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왜곡의 경연장이 따로 없는 사극

  • 이상흔 월간조선 기자 hanal@chosun.com
  • 업데이트 2008-02-23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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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원로 역사극 작가인 신봉승 선생이 요즘 史劇(사극)에 대해서 비판한 글을 그의 홈페이에서 옮겨 실은 것입니다.
 
우리나라 역사 드라마는 '용의 눈물'이 그나마 사실에 충실했고, 고증도 철저하게 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등장하기 시작하는 역사 드라마는 차마 사극이라고 부르기가 민망할 정도입니다. 특히 최근에 방영되고 있는 '이산'이나 '대왕세종'은 차라리 역사 왜곡은 두 번 째 문제이고, 상황 설정이나 고증 자체가 말이 안되고 유치하기가 이를 데 없어 사극의 기본도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학생 수준의 역사적 지식도 없는 사람이 드라마를 만들었는지 차마 눈뜨고 보기가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그냥 옛날 옷만 입혀 놓고 역사적 내용을 작가 상상력 대로 꾸며 놓은 것을 다 사극이라고 한다면, 개나 소, 닭같은 동물에게 옛날 옷을 입혀 등장시켜 놓고 사극이라고 불러도 될 것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사극은 '새로운 해석 어쩌고'하는 명분과 '드라마는 어느 정도 허구가 허용된다'는 논리를 내세워 역사 왜곡을 밥먹듯이 하고 있습니다. 야금야금 눈치를 보면서 행해지던 사극의 역사 왜곡이 오늘날에 와서는 도무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없는 역사를 지어내는 것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사극은 한마디로 누가 누가 잘하나 하는 식으로 역사 왜곡의 경연장이 된 실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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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드라마가 막가고 있다       
 
역사드라마가 막가고 있다.
역사드라마를 보는 대부분의 시청자는 그 드라마가 사실史實과 어느 정도 가깝느냐에 관심을 두는 경우가 많다. 엄격히 따진다면 소설이나 드라마는 모두 픽션虛構을 구사하는 것이므로 역사적 ‘사실’과 똑 같을 필요는  없는 것이지만, 읽는 사람들이나 보는 사람들은 내심 그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역사적 사실을 터득하려는 마음이 작용하고 있어서 사실과 같았으면 하는 희망을 지워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역사를 소재로 한 소설이나 드라마는 ‘사실’과 얼마간 다를 수가 있겠지만, 그 시대가 지닌 ‘시대정신’은 달라서는 안 되고, 왜곡되어서는 더욱 안 된다. 우리의 현대사에도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등 집권자의 통치신념을 제시하는 포괄적인 시대정신이 있는 것처럼, 조선시대에도  집권자의 통치이념에 따라서 한 시대, 시대마다 어떤 형식이든 시대정신이  깔리게 마련이고, 바로 그것이 그 시대를 흘러가게 하는 근원적인 힘이 될 수밖에 없다. 
 
가령 KBS-TV에서 방송되고 있는 <대왕 세종>의 경우라면 태종시대의  ‘시대적 정신’과 이탈해서는 그 시대를 바로 이해할 수가 없다. 태종 이방원은 아버지 이성계를 도아 조선건국의 2인자나 다름이 없었지만, 세자책봉에서 제외되는 좌절을 겪으면서 스스로 집권하기 위한 야망을 불태우게 된다. 그리하여 나이어린 이복동생을 죽였고, 자신의 진로에 방해가 되는 동복형님까지 죽이면서 왕권을 손아귀에 넣었지만, 아버지 태조(이성계)와 는 상상을 초월하는 갈등을 겪으면서 왕권을 굳힌 사람이다. 
 
왕위에 있으면서도 네 사람의 처남에게 사약을 내려서 죽게 하였고, 이에 대하여 울분을 토하며 항변하는 왕비(원경왕후)에게 거침없이 폐비를 입에 담으면서 10여 년 세월을 같은 궐 안(경복궁)에 살면서도 내왕없이 불목으로 일관하였으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서 세자(양녕대군)를 폐하여 죄인으로 내치기까지 하였다. 이때까지 조선왕조의 왕위계승이 장자로 이어지지 않았다하여 듣기 민망한 유언비어가 도는 데도 장자인 세자를 폐하는 태종의  독단에 우리는 주목하여야 한다. 
 
