유명해진 일본의 오바마(小浜)
일본 도쿄에서 400km 즘 떨어진 후쿠이(福井)현에 오바마(小浜)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인구 32,000여 명의 어촌이다. 이 도시는 오바마의 후보시절부터 그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던 곳이다. 지역 이름이 '오바마'일 뿐 다른 연고는 없다. 하지만, 이 지역 주민들은 오바마의 당선을 기원함은 물론 오바마 만두, 오바마 티셔츠 등 캐릭터 상품까지 만들어서 홍보했다. 상술(商術)이라기보다는 애교스러운 일이라고 본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아소타로 일본 총리와 통화를 하면서 "일본의 오바마 마을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 번 방문하고 싶습니다"고 말했다고 한다.
오바마(小浜)시의 한 시민단체는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현지 20일)날 밤 이 시의 하가지(羽賀寺:1447년에 건립된 절)에서 '세계로 전달되는 평화의 종‘을 주제로 한 축하 이벤트를 펼쳤다. 이벤트는 오후 6시 30분부터 개시되었으며, 오후 7시 에는 10개소의 절과 교회에서 동시에 일곱 번의 타종을 하는 행사를 가졌다. 평화의 종소리가 바다를 넘어서 전 세계에 울리도록 한다는 취지에서란다.(讀賣新聞)
또한,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한 항구 마을 오바마(小浜)의 정취를 담은 노래가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식에 맞춰 새로이 생겨남으로써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작가인 기무라 사토(木村 聰, 52세)씨가 쓴 '오바마(小浜) 여자(女)의 마을(町)' 가사에 멜로디가 붙여졌다는 소식이다. 작곡가를 공모한 결과 도쿄의 가정주부인 스즈키 준코(鈴木純子, 53세)씨의 곡이 당선되었다고 한다.
오바마(小浜) 여자(女)의 마을(町)
"작곡가 모집 중이라는 기사를 읽고 응모하게 되었습니다"는 스즈키(鈴木)씨는 회사원인 남편과 함께 이 곡을 만들었다. 어린 시절 피아노를 배웠고 현재 샹송 학원에 다니고 있다는 그녀는, 북쪽지방(北陸)의 풍경을 떠올리면서 3분 정도의 영감으로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부터 라이브 음악 활동을 해온 이 부부는 엔카조(演歌調)의 촉촉한 곡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엔카(演歌)는 일본 대중음악의 한 장르이다. 대체로 애조(哀調)를 띠고 있는 엔카(演歌)에는 일본인 특유의 감각이나 정념이 흐르고 있다. 그리고 엔카(演歌)에는 바다, 항구, 술, 여자, 눈(雪), 이별 등을 소재로 한 남녀 간의 슬픈 사랑이 많이 들어 있다. 이러한 엔카는 1960년대에 미소라 히바리(美空 Hibari, 1937-1989)에 의해서 확고한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으며, 그 후 유사한 음계에서 가수 개개인이 나름대로의 개성적인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오바마 여자의 마을>도 애조 띤 엔카(演歌)이다.
"타오르는 불길을 이마로 받아
물고기를 굽는 흐트러진 머리(髮)
시장 통의 어머니
무엇인가 얘기를 들으려 원한다
와카사(若狹) 오바마(小浜)는, 와카사(若狹) 오바마(小浜)는
사람의 마을........"
'바다는 사람을 맺어준다 어머니처럼'
오바마(小浜)에는 우리의 동해 바다와 연해있는 와카사(若狹)만이 있다. 대륙을 향한 바닷길의 길목이어서 야마토(大和) 정권의 관문이 되기도 했으며, 나라(奈良) 시대로 부터 전해온 문화재도 많이 남아 있어서 '바다가 있는 나라(奈良)'라는 별명이 붙여지기도 했다. 그리고, '와카사(若狹) 오바마(小浜)는 사람의 마을........' 이라는 노랫말처럼 이곳은 인정이 넘쳐나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2001년 1월 오바마(小浜)에 한국과 일본의 평화와 염원을 기념하는 '한국 배 조난 구호의 비(碑)'가 세워졌다. 이 비(碑)를 세운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메이지(明治) 33년인 1900년 1월 12일. 함경도 길주·학동사의 '사인반재(四仁伴載)' 선이 상인과 승무원 등 93명을 태우고 러시아의 불라디보스토크 항을 떠나 함경도 명천으로 향하던 중 표류하게 되었다. 추운 겨울 바다를 15일간이나 헤매던 이 배는 와카사(若狹)만에 좌초하게 되었다. 이 곳 주민들은 풍랑을 뚫고 이들을 구출하였으며, 각각의 가정집에 분산시켜 후한 대접을 해 주었다. 일주일 정도 머무른 이들은 그동안 정이 들어 친 부모형제처럼 눈물을 흘리며 석별의 마음을 나누었다고 한다. 오바마(小浜)의 어민들도 상인들도, 승무원들도 모두 눈물을 흘리면서 이별을 아쉬워했다는 것이다. 그 배의 승무원들은 '이 대접의 마음 잊을 수 없습니다'고 말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당시의 선원들과 어민들의 자손들이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한국 배 조난 구호의 비(碑)'를 세우게 되었다.
바다 - 항구 - 그 곳에는 사연이 많다.
그래서 ‘바다는 어머니처럼 사람을 맺어준다’고 했을까? 역사학자인 동국대 윤명철 교수는 "바다는 문화와 인간 그리고 역사를 담고 있는 초월적이며 포괄적인 존재"라고 했고, 시인 김광균은 '바다는 초라한 목선을 타고 가는 어부를 떠올리며 서러운 소리를 낸다' 고 했다.
"언젠가는 초라한 목선을 타고
바다 멀리 저어가던 어부의 모습을
바다는 때때로 생각나기에
저렇게 서러운 소리를 내고
밀려왔다 밀려나가는 것일까?"
바다 건너 오바마(小浜) 시민들이 종을 치면서 세계로 보낸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가 구호에만 그치지 말고 현실적인 이야기로 다가오기 바란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바다가 서러운 소리를 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