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 원문] <풀>의 시인 김수영의 시와 산문(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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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원문]  <풀>의 시인 김수영의 시와 산문(下)

“나의 재산은 정성뿐이었다”
 
⊙번역소설 <밀월>은 소녀취향의 하이틴 소설에 가까워
⊙김수영은 자신의 번역을 ‘청부 번역’, ‘수지도 맞지 않는 구걸 번역’이라 말해
⊙“‘독서번역창작’이라는 연쇄 고리는 바로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삶을 꾸려갔는가를 증명해”
 
金泰完 月刊朝鮮 기자 kimchi@chosun.com
 

《월간조선》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김수영(金洙映·1921~1968)의 번역 소설 <밀월>(《主婦生活》 1958.6)과 초기 번역에 해당되는 <미국 군대 내의 흑인>(《軍事 다이제스트》1954.9), 산문 <미국 역대 대통령 비화>(《實話》1955. 5) 등을 공개한다.
또 시인 한하운·김종문의 시집을 읽고 쓴 시월평(詩月評) 두 편도 아울러 게재한다.
‘해외순정소설’이란 어깨제목을 단 <밀월>은 소녀취향의 하이틴 소설류(類)에 가깝다. 저자(베티 A. 브란트) 이름도 낯설다. 할머니의 재혼(再婚)을 바라보는 두 손녀의 복잡한 속내가 잘 그려져 있다. <미국 군내 내의 흑인>은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인해 백인과 흑인의 인종갈등이 희석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다.
<미국 역대 대통령 비화>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아들 ‘로버트 링컨’이 이기하게도 자신의 아버지와 ‘제임스 가필드(20대 대통령)과 ‘윌리엄 매킨리’(25대 대통령) 등 3명의 대통령이 암살되는 장면을 목도했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이 글은 ‘비화(秘話)’형식을 띠지만 미국 대통령에 대한 여러 편의 에피소드를 한데 엮은 번역글로 추정된다.
 
김수영에게 번역은 거대한 벽
 
김수영의 번역체험이 그의 문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는 문학 연구자의 몫이다. 다만 기자는 김수영이 자신의 <시작노트>에서 “내 시의 비밀은 내 번역을 보면 안다”는 말에 주목한다. 시인에게 번역은 생계도구이자 ‘거대한 벽’이었던 것이다.
“도대체가 우리나라는 번역문학이 없다. 짤막한 단편소설 하나 제대로 번역된 것을 구경하기 힘들다”(산문 <모기와 개미> 1966.3)며 오역(誤譯)과 생략(省略)이 난무했던 당시 번역문화를 꼬집으면서도, 덤핑출판사의 값싼 번역청탁(김수영의 표현대로라면 ‘한 장에 30원씩 받는 청부 번역’, ‘수지도 맞지 않는 구걸 번역’)에 “못하겠다고 큰 소리를 칠만한 용기가 없어” 받아들인다. 산문 <모기와 개미>에는 이런 표현이 있다.
<이제 출판사 사장하고의 거래는 완전히 그의 KO승이다. 이렇게 되면 나의 전술은 간교해지는 수밖에 없다. 에라 모르겠다, 최모의 번역을 군데군데 어벌쩡 고쳐가며 베끼는 수밖에 없다, 이런 불쌍한 생각까지를 예사로 하게 된다.(중략)필경 나도 누구를 지식인이 아니라고 욕할 만한 권한이 점점 희박해져 가는 처지에 있고>
번역일에 대한 김수영의 비애(悲哀)는 거대한 현실의 벽에 절망하는 소시민의 절망과 닮아 있다. “나는 지금 매문(賣文)을 하고 있다. 매문은 속물이 하는 짓이다”(산문 <이 거룩한 속물들> 1967.5)라며 자기비하도 서슴지 않았다.
1963년에 쓴 <번역자의 고독>이라는 짧은 글에서 김수영은 번역을 부업으로 삼아온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점점 불성실한 번역자가 되어가는 자신을 토로한다. 이 글 말미에 “아무리 보수가 적은 번역일이라도 끝까지 정성을 잃지 말아야지”라고 충고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 말로 정말 “고급 ‘속물’”이라고 냉소(冷笑)한다.
<나는 얼마 전까지는 내 딴에는 열심히 일은 해주었다. 비록 선택권이 나한테 없는 뜨내기 원고라도 나의 정성을 다 바쳐서 일 했다. 나의 재산은 정성뿐이었다. 남보다 일이 더디고 남보다 아는 것은 없지만 나에게는 정성만은 있다고 자부해 왔다.
그런데 요즈음에 와서는 그 자부마저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전에는 원고를 다 쓰고 난 뒤에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읽고 또 읽고 했다.
그러던 것이 요즈음에는 붓만 떼면 그만이다. 한 번도 더 안 읽는다.>(<번역자의 고독> 중에서)
그러나 그의 번역이 자신의 볼멘소리처럼, 엉터리 번역이었을까.
 
‘김수영은 놀라울 만큼 원문을 완벽하게 번역’
 
오스트리아 비엔나대 독어독문과 박사인 쉬르머 안드레이스(Schirmer Andreas)씨는 <번역가로서의 김수영>(《문학수첩》2006년 겨울호)이란 논문에서 ‘김수영의 번역 중 오역은 생각만큼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대부분 김수영은 놀라울 만큼 원문을 완벽하게 번역했다. 사소한 오역들뿐이었다’고 썼다.
김수영의 번역 행위가 노동의 보상을 받지 못하는 부업이었다고 할 지라도 그는 방대한 외국 원서(原書)를 두루 섭렵하며 비교적 세상을 정확하게 그리려 했다는 점이다.
시인은 당시 간행됐던 외국 잡지 《앤카운터(Encounter)》와 좌익 성향의 잡지 《파르티잔 리뷰(Partizan Review)》, 고급 문예 월간지인 《애틀랜틱 먼슬리(Allantic Monthly)》 등을 애독했다고 한다. 또 에즈라 파운드가 관여한 잡지 《포이트리(Poetry : A Magazine of Verse)》, 버트런드 러셀이 주요 필자로 참여한 《하퍼스 매거진(Harper's Magazine)》과 《런던 매거진(London Magazine)》도 즐겨 읽었다고 전한다.
2004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실린 시인 김규동(金奎東)의 수필 <김수영과 나>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다방에 들어서면 김수영이 그 모자를 벗어젖힌 다음 탁자 위에 놓는다. 허름한 외투주머니에는 《애틀랜틱》이니 《포이트리》 같은 외국잡지가 꽂혀 있다. 미국문화원에 들러 신간잡지를 입수해 보는 것은 그의 주요한 과제다. 그리 해서 그 속에 번역거리라도 있으면 밤새워 번역해서는 여기저기의 잡지에 파는 거다.>
김수영에게는 번역작업보다 번역거리를 찾는 일이 더 중요했을지 모른다. “은행 뒷담이나 은행 길 모퉁이에 벌려 놓은 노점 서적상을 배회하며 돈이 될 많나 재료가 있는 잡지를 골라 다니는 것은 고달픈 일이 아닐 수 없지만, 그래도 구하려던 책이 나왔을 때는 계 탄 것보다도 더 반갑다”(<일기>  1954.12)고 했다.
 
“원고료를 제때에 주는 데는 거의 없었다”
 
어쨌든 그에게 번역은 생계를 위한 도구였지만 그로하여금 열심히 독서를 하고 그 텍스트 중 번역하기 좋다고 판단되는 좋은 글감을 발굴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독서와 번역을 통해 얻은 유무형의 자산(資産)을 창작 텍스트에 녹여 내렸다. 성균관대 박지영 교수는 “김수영의 삶에서 구현되는 ‘독서번역창작’이라는 연쇄고리는 바로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삶을 꾸려갔는가를 증명해 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번역은 하나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겨쓰는 가치중립적 행위가 아니다. 전환의 과정에 작가의 신념과 상상력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자신의 번역일이 주머니 사정을 얼마나 해결할 수 있었을까.
시인 김규동은 <김수영과 나>라는 글에서 “잡지사들이 김수영의 원고를 받아 싣기는 해도 원고료를 제때에 주는 데는 거의 없었다”고 회고했다.
김수영은 밤낮 원고지와 씨름해도 “‘화랑 담배’니 ‘진달래 담배’ 같은 제일 싼 담배조차 살 돈이 없었”고, 그럴 때면 동료 문인들에게 “이거야 어디 숨막혀 살겠나” 라는 한탄을 곧잘 쏟아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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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註] 원문을 충실히 따르되 한글맞춤법에 맞게 고쳤다. 한문으로 된 단어는 한글로 적고 괄호 안에 한자를 병기했다. 한글(한문)으로 쓴 숫자는 아라비아 숫자로 고쳤다. 외래어 표기 가운데 의미가 모호한 표현은 원문을 살리되 그에 맞는 현대어로 적었다. (자료 제공=공연예술연구가 김종욱씨)
 
美國 軍隊 內의 黑人
- 人種差別 撤廢問題
 
金洙暎 譯
 
미국군대(美國軍隊)내(內)에 있어서의 백인(白人) 대(對) 흑인(黑人)의 인종차별(人種差別)은 바야흐로 소멸(消滅)되어가는 과정(過程)에 놓여 있다. 벌써 백인과 흑인은 같은 대오(隊伍) 속에서 어깨를 같이 하여 행진(行進)하고 있으며 식사(食事)도 같이 하고 같은 숙사(宿舍) 속에서 잠도 같이 자고 있다.
화부(華府·워싱턴-편집자註) 당국은 이 인종차별 철폐(撤廢)의 철저(徹底)를 기(期)하기 위하여 미국 남부 병영지(兵營地) 군인의 자제(子弟)에 한(限)하여서는 흑인과 백인을 격리(隔離)하여 가르치던 종래(從來)의 방침(方針)을 없애고 같은 학교에 수용(收容)하여 교육하도록 명령을 내리고 있다.
현재까지의 상태로 보아서는 모든 점에서 순조(順調)로운 진행을 보고 있다. 단(單) 하나 이 학교문제에 관하여서마는 약간의 말썽이 생겨날 것 같이 예측(豫測)되고 있는 것이다.
 
