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처음 와서 겪었던 황당한 이야기

  • 이상흔 월간조선 기자 hanal@chosun.com
  • 업데이트 2008-09-04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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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시골 面 지역을 거의 벗어나 본 적이 없습니다.

中高등학교를 통틀어서 버스를 타고 예천 읍내나, 안동 시내를 나가 본 것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물론 수학여행 때 다른 도시를 본 적은 있지만, 차창 너머로 보이는 신기한 눈요기 거리였을 뿐 도시 생활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가 도시에 처음 가서 겪었던 황당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장면 1.

고등학교 졸업 후 再修(재수)란 것을 하기 위해 누나가 있던 대구에 내려갔습니다. 버스 타는 것부터 시작해서 무엇하나 익숙한 것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누나는 수돗물도 그냥 못 마시게 했습니다. 도시의 수돗물은 오염이 됐기 때문에 그냥 먹으면 큰 일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수돗물을 꼭 끓여서 먹어야 했는데, 저에게는 보통 성가신 일이 아니었습니다.

실 저는 지금도 수돗물을 그냥 마십니다. 대구 생활 10년 포함해서 서울 생활까지 거의 20년 가까운 도시생활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물을 끓여 먹는 것이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生水를 사먹지도 않습니다. 물을 돈 주고 사먹는다는 것이 좀 심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좀처럼 생수는 사지 않습니다. 주말에 간혹 물을 끓이기도 하는데, 정말 아주 간혹 있는 일입니다. 제가 도시 생활하면서 수돗물을 거의 20년 동안 마시고 있는데도 아무 탈이 없으니 대구시나 서울시에서는 저에게 수돗물 홍보대사 자리라도 하나 제의해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쨌거나, 대구에 온 지 며칠 안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신호등을 건너기 위해 횡단보도에서 대기하는데, 주변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혼자 신호를 기다리고 있자니 갑자기 파란불에 건너야 하는지 빨간불에 건너야 하는지 헤깔리기 시작했습니다. 순간적으로 머리를 굴려서 기억을 더듬어 보았는데, 신호등을 건너본 기억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책에서도 배운 기억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때 '차는 파란불에 지나간다'는 것을 어디서 들은 기억이 난 것같습니다. 정말 순식간에 저는 나름대로 판단을 내렸습니다.

‘옳다구나. 차가 파란불에 지나가면, 사람은 차와 반대이기 때문에 빨간불에 건너 가겠구나.’

그 판단과 동시에 저는 횡단보도에 들어서서 길을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사방에서 차들이 달려들며 경적을 울리고, 어떤 운전수는 창문을 열고 소리를 치는 등 한 마디로 난리가 났습니다. ‘아차, 이게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저는 이미 도로 한 가운데 들어서 있었습니다. 대구 온 지 며칠 만에 신호등 잘못 읽어 차에 치어 죽을 뻔 한 황당한 사건이었습니다.

장면 2.

대구 생활도 어느 정도 익숙해 질 무렵 하루는 시내 토큰 판매대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데, 토큰 판매대 옆에 신문이 잔뜩 꽂혀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신문대에 가서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 동아일보 등을 종류별로 한부씩 뽑아들고는 유유자적하게 버스를 계속 기다렸습니다. 가판대에는 스포츠 신문도 많이 있었지만, 스포츠 신문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은 뽑지 않았습니다.

때 갑자기 토큰 판매대에서 주인이 나오더니 “왜 돈을 내지 않고 그냥 가져 가냐”고 화를 내는 것입니다. 저는 순간 ‘야, 이거 뭔가 단단히 잘못됐구나’ 생각했습니다. 하도 당황해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예? 이거 공짜 아닙니까?" 하면서 말을 막 더듬었습니다. 정말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판매대 주인이 제 말을 진짜 믿었는지 아니면 도시에 하도 이상한 사람이 많아서 대꾸를 하기 귀찮아서 그런지 “공짜 아니에요”한마디 하고는 다시 판매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는 얼른 신문을 원위치에 다시 꽂아 놓았지만, 주변에서 수 많은 사람이 그 장면을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졸지에 신문도둑에, 촌놈에, 무슨 거지가 된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려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 이런 '실수'를 한 1차적 책임은 당시 우리나라 신문 시장의 구조 탓에 있습니다. 

1990년 초반 우리나라 신문사들은 그야말로 피나는 경쟁에 돌입했습니다. 자고나면 신문 紙面이 늘어나고, 심지어 16面 하던 1일 면수가 24面으로 넘어가고, 週당 면수는 160面이 넘어갈 때였습니다. 신문이 거의 곱배기로 두꺼워 질 때였습니다.  

당시 제가 아침에 독서실로 향하는 길에 人道의 전봇대나 가로수 아래는 각 신문사의 지사들이 설치해 놓은 신문 거치대가 있었습니다. 형식적으로는 無人 판매대여서 옆에 조그마한 돈 통이 달려있었지만, 사실상 신문사에서 自社 신문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정책적으로 배포하는 신문들이었습니다.

'한 부당 50원'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돈 통에 돈을 넣고 신문을 가져가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독서실에 도착할 즈음에는 제 손에 국내 거의 모든 일간지가 들려 있게 되는 것입니다.

독서실에 도착해서 그 많은 신문을 쌓아두고 읽을 때가 힘들고 외로운 재수 생활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수거'해 온 신문을 꼼꼼히 읽다 보면 오전이 훌쩍 지나가곤 했습니다. 저의 漢字 실력은 이때 기본을 닦은 것입니다.

그런 분위기였으니 도시에 온 지 얼마되지 않은 저는 그저 길 바닥에 내놓은 신문은 죄다 공짜인 줄 알았습니다. 토큰 판매대에 꽂혀 있는 신문들도 서비스 차원에서 내다 놓은 것으로 착각을 해서, 아무 생각없이 줄줄이 빼가려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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