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네임 이스 엔드류(My name is Andr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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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네임 이스 엔드류


추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미국에서 사람을 만나면 가장 처음 묻는 질문은 대체로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이다. 이에 대한 답으로 필자는 마이 네임 이스 엔드류’ (My name is Andrew) 였다. 그렇다. 필자의 영어 이름은 앤드류였다. 앤드류라는 이름은 필자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기 전 한국에서 영어학원을 다니던 때에 생긴 것이었다. 당시 외화아동드라마로 나오던 주인공의 이름이 앤드류여서 필자는 앤드류라고 불리길 원했다. 당시 외국어학원에서는 외국인 선생님이 단순히 자신이 한국 아이들의 이름을 발음하기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에게 영어이름을 지어주거나 자신이 정하도록 하였다. 필자 외에도 당시 학원의 반 아이들 모두에게 외국인 선생님은 영어이름을 지어주었고, 모든 원생들은 자신의 영어이름에 대한 어떠한 거부감도 없이 이를 받아들였다. 이 때문에 아직도 필자는 당시 학원 원생들의 한국이름대신 그 흔한 토미, 제임스, 데니 등의 이름으로 그들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나중에 떠난 유학생활에서도 필자는 그 이름, 앤드류를 고수했다.

 

물론 필자에게는 외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김동연(金東衍)이라는 한국이름이 있었음에도 필자는 미국에 사는 동안 거의 모든 세월을 앤드류라는 이름과 함께 했다. 필자가 미국 고등학교에서 당시 학교 80년 역사상 처음으로 외국인이자 한국인으로서 전교회장을 했던 때에도 필자는 전교생에게 앤드류 킴(Andrew Kim)으로 알려져 있었다. 고등학교 선생님을 포함한 전교생들 중 필자의 본명, ‘김동연을 아는 이는 필자의 여권서류를 관리하던 교장선생님뿐이었다.

 

지금에 와서 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었다. 그리고 뒤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나는 앤드류가 아니라 김동연이고, 죽어서도 김동연이다. 김동연이 곧 나 자신이고 내가 곧 김동연이다. 필자가 스스로의 이름을 단순히 서양인이 발음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 영어화 한다는 것은 마치 대한민국의 국호에 영어이름을 지어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만약 이 논리가 맞다면, 우리는 외국인에게 우리의 발음 편의를 위해 랄프(Ralph), 프랭크(Frank)같이 발음하기 어려운 R F가 들어간 이름대신 민수, 철수, 영희 등의 이름을 지어 불러야 마땅하다.

 

헌데 자신의 이름을 영어이름으로 바꾸는 경우는 필자뿐 아니라, 우리들 모두 암암리에 당연하게 받아드리고 있다. 이런 경우는 비단, 사람이름뿐만이 아니라 고유명사인 된장찌개, 고추장, 등 음식을 비롯한 유형과 무형의 한국의 것들에 영어이름을 붙이고 있다. 종종 국내의 식당에서 메뉴를 보면 한국이름으로 된 식당메뉴 하단에 그 이름을 영어로 적은 것을 볼 수 있는데, Rice cake soup, bean sauce stew, 등 말도 안 되는 형태의 이름들이 붙여져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는 우리의 것에 영어이름을 지어주려고 안달이 나있다.

 

국내에서 종종 외국인이 오면 필자 주변에 사람들이 도와달라고 하는데, 그 중 자주 묻는 질문이 바로 야 된장찌개를 영어로 뭐라고 말하냐?, 떡국을 뭐라고 하냐?” 등등의 질문이다. 떡국은 영어로도 떡국이고, 된장찌개는 영어로도 된장찌개 이다. 된장 Soup, 된장 Stew식의 말도 안 되는 형태로 이름을 짓지 말아야 한다. 한국의 고유명사는 그대로가 세계적인 단어 그 자체인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당연한 것이자,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한국문화 세계화의 지름길이다. 이는 한국만 아니라 일찍이 서구문물을 받아드린 일본을 보면 답이 나온다.

우리나라에도 무사, , 찹쌀떡, 목도리 등의 한국단어가 있음에도 우리는 사무라이, 스시, 모찌, 마후라 등의 일어를 우리단어보다도 더 고유명사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이는 이미 우리가 일본문화 세계화에 일조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우리가 영어권 외국인을 만나서 무사를 설명한다면 아마도 사무라이라고 주저 없이 말할 것이다. 그리고는 우리와 함께 외국인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는 외래어에 우리의 고유명사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이런 식으로 일본은 우리의 전통음식인 김치를 세계에 기무치 라는 단어로 공식화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또한 기무치가 마치 김치보다 더 우월한 음식인 냥 세계에 알리려고도 하고 있다.   

