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고한 정신의 모험가 詩人 황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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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황동규, 시의 길을 묻다!

 

 스스로 詩人을 「시가 타는 심지」라고 말한다. 절벽에 서 있는 시간을 文字(문자)로 부여잡고 生의 悲意(비의)를 깨무는 詩人이 있다.

 

  서울大 명예교수 황동규 詩人은 등단(1958) 이후 지금까지 깊이를 알기 어려운 견고한 서정의 세계를 구축해 왔다. 언제나 머무르지 않고 「시여 터져라. 생살 계속 돋는 이 삶의 맛을 제대로 담기가 벅차다」고 외치며 평생 創新(창신)의 길을 걸었다.



  그는 여전히 生과 死의 화두

그는 여전히 生과 死의 화두를 혼자 던지며 삶의 견고한 징후를 포착, 노래와 시로 옮기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지금까지 13권의 시집(시선집과 시전집 제외)을 냈고, 630여 편의 詩를 써왔다.

 

  서울 관악구 서울大 명예교수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번뜩이는 眼光(안광)으로 기자를 맞았다. 백태가 끼지 않은 영롱한 눈빛의 이 老시인은 곧장 「維摩經(유마경)」 이야기부터 했다. 「유마경」은 「般若經(반야경)」 이후 나온 1세기경의 초기 대승불교 경전이다.

 

  『만해 한용운 선생은 「유마경」을 번역하다 돌아가셨어요. 「유마경」은 空(공)이란 단어를 하나도 쓰지 않지만 시종 空을 가르칩니다. 생각해 보세요. 타인을 위해 일하는 「利他行(이타행)」은 보답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옳은 일 자체가 좋아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空입니다. 空 없이는 「유마경」도 없고 「유마경」 없이는 空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空이 허무주의에 빠져드는 것을 「유마경」이 보완합니다』

 

  지난해 출간된 시집 「꽃의 고요」는 「유마경」의 마음을 담으며 쓴 詩다. 자아를 긍정하는 타인을 만나는 禪(선), 타인을 긍정해서 자아를 비우는 「유마경」과 만나 詩를 썼다고 했다. 석가와 예수를 등장시켜 禪문답식으로 예수의 언행을 불타에게 전이시키고 불타의 언행을 다시 예수에게 전이시킨다.

 

  <「꽃지는 소리가 왜 이리 고요하지?」/꽃잎을 어깨로 맞고 있던 불타의 말에 예수가 답했다./「고요도 소리의 집합 가운데 하나가 아니겠는가?/꽃이 울며 지기를 바라시는가,/왁자지껄 웃으며 지길 바라시는가?/「노래하며 질 수도…」/「그렇지 않아도 막 노래하고 있는 참인데.」/말없이 귀 기울이던 불타가 중얼거렸다./「음, 후렴이 아닌데!」>(「꽃의 고요」 중에서)

 

  <「요즘 멜 깁슨이라는 자가 만든/그대의 수난 영화가 가히 엽기적이라던데./지금껏 나는 그대가 고통보다는/환희의 존재라고 생각했지.」/불타가 입을 열자 예수가 말했다./「이른 봄 복수초가 막 깨어나/눈 속에 첫 꽃잎 비벼 넣을 때/그건 고통일까 환희일까?」/「막 시리겠지」> (「고통일까 환희일까?」 전문) 

 

  평생을 쓴 630편의 詩는 59세에 숨진 杜甫(두보·1400여 편)에 비하면 턱없이 적지만 李白(이백·700여 편)과는 견줄 만하다. 황동규 詩人은 「변모의 시인」으로, 「거듭남의 미학」으로 쉬지 않고 3년을 주기로 시집을 펴냈으며, 「두시언해」와 예이츠, 랭보에게 詩的(시적) 영향을 받았다. 간행된 시집 중 가장 좋아하는 시집을 물었더니 의외로 「꽃의 고요」라고 답했다.

 

  『시를 아는 사람들이 「꽃의 고요」가 최고라고 하더군요. 저는 아니라고 했어요. 요 다음에 나올 시집이 최고라고 말했습니다. 이미 쓴 시는 관심이 없어요, 앞으로 쓸 시가 문제지』

 

  詩 욕심만은 여전히 절절하다. 하지만 「제일 아끼는 시」를 물었더니 『어느 자식이고 소중하지 않은 게 있냐』고 했다. 「대개 시를 어떻게 쓰느냐」고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시를 쓰고 싶어서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삶의 진실이 밖에서 들어와, 어쩔 수 없이 시를 쓰게 만듭니다. 어떨 때는 별안간 잠속에서 깨어나 시를 쓰고 충격적인 풍경, 아름다움과 만나서 시를 씁니다. 삶이 시를 쓰게 만드는 것이죠.  토머스 만의 「마의 산」,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에서 보면, 비극의 주인공은 대개 중세적 인간입니다. 셰익스피어는 중세적 덕목을 가진 사람이 르네상스적인 인간에게 무참히 당하는 것을 보면서 작품을 쓴 겁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은 당시 러시아를 망친 구라파의 허무주의와 無정부주의를 견제하기 위해 쓴 겁니다. 그러나 공격하고 탐구하다 보니 그만 허무주의에 매료돼 「악령」이란 작품이 나온 겁니다. 제게 있어서도 시는 삶의 진실이 어쩔 수 없이 쓰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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