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여성은 과연 평등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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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밥을 사는 그날까지"를 외치며, 여성의 잘못된 남성에 대한 인식을 재미있게 다뤘던 개그콘서트의 종영된 코너, 남성인권보장위원회, 남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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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소는 누가 키울거야"라는 유행어로 방영중인 개그콘서트의 두분토론 코너는 남녀간의 차이를 주제로 한다




대한민국 여성은 과연 평등한가?

최근 연합뉴스에 따르면 25세에서 29세 여성 고용률이 67.9%로 사상 최대치를 갱신했다고 한다. 2010년 기준 OECD 가입국의 평균치인 63.9%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YTN을 비롯한 파이낸셜 타임즈 등에서 통계청에 의해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올해 2분기 20대 여성의 고용률은 59.2%로 동일 20대 남성 58.5%를 앞섰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런 현상은 2008년 1분기를 비롯해서 지속되고 있으며, 올해는 1,2분기 모두 여성이 남성 고용률을 앞지르고 있다.

이러한 성별간 고용률은 그 국가의 성별에 대한 인식과 남녀평등 문화가 정착되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는 결과이다. 특히나 불과 90년대 말이던 1992년도 한국의 여성 고용률은 43.2%로 당시 OECD 평균인 60.7%에 한참 못 미쳤다. 그러나 2004년 이후부터 한국의 여성 고용률은 OECD 평균치를 계속 웃돌았다고 한다.(연합뉴스 자료) 그만큼 한국에서의 여성에 대한 인식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여성에 대한 인식이 너무 단기간에 변모하다보니, 사회적으로 남녀평등에 대한 인식이 잘못되어 있는 경우를 흔히 접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이미160여년 이전부터 여성의 평등을 주장했던 미국과 비교해보자.

1848년 미국의 뉴욕 주에서는 첫 번째 여성권조약 (The First Women's rights convetion)이 개최되었으며, 이때부터 법아래 남녀는 동등하게 대접받아야하며, 여성의 투표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실제 미 헌법상에 여성의 투표권을 보장받게 된 것은 1920년이다.

이렇게 여성의 인권보장과 남녀평등에 대해서 오랜 역사를 가진 미국의 경우, 실제 현대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은 어떠할까? 미국사회에서 여성은 이미 남녀의 성적구분을 하기 이전에 인간이라는 ‘Human rights’에서부터 그 생각이 출발하게 된다. 즉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적인 분립 이전에 인간 그 자체 만으로서의 평등함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미국에서 보는 여성은 남성과 동일한 존재로 취급받고 또 여성들 역시 ‘내가 여자라서 ~하게 한다’라는 식의 사고방식은 아예 없다.

이러한 점은 여성들의 스포츠 참여나 직업적인 참여만 보더라도 그렇다. 한국에서는 남성들만 하는 직종을 손쉽게 찾을 수 있다. 흔히 접하는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여성인부는 찾아보기 어렵다. 공사장의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제외한다면, 대한민국에 하루하루 지어지는 모든 건물들은 남자들이 다 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중장비 건설기계를 운전하는 여성이나, 짐을 나르는 여성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물론 그 수가 남성만큼 비례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여성의 참여가 있다. 심지어 최근 미국에서는 금녀(禁女)의 구역으로 분리되었던, 잠수함 근무에 첫 여성해군인력을 승선시키려고 관련법규 및 시설을 개조하고 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스포츠에서 남녀간 기록의 차이와 성적(性的) 차별이 상당히 좁다. 최근 대구에서 개최되는 육상을 비롯한, 축구와 같은 구기 종목 뿐아니라 힘을 쓰는 레슬링 등에서 남녀차이는 크지 않다. 심지어 미국에서 레슬링의 경우, 체중이 적은 체급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함께 겨루기도 한다. 특히 체중차이가 크지 않은 미국 고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그렇다. 따라서 주(州) 대회에서 저 체급 중 속해있는 여자 선수들을 볼 수도 있다.