☆1955년 9월까지
남부 미국 병영지(兵營地) 군인들의 자제는 백인과 흑인의 구별이 없이 같은 학교에 수용(收容)되게 될 것이다. 앞으로 수개월 후에 이 문제가 해결된다면 군대에 있어서의 백인과 흑인의 격리제도(隔離制度)는 흔적(痕跡)도 없이 자취를 감추어 버리게 될 것이다.
흑인만으로 편성(編成)된 보병부대(步兵部隊)는 이미 미국 군대 내에서는 구경할 수 없게 되었다. 이들은 백인 군인들과 같이 섞이어 전투(戰鬪)하고 백인 조종사(操縱士)와 같이 앉아서 비행기를 조종한다. 해군(海軍) 내에 있어서도 이전(以前)과 같으면 취사부(炊事部)에 밖에는 사용(使用)하지 않던 흑인이 인제는 정규군인(正規軍人)이 되어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백인과 흑인과의 격리제도는 공무(公務) 상(上)에 있어서는 수년 전에 철폐(撤廢)되었으며 군무수행상(軍務遂行上) 급(及) 침실상(寢室上)의 격리제도는 이미 우리는 볼 수 없게 되었다. 이 격리제도가 아직도 남아있는 것은 소수(少數)의 학교에 있어서뿐이다. 이에 대한 철폐명령 또한 지금 내려지고 있다. 이 명령을 발송(發送)하면서 미국 국방부(國防部)는 치열(熾烈)하고 예리(銳利)한 공박(攻駁)을 가(加)하였다. 이 명령은 국방장관(國防長官) ‘차레스 E·윌슨’이 발송한 것이며 그는 늦어도 1955년 9월 말까지 남부 미국의 21개소의 병영지에 있는 학교의 백인과 흑인의 격리제를 일제히 철폐하라고 명하였다. 백인과 흑인의 혼합교육(混合敎育)이 실시(實施)되지 않고 있던 수개주(數個州)의 학교들이 이 명령에 따라서 격리제도를 폐(廢)하게 될 것이다.
 
☆南部 7個州의 反對
남부 미국인들은 이 아동 혼합교육에 대하여 군대 내의 혼합제도 이상의 격렬한 반대를 하였던 것이다. 공립학교(公立學校)의 격리제도에 관한 합헌(合憲)문제 여부(與否)가 상금(尙今)도 대심원(大審院)에서 심의(審議) 중에 놓여있다.
이리하여 군부에서는 군대 내에 있어서의 백인과 흑인의 격리대우(隔離待遇)를 철폐하였던 때와 같이 재차(再次) 인권차별(人權差別)의 구폐(舊弊)를 타파(打破)하기 위하여 영단(英斷)을 내리게 되었다.
그 이유는 이러하다. ‘윌슨’씨는 오랫동안 생각하고 연구한 끝에 이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역사적인 거사(擧事)를 감행(敢行)하기로 결정(決定)하였다.
‘윌슨’씨의 명령을 받은 육해공군(陸海空軍) 병영지는 남부 미국의 7개주 ‘알라바마’주, ‘알칸사스’주, ‘텍사스’주, 그리고 ‘버지니아’주이다. 여기에는 군인들의 자제를 위한 특수학교(特殊學校)가 건립(建立)되어 있다. 이 학교들의 경비(經費)는 중앙정부(中央政府)에서 부담(負擔)하게 되어있다. 당지(當地)의 행정부에서는 중앙정부에서 파견(派遣)되어있기 때문에 지방세(地方稅)를 내지 않는 이들 군인자제의 교육비(敎育費)를 부담하기가 대단(大端)히 곤란(困難)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학교를 실제 운영(運營)해 나가는 것은 당지(當地) 지방관리(地方官吏)들이다.
 
☆父親은 混合, 子弟는 隔離
따라서 이들은 당지 주 당국(當局)의 법률과 학교 교실 내에 있어서의 백인과 흑인의 혼합교육을 엄금(嚴禁)하는 남부인들의 습관(習慣)에 결박(結縛)되어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만명(萬名)에 달(達)하는 군인 자제들은(자기 부친들은 이미 오래 전에 격리대우를 받지 않게 되어있는 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격리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다. 흑인들의 항의(抗議)소리는 드높아져 갔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진정서(陳情書)가 들어왔다. 대통령은 이 진정서들을 보고 중앙정부의 재정으로 경영하여 나가는 이 학교들이 격리제도의 타파를 촉진(促進)시키지 못하는 원인이 어디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면서 ‘윌슨’ 국방장관에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을 부탁하였다.
‘윌슨’ 씨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만약 지방 당국의 학교 운영자들이 공영지(公營地)에 있는 제(諸) 공립학교에서 흑인 아동과 백인 아동의 혼합교육을 실시할 수 없다면 중앙정부가 직접 운영 책임자를 파견하여 학교 운영을 인계(引繼)받을 작정이다. 그리하여 미합중국(美合衆國) 교육자들의 힘을 빌려 격리제도를 타파하는 혼합교육을 단행할 것이다.”
만약에 지방당국이 이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다면 중앙정부는 매년(每年) 150만 달러의 학교운영비를 메우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러나 군부가 학교를 운영해 나가는 경험(經驗)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다. 지방 병영지에 적당한 지방 운영자가 없는 경우에는 국방부는 매년 병영지의 재정과 인원으로 학교를 운영해 나가고 있었다.
 
☆軍隊 內의 隔離制度
군부병영지에서 남부 미국의 혼합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처음은 아닐 것이다. 남부 미국에서도 전적(全的)으로 중앙정부의 비용으로 운영하여 나가며 지방당국의 관리 하에 있지 않은 학교가 8개소(個所)였으며 이 학교들은 이미 격리제도를 타파(打破)하고 있다. 최근에 있어서 이 격리제도를 타파한 학교가 ‘조지아’주에 있는 ‘포트레닝’이다. 이것이 바로 작년일이다. ‘포트 프라그’와 북 ‘캐롤라이나’의 제 학교는 이년 전에 벌써 격리제도를 타파하였다.
이러한 과거의 실험에 비추어 남아있는 21개소의 학교 격리제도를 타파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같이 생각되지 않는다. 초기(初期)에 있어서는 약간의 불평이 없지도 않았지만 그러나 대단한 말썽은 일어나지 않았다.
군대 내의 격리제도를 타파하기 시작한 때도 마찬가지였다. 군부의 사람들은 이것이 잘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정치가들은 일반 민중이 이 개혁(改革)에 찬동(贊同)하지 않은 것이라고 우려(憂慮)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단행(斷行)되었다. 가장 조용하게 가장 민첩(敏捷)하게 그리고 커다란 불평(不平)없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이러한 개혁(改革)이 군부 내에서 단행되었는지 인식(認識)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黑人指揮官이 號令
제2차 대전에서 부상을 입은 상이군인(傷痍軍人)들은 이 개혁을 흥미있는 눈으로 보았다. 오늘 미국 내의 어느 병영지이고 들어가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흑인 군인과 백인 군인은 어깨를 나란히 하여 행진하고 있을 것이다. 때로는 흑인지휘관이 호령을 붙이고 있는 것도 보인다.
병영지의 참모실(參謀室)에 들어가 보아라. 거기에는 흑인군인의 행정관(行政官)이 접대(接待)를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띠일 것이다. 식당에 가보면 백인 군인과 흑인 군인이 한 식탁(食卓)에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혼합제도는 군대의 침실과 병동(病棟)에까지 시행되고 있다. 백인 군인이 자는 침대(寢臺) 옆에서 흑인 군인이 자고 있는 것이 보인다. 병영지의 ‘댄스 홀’이나 수영장(水泳場)이나 이발소(理髮所)에서도 백인 군인과 흑인 군인의 격리제는 없어졌다.
 
☆白人은 코카사스人
어떤 장교에게 그가 통솔(統率)하고 있는 흑인 군인이 몇 명이냐고 물어보라. 그 장교는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인종별(人種別)로 부하를 조절(調節)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백인’이라는 언어 자체가 군대 내에서는 없어졌다. 군대에서는 백인을 ‘코카사스’인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공군(空軍)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흑인 조종사와 백인 조종사는 자리를 나란히 하고 나르고 있다. 해군에 있어서도 백인 해병과 흑인 해병은 동일한 갑판(甲板) 위에서 침대를 인접(隣接)하고 누워있다. 언쟁(言爭)이나 말썽이 일어나지 않느냐고? 사소(些少)한 불평은 없지 않다. 주먹싸움 같은 것도 가끔 벌어진다. 그러나 별로 큰 싸움은 생기지 않는다. 이 개혁에 반대하고 있던 일부 장교들도 지금은 이 제도에 오히려 찬동(贊同)의 뜻을 표시하고 있다.
 
☆炊事夫 時代
군대의 모든 부문에 있어서 백인과 흑인의 격리제도가 철폐된 지 8년 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 이전에는 흑인은 흑인대로의 부대가 편성(編成)되었다. 그들의 전투능력은 과히 높게 평가되지 않았다. 그들은 전투에 참가하는 일도 적었으며 주로 노동부대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여기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 1946년도 이후의 일이다. 흑인 군인이라면 취사부(炊事部)에서 밖에는 쓰지 않던 해군에서는 모든 부문(部門)의 일을 흑인 군인에게도 개방(開放)하게 되었으며 그들은 세심(細心)히 주의력(注意力)을 가지고 백인과 흑인의 혼합제를 실시하였다. 1948년에는 공군이 뒤를 따라 이 일을 감행(敢行)하였다. 육군만이 아직 이것을 하지 않고 있었다.
 
