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목월의 生家를 찾아서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

     구광본


혼자서는 건널 수 없는 것

오랜 날이 지나서야 알았네

갈대가 눕고 다시 일어나는 세월,

가을빛에 떠밀려 헤매기만 했네

한철 깃든 새들이 떠나고 나면

지는 해에도 쓸쓸해지기만 하고

얕은 물에도 휩싸이고 말아

혼자서는 건널 수 없는 것

 

-------------------------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에필로그 중에서)

     이문열


진정으로 사랑했던 고향으로의 통로는 오직 기억으로만 존재할 뿐 이 세상의 지도로는 돌아갈 수 없다.

사라져 아름다운 시간 속으로, 그 자랑스러우면서도 음울한 전설과 장려한 落日도 없이 무너져 내린 영광 속을 돌아갈 수 없고, 현란하여 몽롱한 유년과 구름처럼 허망히 흘러가 버린 젊은 날의 꿈속으로 돌아갈 수 없으므로, 한때는 열병 같은 喜悲의 원인이었으되 이제는 똑같은 빛깔로만 떠오르는 지난날의 애증과 낭비된 일정으로는 누구도 돌아갈 수 없으며 강풍에 실이 끊겨 가뭇없이 날아가 버린 연처럼 그리운 날의 옛 노래도 두 번 다시 찾을 길 없으므로.

우리들이야말로 진정한 고향을 가졌던 마지막 세대였지만 미처 우리가 늘거 죽기도 전에 그 고향은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

고향

     박목월


어디다 까치는

둥지를 짜나.

가시나무 낭낭 꼭지에

둥지를 짜고 알을 낳지

가죽나무는

어디 있니?

개울가 오막집

앞마당에 헌칠하게 섰지

개울가 오막집은

어디 있니?

어디 있긴 어디 있어

내가 자란 우리 고향에 있지

------------------------------------------

1

경북 경주시 건천읍 모량리 64번지 박목월의 생가를 찾았다.

목월은 경남 고성 태생이나 아주 어릴 때 모량리로 이사를 갔고 한때 慶州邑 내에서 살다가 乾川邑으로 이주하여 그곳에 정착했다. 慶州에서 牟梁(모량)까지 30리, 신작로에서 고샅길 30리, 점점 외진 동네로 쫓겨난 거다.

2

모량리의 기원=신라 六部村 중 세 번째(茂山大樹村)에 속했으며 '점량부(漸梁部)','모량부(牟梁部)'라 불리었고, 일연스님이 삼국유사를 편찬할 당시(1280년경)에는 '장복부(長福部)'이라고도 불러왔다.

이곳에 보리가 잘 되었다고 하여 모량(牟良)이라고도 이름지어 졌다고 한다. 1914년 일본인들의 나쁜 의도로 행정구역 통합 시에 모량(毛良)으로 불리었다가, 1998년에 지역민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확실한 考證과 史料를 바탕으로 모량리(牟梁里)로 변경되었다.

- 건천읍 홈페이지(www.gyeongju.go.kr/village/open_content/geoncheon/main.jsp)에서

3

이정표가 없어 몇 번을 헛걸음쳤다. 가다오다 농부에게 물었다. 가라는 곳으로 갔는데 절이 나왔고, 허허벌판이 나왔다. 논두렁에서 쓰레기를 태우는 농부에게 물었더니 “뭘 볼 게 있다구~”했다.

30분을 헤매었다. 헤매다 지친 길이 가도 가도 구불구불 출렁출렁 이어져 있었다.

시멘으로 덕지덕지 싸맨 집이 있었다. 落日의 집이었다.

落日의 고향이었다.

落日의 無心이었다.

‘손세익’이란 문패가 있었으나 청국장 냄새는 없었다. 사람이 없었다.

자동차가 있길래 물어보니 이웃집 차란다.

헛간은 있으되 여물 써는 소리는 안 들렸다.

얼굴이 뻘게져 툇마루에서 굴렀을 낙엽은 없었다.

부지깽이로 겁을 주던 멍멍이는 없었다.

아궁이에 지푸라기를 밀던 갈퀴는 없었다.

낟알을 쪼던 下午의 참새는 멀리 날아갔다.

육자배기 바람은 없었다.

…시인은 없었다.

4

옆집 사람에게 물어 보았다. “대학 국문과 교수나 학생들이 간혹 오간다”고 했다.

무척 無心한 대꾸였다.

“손세익씨는 안 사느냐”고 물었더니 “이 마을에 살긴 사는데 다른 집에 산다”고 말했다.

“그분은 농사 짓느냐”고 하니 “공장에 다닌다”고 했다.

“왜 이집에 안 살고 다른 집에 사느냐”고 물으니 “형집에 산다”고 했다.

나름 아주 공손하게, “왜 자기집 놔두고 형집에 사느냐”고 물으니 뭐라뭐라 하는데 빙글빙들 다른 말만 했다.

5

시인의 집에 살면 시인이 될까, 생각해 보았다. 손씨는 어디로 갔을까.

4

시인 허만하가 쓴 글에 이런 구절이 있다. 목월은 일제시대 모국어로 시를 쓰고 모량의 집 항아리 속에 넣어 두었다. 항아리는 땅에 묻었다. 그 시편 하나가 ‘홀로 떨어지는 작은 풀열매’라는 시라는 것이다.


꿈을 꾸네
꿈을 꾸네
대낮에도 구우는
흰 수레바퀴
스스로 사모하는
나의 자리에
가는 숨결 고운 시간 꿈의 자리에
나 홀로 떨어지는 작은 풀열매

5

땅을 파면 시의 항아리가 된장처럼 익어가고 있을까.

6

목월 생가 앞 안내판에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이곳은 청록파의 한 분으로 한국 시단에 불멸의 발자취를 남긴 목월 박영종(1916~1978) 선생의 생가가 있던 자리이다. 80년대까지 옛집이 그대로 남아 있었으나 애석 하게도 헐리고 지금 있는 건물은 그 자리에 다시 지은 것이다.

선생은 "길처럼" "산그늘" "가을 어스름" "연륜" 등의 작품이 정지용을 통해 <문장>지에 추천(1939~1940)됨으로써 문단에 나왔고, 40년에 걸친 그의 시의 생애는 초기의 "자하산의 청노루"가 중기의 생활인 시절을 거쳐 후기의 달관에 이른 과정이라고 요약할 수 있으며, "청노루" "나그네" "나무" "이별가" "하관" 등의 대표작이 있다.

 

  • 스크랩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
많이 본 뉴스
  • 세계속 코이카'
  • 배진영의 '어제 오늘 내일'
  • 김태완 'Stand Up Daddy'
  • 권세진 ‘별별이슈’
  • 정혜연 ‘세상 속으로’
  • 박희석 ‘시시비비’
  • 이정현 ‘블루오션을 찾아서’
  • 박지현 ‘포켓 저널리즘’
  • 하주희 ‘블루칩’
  • 이경훈 현장으로’
  • 김광주의 뒤끝
  • 백재호의 레이더
  • 고기정의 特別靑春
  • 슬기로운 지방생활
  • 이상곤의 흐름
  • 서봉대의 되짚기
  • 국제상인 장상인의 세계, 세계인
  • 취재본부는 지금’
  • 조갑제 기자의 최신정보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