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본래 월간조선 본지에 실릴 예정이었으나 시기적으로 늦은감이 있어 실리지 못해 이곳 통신원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현장에서 본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
취임식을 ‘오바마 데이’라고 불러,
워싱턴 D.C.의 수 많은 호텔방 매진
金東衍 조지워싱턴大 정치학과 재학ㆍ月刊朝鮮 미국통신원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은 미국 역사에 한 획을 그을만한 큰 사건이었다. 미국 역사상 有色(유색)인종이 大權(대권) 후보로 나타난 것도 이례적인 일이었는데, 당선까지 하게 됐으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바마의 당선은 미국 내 흑인들은 물론 他(타) 인종들에게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으며, 유색인종들에게 희망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사건이다.
미국에서 흑인들의 천대는 노예제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예였던 흑인들은 노동을 착취당하고, 인간으로 인정조차 받지 못했다. 당시 흑인들은 인구조사에 포함되지도 못했는가 하면, 필요한 때는 흑인 3명을 백인 0.5명이라는 식으로 계산해 인구 통계를 내기도 했다.
흑인의 인권은 1960년대 무렵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말콤 X 등 흑인 인권 운동가들을 통해 차츰 개선되기 시작했다. 그 후부터 흑인 최초의 야구선수, 흑인 최초의 전투기 조종사, 흑인 최초의 하버드 대학생 등등 ‘흑인 최초’라는 수식어들이 하나 둘씩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여러 분야에 걸쳐 흑인들은 미국 사회에서 발을 넓혀 갔으며, 드디어 2009년 ‘흑인 최초의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아이러니 한 점은 미국에서 백인 여성의 투표권이 흑인 남성에 비해 늦었던 것처럼, 지난 대선에서 여성 대통령 후보자로 출마했던 ‘힐러리’를 민주당 당내 경선에서 오바마가 이김으로써 백인 여성 대통령보다 먼저 흑인 남성 대통령이 탄생했다는 점이다.
2009년 1월 20일,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는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식을 보기 위해 전세계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워싱턴 D.C.의 수 많은 호텔은 방이 매진됐고, 심지어 대학생들이 거주하는 아파트 등에도 방을 예약하는 사람들이 몰렸다.
필자처럼 대학 기숙사에 거주하고 있는 학생들은 학교 규칙에 따라 기숙사를 외부인에게 임시로 세를 주는 것이 불가했지만, 기숙사 방이라도 구하려는 관광객들의 문의가 학교마다 빗발쳤다. 일부 학생의 가족들은 기숙사에서 숙박하기도 했다.
워싱턴 D.C. 내에 있는 대학에서는 취임식 여파로 학교운영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많은 교수들이 취임식 당일 수업을 취소했으며, 대학 내에서 각종 업무를 처리하는 흑인 직원들은 일부가 ‘오바마 데이’(Obama Day)로 불리는 취임식 당일에 결근을 하기도 했다.
현란했던 취임식 현장
필자는 1월 20일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식을 보기 위해 필자의 동생, 친구와 함께 백악관으로 가는 펜실베니아 거리로 향했다. 필자가 재학 중인 조지워싱턴大(대)는 사립학교이기 때문에 취임식 당일 정상수업을 진행한다고 했지만, 대부분의 교수들은 수업을 취소했다.
펜실베니아 거리에서 취임식 기념 퍼레이드가 열린다는 공지 때문에 많은 인파가 몰렸다. 강추위 속에서 필자의 친구들은 좋은 자리를 구하겠다며 새벽 3~4시에 기숙사를 나서기도 했다. 우리 일행은 추운 날씨 때문에 일찍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아 오전 9시 무렵 문을 나섰다.