☆轉機가 된 韓國戰爭
그러자 1950년도에 한국전쟁이 돌발(突發)하였다. 공산주의(共産主義) 침략 앞에서는 인종차별의 중요성은 소멸(消滅)해 버리고 말았다. 백인 군인과 흑인 군인의 차별대우가 폐지되기 시작한 것은 전투하는 한국의 전선(戰線)에서였다. 이것이 점차 확장(擴張)되어 갔다.
작년 10월 말까지 군대 내의 흑인 군인이 95%가 혼합제의 실시를 받고 있게 된 것이라고 ‘죤. A. 한나’ 국방부 차관은 성명(聲明)하였다.
현재 미국 육군 내에는 ‘웨스트 포인트’의 졸업생 22명을 포함하여 4000명의 흑인 장교가 있다. 공군에는 1000명 이상의 흑인 장교가 있다. 해군의 흑인 장교는 백 명쯤 모자란다. 선박(船舶)내의 흑인 장교가 10명.
아직도 백인과 흑인의 혼합제가 명실공(名實共)히 완전하게 실시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必要)할 것 같다.<끝>
(출처=≪軍事 다이제스트≫ 1권 2호. 1954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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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國 歷代 大統領 秘話
 
세 사람의 대통령의 暗殺을 목도한 사나이
 
‘에이브러햄 링컨(미국 16대 대통령·재임 1961~1865-편집자註)’을 암살한 범인을 목도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닌 ‘링컨’의 아들 ‘로버트 링컨’이었다. 그러나 더 한층 괴상한 사실은 ‘제임스 가필드(20대 대통령·1881.3~9월-편집자註)와 ‘윌리엄 매킨리’(25대 대통령·1897∼1901-편집자註)를 암살을 목도한 것도 또한 이 ‘로버트 링컨’이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역사에는 세 사람의 대통령이 계속적으로 암살자의 손에 총알을 맞고 죽은 일이 있었는데 이 세 차례의 대통령 암살사건을 우연한 기회에 전부 목도하게 된 기구한 사람이 있었다.
1865년 4월 14일 ‘에이브러햄 링컨’의 아들인 22세의 청년 장교 ‘로버트 T. 링컨’ 대위는 자기의 아버지 대통령에게 ‘애포머톡스’에서 ‘리’ 대장이 항복을 하였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말을 타고 ‘워싱턴’으로 들어왔다.(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계속되는 공세로 남군 사령관 리(Robert Edward Lee) 장군은 1865년 4월 남부의 수도 리치몬드에서 퇴각했고 결국 4월 9일 버지니아주 애포머톡스(Appomattox)에서 항복했다.-편집자註)
그날 밤 젊은 ‘로버트’는 ‘포드’ 극장에 구경을 갔었다. 때마침 여기서 그는 ‘존 윌크스 부스’가 총을 발사하는 것을 보았고 자기의 아버지인 ‘링컨’ 대통령이 총알을 맞고 쓰러지는 것을 목도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후 즉 1881년에 ‘제임스. A. 가필드’ 대통령은 ‘로버트’를 전쟁 후 장관으로 임명하였다. 그 해 여름은 예년보다도 무더운 날씨가 연일 계속되었고 시끄러운 방문객들에게 시달림을 받은 대통령은 일체의 정무(政務)를 떠나서 단기간의 휴양을 얻기 위하여 ‘뉴잉글랜드’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따라서 대통령이 돌아오기까지 행정면(行政面)의 책임은 각 부의 장관들에게 모두 일임을 하게 되었는데 갑작스러운 일이 발생하여 이 임시적인 책임 제도를 다시 철회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래서 이 일을 대통령에게 알리고 양해를 얻기 위하여 ‘로버트’는 ‘워싱턴’ 역으로 달려갔다. 때마침 대통령은 정차 중의 기차를 향하여 홀 안을 걸어가고 있었다. 기차를 향하여 걸어가는 대통령을 발견하고 이야기를 전하기 위하여 ‘로버트’가 대통령의 앞까지 다가 와서 막 입을 벌리려고 할 때에 난데없는 총성이 들렸다. 그리고 ‘로버트’의 앞에 섰던 대통령이 쓰러져 버렸다. 총을 쏜 사람은 대통령을 만나기 위하여 번번이 대통령 비서실에 와서 조르고 있던 ‘찰스 기토’라는 자였다. ‘기토’는 열심히 대통령을 찾아다녔으나 기어코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낙망한 나머지 대통령을 암살하게 된 것이다.
대통령이 받은 한 발의 총알은 그에게 치명상을 입히게 되었으며 미국의 제 20대 대통령 ‘가필드’는 중상을 당한 지 수 주일 후에 죽어버렸다.
그로부터 다시 20년이 지난 1901년에 ‘로버트 링컨’은 ‘콜맨’ 회사의 사장이 되었다. 실업계의 쟁쟁한 일류 인사들과 교제를 하고 많은 회합에도 참석을 하지 않으면 아니 되게 된 ‘로버트’는 어느 날 ‘뉴욕’의 ‘버펄로’에서 열린 범 미국박람회의 초청을 받아 가지고 가게 되었다. 때마침 ‘로버트’가 박람회 대회에 참석하는 날은 당시의 미국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 씨도 공용으로 임장(臨場)을 하게 된 날이었다.
‘매킨리’ 대통령은 군중의 환영을 막기 위하여 얕은 단을 밟고 그 위에 서있었고 군중들은 천막 앞에 열을 지어 대통령에게 악수를 하기 위하여 자기의 차례를 기다리느라고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이렇게 무수히 늘어선 군중 사이에서 어서 자기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서있는 얼굴이 말쑥하게 매 마른 젊은 청년이 있었다. 그는 오른편 손에 부상을 당한 것처럼 흰 수건을 동여매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그의 오른편 손은 부상을 입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흰 수건 밑에 권총을 들고 있었던 것이다.
‘매킨리’ 대통령이 악수를 하려고 손을 내밀었을 때 청년은 그대로 대통령의 가슴을 향하여 두 방의 총알을 번갈아 발사하였다.
그는 8일이 지난 후 절명하였다. 암살자는 ‘레온 촐고츠’라는 무정부주의자였다. ‘로버트 링컨’은 ‘매킨리’ 대통령이 암살을 당한 후 광경을 증언한 다음으로부터는 구태여 대통령과의 교제를 피하였고 대통령이 임석하게 되는 좌석까지도 굳이 가지 않기로 작정하였다.
어느 때인가 대통령 환영회에 참석하기를 요청하였을 때 ‘로버트 링컨’은 이를 거절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아니올시다. 나는 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들도 나를 초대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어째 그러냐 하면 내가 참석을 하였다가 대통령의 신변에 혹시 또 변이 나면 어떻게 합니까.”
‘로버트 링컨’은 1926년 7월 26일 여든 세 살의 수명을 다 하고 돌아갔다.
 
20년 만에 한번 씩 돌아오는 대통령 受難
 
만약에 역사가 다시 되풀이된다면 1960년의 미국 대통령은 반드시 재임 시에 절명하게 될 것이다.
1840년부터 미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사람에게는 20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재앙이 있다. 즉 1840년, 1860년, 1881년, 1900년, 1920년, 1940년에 일어난 일을 보면 기묘하게도 이 해에 대통령으로 있던 사람들은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두 재임 시에 서거하고 말았다.
그리고 보니 이것은 일개 미신이라고도 보기 어려운 일이며 반드시 ‘20’이라는 숫자가 미국 대통령과는 인연이 좋지 못한 모양 같다.
1840년 ㅡ 당시의 대통령은 ‘버지니아’ 주 ‘차아레스 카운트리’의 출신인 ‘윌리엄 핸리 해리슨’ 씨였다. 그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것이 1841년 3월 4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한 달 동안 대통령을 지내고 다음 달 4월 4일에 늑막염에 걸려서 절명하였다.
1860년 ㅡ 당시의 대통령은 ‘일리노이’ 주 출신의 유명한 ‘에이브러햄 링컨’이었다. 그가 취임하자 남북전쟁이 진압되었고 그 후 1865년 4월 14일 그는 ‘워싱턴’에 있는 ‘포드’ 극장에서 ‘우리들 미국인의 축하’라는 연극을 관극하던 중 ‘존 부tm’라는 괴한에게 암살을 당하였다. 그가 완전히 절명한 것은 총에 맞은 이튿날 아침이었다.
1880년 ㅡ 1880년에는 대통령 선거전이 벌어졌으며 이 선거에서 ‘오하이오’ 주 ‘오렌지’ 출신의 ‘제임스 가필드’ 씨가 당선되었다. 그는 ‘윌리엄’ 전문학교의 졸업식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에 ‘워싱턴’ 정거장에서 ‘찰스 기토’라는 자에게 총을 맞고 쓸어졌다.
여러 가지로 상처의 치료에 진력해 보았으나 모두 허사로 돌아가고 그는 ‘알바톤’에서 드디어 절명하였다. 그가 총을 맞은 것이 1881년 7월 2일. 그가 절명한 날이 동년 9월 19일.
1900년 ㅡ 당시의 대통령은 제 25대 대통령으로 ‘나이스’ 출신인 ‘윌리엄 매킨리’씨였다.
1901년 9월 6일 ‘버펄로’에서 전 미국 박람회가 개최되었을 때 ‘매킨리’ 대통령도 여기에 참석하여 환영을 받았다. 이때 대통령을 환영하느라고 모여든 관중 가운데에 괴한이 섞이어서 대통령에게 권총을 발사하여 명중하였다.
‘매킨리’ 대통령은 가슴에 두 발의 탄환을 받고 1901년 9월 14일 절명하였다.
1920년 ㅡ 당시의 대통령은 미국 제 29대 대통령으로 ‘오하이오’주 ‘모로’ 출신의 ‘워런 G. 하딩’씨였다.
1923년 여름에 그는 대륙횡단 여행을 하여 ‘알래스카’까지 도착하였다. 그리고 ‘알래스카’에서 늑막염에 걸려서 1923년 8월 2일에 병사하였다.
1940년 ㅡ 당시의 대통령은 너무나 유명한 ‘프랭클린 D. 루즈벨트’씨. 그는 ‘뉴욕’주 ‘하이드 파크’ 출신이다. 그가 죽은 것이 1945년 4월 12일. ‘월 스프링’에서 뇌출혈로 변사한 것이다.
그러면 1960년에는 ????
 
