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80년 10월 평양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제6차 대회에 참석해 얘기를 나누고 있는 김일성(왼쪽)과 김정일. 김정일은 이때 김일성의 '유일한 후계자'로 내외에 공개됐다. 김정일 뒤에 보이는 얼굴은 전 외교부장 허담. 사진=조선DB
과거 70~80년대 북한 독재정권의 실상을 자세히 알 수 있는 한 권의 책이 있다. 2001년 월간조선사에서 펴낸 《신상옥·최은희 비록 - 우리의 탈출은 끝나지 않았다》가 바로 그것이다. 납북됐다 극적으로 탈출한 영화예술인 부부의 충격 증언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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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수뇌 김일성과 김정일이 누구인지, 그들의 야욕과 능력의 한계는 무엇인지, 북한 체제의 허위와 진실은 어떤 것인지 등에 대해 면밀히 밝혔다. 목숨을 걸고 극비리에 녹취한 수뇌들의 육성 발언, 생생하게 묘사된 북한 정치와 사회의 풍경 등은 지금도 찾기 힘든 고급 정보다.
음험했던 김일성·김정일 시대의 북한을 기억한다면, 폭주하는 김정은 시대의 북한 또한 그 허실을 통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북한 김씨왕조와 독재정권의 실체적 진실을 알아보자.
1. 김정일 파티의 단골손님들과 남한 유행가
〈김정일은 거의 매주 금요일만 되면 나(최은희)를 불러내어 파티를 열고 영화와 뮤지컬 등을 구경시켰다. 어떤 때는 그가 직통전화로 나를 직접 부르고 어떤 때는 김학순, 강해룡을 통해 연락해 왔다.
연회 때는 김정일의 여동생 부부도 자주 참석해 나는 이들과도 잘 알게 되었다. 이런 때면 경음악 밴드에 맞춰 트로트, 디스코 춤을 추고 어떤 때는 블랙잭, 마작 등 도박들도 한다.
밖에 나가면 항상 김일성 찬가와 혁명의 노래 일색이지만 연회 때면 '동백아가씨' 등 한국의 대중가요를 즐겨 듣고 부른다. 겉모습과는, 그리고 일반 서민들의 생활과는 너무 다른 권력층만이 즐기는 별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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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평양 만수대에 서 있는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대형 동상. 사진=조선DB |
이 연회의 단골손님은 김정일과 그의 여동생 김경희 부부, 조사부장 이완기, 부부장 강해룡·김주영, 연락부 부부장(현재 부장) 정경희(여), 외교부 부부장 김용순, 김정일의 비서 유 동무, 김일성 기록영화 담당 부부장 김명제, 지도원 김학순 등이고 외교부장 허담 내외도 자주 참석했다.
김정일은 처음 두세 번은 파티 때 나를 자기의 옆자리에 앉혔으나 그다음부터는 유씨 성을 가진 20대 후반의 미모의 여비서를 옆에 앉히고 나는 자기의 맞은편에 앉혔다.
연회는 주로 중앙당 연회실에서 열렸다. 중앙당에는 연회실이 여러 개 있는 것 같았다. 어떤 때는 대연회실에서 열리고 어떤 때는 중연회실, 소연회실에서 번갈아 열렸다. 나의 숙소로 정해진 김정일 별장에서도 연회가 두 번이나 열렸다.
... 술잔이 돌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김학순이 일어나더니 나더러 노래를 하라고 시켰다. 나는 노래를 잘 못 부른다면서 꽁무니를 뺐다. 노래 부를 만한 흥미도 없었거니와 막상 무슨 노래를 부를지 몰라 망설이고 있었다. 그때 김정일이 한마디했다.
"최 선생, 거 있지 않습니까? '이별', 패티김이 부른 '이별' 말입니다. 그것 한번 부르시오."
그의 말이 끝나자 박수가 터졌다. 동의의 표시와 함께 빨리 부르라는 재촉 박수였다. 김정일이 남쪽에서 유행하는 가요 이름을 다 알고 또 그 노래를 부르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데 나는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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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김정일. 사진=조선DB |
... '산을 넘고 멀리 멀리 헤어졌지만...'이라는 대목에 이른 순간 생이별을 한 채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안부조차 알 수 없는 신 감독 생각이 북받쳐 떠올랐던 것이다. 나는 바르르 떨리는 입술을 깨물고 터질 듯한 눈물을 꿀꺽꿀꺽 삼켰다.
나는 김학순이 불러주는 가사를 받아 '이별'을 간신히 끝마쳤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또 요란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주문이 쏟아져 나왔다.
"한 곡 더 뽑으시오. 한 곡 더..."
그러나 나는 무슨 노래를 부를지 몰랐다. 그때 김정일로부터 또 다른 신청곡이 나왔다.
"'하숙생' 하나 더 부르시오. '하숙생'..."
그는 '이별'과 '하숙생' 외에 '찔레꽃' 등의 노래를 좋아했다.〉
2. 남파간첩들의 야간훈련
〈이불 속에서 남쪽 방송을 듣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요란하게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깨었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새벽 1시가 조금 넘었다. 접대원 허학선이 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귀에 익은 공급지도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주무십니까?"
"아니오. 왜 그러세요?"
나는 불을 켰다.
"저, 죄송합니다. 선생님 쓰시는 건전지등 좀 빌려 주십시오."