이 외에 미국에서 지역축구대회 및 학교에서 축구대회를 개최할 경우, 항상 남녀혼성팀의 출전을 도모한다. 혹은 반드시 팀내 11명의 선수 중 여성선수가 몇 명이상 있어야 한다는 항목도 있다. 이 때문에 필자는 미국에서 남자선수 이상의 기량을 가진 여자선수들을 많이 접했고, 일부 대학축구대회에서 여자선수에게 태클을 두 차례나 하며 그녀의 돌파를 막으려고 한 적도 있었다. 또 여성이 많이 포함된 축구팀의 우승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고, 팀 내에서 가장 뛰어난 스트라이커, 원톱(축구에서 최전방 공격수 한명을 주축으로 짠 포메이션)이 여자인 경우도 있었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는 절대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의 경우 전교생 통틀어 20명 이내의 작은 시골학교가 아닌 이상, 남녀학생 모두가 축구를 하는 경우는 흔치않다. 초, 중, 고등학교 점심시간에 학교운동장을 가서 보면,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며 뛰어노는 아이들의 100%가 모두 남학생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미 한국에서는 ‘내가 여자라서’ ‘너는 여자라서’ ‘어디 여자아이가’ 식의 가정교육도 일반화 되어있다.

이 때문에 대부분 국내 유명 여성 스포츠스타들의 경우, 어릴적 부모님의 ‘남다른’ 교육관으로 유명한 스포츠 선수가 된 경우가 많다. 그런 부모들의 대부분은 ‘니가 여자이기 때문에 못할 것은 없다’ 식의 교육을 시킨다. 이런 교육방법이 국내에서는 ‘남다른’ 교육관일지 모르지만, 미국에서는 전혀 남다르지 않은 ‘평범한’ 교육관이다. 또한 국내에서는 ‘여자가 드세면 시집을 못 간다’ 라는 애매한 유교적 사상도 한 몫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오히려 고구려시대에는 남녀모두 병역의 의무를 가지게 하고, 여성도 군에 활약했다고 한다.

필자가 미국 고등학교 시절, 축구팀에서 축구를 했었는데, 당시 미국인 친구가 이런 질문을 했다. “왜 한국 여자아이들은 스포츠 참여를 싫어하느냐?” 당시 필자는 그저 별로 할 말이 없었다. 미국 고등학교에서 스포츠는 대학을 가는데 들어야 하는 필수 항목 중 하나이다. 여기서 스포츠를 하지 않은 학생은 당연히 미국 대학진학에 어려움이 있다. 이를 위해 한국 여자학생들 대부분은 각 스포츠 팀에서 매니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었다. 이렇게 스포츠 팀에 들지 않고 매니저를 주로 하는 여학생들은 대부분 한국학생들이었다. 똑같은 한국인의 피를 가지고 있지만, 재미교포 2~3세의 여자학생들은 한국에서 온 여학생들과 달랐다. 그들은 이미 축구, 농구, 킥복싱, 등 가리지 않고 남자 아이들만큼 스포츠에 매진하고 있었다. 따라서 재미교포 여학생과 한국 여학생을 구별하는 데는 스포츠시간만 되면 알 수 있었다.

잘못된 남녀평등의식

한국에서는 이상한 남녀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물건을 든 여자는 반드시 남자가 들어줘야 한다? 돈은 항상 남자가 내야한다? 남자가 항상 여자를 집까지 바래다줘야 한다? 대부분 우리나라 미혼 여성들이 가진 인식이다. 그들은 오히려 이런 남성의 매너가 미국에서 그렇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필자가 미국에서 십년정도 살았지만, 위에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한번은 장을 보고 짐을 양손에 들고 돌아오던 미국인 여자학생에게 “도와줄까?”라고 물었다가 필자의 친절에 오히려 화를 낸 적도 있었다. 그 여자아이가 당시 필자에게 “내가 여자라고 무시 하는거니? 나도 이 정돈 충분히 들 수 있어!”라는 답을 들었다.