美國國民은 私生兒를 가진 대통령을 좋아한다
 
1884년 ‘스티븐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은 사생아를 가지고 있었지만 미국인들은 대통령 선거전에서 그에게 2만 3천표를 던지고 대통령으로 그를 추대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1884년 ‘그로버 클리블랜드’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는데 당시 그가 그의 정적(政敵)들에게 가장 시달림을 받은 큰 약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그가 사생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클리블랜드’는 민주당에 소속을 둔 입후보자이었었는데 민주당의 반대당인 공화당에서는 당 본부의 대강당 한복판에다가 당시(黨是)를 야단스럽게 걸어놓고 그 내용에 있어서는 “우리는 정강(政綱)의 기본적인 중점은 당원의 인격과 도덕이다”라는 따위의 글발을 붙여놓고 “우리는 이렇다”하는 뜻의 민주당의 추천자 ‘클리블랜드’를 꼬집었다.
《뉴욕 선》 신문에서는 편집국장 ‘찰스 다아나’가 다음과 같은 지독한 사설(社說)을 쓰기도 했다.
“우리는 양심 있는 미국 국민이 매춘부를 거느리고 화부(華府·워싱턴-편집자註)에 들어와서 백악관(白堊館)을 매음굴의 하숙방 같이 이용할 건달을 설마 일국의 대통령으로 선출하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클리블랜드’의 강적인 공화당의 ‘제임스 브레인’은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며 가정인(家庭人)으로서도 모범적인 사람이라고 알리어져 왔었다. 이러한 ‘브레인’에다 비교하여 볼 때 ‘클리블랜드’의 평판은 말할 수 없이 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밤늦게 까지 잠을 자지 않고 악우(惡友)들과 어울려서 술을 마시고 노름을 하고 노는 계집들과 상종하기를 예사로 한 ‘클리블랜드’였다.
그렇기 때문에 1884년 대통령 선거전에 있어서도 ‘클리블랜드’는 공화당과 맞서서 싸움을 하면서도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선거전이 최고조에 달한 무렵쯤 되어서는 공화당에서는
“어머니! 어머니! 아빠는 어디 갔소? 백악관에 갔단다. 아-하-하-하-”
하는 노래를 지어서 길거리를 외이고 다니며 ‘클리블랜드’를 조소하였다.
‘클리블랜드’가 여자와의 사이에 옥신각신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은 1871년 ‘뉴욕’ 주 ‘버펄로’에 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당시의 ‘버펄로’는 경찰의 취재가 심하게 많은 곳이었든 관계로 자연 놀음 방이니 술집이니 노는 계집들이니 하는 것들이 번창하였고 거기에 따라서 풍기도 상당히 문란하였었다. ‘클리블랜드’는 아직 젊은 맘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버펄로’ 일대에서는 상당히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어디를 가서든지 그는 행세를 할 수 있었고 또한 용모가 수려(秀麗)한지라 많은 여자들이 그를 따랐다.
그가 상종하고 있는 친구들도 대개는 독신자이었으며 그 중에 혹간 가정을 가진 사람이 있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그들은 거개가 부인을 집에 놓고 예사로 오입을 하러다니는 호담한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나이아가라’ 강에 집을 사가지고 여기에 구락부를 짓고 이 안에서 농성을 하고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오락을 일 삼았다. 바로 이 섬 주변에 암초가 있었는데 청춘과 유흥에 취한 젊은 그들은 이 암초를 ‘암초의 낙원’이라고 부르기로 하였다.
1871년 ‘쟈아시’시에서 ‘버펄로’로 나온 젊은 과부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마리아 할핀’이라고 불렀는데 여간 매혹적인 여자가 아니었다. 처음 이 여자는 ‘카라이’ 제조공장에 직공으로 취직을 하고 있었으나 그 후 ‘플랜트-잡화’ 잡화상의 여사무원으로 들어갔다.
키가 크고 날씬한 몸맵시에 불란서 말을 유창하게 할 줄 아는 청춘과부이었다. 이런 여자를 ‘버펄로’의 혈기 있는 젊은 패들이 가만히 놓아 둘 리가 없었다. 젊은 남자들과 밖으로 놀러 다니기 시작한 ‘마리아’는 1873년에 ‘클리블랜드’와 알게 되었다. ‘클리블랜드’의 일당들은 이 여자를 데리고 늘 놀러 다니었고 이 여자도 ‘암초의 낙원’ 패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든 중에 1874년 9월 14일 날 ‘마리아’는 난데없는 어린아이를 낳았다. 사내아이였다. 이때 ‘마리아’의 나이는 서른여섯 살이었으며 그는 아무와도 결혼을 하고 있지 않았다.
이 소문은 ‘버펄로’의 온 거리에 퍼지었고 대체 누가 아이의 아버지인가. ‘암초의 낙원’ 패들 중의 어느 사람이 아이 아버지인가 하고 별별 구구한 추측이 다 떠돌았다. 이때 서른일곱 살이 된 ‘클리블랜드’는 이 아이의 형식적인 책임을 자진하여 지고 나섰다. 그러나 ‘클리블랜드’는 누가 ‘마리아’와 결혼하라는 말을 하면 얼굴을 금시에 변색을 하고 파랗게 질리기까지 하였다.
당시 ‘클리블랜드’와 친근하던 친구들의 말을 들으면 ‘마리아’는 정말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고 있었다는 말이다. 다만 ‘마리아’는 ‘클리블랜드’로 하여금 자기와 결혼하게 하기 위하여 ‘클리블랜드’를 비난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클리블랜드’로서도 자기가 아이 아버지가 아니라는 말을 못하고 있었던 것은 그의 동료들이 전부 결혼한 사람들이었던 까닭이다.
‘마리아’는 드디어 ‘클리블랜드’의 근처에 와서 살게 되었고 ‘버펄로’의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스원’가 39번지의 아파트 아래층에서는 ‘클리블랜드’가 법률사무실을 열고 있었으며 그 아파트의 3층에서 바로 ‘마리아’가 아이를 데리고 살림을 하고 있었다.
어린 아이가 세례(洗禮)를 받던 날에는 ‘클리블랜드’는 ‘마리아’와 같이 이 식(式)에 참석하였다. 어린 아이의 이름은 ‘오스카 폴삼 클리블랜드’라고 지었다. ‘오스카’는 역시 ‘암초의 낙원’ 패의 한 사람으로서 ‘클리블랜드’의 제일 친한 친구이었다. 자기의 가장 극친한 친구의 이름을 따서 갓난 아이의 이름의 일부분을 삼았던 것이다.
‘마리아’는 종시 ‘클리블랜드’를 보고 결혼하여달라고 때를 썼지만 ‘클리블랜드’는 이러한 ‘마리아’ 요청을 번번이 그 즉시로 거절하였다. ‘클리블랜드’는 ‘마리아’가 아이를 데리고 살아갈 수 있을만한 경제적인 원조는 잠시도 게을리 하지 않았지만 ‘마리아’는 자기와 결혼을 하여 주지 않는 ‘클리블랜드’가 원망스러웠던 것이다. 아이를 배고 나서 그만두게 된 예전의 취직자리에서 뿐만 아니라 ‘버펄로’의 모든 직장에서는 ‘마리아’를 받아들이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술을 지나치게 마시고 어린아이까지도 탐탁하게 돌보지 않게 되었다.
2년 후 ‘클리블랜드’는 어린아이의 신변과 장래를 염려하고 이를 ‘마리아’에게서 격리시키기 위하여 양자로 들여보내기로 작정하였다.
그는 소송문제가 제기될 염려가 있었기에 이를 피하기 위하여 자신과 정치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이용해, ‘오버시아’ 빈민구제단체를 통하여 어린아이를 고아원에 강제 수용시켰다. 이것을 보고 발광을 치고 야단을 일으킨 ‘마리아’는 ‘시스터 오브 채러티’라는 자선단체의 감독을 받아가고 5일 간이나마 자택에 감금을 당하였다.
그 후 자유의 몸이 된 ‘마리아’에게 ‘클리블랜드’는 자금을 돌려주고 ‘버펄로’의 근처에 있는 ‘나이아가라’에서 장사를 시작하게끔 도와주었다. 그리고 그는 매주일 5불(弗) 씩을 어린아이의 양육비로 고아원에 지불하였다.
‘마리아’는 정기적으로 고아원을 방문하고 아이를 만나볼 수도 있게 되었는데 1876년 4월 기회를 보고 있던 ‘마리아’는 드디어 고아원에 있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도망을 가버렸다. 그러나 종적을 감추어버린 ‘마리아’는 그리 오랫동안을 어린아이를 데리고 숨어 살지는 못하였다. 그런 것이 그는 달아난 지 불과 석 달에 ‘뉴 롯첼’의 친척의 집에서 경찰에게 발각되어버리고 말았다. 어린아이는 다시 고아원으로 회송되었다.
그 후 ‘마리아’는 어린아이를 찾기 위하여 ‘클리블랜드’를 상대로 고소를 제기할 작정으로 ‘버펄로’의 유력한 법률가를 찾아간 일이 있었다. 이때 변호사는 머리를 저으면서
“당신은 너무 술을 많이 마시기 때문에 재판을 걸어보아도 승산이 없으리다.”
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그 대신 그는 ‘마리아’에게 위자료를 청구할 권한은 있으니 그러한 목적의 소송이라면 이길 가망이 있다고 권고하였다.
‘클리블랜드’는 위자료는 요구하는 대로 지불할 것이니 소송만은 철회하여 달라고 간청하였고 변호사는 ‘마리아’에게 이러한 ‘클리블랜드’ 편의 타협을 받아드리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타일렀다.
그 후 2, 3년이 지난 뒤에 ‘클리블랜드’는 유복한 가정을 발견하고 어린아이를 정식으로 양자로 입적시켰다. 이것이 1876년이다.
1884년 ‘클리블랜드’는 ‘뉴욕’주 지사(知事)로 취임하고 있었으며 때의 민주당 연차총회(年次總會)에서는 이를 대통령 후보자로 추천하게 되었다. 1884년 7월 21일 ‘버펄로’의 《이브닝 텔레그램》은 이 놀라운 폭로기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하였으며 이 뉴스는 순식간에 전 미국 각지에 퍼지게 되었다.
“선량(善良)의 뒤에 숨은 더러운 역사 ㅡ ‘마리아 할퀸’과 ‘그로버 클리블랜드’의 아들에 대한 불쌍한 이야기”라는 대제목을 내세우고 ‘클리블랜드’와 ‘마리아’에 관계된 가진 추잡한 일을 올올히 보도하고 어느 것은 고의적으로 사실 이외의 추문까지 날조하여 보도한 때가 없지 않았다.
‘클리블랜드’의 젊었을 때의 주색잡기도 이와 같은 양으로 보도하였다.<끝>
(출처=《實話》 제4권 제5호, 1955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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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순정소설 <密月>
 