충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하고 왕재로서의 가능성을 보이자 태종을 52세의 젊은 나이로 왕위에서 물러난다. 그것은  세종의 새 왕조가 확실하게 자리 잡을 때까지 후견인(상왕)이 되어야겠다는 그의 책임감의 발로이나 다름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북경에 사신으로 가 있던 세종의 장인이자 국구인 심온沈溫이 ‘왕명이 두 군데서 나오면 정치에 혼란이 있게 된다.’는 불공한 말을 했다하여 그가 압록강을 건너기를 기다려서 체포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고 명 할 만큼 단호하고도 혹독한 군왕이었다. 어린 왕비(소헌왕후)는  상왕전의 마당에서 아비를 살려달라는 석고대죄를 올렸어도 태종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이런 사정으로 미루어 태종의 재위 18년과 상왕으로 있은 4년은 태평한 다음시대를 열기 위한 자기희생의 시기였기에 어렸을 때의 친구이자 마치 분신과도 같았던 최측근인 이숙번李淑蕃까지도 “내가 죽고 백년이 지나지 않거든 도성 안에 발을 들여놓게 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리면서 귀양에 처했다.  
 
태종 이방원의 통치시대를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다음 시대의 장애물이  될 위험이 있는 자를 가려서 그가 어떤 자일지라도 가차 없이 버렸던 시대’였기에 자신의 뒤를 이은 22세의 어린 세종에게  “천하의 모든 악명은  내가 짊어지고 갈 것이니, 주상은 성군의 이름을 만세에 남기도록 하라" 는  명언을 남길 수가 있었다. 
 
KBS-TV의 <대왕 세종>의 잘 못하는 경우, 지금이 바로 世宗時代와 世宗의 統治哲學을 살펴보아야 하는 적절한 시기이기는 한데, 世宗時代에 대한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다. 타이틀까지도 그렇다. 당연히 <聖君 世宗>이어야 옳다. 
 
1, 가장 알기 쉽게 이야기하면 太宗이 너무 한가하다. 태종은 태종의 시대를 초강력하게 이끌었고, 그것이 곧 세종시대를 열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무엄하게도 世子나 中殿, 臣僚들이 太宗의 면전에서까지 임금을  무시하는 듯한 諫言을 입에 담기도 한다. 당시의 태종에게는 용납될 일이 아니다. 
 
2, 세자(讓寧大君)가 드나드는 방은 어디에 있는 무슨 방인지가 분명치 않다. 당시의 政府機關인 吏曹, 禮曹, 兵曹, 戶曹 등과 같은 건물은 광화문 밖 六曹官衙에 위치해 있었고, 임금이 불러야 궁으  로 들어갔으므로 거리 감각이 살아 있어야 당연한데도 그저 아무데서나 모이고, 헤치고 하는 것이 민망하기 그지없다. 
 
3, 공무에 임하고 있는 世子의 거처(이 또한 애매하지만)에 궐밖에 있는 忠寧大君이 私服 차림으로 들어와 앉아서 감 놔라 대추 놔라고 참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忠寧大君의 言動에서 임금이    되고 싶어 하는 기미가 보이는 것은 세종을 잘 못 그리는 단초가 된다.
 
4, 더 끔찍한 것은 讓寧大君이 큰 아버지(定宗)가 총애하는 妓女 초궁장에게 아우들이 지켜보는 백주대낮에 수작을 거는가 하면, 거처에까지 끌어드린다. 이 不倫이 용서될 수가 있는가. 작가는 廢 世子의 빌미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변명하겠지만, 廢世子가 되는 과정은 <태종실록>에 상제하게 나와 있다. 
 
5, 또 世子가 명나라 使臣의 술상을 엎는 대목은 당시의 명나라와 조선과의 관계를 모르는 無知에서 기인되거니와 세자가 外交使節 에게 그렇게 해도 무사할 수가 있을까. 
 