"그렇게 하세요."
"아니오. 왜 그러세요?"
나는 불을 켰다.
"저, 죄송합니다. 선생님 쓰시는 건전지등 좀 빌려 주십시오."
"그렇게 하세요."
나는 머리맡에 놓인 건전지등을 집어 주었다. 나는 혼자 밥 먹기가 싫어 접대원과 요리사가 있는 부엌방으로 가서 같이 먹는 때가 많았는데 다음날 아침도 식사를 같이 하면서 물어 보았다.
"지난밤에 갑자기 전지등은 왜 빌리러 왔나요?"
"예, 어젯밤 공작원 야간 훈련이 있었는데 훈련을 하다 보니 건전지가 떨어졌답니다."
요전에 얼핏 들으니 이곳 동북리 초대소 일대는 위수구역이고 '공작원(간첩) 훈련장'이라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젯밤 전등을 빌리러 온 사람도 남파간첩 훈련을 받고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허학선은 다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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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이 2004년 4월 19일부터 21일까지 중국을 방문하면서 이용했던 특별열차의 내부 모습이 과거 기록영화에서 공개됐다. 사진은 톈진역에 정차된 열차 안에서 김정일이 중국 공산당 간부 등과 담소하고 있는 장면이다. 사진=조선DB |
"참, 선생님. 말이 난 김에 얘긴데 물건들을 잘 건사해 놓으십시오."
"왜요?"
"공작원들이 훈련 중에 감쪽같이 집안에 들어와서 물건을 가져가는 경우가 있답니다. 우리 집에는 그럴 리가 없겠지만 혹시 누가 압니까? 주의하시는 게 좋습니다."
"왜요?"
"공작원들이 훈련 중에 감쪽같이 집안에 들어와서 물건을 가져가는 경우가 있답니다. 우리 집에는 그럴 리가 없겠지만 혹시 누가 압니까? 주의하시는 게 좋습니다."
간첩들의 훈련 중에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도둑질 훈련도 포함돼 있다는 것이었다. 다음날인가 나는 식사 중에 호기심이 나서 접대원과 요리사에게 다시 물어 보았다.
"공작원들이 (남한에) 한 번 가면 얼마나 있다가 돌아오나요?"
"빠르면 한 40, 50일?"
한쪽이 다른 쪽에 동의를 구했다.
"응, 그렇다고 하던데..."
"혹시 아주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은 없나요?"
"글쎄요..."
"빠르면 한 40, 50일?"
한쪽이 다른 쪽에 동의를 구했다.
"응, 그렇다고 하던데..."
"혹시 아주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은 없나요?"
"글쎄요..."
두 사람은 괜한 말을 했다는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기만 했다.〉
3. 김일성의 '고려연방제' 야욕
〈우리는 김일성과 만나게 되면 대화 내용을 녹음하려고 은희의 핸드백 속에 소형 녹음기를 넣고 갔는데, 은희는 핸드백을 무릎에 올려 놓지 않고 일부러 자기와 김일성이 앉은 사이 의자 위에 올려 놓았다. 김일성은 언제나 그가 하던 말을 판에 박은 듯이 되풀이했다.
(*편집자 주: 해당 발언에서 김일성은 자유민주주의 정부에 의한 통일이 아닌 김씨왕조를 승인하는 연방제(두 개의 제도)를 주장하면서 민족주의의 감성(하나의 민족)으로 통일 문제를 호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주장하는 것, 남조선 제도는 그대로 두고 북조선 제도도 그대로 두고 서로 자치를 하면서 한 개의 나라 두 개의 정부를, 이 두 개의 정부를 연방해서 한 개의 나라로 만들어 가자고 유엔에 가입하면 앞으로 어떻게 되든지 간에 이 국제적으로 이 분열된 조선을 영구화시키는 것은 아니거든요. ... 그러니까 두 개의 정부를 시인토록 하는데 이거 하문 그저 연방정부 만들어 가지구 '조선'을 '고려'라고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뭐 상대방에서 좋은 의견이 나오면 좋은 이름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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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김일성과 김정일. 사진=조선DB |
그러나 '신라'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적합지 않아. 신라라는 건 왜 그런고 하니 우리 거 역사적으로 보면 당나라하구 비밀리에 연합해 가지구서 이 백제를 치고 고구려를 쳐서 망하게 해서 승리한 게란 말이오. ... 만일, 만일 통일하는데 한 개 민족으로 어떻게든지 살아야 된다는 것을 강조하십시오. 역사 앞에 어떻게 하나 한 민족으로서 두 개의 제도로 살 수 있지 않소.
홍콩에, 홍콩은 50년 동안을, 내 이번에 갔을 때 등소평이 말하지 않소. 자기가 좋은 일 하나 했는데 더 늙기 전에 홍콩은 거저 50년간을 자본주의 사회로 그대로 두고서 그저 평화적으로 통일하겠다. 잘한 게지요. 그러니까 한 개 나라에 두 개 제도는 있을 수 있다는 문제 아니오. 우리도 그렇게 두 개의 제도를 하잔 말이오."〉
정리=신승민 월간조선 기자
자료=《신상옥·최은희 비록 - 우리의 탈출은 끝나지 않았다》 본문 내용 발췌·인용
자료=《신상옥·최은희 비록 - 우리의 탈출은 끝나지 않았다》 본문 내용 발췌·인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