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의 허상] "개성공단은 무릉도원 아냐" "대북 지원자금 있어 걱정 안 해"

개성공단 비대위, 가동중단 책임자 수사 및 피해보상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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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전망대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일대.
   
개성공단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가 가동 중단에 대한 책임자 수사 및 피해보상을 주장하고 나섰다.
  
비대위는 29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위헌, 위법한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에 대해 공식적으로 국민 앞에 사과하라”며 수사를 촉구했다. 비대위는 이날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 홍용표 전 통일부 장관 등을 수사대상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앞서 28일 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는 "박근혜 정부 당시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가 정부 내 공식 의사결정 체계를 거치지 않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일방적 구두 지시에 따라 결정됐다"며 이는 ‘초법적 행위’라는 뉘앙스를 나타냈다. 지난해 2월 10일 당시 박근혜 정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서 공단 가동 중단을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개성공단 비대위는 이날 개성공단 전면 중단에 따른 피해 지원과 경영정상화도 요구했다. 비대위 측은 “지금 밝혀진 걸로 보면 너무 억울하다”며 “별 이유도 없이 하루 이틀 시간 줘도 되는데 그 많은 돈을 날리고 거래처랑 신뢰까지 다 깨버렸다. 이게 민주주의가 맞느냐”고 밝혔다.
         
비대위 측은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의 전체 피해금액이 1조5000억 원가량 된다고 주장했다. 입주기업들은 영업 손실을 제외한 9446억 원을 피해금액으로 신고했다. 정부 추산 피해 총액은 7861억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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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가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발표한 다음날인 2016년 2월 11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개성공단으로 향하는 차량 행렬. 북한은 이날 개성공단 입주 기업 관계자들을 전원 추방하고, 모든 자산을 동결했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 이후 정부가 입주기업에 지금까지 지원한 금액은 5173억 원이다. 지난달 정부의 추가지원 결정 이후에도 입주기업들의 불만은 계속돼 왔다. 전체 지원 금액이 정부 추산 피해 총액 7861억 원의 74%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다.
            
신한용 개성공단기업 비대위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부 지원액을 다 합하면 5700억 원으로, 피해 추산액 1조5000억 원의 3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며 "1조5000억 원의 절반 정도라도 지원해야 기업이 정상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비대위는 개성공단이 동북아 평화에 기여해 온 점에 대해 언급하며 유엔 등에 서한도 보낼 계획이다.
      
그러나 개성공단 비대위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
     
개성공단 중단 조치의 원인은 북한에 있다. 북한은 2016년 1월 4차 핵실험을 했고, 이어 2월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했다.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갔음에도 북한을 제어할 수 있는 중국은 움직이지 않았다. 당시 시진핑 국가주석은 박근혜 대통령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정부는 개성공단 파견 인력의 신변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김정은이 남한 인력을 인질화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요컨대 2016년 2월 10일 단행된 개성공단 가동 중단 조치는 우리 국민의 신변 안전을 도모하고 국제사회의 대북(對北)제재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이뤄졌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을 비대위 측은 제대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개성공단에 대한 북의 인질화
    
개성공단 사업은 2000년 현대아산(주)과 북한의 합의로 시작됐다. 2005년 18개사가 시범단지에 입주했고,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2011년 12월 말 123개 입주기업이 가동 중이었으며, 5만 명 가까운 북한 노동자들이 이곳에서 일했다. 그때까지 누적 총 생산액은 15억649만 달러였다.
   
개성공단의 노동자들이 우리 측 사람들이나 문화와 접촉하면서 부지불식간에 남북의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효과도 작지 않았다. 때문에 햇볕정책의 옹호자들은 개성공단 사업을 ‘남북 경제협력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더 나아가 ‘위기에 처한 우리 경제의 활로’라고까지 예찬했다.
        