 

최근 라스트 갓파더 (The Last Godfather)라는 할리우드 영화로 돌아온 심형래 감독이 만든 영화, 디워(The War)를 보면 영화 속 주인공이 용의 여의주를 찾을 때, ‘여의주라는 단어를 드래곤볼(Dragon ball)이라는 대체 외래어 등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여의주라고 사용한다. 그 외에도 이무기등의 단어 역시도 그대로 사용했다. 영어로 대사를 하는 외국인 배우가 여의주라고 하자, 당시 극장에서 디워를 보던 필자는 관객석에서 폭소가 터져 나오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왜 우리는 우리나라말 자체가 고유명사로서 세계에 쓰일 수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할까?” 왜 우리는 우리나라 말에 영어 대체어를 붙여주려고 할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 역으로 생각해보자. 일본사람이 사무라이를 ‘Knight’ (무사) 혹은 ‘Japanese Knight’라는 단어 대신 끝까지 사무라이라고 주장하고, 본 주장에 대해서 우리처럼 어떠한 저항 없이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 일까? 과연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언어에 우월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일까? 혹 일어가 한국어보다 발음이 쉽다? 라는 생각 때문일까? 이에 대한 필자의 답은 아니다이다. 일어의 발음은 결코 외국인에게 쉽지 않다. 영어권 외국인에게 있어서 한국어나 일본어나 중국어나 그 어떤 외래어라도 발음이 어려운 건 마찬가지이다. 필자 역시 일본 이름을 고수하던 일본아이들의 이름을 호명하던 미국 선생님들의 난감해하던 표정과 어눌한 일어발음을 잊지 못한다. 오히려 한국어는 발음이 쉽다고 생각하며, 이는 이미 세계언어학자들 사이에서도 입증되었다.

 

우리는 우리의 것에 더 이상 어색함이나 두려움 없이 세계에 자랑스럽게 알릴 수 있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고유명사를 외국어로 바꾸는 경우는 우리들이 쓰는 단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새로 만든 기업, 영화, 그룹에도 난무하고 있다. 축구를 응원하는 한국 응원단을 붉은악마라고 하는데, ‘붉은 악마를 대외적으로 말할 때는 레드데빌스’(Red Devils)라고 말한다. 붉은 악마를 왜 그냥 그대로 붉은 악마(예를 들어 Bull kun ak ma)라고 하지 못하는가? 이 외에도 영화 제목 괴물도 영어판 이름은 ‘Host’이다. 그냥 그대로 괴물이라고 불러도 된다. 영화는 이미 한국의 문화를 파는 것이다. 왜 제목이 한국어인데 이조차도 한국어 그대로 광고하지 못하는 가? 국내 가요계에서 유명한 음악 밴드, 부활의 이름 역시 외국에서는 Reborn이다. 부활은 그냥 부활이다. reborn이라는 이름으로 하는 순간 오히려 미국인에게 식상하거나 유치하여, 부활의 느낌을 주지 못할 수도 있다. 할리우드까지 진출한 가수, 비 역시 처음에는 영어이름 Rain을 쓰려고 했다. 비는 비이다. 가수 비의 경우, 외국에 이미 Rain이라는 이름을 쓰는 가수가 있어 그는 정지훈이라는 이름을 써야 했다고 한다. 과연 그냥 비라고 했다면, 그런 어려움을 겪어야 했을까?

 

외국인에게 우리가 쓰는 단어와 문화의 이름에 너무도 친절하게 그 뜻이 무엇인지를 알리려고 하는 과잉친절화가 우리에게 베어있는 듯 하다. 일본인이 사무라이를 외국에 알릴 때는, 그 어디에도, 그 누구도 사무라이무사’ (Knight)라고 알려준 적은 없다. 저절로 이에 궁금증을 품은 우리들이 무엇인지 직접 찾았고, 일본인들에게 물어서 알게 된 것이다. 이렇게 찾는 노력을 통해 우리는 일본을 배우고 일본문화에 더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그 문화를 배우는 데에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을 그들의 단어를 통해서 세계가 알게 되는 것이다. 

 

필자는 미국 유학생활 중 단 한번도 일본아이가 영어이름을 가진 경우는 보지 못했다. 심지어 미국으로 이민을 간 미국계 일본인들도 자신의 일본이름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었다. 그 순간 필자는 뒤늦은 깨달음을 얻었고, 마지막 대학생활에서 필자는 앤드류라는 이름을 버렸다. 사실 한국에서 영어학원을 다니던 9살 때부터 나를 대변하던 그 이름, 앤드류는 필자와 함께 10년 이상을 보냈지만 말이다. 그 이름을 버리고 김동연이 되었을 때, 필자는 어떠한 아쉬움도 없이 홀가분히 마치 번데기를 깨고 나온 나비처럼 훨훨 날아오르는 듯 했다. 김동연이라고 불리고 난 뒤부터 오히려 미국인들은 필자에 대해 더 큰 관심을 보였다. 지금껏 자주 물어본 적 없었던 필자의 국적은 물론 필자의 이름의 의미 등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 ‘내가 왜 진작에 내 이름을 쓰지 않았을까?”라는 후회와 한국을 알릴 수 있었던 그 많은 기회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왔다. 미국만큼 동명이인이 많은 나라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서양의 종교, 그리스도 교에서 영향을 받은 미국에서 아마도 앤드류의 수만 세어보아도 엄청난 수의 앤드류가 있을 것이다. 앤드류를 버린 순간 필자는 그 흔한 앤드류가 아닌 대한민국의 김동연이었다. 

 

즉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것에 어떠한 외국이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가수 비는 비이지 레인(Rain)이 아니다. 왜냐하면 Rain은 비를 번역한 것이다. 세계는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물었지, 그의 이름을 번역해달라고 한적이 없다는 점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껏 우리의 것들에 영어이름을 짓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쓸데없는 번역을 하고 있다. 김동연이라는 이름을 번역해도 앤드류는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김동연이었기 때문이다. 김동연은 나를 알리는 나의 고유명사이다. 

나는 김동연이다.

마이 네임 이스 김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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