필자가 펜실베니아 거리에 도착했을 무렵 이미 수많은 인파가 펜실베니아 거리에서 워싱턴 기념탑을 향해 가고 있었다. 보안상의 문제로 펜실베니아 거리에서 예정됐던 취임식 퍼레이드 및 취임식 중계가 워싱턴 기념탑 쪽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실제 취임식은 국회에서 진행되지만, 행사장에 들어가려면 사전에 티켓을 예매해야 했다. 티켓을 예매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필자처럼 주변에서 취임식 중계를 해 주는 곳을 찾아야 했다.
필자는 4년 동안 워싱턴 D.C.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평소 이 일대의 교통량과 사람들의 통행량을 잘 알고 있다. 특히 필자의 학교에서 불과 세 블럭 안에 백악관이 있기 때문에 평소 백악관 주변의 교통 상황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워싱턴 D.C.에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식 때처럼 많은 인파가 몰린 것을 처음 보았다.
헌병과 경찰 병력들이 워싱턴 중심가로 통하는 교통을 통제, 차단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도로 위를 마음껏 활보하며 이동하고 있었다. 마치 서울 광화문 거리 위에서 벌어졌던 촛불시위 광경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차가 다니던 도로 위를 점령하고 있었다. 촛불시위와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람들이 취임식이 열리는 곳을 향해 비폭력적으로 이동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번 취임식에 가장 많이 참석한 사람들은 단연 흑인계 미국인들이었다. 특히 취임식 바로 전날인 1월 19일이 흑인인권 운동을 했던 마틴루터 킹 목사의 날이어서 흑인들의 열기와 새 대통령을 맞는 태도가 남달랐다.
도심 곳곳에는 일반 경찰 요원에서부터 특수 무장 경찰요원, 영화에서 보던 정장과 무전기를 귀에 꽂은 FBI 요원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도심의 교통을 통제하는 데 이런 兵力(병력)뿐 아니라 버스와 덤프트럭이 동원된 것도 신기했다.
도로를 차단하기 위해 곳곳에 대형버스와 트럭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은 평상시 워싱턴 D.C.에서는 볼 수 없는 진기한 풍경이었다. 이들 버스들 중 일부는 전국 각지의 관광객들이 타고 온 버스였다. 이런 버스들을 특정 장소에 배치시킴으로써 필요에 따라 도로를 차단 하는 용도로 사용한 것이다.
폭발물 방지 차원에서 도심 곳곳의 쓰레기통을 없애는 바람에 사람들이 쓰레기를 함부로 버려 거리가 다소 지저분해 진 것이 흠이었다. 워싱턴 도심 내의 거의 모든 고층건물은 오바마 대통령의 저격을 방지하기 위해 출입이 통제됐다. 또 곳곳에 수백 개의 이동식 화장실도 설치됐다.
백악관 주변에는 이동식 철조망이 배치되어 사람들의 행렬을 통제했으며, 티켓 없이 출입이 불가한 지역은 일반인들의 출입이 원천 봉쇄됐다. 또 백악관 근처의 도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가방 검사와 몸 수색을 받아야만 했다. 백악관 근처의 고층 빌딩 위에는 특수 경찰요원과 저격수가 배치됐다. 이 외에도 도심에서 간간히 경찰차량들이 사이렌을 울리며 무리지어 이동하기도 했다.
또 다른 볼거리는 도심 곳곳에 자리잡은 노점상들이었다. 대부분의 노점상들은 흑인들이었는데, 오바마 대통령이 그려진 티셔츠와 모자, 배지 등을 팔았다. 오바마 대통령의 얼굴은 그의 취임 전부터 여러 패션업계에서 이용됐는데, 이는 종전 대통령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광경이었다.
취임식에 맞춰 일부 기업들이 특별 세일을 하거나, 공짜로 自社(자사) 제품을 나눠주는 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상업계의 이런 호응은 오바마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을 대변하는 것이다. 필자도 취임식 당일 스타벅스 커피를 공짜로 마실 수 있었다.
필자는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연설을 워싱턴 기념탑 앞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지켜봤다. 워싱턴 기념탑 주변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 부분부분 마다 성조기를 흔들며 환호를 보냈다.
