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과 北韓 조선중앙 TV 보도

  • 이상흔 월간조선 기자 hanal@chosun.com
  • 업데이트 2009-10-06  17:57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

北韓 조선중앙 TV는 中國 溫家寶(온가보) 총리의 訪北 보도에서 “김정일 동지께서는 우리나라를 공식 친선방문하고 있는 온가보 동지와 함께 평양대극장에서 가극 홍루몽 공연을 관람하시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북한은 溫家寶를 中國音을 어설프게 흉내낸  ‘원자바오’가 아니라 우리식 한자음으로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1990년대 말까지는 중국 地名과 人名을 현재의 북한처럼 제대로 읽고 발음해왔습니다. 毛澤東(모택동), 周恩來(주은래), 鄧小平(등소평)이라고 발음했고,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 구분하는데 아무런 불편을 겪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난데없이 “중국 인명과 지명을 현지음 대로 표기한다”는 어문법을 마련해서 언어 생활에 엄청난 혼란과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도 1911년 辛亥革命을 기준으로 우리식 한자음과 중국 현지음으로 다르게 표기하라니 황당함도 이정도면 기네스북 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해혁명이 일어나서 중국의 인종이 바뀌었습니까? 중국의 말이 바뀌었습니까? 도대체 한 나라의 인명과 지명을 연도에 따라 다르게 표기 한다는 발상이 어떻게 나왔는지 제 상식으로는 이해가 불가할 뿐입니다.

英語를 배울 때 미국 독립기념일을 기준으로 그 전에는 영국식으로 읽고, 그 후는 미국식으로 읽으라고 하면 천하가 웃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실제 중국어 표기법에서 천하가 웃을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2년 전 중국의 太平天國 난을 다룬 책을 읽다가 쓰레기통에 집어던진 적이 있습니다. 중국 인명과 지명을 모두 현지음으로 써 놓아서 도무지 독서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중국 관련 글을 보면 같은 내용 안에 인명과 지명이 우리음과 중국음으로 기준없이 왔다갔다 하는 사례가 흔하고, 심지어 같은 지명이 다르게 적힌 경우도 있습니다.  一國의 국어에 이런 난장판이 있을 수 없습니다. 

日本語도 마찬가지 입니다. 

조선시대 申維翰이란 분이 통신사 製述官(기록 담당관)으로 일본에 다녀와 남긴 海遊錄이란 글이 있습니다. 최근에 번역된 한 책을 보니 일본의 지명과 인명, 고유명사가 모두 우리식 한자음으로 표기되어 있었는데, 읽기가 편하고, 집중이 잘 되어 머리가 한결 맑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일본의 인명과 지명을 일본식으로 읽는 것은 일제의 직접적인 강점이 큰 영향을 미친 탓입니다. 그렇더라도 일제시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본의 인명과 지명을 그냥 우리식으로 읽었습니다. 安重根이 伊藤博文(이등박문)을 죽였다고 했지, 이토 히로부미를 죽였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무려 2000년 동안 한자를 우리글로 사용해 왔습니다. 오늘날 중국 전통 복장은 淸나라 시대의 것을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겨우 200년 동안 사용한 것인데도 한 나라의 전통 복장으로 굳어진 것입니다. 하물며 2000년 동안 우리의 희로애락을 표현해온 글자는 말해서 무엇하겠습니다.

이런 글자가 하루 아침에 진짜 외국 글자인 영어와 동급으로 취급받는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얼마나 깊이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가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신문에 그나마 몇 글자 안 되는 쉬운 한자를 쓰면서 거기에다 괄호 안에 한글을 달고 있는데,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일본에서는 초등학교 저학년도 이렇게 한자 옆에 발음기호를 달지 않습니다. 어쩌다 우리의 한자 실력 수준이 일본의 소학교 저학년 학생만도 못한 지경에 이르렀는지 생각할수록 슬플 뿐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지난 수백년 간 일본 앞에서는 자존심을 한 치도 굽히지 않았는데 그것은 우리가 그들보다 문화적으로 위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한문으로 대표되는 이런 문화적 자존심이 없었으면 일제시대 그 많은 독립운동가도 나타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일본은 지배 초기에 統監을 파견할 때 한국인들의 한문 수준이 높은 것을 감안, 한국인들에게 무식한 놈이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적절한 한문 실력을 갖춘 인물을 찾기 위해 애썼다.)

신문에서 한자를 쓰지 않은지 10여년도 안되어 우리 국민들의 교양 수준이 바닥을 치고 있는데 앞으로 일본과 더 벌어질 문화적인 격차를 어떻게 극복할지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後記:

舊한말과 일제시대 독립운동가 대부분은 유학자, 즉 선비들이다. 김구, 이승만 같은 민족의 지도자는 말할 것도 없고 안중근, 윤봉길 같은 열혈남아를 비롯 이회영, 안창호, 신채호 등 인품이 고고하고 기라성 같은 독립운동가들 대부분이 당대 최고의 유학적 교양을 갖춘 선비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전통 유학은 비록 나라가 망하는 것은 막아내지 못했지만, 나라가 망한 후 독립운동가들에게 의리와 지조라는 선비 정신을 넘겨줌으로써 민족 魂이 망하는 것은 막아냈다고 할 수 있다. 

  • 스크랩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
많이 본 뉴스
  • 세계속 코이카'
  • 배진영의 '어제 오늘 내일'
  • 김태완 'Stand Up Daddy'
  • 권세진 ‘별별이슈’
  • 정혜연 ‘세상 속으로’
  • 박희석 ‘시시비비’
  • 이정현 ‘블루오션을 찾아서’
  • 박지현 ‘포켓 저널리즘’
  • 하주희 ‘블루칩’
  • 이경훈 현장으로’
  • 김광주의 뒤끝
  • 백재호의 레이더
  • 고기정의 特別靑春
  • 슬기로운 지방생활
  • 이상곤의 흐름
  • 서봉대의 되짚기
  • 국제상인 장상인의 세계, 세계인
  • 취재본부는 지금’
  • 조갑제 기자의 최신정보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