하지만 문제도 많았다. 공단에서 지급하는 월급이 북한 노동자들에게 직접 쥐여지는 것이 아니었고, 현금은 모두 노동당으로 들어갔다. 북한 측이 일방적으로 노동자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일도 잦았다. 북한에 연간 1억 달러의 현금이 들어가는 사업이어서 북핵과 관련한 유엔 제재에 저촉됐다. 무엇보다도 우리 국민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유사시 북한 측이 개성공단에 근무하는 1000여 명의 우리 국민을 인질로 삼을 수 있다는 우려가 계속 제기됐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인 2013년 4월 3일 북한은 우리 국민이 개성공단으로 들어가는 것을 금지하고 공단에서 나오는 것만을 허용하는 조치를 취했다. 개성공단 근무자들이 북한의 인질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는 그해 4월 26일 개성공단 내 잔류 근로자 전원을 철수시켰다. 2016년 2월 10일에는 북핵 실험과 미사일 도발에 대한 제재 차원에서 개성공단을 폐쇄했던 것이다.
         
이 같은 조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작년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에 대응해 내놓은 결의 2270호(3월 2일), 5차 핵실험에 맞서 낸 결의 2321호(11월 30일)의 내용들과도 부합하는 것이었다. 이 결의들은 북한 내 금융기관 폐쇄 및 금융거래 금지, 북한과의 뭉칫돈 거래 등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간 1억 달러에 달하는 현금 수입을 차단한 이 조치는 북한 정권의 급소를 때린 것이었다. 이 조치로 북한의 추가 핵실험이나 미사일 실험을 막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도움이 되는 현금을 우리가 제공했다든가 하는 비판으로부터는 자유로워졌다. 태영호 주영공사의 망명, 중국 북한식당 근무자 13명 집단망명 등에서 보듯 북한 엘리트 및 주민들의 동요가 가시화됐다. 무엇보다도 남북관계가 경색될 때마다 개성공단 내 우리 국민들이 북한의 인질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으로부터 온 국민이 해방됐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당시 개성공단을 2000만 평 규모로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 조치가 잘못됐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 덕분에 문재인 정부는 향후 대북협상 과정에서 개성공단 재개라는 유용한 카드를 하나 손에 쥐게 되었다고도 볼 수도 있다.

경제모델이 아닌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개성공단
          
개성공단이라는 '어설픈' 남북 합작 경제모델의 출발은 김대중 정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개성공단 탄생의 총괄 기획자는 북한 김정일과 김대중 전 대통령,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실무책임자는 박지원 전 비서실장, 임동원 전 국정원장,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등이다.
          
개성공단 건설을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제1차 남북정상회담(2000년 6월) 직후다. 당시 국가정보원 국내 정보조직을 총괄 지휘했던 김은성 전 차장은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끝난 뒤 갑자기 개성공단 건설이 주요 이슈가 됐다”고 증언한 적이 있다. 김 전 차장의 증언 중 일부다.
      
“남북정상회담이 있은 뒤 두 달 뒤(2000년 7월 말)에 현대가 북측과 공동으로 개성 근처에 산업공단을 만든다는 보고서를 처음 접했습니다. 생(生) 첩보였어요. 국정원 소속 국장들을 소집해 ‘이게 무슨 소리냐’고 물었는데 제대로 아는 이가 없었습니다. 대부분 ‘카더라’ 방송 수준이었습니다. 보고서를 접한 뒤 임동원 원장이 주재하는 차장 회의 때(2000년 8월 초) 개성공단 얘기가 나왔습니다. 나는 ‘개성공단 얘기에 대해 (국정원) 직원들 간에 반대 여론이 많아지고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임 원장이 잠시 남으라며 별도의 사무실로 데려갔습니다. 큰 지도가 하나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개성 지역에 들어설 산업공단이 표시돼 있었습니다.”
   
당시 김은성 차장은 임동원 국정원장이 “경협이 잘되면 남북 평화도 빨리 온다”고 하자 “말씀이야 맞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남북한 안보 차원에서 봤을 때 우리 측 근로자는 인질이 될 수 있다"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수천 명이 개성공단에 투입될 텐데 전쟁이 나면 죽도록 내버려둬야 하나. 그들로 인해 군사 작전도 제대로 못 할 것이다.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며 반대했다. 그러나 그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개성공단은 무릉도원 아냐"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기조를 유지한 노무현 정부 시절 개성공단 1단계 건설 착공식(2003년 6월)이 있었다. 개성공단 시범단지에 입주한 업체는 삼덕통상(신발제조)·신원(의류업체)·로만손(손목시계 제조) 등 총 15개 업체였다.
  