필자는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을 지켜본 뒤 취임기념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이동했으나, 너무 많은 사람과 추위 때문에 군악대 퍼레이드만 조금 볼 수 있었다. 오바마 취임식은 미국 역사에 있어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이 가진 의미만큼이나 성대하게 이루어진 것 같았다. 성대했던 오바마의 취임식처럼 그가 재임 중에 남기게 될 결과도 화려하길 바랬다.
미국 44대 대통령의 비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44대 대통령이다. 44대 대통령인 오바마 대통령이 과연 미국 역사상 44번째 대통령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미국의 대통령은 초대인 조지 워싱턴부터 버락 오바마까지 모두 43명뿐이다. 그렇다면 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44번째 대통령이 된 것일까? 이 수수께기의 해답은 22대와 24대 대통령을 역임한 그로버 클리브랜드(Grover Cleveland) 가 쥐고 있다.
그로버 클리브랜드 대통령은 22대와 24대를 역임함으로써 한 사람이 두 번의 임기를 재임했다. 따라서 同一(동일) 인물이 두 번 대통령 직을 수행했기 때문에 대통령 수를 셀 때는 1명의 공백이 생기게 되지만, 임기인 代(대)를 셀 때는 43대가 아닌 44대로 표기한다.
이 부분에서 이의를 제기하는 독자가 있을 수도 있다. ‘그로버 클리브랜드 외에도 2번의 임기를 지낸 대통령이 많은데 왜 유독 그로버 클리브랜드 대통령의 임기만 문제가 되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나 얼마 전 임기를 마친 조지 부시 대통령 역시 2번의 임기를 마친 대통령들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대통령의 대를 세는 데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는 바로 대통령의 임기가 연속으로 두 번 되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에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연임하여 두 번의 임기를 마쳤더라도 한번의 대 수로 표기가 된다. 예를 들어 두 번에 걸쳐 임기를 마친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미국의 43대, 44대가 아니라, 그냥 43대 대통령이다. 하지만 지속적이지 않은 임기를 두 번 마쳤을 때는 동일 인물이라도 그로버 클리브랜드 대통령처럼 대 수를 셀 때 따로 표기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미국 역사상 대통령의 총 수는 최근 취임한 오바마 대통령을 포함해서 43명이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대수는 44대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1947년 수정된 미국의 헌법 중 대통령의 임기에 관련된 조항을 보면 선거를 통한 대통령 임기는 두 번까지만 가능하다. 이는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네 번 대통령에 당선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FDR) 이후 개정된 것이다. 하지만 헌법 어디에도 두 번의 임기를 연속적으로 마쳐야 한다는 내용은 없다.
그로버 클리브랜드 대통령은 첫 번째 임기가 끝난 직후 곧바로 대선 출마를 했지만 낙선했다. 이후 그는 세 번째 대선에서 당선되어 연속적이지 않은 두 번의 임기를 수행한 미국 최초의 대통령으로 남았으며, 유일하게 두 개의 대수를 부여 받은 대통령이기도 하다.
이런 미국 44대 대통령의 수수께기는 미국인들도 잘 알지 못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역시 취임식 연설 당시 “지금까지 44명의 대통령들이 취임 선서를 마쳤다”는 말을 했을 정도로 오바마 자신도 모르는 44대 대통령의 비밀이다.
워싱턴 D.C.에서
월간조선 통신원, 김동연
취임식 당일 필자의 학교주변 도로를 봉쇄한 정부요원들
사진설명; 도로를 봉쇄한 헌병차량, 험비와 우회하는 행인들
전광판을 통해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식을 지켜보는 시민들
워싱턴 기념비(Washington Monument) 앞에 모인 사람들
보안의 이유로 제거된 쓰레기통 때문에 임시 쓰레기통이 되어버린 신호등 관제기
대통령 취임식 퍼레이드에 참가한 흑인 음악대.
백악관 앞에 설치된 임시 관객석으로 인해 백악관이 잘 보이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