베티. A. 브란트 作/金洙暎 譯
 
처음에는 두 자매(姉妹)는 그 소식을 놀림거리로 밖에는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다른 생각이 들게 된 것은 그 훗적 이었는데 그 생각은 엄밀한 의미에서 수치는 아니었지만 역시 위장(胃腸)이 쓰리고 뜨거워지는 느낌의 하나로서 그것은 수치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들의 할머니가 결혼을 했다니 거기에 도대체 무슨 뜻이 있는가?
결혼을 했다! 그들의 할머니가! 다름 아닌 그들의 바로 아버지의 바로 어머니 되는 사람이! 여지껏 그렇게 오랫동안을 커다란 저택(邸宅) 속에서 2층은 남에게 세를 주고, 방학이 되면 찾아가는 손녀들과 같이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안락하게ㅡ남 보기는 그렇게 생각이 되었다ㅡ과부생활(寡婦生活)을 하고 있던 끝에 결국.
“그러면 그 가방은 어떻게 되지?”
하고 언니가 있는 편으로 나무라는 눈초리를 돌리면서 물어보는 ‘미리’는 자꾸 장난을 하고 싶어서 달아나려고 드는 고양이ㅡ‘비네가’ㅡ를 잡아들이려고 손을 내저었다. “언니는 할머니가 적어도 그 가방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고 믿고 있지!”
‘루시’는 대답 대신에 어깨만을 움찍하고 오그리고는 저고리를 흔들어 보였다. ‘루시’는 15살밖에 아니 되었지만 곧잘 어깨를 오그리는 버릇이 있었다. ‘미리’에게는 이것은 머리를 흔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일종의 부정적(否定的)인 몸짓이라고 생각되었지만, 그것은 결코 보기 싫은 감을 주지는 않았다. 그것은 보는 사람까지도 그와 같이 느끼도록 하고야 마는 그런 몸짓이었다.
‘미리’는 ‘비네가’를 놓아주고는 저고리의 주름을 펴 내렸다. ‘루시’가 어깨를 오그리는 것은 ㅡ 퍽이나 앙증스러운 표정이었지만, 그러나 2살밖에 더 먹지 않은 그녀로서 그것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할머니는 그 가방을 어떻게 할 작정이었던가?
그 가방은 옆의 동리에 있는 할머니 집의 지붕 밑 방에 있었고 그 가방 안에는 할아버지가 남기고 간 돌아간 물건이 전부 들어있었다. 사실 상 두 자매(姉妹)에 대해서는 그 가방은 다름 아닌 할아버지의 자신을 담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수많은 어린 시절의 여름철을 두고 그 가방에서부터 성스러운 할아버지의 환상을 불러내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낡은 군대 각반과 불란서에서 온 우미인초(虞美人草)와 퇴색한 미국 국기와 그들의 어둠침침한 상상(想像)의 비극(悲劇)에 대한 호기심으로부터 조금씩 조금씩 그를 만들어왔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ㅡ 그러한 할아버지는 실제의 인물보다도 한층 더 참된 것이 되었다. 그는 꿈을 깨우쳐 주는 무거운 힘을 가지고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애인은 아니었지만) 애인만이 가질 수 있는 줄기찬 생기(生氣)를 가지고 있었다.
“더군다나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필 왜 ‘잰킨스’ 박사하고 결혼을 한담!”
하고 ‘미리’는 브라우스에 팔꿈치를 들이밀고는 머리 위로부터 끌어내리면서 말하였다.
“아무튼 그들은 아마 우리 집에는 몇 시간도 있지 않고 가버릴걸!”
그녀는 열린 창가에 꼼짝하지 않고 늘어져 있는 하얀 ‘커튼’을 바라다보았다. ‘커튼’은 방안에 있는 다른 모든 물건들과 같이 새로 세탁하여 놓았고 그것은 할머니와 ‘젠킨스’ 박사가 도착하면 사용하게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미리’는 ‘커튼’ 속으로 ‘베란다’를 내어다 볼 수 있었고 그 ‘베란다’의 한쪽에서 그녀와 ‘루시’는 그날 밤을 자게 되어있었다. 방바닥 위에서는 ‘비네가’가 가쁜 숨을 쉬고 있었다. 마당에서는 둥근 잔디밭의 철수기(撤水器) 소리가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밀월(密月)치고는 답답한 날씨로군.”
하고 ‘루시’는 말하였다.
‘미리’는 킥킥하고 웃다가는 멈추어버렸다. 쓰라리고 뜨거운 감각이 위장 속에서 또 한번 부풀어 올랐다. 그녀는 ‘캠프’에서 본 의서(醫書)의 색채까지 칠해서 여실하게 그려놓은 그림을 생각해 보았다. “밀월(密月)”하고 그녀는 속삭이면서 언니의 곁에서부터 몸을 빼었다. 그녀는 ‘루시’가 자기처럼 기나긴 그날 밤에 망설이기 쉬운 조그마한 정보(情報)를 가지고 서로 넘겨 짚어가면서 이야기하던 일을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하였다. 여자의 난세포(卵細胞)라던가 그것이 어떻게 수태(受胎)한다던가 하는 소녀적인 이야기가 아닌 진정한 정보에 대해서는 누구 하나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ㅡ현대적인 어머니까지라도 그러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ㅡ걸핏하면 그러한 어머니들은
“지금 시대는 우리들이 자라나던 시대하고는 확실히 틀려요. 나는 우리 딸한테 모든 것을 말하고 있어요.”
하고 수없이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미리’는 생긋하고 웃음을 짓고는 치마를 집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루시’는 옷을 다 입고는 벌써 경대 앞에 앉아서 머리 손질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예순 살 일거야! ”
하고 ‘미리’는 말하였다.
“쉰 여덟이야. ”
하면서 ‘루시’는 입에다 ‘클립’을 물었다. 그녀는 ‘클립’을 빼서는 조랑말 꼬리 같은 머리 단에다 다시 갖다 꽂았다.
“나는 나이들을 다 알고 있어. ‘젠킨스’ 박사는 예순 둘이야.”
‘미리’는 치마 속에 발을 집어놓고는 다시 한 번 킥킥하고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예순 둘!”하고 말하면서 그녀는 치마가 구기거나 말거나 아무렇게나 털썩하고 침대위에 몸을 던졌다.
‘젠킨스’ 박사는 철학박사였고, ‘미리’는 늘 그를 알고 있었으며 할머니의 거리에 있는 전문학교에서 두서너 번 그의 강의(講義)를 들어본 일도 있었지만 무슨 제목의 강의를 하였는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손가락 끝이 조끼 위에 걸린 시계 줄 위를ㅡ높은 줄을 타고 있는 여러 개의 발을 가진 곡예사(曲藝師) 모양으로ㅡ앞으로 걸어갔다가 뒤로 물러섰다가 출렁출렁 흔들렸다가 다른 편세로 자신만만하게 뛰어 넘어섰다가 하는 모양에 여간 마음이 쏠리지 않았었다. 그녀에게 ‘젠킨스’ 박사라는 사람은 손가락 끝이 시계 줄 위에서 재주를 피우지 않으면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는 ‘미리’가 시계 줄을 차고 있는 사람으로서 알고 있는 유일무이한 사람이었고 또한 그러고 보면 그녀가 조끼를 입고 있는 사람으로서 알고 있는 유일무이한 사람이기도 하였다. 이 두 가지 일을 빼어놓고는 그는 제법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인다고 그녀는 상상하였다.ㅡ 잔물결이 이는 곱실곱실한 회색빛 머리털과 침착하지 못한 소녀를 의젓하게 노려볼 수 있는 약간 막연한 빛을 띤 눈초리다. 그런데 지금 이러한 인물이 자기들의 할머니의 신랑이 되었다니 이것이 어디 믿을 수 있는 일일까!
“언니는 그 사람을 할아버지라고 부를 테야?”
하고 묻는 ‘미리’의 말에 ‘루시’는 짖궂은 콧바람으로 대꾸하면서 머리 솔과 ‘클립’들을 화장대 위에다 마구 잘칵거리면서 팽개쳤다. ‘루시’는 언제나 퍽 아름다웁게 성을 낼 줄 알았다. ‘미리’는 성이 나면 야단이 일어났고 그녀는 언제나 고함을 치지 않고서는 끝을 내지 않았다. 그러나 ‘루시’는 그 점에 있어서 훌륭하였다.
‘미리’는 지금 침대위에 앉아서 언니가 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ㅡ 너풀거리는 검은 머리카락과 함부로 펄렁대는 둥근 치맛자락.
“내가 그따위 자식을 할아버지라고 부를 리가 없지 않니! 누구든지 그 자식을 무어라고 불러보았단 봐라. 당장에 집을 나가 버리고 말테니! 늙은 색골. 뻔뻔스러운 바보 같은 색골 영감 같으니!”
침대위에 앉아서 두 발을 허우적거리고 있던 ‘미리’는 벌떡 일어서서 언니를 물끄러미 바라다보고만 있었다.
‘루시’는 성이 나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녀는 그냥 고함만 치고 있었다. ‘루시’가 고함을 치는 것은 사실은 진짜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연상 고함을 치고 있었다.
이와 같은 그들의 역할(役割)의 급작스러운 반전(反轉)은 이 새로운 소식을 들은 후에 생긴 어떤 일보다도 ‘미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나는 그 두 사람이 다 싫어.”
하고 그녀는 마루 위에 놓인 신발짝들을 걷어찼다.
“도대체 어찌된 심판이야?”
그녀는 눈물이 솟아나오기를 기다렸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는 것을 알자 다시 한 번 신발짝을 걷어차서 한 짝은 방안을 보기 좋게 날아서 저쪽에 가서 떨어졌다. ‘비네가’는 노한 소리로 웅얼거리면서 침대 밑으로 뛰어 달아났다.
“얘” 하면서 ‘루시’는 손을 내밀어서 ‘미리’의 어깨를 쓰다듬어주기 시작하였다.
“얘, 이 철부지야. 얘!” 결국 고함을 친 것은 ‘루시’이었기 때문에 달래주기로 말하자면 사실은 자기가 달래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미리’의 머리에 떠올랐지만 워낙 모든 일이 뒤죽박죽이 되고 보니 누가 누구를 달래든 그것이 무슨 대수로운 일이냐는 생각도 들었다.
두 소녀는 아무 말 없이 잠자코 옷을 다 입었다. 이것이 막상 이 할머니가 아닌 다른 사람만 되더라도 이렇게까지 화도 나지 않을 것이다. 막상 붉은 구두를 신고 때로는 야한 머리모양을 내는 다른 할머니만 되었더라도 사정은 좀 틀렸을 것이라고 ‘미리’는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이 할머니이다. 그렇다. 그녀의 머리털은 하얗고 그것은 또 한 번도 ‘컷’을 해본 일조차 없었다.
한창 머리털을 제멋대로 짧게 쓸고 앞 머리털을 가지고 수시로 장난을 하는 ‘미리’에게는 그 사실은 커다란 감동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또한 이 할머니는 붉은 구두를 신어보려는 생각을 가져본 일이 없었다. 여름에는 회색과 분홍색 신을 신고 겨울철에는 회색과 자색 신을 신었다. 유행을 쫓아서 귀여웁고 예쁘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자연스러운 멋 속에서 귀여움과 아름다움을 풍기는 맵시, ‘미리’는 이 차이(差異)를 발견하고 감탄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할머니는 평정(平靜)을 가리고 있는 것같이 생각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그녀는 어느 매력(魅力)의 원주(圓周)를 가지고 그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으며, 이 원주는 조용한 못가를 둘러싸고 있는 조각돌과 같이 독립자족적(獨立自足的)인 공간(空間)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손녀들은 감히 원하기만 하면 특별한 시간에 이 원주 속에 발을 들여놓을 수도 있었는데, 그것은 거기에 들어가는 길을 이리저리로 재어보면서 이미 돌아가기 시작한 줄 옆에서 그 속으로 뛰어 들어가기 위한 알맞은 시간을 기다리고 있듯이 원주 밖에서 오랫동안을 기다리고 난 후에야 비로소 이루어졌다. 이와 같이 원주 속에 들어가는 것을 어렵게 하는 것은 할머니는 아니었다. 그녀야 누가 언저리에 서있을 때도 통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었다. 그러나 일단 그 안으로 들어가 보았을 때 ‘미리’는 항상 할머니가 자기가 들어오기를 오랫동안을 두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미리’는 아주 나이가 어렸을 시절에는 이 원주에 대해서 아무 것도 생각한 일이 없었다. 다만 그녀는 원주 안에 들어가 있기를 좋아하기는 하였지만. 조금 더 커진 후에야 그녀는 이 원주를 가방과 연결시켜 보았다. 이것은 “그”가 그녀와 산보를 하는 공간이었고, 그녀의 주의(注意)가 언저리에 서있는 손녀에까지 미치지 못하는 이유는 그녀의 관심이 “그”에게만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단 그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모든 것이 사랑을 받게 되었다는 것은 원주의 내부가 아주 특별한 애정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공간을 특별히 보존돼야 할 것이다!
‘미리’는 허리를 굽히고 침대위의 깔보의 주름을 펴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아무도 그 안에 들여보내선 안 되었다. ‘젠킨스’ 박사일지라도 안 되었다. ‘미리’는 깔보를 잡아당겼다.
“그들이 온다” 하는 ’루시‘의 말에 ’미리‘는 깜짝 놀라서 펄쩍 뛰어올랐다.
“오라, 바로 그들이야.”
하고 ‘루시’는 말하였다.
‘미리’는 현관을 건너가는 어머니의 신발의 짤깍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또한
“어서 오세요! 아, 어서 들어오세요!”
하는 아버지의 희한하게 반가워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그가 편지를 받아보고
“잘 되었어. 어머니는 아직도 젊으시거든. 그렇지 여보.”
하고 말하던 때에 쓰던 그것과 똑같은 음성이었다.
젊어! ‘미리’는 다시 한 번 킥킥하고 속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느끼었다. 세상 사람이 전부 미쳐가지고 있었던가보다?
“우리들은 나가보는 게 좋을 거야.”
하고 말하는 ‘루시’의 어조(語調)는 엄격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우리들을 부르러 올 것이니까.”
“할머니는 분홍색 신을 신었어?”
하고 ‘미리’는 물어보았다.
“그야 뻔하지 않니?”
저녁 식사가 끝이 난 뒤까지는 그리 어려운 고비도 없이 무난히 경과되었다. 수많은 이야기 소리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고 많은 선물의 증여(贈與)가 있었다. ‘미리’의 귀에는 그들은 노상 웃고만 있는 것 같이 생각되었고, 그 중에도 특히 어머니는 더 한층 그러한 것 같이 생각되었다. ‘미리’는 확실히 그러한 일들과 단절(斷絶)되어 서 있는 자기 자신을 느끼었고 이 때문에 그녀는 전보다도 한층 더 명석하게 그들을 바라볼 수 있는 것 같이 생각되었다.ㅡ어째서 그런지 그 이유는 그녀도 몰랐지만. 그런데 지금 그녀의 어머니를 보자.ㅡ그녀의 어머니의 짧은 앞머리는 오후 동안은 내내 이마위에 낚시바늘같이 꾸부러진 모양으로 찰싹 붙어 있었고, 그것들은 촉촉하게 젖어있었기 때문에 정말 까만 색깔을 하고 있었다. ‘미리’는 그런 모양의 어머니의 앞머리를 일찍이 본 기억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저녁의 현관 안에 나온 것을 보니 그 앞머리 털은 다시 부풀어 올라서 여전히 다갈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6월이라 밤벌레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모두들 어둠침침한 황혼 속에서 불을 켜지 않고 앉아 있었고, 그 속에서 그녀의 부모들의 담뱃불과 ‘젠킨스’ 박사의 물부리의 발작적인 붉은 반점(斑點)만이 반짝이고 있었다. 이내 개똥벌레가 올 것이라고 ‘미리’는 생각하였다.
