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개량궁 쏘기 시범을 보이시는 권무석 궁장님, 저 뒤에 멀리 보이는것이 145M 밖의 과녁이다.
세계를 향해 활을 쏘다.
필자는 현재 워싱턴 D.C에서 조지워싱턴 대학을 다니면서 주미 대한민국 대사관의 홍보관 (KORUS House)에서 인턴으로 일을 하고 있다. 이번에 대사관에서 참으로 뜻 깊은 행사를 개최했다. 그것은 바로 한국의 전통 활, 국궁(國弓)을 알리는 이벤트였다. 지난 주 수요일 대사관에서 세미나를 갖고, 토요일은 직접 참가자들과 함께 국궁을 체험하는 실외 행사를 열었다. 이 행사를 통하여 사라져가는 한국의 활과 서양의 양궁을 비교 체험하는 행사로서 한미 동맹을 가깝게 다지며, 한국의 전통을 미국에 알리는 계기였다.
우선 이번 이벤트를 열게된 계기는 한국에서 오신 권무석 궁장님의 요청으로 열린 이벤트였다. 권무석 궁장님은 국내에 몇 안되는 전통 활을 만드시는 무형문화재이시다. 권무석 궁장님은 사라져가는 한국의 전통을 살리고져 국내는 물론 국외적으로도 한국의 활을 알리는 일환으로 이번 이벤트를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서 개최하기를 희망하셨다.
필자는 궁장님과 나눈 대화를 통하여 권무석 궁장님이 가지고 계신 세계관과 전통을 살리고져 하시는 확고한 정신에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국내의 활 고장이라 불리우는 경상북도 예천에서 올라오신 궁장님은 그저 나이 지긋해 보이는 여느 할아버지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궁장님의 말씀에는 우리의 전통을 살리고자 하는 굳은 의지가 엿보였다. 권무석 궁장님은 “이제 더이상 세계는 국경없는 하나의 나라야" . 라고 하셨다. 따라서 이런 글로벌 시대에 맞춰 우리나라의 전통도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데 힘써야 한다고 하셨다.
필자는 궁장님과 대화를 할 수록 궁금증은 더해만 갔다. 과연 이런 전통이 계속해서 이어져야 할텐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전통 활을 지키려고 하는지 궁금했다. 궁장님의 말씀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전통 활을 만들 수 있는 장인은 궁장님을 포함해서 약 6명이라고 하셨다. 그나마 활을 쏘는 법을 배우려는 사람은 많지만, 만드는 법을 배우려는 사람은 적다고 하셨다.
그럼 얼마동안 배워야 활을 만들 수 있느냐고 여쭤 보았더니, 자신이 아는 일부 장인은 아들과 함께 한 평생을 만들어 왔지만 장인이신 아버지가 죽고, 아들은 단 한개의 활도 만들지 못했다고 한다. 이는 장인이신 아버지는 아들이 알겠거니하고 지내왔고, 아들 역시 아버지 만드시는걸 보고, 다 알겠거니 라는 이심전심에 아버지를 여의고 아들은 한개의 활도 만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셨다. 또 재주좋은 어떤 사람은 한 6년에서 7년 배우고 혼자 독립해서 나가서 만드는 사람도 있다고 하셨다. 불과 90년대 까지만 해도 국내에 활 장인은 80여명이었으나, 더 이상 부가가치 산업으로 이어지지 못해, 고작 6명 정도만이 이 활 만들기의 명맥을 잇고 있다고 하셨다.
이 말을 듣고 필자는 사라져가는 우리나라의 전통에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정작 우리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을 외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무도 전통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이 참 안타까웠다. 우리는 가끔 평상시에 페셔너블(Fashionable) 해 보이려고 중국의 치파오나 일본의 기모노등을 입고 또는 입어보고 싶어하면서도 명절조차 한복 입는 것을 무슨 벼슬하듯이 한다. 우리 스스로 우리의 전통을 폄하하는 버릇을 고쳐야 할 것이다.
그럼 한국의 활이 어떤 것인가를 필자는 궁장님을 통해서 듣고 또 체험해 보았다. 참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인이라서 한국의 활이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실로 한국의 활은 서양의 양궁보다는 물론, 세계 최고였다.
