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15년 발간된 MB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의 UAE행(行)이 원전과 관련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UAE 원전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UAE의 ‘바라카’ 원전 4기는 2009년 한전 컨소시엄이 수주해 지은 것으로, 당시 400억 달러(당시 韓貨로 47조 원) 규모의 대형 사업이었다. 한국은 원전 수주와 함께 준공 뒤 운영 지원까지 따내 한국의 플랜트 수출 사상 최대 성과로 기록됐었다. UAE 원전 수주 이면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역할이 컸다. MB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 실린 관련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자.
참모들의 만류에도 계속 통화 시도
회고록에 따르면, MB는 UAE가 원전 수주국 발표를 앞둔 시점인 2009년 11월 초, 셰이크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왕세제와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다고 한다. 모하메드 왕세제는 이번에 UAE를 방문한 임종석 비서실장과도 만났었다. MB가 그와 통화를 시도한 이유는 모하메드 왕세제가 UAE 원전 수주의 실권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하메드 왕세제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번번이 통화를 미뤘다. UAE는 프랑스를 원전 수주국으로 거의 확정 지은 상태였기에 참모들은 MB를 만류했다. 회고록의 일부다.
<“모하메드 왕세제가 통화를 피하는 것 같습니다. 그 정도로 하시고 이제 끝내시죠.”
“UAE는 ‘원전을 프랑스에 주기로 했다’는 입장을 이미 공식적으로 우리에게 통보했습니다. 그런데 굳이 통화하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2009년 11월 초 셰이크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왕세제와의 통화가 여러 차례 미뤄지자 관련 참모들은 일제히 나를 말렸다… 나라고 자존심이 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대통령 체면이 말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나는 UAE 원전 수주의 실권을 쥐고 있는 모하메드와 계속 통화를 시도했다.>
“UAE는 ‘원전을 프랑스에 주기로 했다’는 입장을 이미 공식적으로 우리에게 통보했습니다. 그런데 굳이 통화하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2009년 11월 초 셰이크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왕세제와의 통화가 여러 차례 미뤄지자 관련 참모들은 일제히 나를 말렸다… 나라고 자존심이 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대통령 체면이 말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나는 UAE 원전 수주의 실권을 쥐고 있는 모하메드와 계속 통화를 시도했다.>
참모들의 만류에 MB는 “기왕에 안 된 것, 전화한다고 더 손해 볼 것도 없지 않아요? 그리고 중동 왕자들이 좀 그런 면이 있어요”라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어지는 내용이다.
<중동 왕족들은 선진국 정상들조차 가볍게 대하지 못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나는 현대건설에 있으면서 그런 성향을 많이 봐왔다. 오히려 나는 중동 왕족들의 그런 성향에 기대를 걸었다. … 이번에 관계를 잘 맺어두면 설령 원전 수주에 실패하더라도 향후 UAE의 다른 프로젝트를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MB는 “세계 원전 시장은 미국과 프랑스, 일본이 삼분하고 있었다. 한국이 UAE 원전을 수주한다면 미국, 프랑스, 일본과 함께 세계 4대 원전 수출국 중 하나로 부상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우리 역사의 큰 획을 긋는 일인데 체면을 따질 문제가 아니었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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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발전소 수주에 성공한 이명박 대통령이 2009년 12월 27일 오후(현지시각) 프레스센터가 차려진 아부다비 힐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피곤한 일정을 소화한 듯 이 대통령의 입술이 부르터 있다. 사진=청와대 |
MB “기업 그만두면 세일즈는 이제 끝났나 했더니 또 하게 되네…”
2009년 11월 6일 몇 번이나 미뤄진 끝에 모하메드 왕세제와 전화통화가 이뤄졌다. 그는 MB에게 “이렇게 통화하게 돼 반갑습니다. 다른 하실 말씀이 있으신지요”라고 사무적인 말투로 대꾸했다고 한다. MB는 “자신은 할 말이 없으니 당신이 말해보라는 식이었다. ‘프랑스와 합의가 된 마당에 한국이 떼쓰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경계하는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MB가 모하메드 왕세제에게 한 말을 회고록에서 옮겨본다.
“한국은 가장 경제적이고도 안전한 원전을 만들 자신이 있습니다. … 한국이 사절단을 파견하여 왕세제께 양국 간의 협력에 대해 설명을 드릴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가능하다면 저도 직접 방문해 이야기를 나눴으면 합니다. … 물론 한국은 선진국이 아닌 신흥개도국입니다. 그러나 짧은 기간 동안 발전한 경험은 귀국과의 협력에 어느 선진국보다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국은 남북이 분단되어 있어 매우 강한 방위력을 갖고 있습니다. 귀국과 좋은 안보 협력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양국이 신뢰를 갖고 형제 국가와 같은 관계를 맺으면 좋겠습니다.”