당시 개성공단에 근무하는 북측 근로자는 4600여 명, 한 달 월급은 57.7달러였다. 첫 번째 ‘메이드 인 개성공단’ 제품은 주방기기 전문업체인 ‘리빙아트’의 냄비(2004년 12월 15일)였다. 당시 ‘리빙아트’의 매출은 143억 원(2003년), 72억 원(2004년)으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이 회사는 불과 2년여 만에 철수했다. 당시 높은 인건비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던 중소기업들의 대다수는 ‘개성공단 행(行)’을 검토했다. 하지만 개성공단 이전에 과거 남북경협사업을 했던 업체들은 이들에게 우려를 보냈다. 대우남포공단에 회사를 차렸던 한 관계자는 《월간조선》 2006년 9월호에서 이렇게 말했다.

<―왜 남포공단에서 철수했습니까.
  “정확한 이유는 없어요. 북한에서 어느 날 우리한테 나가달라고 했는데, 다시 들어가지 못했다는 표현이 정확하죠. 그즈음 대우 사태도 겹쳤고요. 아직도 남포에 우리가 지은 공장이 그대로 있을 텐데, 한 번 가보고 싶고 그래요.”
  
―북한에서 나가라고 했다고 그냥 나왔다는 것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은 우리랑 달라요. 그냥 어느 날, ‘이견이 있으니, 좀 나가줬으면 좋겠다’ 그래요. 그러면 직원들은 짐 싸서 일단 나오는 거예요. 그런 일이 1년에 대여섯 번이죠. 직접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북한은 이유도 없고, 원칙도 없어요. 그냥 하라는 대로 해야 했죠.”
 
―중소기업들이 개성공단의 조기 입성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과거에 대북 사업을 했던 경험자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개인적으로 말리고 싶어요. 특히 개성에 올인하겠다는 분들은요. 개성공단은 무릉도원이 아니에요. 북한은 국제협약도 지키지 않는 국가예요. 설령 우리 정부와 약속을 했다 쳐도, 하루아침에 뒤집을 수 있는 곳입니다. ‘미사일을 쐈지만 개성공단과 관련 없다’는 정부의 논리를 맹신하지 마세요.”>
             
“대북 지원자금 있어 사업 걱정 안 해"
     
그럼에도 당시 국내 중소기업들은 개성공단에 입주하려 애를 썼다. 당시 취재 과정에서 만났던 한 중소기업인과의 인터뷰 내용 중 일부다.
       
<―개성공단에 진출하려는 이유가 뭔가요.
“제품단가는 내려가고 인건비는 상승해요. 염색업계는 거의 고사상태예요. 당장 문을 닫을 수 없어서 그냥 운영하는 것뿐이에요. 개성공단에 가는 것 외에 방법이 없어요. 인건비 싸고, 공장부지 커서 대규모 생산이 가능하잖아요. 땅값도 평당 11만4000원 정도로 저렴하고요. 우리는 50%는 자사에서 부담하고, 50%는 대출받을 예정이에요.”
    
―공장 운영이 힘들다면서 새로 개성공단에 공장 짓는 것이 부담되지 않나요.
“대북 지원자금 있잖아요. 대북협력기금에서 최대 70%까지 지원해 준다고 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아요.”>
     
개성공단은 표면적으로는 아무 문제없이 굴러가는 듯싶었지만, 당시 남포공단 입주업체 사장의 ‘예상’대로 북한은 개성공단을 두고 여러 차례 협박했다. 북한은 개성공단에 상주하는 인원을 880명으로 제한하는 조치(2008년)를 취했고, 한미연합(키 리졸브) 훈련을 트집 잡아 육로 통행을 차단(2009년)하기도 했다.
       
개성공단이 오픈한 지 4년여 지난 2009년에는 노골적으로 임금인상을 요구했다. 북한은 지난 2013년 또다시 ‘단골메뉴’인 공단 폐쇄 카드를 들이밀었다. 당시 개성공단에 입주한 우리 기업은 123개, 기업 투자액은 5568억 원, 정부·공공 부문은 3927억 원을 투자한 상황이었다. 북측 노동자 수는 5만4000명으로, 누적 임금(2004~2012년)은 약 3억 달러였다. 북한은 2013년 4월, 한미 군사훈련을 트집 잡으며 공장 가동을 160일 동안 중단시키기도 했다.
     
 글=백승구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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