6, 더 놀라운 것은 鄭麟趾, 崔萬理 등이 모여서 鄭道傳의 '三峰集'을  읽는 秘密結社를 하는 데, 여기에 세자가 참석한다. 三峰은 太宗에 의해 참살된 사람이고, 이로부터 4백 년이 지난 高宗 때까지도 그의 이름조차 거명되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작가는 알고나 있는지? 더구나 아직 죽은 지 10년도 되지 않았는데 鄭麟趾와 같은 知識人들이 ‘三峰集’을 읽는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7, 世宗朝의 名臣 尹淮는 시장바닥을 헤매는 주정뱅이로 나오는 데, 尹淮는 太宗 1년에 文科에 급제하고, 태종 10년 무렵에는 官職의 꽃인 吏曹正郞 겸 春秋館 記事官이었다. 이런 사람이 난전을 떠   도는 주정뱅이면 어찌되는가. 
 
8, 中殿이 명나라 史臣을 죽이기 위해 상궁을 시켜 독살을 기도하는 것은 아무리 드라마라도 말이 되지를 않는다.
 
9, 장차 科學者로 성장하게 될 將英實이 反政府軍에 몸담으면서 太平館을 공격하는 것은 무지의 극치가 아니고 무엇인가.
 
10, 太宗의 後宮 孝嬪 金씨가 아들 敬寧君을 後嗣로 만들 욕심으로  李叔蕃을 찾아가 아들의 스승이 되어 줄 것을 청하는 데, 이런 일이 있었다면 李叔蕃은 효빈 김씨의 멱살을 잡고 태종에게 갔 을 것이다. 李叔蕃은 太宗의 오랜 친구이자 分身이었기 때문이다. 
 
11, <대왕 세종>이 국민드라마라면 왜 15세 미만은 볼 수가 없나.  中學校 2학년이 15세 인데, 이들이 볼 수 없는 <대왕 세종>을 왜 만들어야 하나.
 
MBC-TV의 <이산>의 경우는 비교적 성실하게 잘 만들어지고는 있는  역사드라마임에는 분명하나, 법도에서 벗어나는 몇몇 장면의 과장이 작품천체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있다. 
 
1, 貞純王后가 私服을 입고 궐 밖으로 나와서 朝廷重臣들을 몽땅 불 러모으는 私家는 대체 누구집이며,
 
2, 昌德宮에서 얼마나 떨어진 위치에 있는 지 도무지 석연치 않은데도 정순왕후는 거이 매일 밤 그렇게 나간다. 요즘 식으로 하면 安家인지 모르지만….
 
3. 그것이 한 번이라도 危險千萬한 발상인데 貞純王后는 每回 그런 몰골로 궐 밖을 쏘다니고 있으니 딱하기 그지없는 노릇이고, 어느 날은 ‘주상과 세손 중에서 한 사람을 죽여야 할 것이라’고 당   당하게 발설한다. 상식으로도 통하지 않을 것이다.
 
4, 思悼世子에 관련된 기사를 洗草한답시고, 책을 찢어서 시냇물에  헹구는 데, 인쇄된 것은 洗草가 되지를 않는다. 그것을 고치자면  朱書로 고치는 것이 정도다. 왕조실록이나 정부 문건은 모두 그 렇게 고쳤다. 
 
5, 어느 날 밤에는 英祖가 곤룡포와 익선관을 벗어놓고, 昌德宮을 빠져 나갔는데도 아무도 모른다. 궐문을 지키는 병사들은 뭐하였고, 더구나 세손이 그 사실을 모른다면 대궐이 아닌 여염집의 사정과 무엇이 다른가. 
 
드라마를 재미에 맞추어 쥐어짜서 쓰면 그렇게 된다. 드라마는 유연하게 흘러가도록 써야 한다.  더 긴말을 할 필요가 없다. 역사드라마는 국민모두에 국사정신을 심어주는 데 이바지 하여야 한다. 바로 이점이 역사소설이나 역사드라마를 쓰는 작가들에게 주어진 최소한도의 책무임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설혹 시청률이 높았다고 하더라도 그 작품이 국민들(시청자)의 역사인식에 해악을 주었다면 작가나 PD는 큰 죄악을 짓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겠다.
 
(기타 더 많은 글을 보시려면 신봉승 선생의 개인 홈페이지를 방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http://www.shinb33.pe.kr/)
 
관련 기자 수첩 글: 불멸의 이순신은 '막가는 드라마?'
                            드라마 사극- 갓 쓴 장발족들
                      꼴불견 - 史劇 속의 장발
                           '삼국사기'에 대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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