그 예가 바로 사정거리이다. 궁장님 말씀이 신라시대의 기록에 따르면 한국의 활의 사정거리가 천보에 달한다고 한다. 약 700M (미터)를 육박하는 거리란다. 지금의 활 중 물소 뿔로 제작된 활 역시 대략 500미터까지도 발사가 가능하다고 한다. 당대 최고의 사정거리를 가진 활이었고, 지금까지도 이 사정거리를 능가하는 활은 없다고 한다. 더욱이 놀라운것은 현재 사용하는 화살의 무게가 약 30g 그램 정도 인데, 신라시대 기록에 나온 천보의 거리가 나갔던 화살의 무게는 약 200g (그램)에 달한다고 하셨다. 현재 올림픽 양궁에서 남자부 최장거리가 90M(미터)임을 감안하면 참으로 경이로운 수치이다. 또한 현재 사용되는 저격용 소총외에는 일반적인 권총과 소총의 사거리가 1Km 를 능가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국 활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사진설명; 한국의 전통 과녁, 검은부분은 같을 동(同)자에서 유래하여 어느곳을 맞춰도 점수는 같다는 의미, 빨간부분은 일제식민지때 생겨난 것으로 일본을 싫어하는 마음에 과녁에 새겨넣은데서 유래했다.
궁장님 말씀이 신라시대에 이 한국 활의 명성을 듣고 중국에서 한국의 활 장인을 데려갔으나, 장인이 끝내 가르쳐 주지 않아 기밀을 유지했다. 결국 그 장인은 사형 당했다고 하셨다.
처음 그가 중국에서 만든 활의 거리는 고작 30보였다. 그러자 중국의 왕이 그 이유를 묻자 재료가 한국의 것이 아니라 그러하다 하였다. 그래서 중국 왕이 한국에서 재료를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다시 만든 활의 사거리는 60보에 달했다. 그러자 왕이 또 그 이유를 묻자, 장인이 말하길 가져오는 동안 바다의 염기가 스며들어 그러하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결국 중국은 신라의 활 기술을 가지지 못했다. 그밖의 몽고의 활 역시 사거리가 70보 남짓하고, 일본의 활 역시 60보정도이며, 임진왜란 당시 조총의 사거리 또한 100M정도로 한국의 활에 비해 거리가 짧고 재 장전시간이 오래 걸렸다 한다.
이런 전쟁용 활이 아닌 보급용으로 제작 된 한국의 개량 궁의 사거리 역시 145M에 달한다.
국궁 체험이벤트에 사용한 활 역시 이 개량 궁이었는데, 145M 밖의 과녁을 넘어가는 일도 부지기수 였다. 이에 반해 비교를 위해 참가했던 양궁 선수들과 로빈훗이 쏘았다던 영국의 활 역시 145M의 거리에 도달하는 화살은 오로지 한국의 활 뿐이었다. 영국의 활은 활의 크기만도 사람의 키에 달할 정도로 약 160Cm (센티미터)에 달했으나, 굴곡이 없는 긴 나무였으며 탄성의 많은 부분을 오로지 줄에만 의존하는 듯 했다. 그래서 약 20여발 가량의 화살을 쏘았지만 단 한발도 145M 밖의 과녁에 도달하지 못하고 100M 정도 쯤에서 떨어졌다.
이로써 우리 선조(先祖)들의 지혜가 얼마나 앞섰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사진설명; 145M밖의 과녁을 향해 활을 쏘는 영국활 궁수, 그러나 100M정도에 떨어지는 화살을 보고 아쉬워 하는 모습
이번 이벤트를 통해서 한국의 전통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진정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되새겨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 궁장님이 미국에 머무르시는 동안 우리의 활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활을 가르치실 것이고, 이를 통해 우리의 문화가 미국에 널리 퍼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필자도 잠시나마 우리의 개량 궁을 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조준은 어려웠지만 멀리까지 거침없이 날아가는 화살을 바라 보고 있으니, 참으로 마음이 시원하고 한국인의 긍지를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미국 땅에서 이런 문화적인 교류와 한국의 전통을 살리는 이벤트가 많았으면 좋을 것 같다. 이번 이벤트를 마치면서 마음속에 남는 불안감은 이런 우리의 전통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이 커져만 갔다. 하루빨리 국가적으로도 이런 전통을 살려서 문화적인 자원화를 시켜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