그리고 오늘 오후에 ‘미리’가 처음 발견한 것으로는 그녀의 어머니의 앞머리 이외에 또 한 가지, 어머니의 앞머리 목 뒤의 토실토실한 교태(嬌態)이었다. 물론 ‘미리’는 만약에 그녀의 아버지가 거기에 입을 맞추는 것ㅡ어머니가 두 손 가득 얼음 쟁반을 들고 있는 틈을 타서 아버지가 목 뒤의 오목한 곳에다 ‘쪽’하고 입을 맞추고 있었던 것ㅡ을 보지 않았더라면 그것을 발견할 리가 없었을 것이다. ‘미리’는 ‘키스’가 끝난 뒤에 그 장소를 유심히 노려보았고 그것은 입을 맞추기에는 퍽 좋은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어머니가 목 뒤에 ‘키스’를 받았을 때에 조금도 어머니 다웁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녀는 할머니와 ‘젠킨스’ 박사를 보지 않으려고 하였기 때문에ㅡ그러나 역시 그녀는 그들을 보게 되었지만ㅡ무척 유심히 어머니를 보고 있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젠킨스’ 박사는 조끼를 입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시계 줄을 달고 있지 않았지만 역시 이야기는 할 수 있었다. 또한 할머니의 얼굴은 그녀의 분홍빛 옷의 반사라고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다홍빛으로 진하게 홍조(紅潮)되어 보였는데, 그것이 날이 더워서 그러한지 부끄러워서 그러한지를 ‘미리’는 판단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젠킨스’ 박사의 팔을 냅다 흔들어대면서 분주히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맥주도 따르고 사람들의 목 뒤에다 입도 맞추고는 하였는데, 그 모양이 제법 토요일 날 저녁에 ‘루시’를 부르러 온 ‘에멧트 존스’와 같은 젊은 청년으로 자처(自處)나 하는 것처럼 보이었다. 그러나 실상은바야흐로 개똥벌레가 수많이 모여들었다. 현관 앞의 뜰 안에는 거의 어둠이 꽉 차있었다. ‘젠킨스’ 박사는 그가 할머니와 같이 앞으로 가기로 되어있는 ‘흑산(黑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미리’는 그의 목소리가 지극히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모든 사람들에게서부터 퍽으나 머나먼 곳에 격리(隔離)되어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루시’와 같이 층계위에 앉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녀는 재미있는 생각이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에ㅡ여름 벌레야 꼬이던 말던ㅡ불빛이 하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이것을 모르고 있었지만 아마 시간은 뒤를 향해서 가고 있었던가 보다. 밀월(密月)을 맞이한 할머니들. 자기들의 어머니들이 아직도 젊다고 생각하고 나이 먹은 아버지들. 처녀같이 목 뒤에 ‘키스’를 받고 조금도 어머니답게 행동하지 않는 나이 먹은 어머니들.
‘미리’는 손을 내밀어 개똥벌레를 한 마리 잡아들고는 손가락 사이에서 윙윙거리게 하였다. 이 행동은 확실한 안도감을 주었다라는 것은 만약에 시간이 여기에서 회전을 한다면 가장 나이 어린 사람으로서 ‘미리’가 제일 먼저 가게 될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자기가 점점 멀리 떨어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탁탁 치는 대로 번쩍번쩍하고 불이 켜지는 것을 보기 위하여 손 사이에 개똥벌레를 꼭 담아두었다. 물론 그녀는 작년 여름에 ‘나무집’에 있던 생각을 하려고 뒷걸음질을 칠 생각은 조금도 없었을 것이다.
그 집의 기억은 옆구리를 바늘로 꿰매는 것처럼 날카롭고 고통스러우면서도 놀라울 만큼 뚜렷하게 다가왔다. 그것은 그녀가 이 순간까지도 ‘나무집’의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같이 생각이 되었지만 사실 그녀는 그것을 다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 여름에서부터 그 다음 여름철까지 그녀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 기억을 찾아 올라가는 하나하나의 계단은 동생 생각이 나지 않았다.  새들과 이웃 살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간적이라기보다는 그 이상의 무슨 현기증 나는 감각, 가슴이 시원해지는 입사귀의 향기와 해가 비칠 때면 엽맥(葉脈)을 비쳐보는 즐거움, 그리고 확실히 계집에가 아니라는 가벼웁고 자유로웁고 기가 막힌 감정.
그것은 자기가 소년과 같은 감정을 느꼈다는 것이 아니라고 ‘미리’는 생각하였다. 그것은 그러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남자라든가 혹은 여자라든가 하는 따위의 것을 느낀 것이 아니었다.
'미리‘의 내부에서 노래와 같이 솟아오르는 중성(中性)에 대한 향수(鄕愁). 작년 여름은 그녀가 아직 ’캠프‘에서 의서(醫書)를 보지 않았을 때이다. 따라서 그녀가 들은 모든 이야기는 실에 꿰지 않은 염주 알 모양으로 서로 아무 연관성(聯關性)이 없었다. 작년 여름은 그녀가 아직 ’루시‘와 밤새도록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때이며, 따라서 속삭여진 비밀(秘密)의 열(熱)로서 그녀의 의식(意識)에 아직 자기 자신의 성(性)의 화인(火印)이 찍혀지지 않았을 때이다. 작년 여름은 그녀의 할머니가 아직 ’젠킨스‘ 박사와 밀월(密月)을 갖게 되지 않았을 때이다.
상실(喪失)의 의식(意識)은 너무 날카로워서 거의 쾌감(快感)으로 변하여 버렸다라는 것은 ‘미리’는 만약에 시간이 털 뭉치에서 실을 뽑아내듯 마음대로 뽑아낼 수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자기가 도저히 다시는 ‘나무집’의 여름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녀는 그녀가 보고 느끼고 행한 모든 것이 단 하나의 의미밖에는 가지고 있지 않았었을 때이다.
그러나 그 시절의 지금에 와선 이미 상실되어버린 죽은 시절이며, 인제 그녀는 그 시절을 다만 슬퍼하고 기억할 수밖에는 없었다. 모든 사물이 각자의 순수(純粹)속에서 보이어 주던 그 단순성(單純性)을 기억하여보라. ‘나무집’에 매달린 하나의 잎사귀가 그녀의 한 시간의 명상 속에서 한 번도 크고 작은 나뭇가지와 뒤섞이는 법이 없이, 심지어는 나무 그 자체와도 아무 관련 없이 소멸될 수 있었던 그 모습. 여름 아침의 향기가 ‘치즈’ 덩어리처럼 썰어질 수도 있고 그 모습은 말하자면 먼지 위에 서린 간밤의 비, 이것은 여름의 통나무 위에 싹트는 봉오리. 그리고 저것은 오전이 다가오는 첫 징조. ‘치즈’처럼 잘려져 다시는 한 덩어리로 모아질 수 없이 조각조각 흩어져있는 것.
그러나 지금 그 단순성은 가버리고 말았다. 모든 물건이 서로 부딪히고 충돌하고 혼란을 일으키면서 다른 물건으로 화하여 버렸다. 서로 충돌을 하는 두 개의 갈라질 생각이 전혀 새로운 그 무엇을 만들었고, 그 때문에 소녀는 어떻게 느껴야 할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고, 좀체로 일정한 지각(知覺)을 가질 수도 없었다.
“지금 우리들은 어째서 더 일찍 같이 합쳐지지 않았던가. 신기한 감이 들어.”
할머니는 어둠 속으로 또렷한 어조의 음성을 말하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우리 두 사람이 쓸쓸하게 사는데 너무 습관이 되었다고 봐.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잊어버리고 있었단 말이지.”
그녀는 경탄과 희망과 부드러운 자책(自責)에 가득 찬 약간 당황한 목소리로 웃었다. 그 웃음소리는 어둠을 뚫고 ‘미리’의 귀에까지 밀려와서는 그녀 주위를 자꾸만 맴돌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들은 물론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는지 그것이 궁금하단다.”
이 말이 나오자 재재거리던 이야기 소리가 뚝 끊겨버렸다. ‘미리’는 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단언(斷言)하는 말과 “다른 사람이 뭐라고 그래요!” 하고 ‘루시’까지도 똑똑히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미리’는 여지껏 보다도 한층 더 멀리 떨어져 나가는 자기 자신을 느꼈고, 그러면서도 무엇인가 자기에게는 그에 대한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감정이 삽입(揷入)되어 도리어 한 걸음 더 가까이 접근해 들어오는 것 같은 감도 없지 않았다. ‘오오, 다만 슬퍼하며 기억 속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잃어버린 시절이여, 죽어버린 시절이여’, 하고 그녀는 생각하였다. 그녀는 이것을 가지고 사당(祠堂)을 만들고 싶었다. 그녀는 이 기억을 전부 상자 속에 묶어 놓아두고 싶었다.
‘미리’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부드러운 여름 저녁의 산들바람이 그녀의 치맛자락을 나풀거리며 오랫동안 앉아서 땀이 밴 살을 시원하게 하였다. 그녀는 그 기억들을 상자 속에 담아두고 싶었고, 그러면 그것들은 다시 지붕 밑 방에 있는 가방이 할머니를 대하듯이 자기에게 대하게 될 것이었다.
‘미리’는 어둠을 향해서 그녀의 두 팔을 내뻗고 싶었다. 이러한 통찰(洞察)의 애석감(愛惜感)을 보여주기 위하여 무슨 큰 일을 하고 싶었다. 뛰어가서 소리를 치고 대지(大地) 위에 온몸을 내던져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산들바람이 종아리의 땀을 부채질하고 지나갈 때마다 약간 몸을 떨면서 현관 앞의 마당 위에 그대로 가만히 서있었다. 마치 그녀의 주변에 둥근 줄이라도 쳐있는 것처럼 다른 모든 사람들과 단절(斷絶)된 채로 서있었다.
“그렇지만 너희들은 모두 다 참 훌륭하다.”
하면서 할머니는 흐느끼듯이 조그마한 소리로 웃었다.
“그리고 우리들이 오기 전에는 나는 그것을 생각하고 두려워하였단다.”
재재거리는 이야기 소리는 다시 시작되었고 그중에서 유난히 귀에 거슬리는 뚜렷한 ‘루시’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훌륭한 것은 할머니라고 나는 생각해요. 제일 훌륭한 사람이 할머니예요!”
‘미리’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과연 ‘루시’는 자기편이 아니었다. 좋다. ‘미리’는 놀라지 않았다. 지금 그녀는 자기가 얼마동안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지금 일어났던 것이다. 그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었다. ‘미리’는 소리를 지르고 울고 싶었지만, 이러한 때에 흘려야할 눈물이 어떠한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의 눈은 닥닥하고 매말라 있었다. 그녀의 원주(圓周)는 그녀를 단단하게 둘러막고 있었으며 그녀는 쓸쓸하게 단 혼자 서있었다.
“오오, 나는 알았다!”
그녀는 이 소리를 어둠의 저 편에 앉아있는 할머니에게 외치고 싶었다. 나는 무엇을 잊어버린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가를 원주(圓周) 속에 다리를 걸고 서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 나는 지금 당신의 주의가, 당신 언저리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미치지 않았을 때, 당신의 처지가 어떠하였던가를, 또한 개가 원주 안으로 들어갔을 때 어째서 당신이 내가 오기를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던가를 알고 있다. “오오, 나는 알았다!” 그러나 이 지식(知識)이 무슨 가치가 있는 것인가 하고 ‘미리’는 생각하였다. 그리고 한 사람이 그가 잊어버린 것으로 인하여 그 여운(餘韻)속에 얼마나 오랫동안 서있어야 하였나 하고.
“자, 나는 가 잘 테야.”
하고 ‘젠킨스’ 박사는 말하였다.
“오늘은 참 보람 있는 날이다. 그렇고 말고.”
웅얼거리는 이야기 소리가 다시 시작되었다. 현관문이 찍찍거리면서 흔들리었고 ‘미리’의 어머니의 신발소리가 현관을 건너서 짤깍거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정말 기뻐요.”
‘미리’는 속삭이었다.
“당신이 이제 외롭지 않게 되어서 나는 정말 기뻐요. 나는 내가 기쁘다는 것을 나의 마음속으로 알고 있어요. 당신은 내가 마음속으로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젠킨스’ 박사는 현관의 손잡이에 물부리를 탁탁 털고는 커다란 소리로 하품을 하였다. 그들은 모두 들어가고 있구나 하고 ‘미리’는 생각하였다. 아무도 그녀가 거기에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어 보였으며 그녀의 걱정을 하고 있는 사람도 없어 보였다. 그녀는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었던가? 또한 그녀는 그 누구에게 가고 싶었던가? ‘루시’에게인가? 그것은 결코 아니다. 그녀의 어머니한테? 이 밤에 어머니한테 갈 일은 없다. 할머니한테? 천만에다.
“나는 누가 필요하다.”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나는 사랑할 사람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그녀는 부드러운 털이 자기의 발에 닿고 있는 것을 느끼지 못하였지만 그것을 깨닫게 되자 몽실몽실한 털의 감촉은 그녀를 녹여버릴 듯하였고, 그녀가 무릎을 꿇자, 두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흐르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ㅡ 따뜻한 눈물이 슬그머니 두 볼 위를 흘러내렸다.ㅡ그것은 새로운 눈물, 이러한 때에 그녀가 흘리고 싶던 눈물이었다.
‘비네가’는 둥근 원주를 넘어 들어와서는 목을 울리면서 그녀의 두 팔 사이에 와서 걸음을 멈추었다. ‘미리’는 손가락 사이로 부드러운 털을 어루만지면서 다리 뼈있는 데를 쓰다듬어 주었다.
밤은 퍽으나 조용하였다. ‘비네가’는 똑바로 서있었다. ‘미리’는 고양이를 쳐들어서 팔 안에 끼고 흔들어주면서 잔디밭 뒤로 걸어 나갔다. 현관 안의 자기가 서있던 자리에서부터 발을 옮겨놓는 것이 여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별을 쳐다보자, 어느 새에 얼굴 위의 눈물은 말라있었다. 별은 제각각 고독하면서 그들은 모두가 합쳐서 밥을 만들고 있었다.
“얼마동안을?”
하고 그녀는 팔 속의 고양이를 흔들어주면서 속삭이었다.
“얼마동안을?”<끝>
(출처=≪主婦生活≫ 1958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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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月評 / 초현실과 무현실
- 김종문(金宗文)의 《불안한 토요일》을 읽고
 