미국공항에서 짐이나오는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자신의 짐을 남자가 대신 꺼내주기를 기다리는 여성은 한국여성뿐이다. 미국에서 남자가 짐이 커서 꺼내는데 낑낑대고 있어도 미국사람들은 도와준다. 그 대상이 여자여서 남자여서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본다. 헌데 한국에서 간 여자들은 ‘저 미국남자가 도와준 것이 내가 여자라서 그렇구나. ‘내가 연약해보여서 그렇구나’. ‘역시 미국남자들은 듣던 대로 매너 남’이구나 라는 착각을 한다. 꺼내기 어려운 짐은 여자가 여자를 도와주는 경우, 여자가 남자를 도와주는 경우도 있다.

이런 예는 ‘뒷사람에게 문 잡아주기 매너’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배어 있는 매너 중 하나는 놓으면 닫히는 문을 뒤에 오는 사람이 부딪히거나 끼이지 않도록 잡고 기다려주는 매너가 있다. 누가 뒤에 오던지 미국사람은 문을 잡아준다. 심지어 동물이 뒤따라오더라도 잡아준다. 필자도 미국에서 이 습관이 베어 한국에서 하게 되는데, 뒤따라오는 사람이 여성인 경우 참으로 가관인 태도를 보고 아연실색하게 된다. 필자가 자신에게 호감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이 사람이 ‘나에게 왜 이러지’ 하거나, 도도한 채 더 느리게 걸어오거나 하는 식이다. 이 역시 한국에 자리 잡은 잘못된 남녀 평등적 사고에 있다고 본다.

미국영화, ‘프리티 우먼(Pretty Women, 한국제목: 귀여운 여인)’ 속 줄리아 로버츠를 꿈꾸며, 리차드 기어와 같은 부자 매너남의 친절의 환상에 젖어 여자는 대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이 적지 않다. 그러면서 불리할 때면 눈물을 무기처럼 앞세워 들이대고 필요할 때면, 남녀평등과 성차별을 운운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오히려 여성들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를 실추시키게 되는 것이다. 이런 예는 한국 드라마 속 여성들에게도 줄 곧 나오는 대목이다.

미국에서 남녀가 음식을 먹거나 쇼핑을 할 때, 일방적으로 남성이 금액을 지불하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남자와 여자가 귀가할 때 남자가 여자를 데려다 주는 경우도 흔치않다. 이 때문에 필자의 여성지인들 중, 미국인 남성과 교제 후 이런 말을 했다. “레이디 퍼스트(Lady First)하더니, 정말 돈도 여자가 먼저내고, 집도 안 데려다 준다.”며 오히려 ‘한국남자들이 정말 친절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한국의 남녀평등 인식은 남녀라는 성적 구분이전에 인간의 존엄성에서 시작되는 평등성이 아니다. 한국의 남녀평등은 이미 남과 여의 확실한 구분이 지어진 상태 위에 구축된 평등사상이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 여성이라서 ‘과잉의 친절’, ‘과잉의 편리’를 봐주는 경우가 크다. 단기간에 성장한 한국의 경제와 함께 단기간에 성립된 남녀평등 인식에 문제라고 본다. 그렇게 남녀평등에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 미국에서 조차, 여성전용 주차장, 여성전용 찜질방, 여성전용 헬스클럽, 여성전용 칸, 등등 여성전용이 난무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필자는 단 한번도 ‘여성전용(women only)’라는 문구를 화장실의 Women외에는 본적이 없다.

필자생각에 한국만큼 ‘여성전용’이라는 말이 많은 곳은 한국뿐이라고 생각한다. 필자의 본 글을 보고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반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도 반드시 남녀평등에 참된 의미를 다시금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진정한 남녀평등은 남자와 여자사이에 경계를 허무는 것이고 구분 없이 인간자체로 대한다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명심해야한다. 여성전용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여자라는 명확한 구분을 짓고 있다는 점에서 평등의 의미를 반하는 것과 같다.
사실상 다수의 페미니스트들은 남녀 차별은 사회적인 문제로 거론하지만, 사실상 이는 어찌보면 여성 스스로가 자신들만의 리그를 형성하면서 구분지으면서 문제를 야기시키는지도 모르겠다. 

 
간조선 통신원: 김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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