이 시집은 좋은 의미에 있어서도 나쁜 의미에 있어서도 한정된 독서를 위한 것이다. 시를 읽는 사람이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그렇게 많은 것이 아니다. 문학이라는 것이 그 중에도 특히 시라는 것이 제대로 대접을 받아본 시대란 없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시인이란 누구보다도 고독하고 구차하고 동떨어져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그 시인이 진정한 시인의 경우에 그러한 시대적 박해(迫害)는 더한층 심해지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불안한 토요일》이라는 김종문의 장시집(長詩集)을 앞에 놓고 한정된 독자라고 말하는 것은 시 본래의 성격과 숙명에서 오는 한정된 독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불안한 토요일’만이 가지고 있는 한정된 독자를 말하는 것이다. 결국 ‘불안한 토요일’은 한정된 독자 중에도 또하나 한정된 독자를 가지고 있다. 즉 이 이중(二重)의 원주(圓周) 안에 가지고 있는 독자란 문화인 중에도 문학인, 문학인 중에도 시인, 시인 중에도 특수한 시인이다. 나는 구태여 특수한 독자를 상대로 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고독한 이 시인에 대하여 책망을 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秋毫)도 없다.
오히려 이 ‘불안한 토요일’ 이상으로 난맥(亂脈)한 시풍(詩風)이 범람할 수 있는 불행한 시대에 대하여 이 나라의 문학인은 어디까지 우둔(愚鈍)할 작정(作定)인가 하는 것을 생각할 때에 그저 아연(俄然)할 따름이다. 기형적인 문학을 향하여 낡은 문학이라고 나무라는 것은 쉬운 일이며 또한 그렇게나 하는 그 자체가 벌써 낡은 일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새삼스럽게 말하자면 이 시집이 기형적이고 낡은 것이라는 비난을 받을 것이라는 전제 아래에서 우리는 그의 책임이 이 시인 한 사람에게만 부과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적어도 《불안한 토요일》을 읽을 만한 시인 문학가를 포함한 모ㅡ든 독자에게 문학적 연대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 시집의 저자가 앞으로 어떠한 시의 경력을 더듬어갈는지 이 시집 한 권만을 보고는 나로서는 조단(早斷)하기 어려우나 참으로 그의 시가 현실과 마주쳐서 치열하고 진실한 대결을 작품 위에 나타내기까지는 무수한 ‘천국’과 ‘지옥’을 돌아나아갈 것이며 또한 그가 이 ‘불안한 토요일’에 대하여 온건한 객관성을 가지게 되는 날, 비로소 그는 ‘불안한 토요일’이 저지른 상처가 자기가 예상한 것 보다도 훨씬 더 치명적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젊은 방랑을 운운하기 전에 방랑의 방향을 운운하지 않으면 아니 되게 된 것도 엄연한 시대의 명령이 아닐 수 없다.
방랑의 방향이라는 어구가 우습게 들릴 정도로 현대는 우스개스러운 시대가 아닐 것이기에 젊은 기형적 문학과 그에 대한 정신의 낭비를 덜어주기 위하여 이에 대한 책임의 일부 혹은 전부를 담당할 수 길이란 문학을 업(業)으로 삼는 사람을ㅡ하루바삐 진정한 현대의 대변자ㅡ보다 좋은 대변자가 됨으로써 적어도 이 나라의 사실주의 문학이 만족시키고 있지 못하는 부분의 양(量)을 격멸시키는 길 밖에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숙(未熟)하고 젊은 이 장시집이 이러한 현대의 구미(口味)에 맞는 사실주의 문학(이름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다)의 진공상태(眞空狀態)에 대하여 잠자는 못을 보고 던지는 조그마한 돌 조각같이 그가 일으킬 수 있는 최대한의 파문(波紋)을 일으킴으로써 이 시집 출판의 의의와 이 젊은 시인의 생명이 영원히 살아있기 바란다.(白鳥社 刊行. 3백부 한정판. 69)
(출처=《太陽新聞》 1953년 11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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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月評 / 운명(運命)의 노출(露出)
― 한하운(韓何雲) 시집 《보리피리》를 읽고
 
<보리피리>의 목가적인 향기도 좋지만 <답화귀(踏花歸>가 품은 이지러진 비애감(悲哀感)이 이 시인의 생명감으로서의 더 한층 가까운 것을 담고 있는 것 같으며, <인골적(人骨笛)> <관세음보살상(觀世音菩薩像)>에서 보이는 초탈(超脫)과 원죄(原罪)를 취급(取扱)한 것보다도 오히려 인간적인 맛이 있어 좋아 보인다.
이 시인이 남다른 불행한 운명(나병·癩病)에 처해있는 것을 생각할 때 그가 자기의 숙명을 뚫고 구원을 얻으려는 처절한 분투 끝에 새로운 광명을 받는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지만, 작품으로 생각한다면 열반과 초탈의 경지에 쉽사리 안심입명(安心立命)하는 것보다는 역시 피투성이가 되어서 싸워가는 <답귀화>, <나는 문둥이가 아니다> 등 일련의 작품들에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인골적> <관세음보살상> 같은 데도 역시 구원된 시가 아니고 구원을 바라는 시이며, 아직도 주저(呪咀)와 ‘가시’가 빠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숙명적 주저감과 ‘가시’가 이 시집의 거의 전 작품을 통하여 패기있고 조잡한 감을 주고 있다. 그리고 보면 <무지개> 같은 데에 나타나는 전아(典雅)한 정신이 이 시인의 귀중한 일면이며 앞으로도 아껴가야 할 가치있는 것이 아닌가.
<양자강(揚子江)> <인골적> 등에서 보는 넓은 면을 생각할 때 “나는 문둥이가 아니다”의 처참한 고통을 생각할 때 좀 더 깊이 자기의 세계를 파고 들어갈수록 그는 운명의 세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보며 종교적인 구원을 얻기 전에 우선 시인으로서 구원을 겪어야할 것이라고 본다.
시인이란 정도와 형태의 차이는 있을망정 모두가 다 어떠한 종류의 병든 사람이다. 그러면서 오늘은 시인의 병을 노출시킨 작품을 환영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늘의 시인이란 인류의 거창한 병을 치유해야 할 임무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시인이 자기의 개인적인 병을 고치고 인류의 병과 맞서고 나왔을 때 비로소 현대시의 출발이 시작되었던 것이다.(人間社 版 定價 350圓)
(출처=《平和新聞》 1955년 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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