MB는 “UAE는 무엇보다도 안보 협력에 대한 관심이 컸다”며 “다만 프랑스는 UAE와 긴장 상태에 있는 이란과도 관계를 맺고 있어 UAE 측이 다소 망설일 수 있다는 정보가 입수됐다”고 말했다. 그는 모하메드 왕세제에게 ‘형제’를 강조한 이유에 대해 “아랍 사람들은 형제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비즈니스로 맺은 관계보다는 신뢰와 우정을 중시하는 문화의 산물로, 우리와 정서적으로 비슷했다”고 설명했다.
모하메드 왕세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대통령님께서 직접 UAE 방문을 희망하신다면 내부 논의를 거쳐 24~36시간 내에 답변을 드리겠다”고 말했다. 전화를 끊은 MB는 국방부 장관 등을 포함한 UAE 방문 대표단 구성을 참모들에게 지시하며 “기업 그만두면 세일즈는 이제 끝났나 했더니 또 하게 되네…”라고 되뇌었다고 한다.
모하메드 “입찰 연기”, MB “길이 보였다”
2009년 11월 11일 다시 통화가 연결된 모하메드 왕세제는 “이 대통령님과 통화한 뒤 입찰을 조금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5주 후쯤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는 뜻을 MB에게 전해왔다. MB의 말이다.
<예상보다 긍정적인 답변이었다.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 계산적인 서양과 달리 중동 국가의 정서는 감정과 우정을 중시한다. 모하메드의 아버지인 셰이크 자이드 전 UAE 국왕이 사람을 중시하여 교육에 치중한 것도 우리와 비슷했다. … UAE 원전 수주를 위해서는 기술이나 능력이 아니라 가슴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주일 후 한승수 국무총리를 단장으로 한 관계부처 장관 40명의 대표단이 UAE로 파견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UAE가 프랑스와 약속을 파기하고 우리와 계약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MB는 “대표단에게 우리가 원전을 수주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독려했다고 한다.
2009년 11월 20일 모하메드 왕세제는 MB와의 통화에서 대표단 파견에 감사를 표하며 “모두 대통령 덕분이다. 이러한 대화가 양국 간에 큰 이익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MB도 “나는 우리의 관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능력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도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왕세제께서 허락해 주시면 UAE를 방문하도록 하겠다”고 화답했다. 이에 대해 MB는 “상황이 진전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모하메드와 통화를 계속하면서, 프랑스에 원전 건설을 맡기겠다던 UAE 측 기존 입장은 이제 중립을 지나 우리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회고록에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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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이 2009년 12월 26일 오후(현지시각) 아랍에미리트(UAE) 수도 아부다비에 도착해 모하메드 왕세제의 영접을 받고 있다. 사진=청와대 |
원전 수주 성공!… ‘100년의 우정’
2009년 12월 15일 모하메드 왕세제는 “한국과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로 결정했다”면서 발표할 때까지는 절대 비밀을 지켜달라고 요청했다. MB는 12월 26일과 27일 양일간 UAE를 방문, UAE 원전 수주를 발표하는 자리에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UAE에 도착한 MB는 영접을 나온 모하메드 왕세제에게 “우리 한국이 동아시아의 허브 역할을 하는 것처럼 UAE가 중동의 허브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양국 관계의 100년의 우정이 지속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100년의 우정’이라는 말은 이후 “양국의 공식 용어처럼 됐다”고 MB는 회고했다.
12월 27일 아부다비 에미리트 팰리스 호텔에서 MB와 칼리파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칼리파 대통령은 “UAE 정부는 매우 오랫동안 깊은 숙고 끝에 최종 결정을 내렸다. 한국과 함께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로 결정했다”고 선언했다. 이어지는 MB의 회고다.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UAE 원전 수주가 마침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이로써 한국은 미국, 프랑스, 일본과 함께 세계 4대 원전 수출국이 됐다. 또한 한국과 UAE는 전략자 동반자 관계로 양국 관계를 격상시키기로 결정했다. 한국과 UAE는 이날을 계기로 원전 이외에도 군사, 의료 분야에 대한 포괄적 협력 관계를 맺게 됐다.>
정상회담을 마친 뒤 MB의 숙소를 찾아온 모하메드 왕세제는 “우리는 아주 먼 길을 돌아 이렇게 좋은 결과에 도달했다. 유명환 외교부 장관이나 한승수 국무총리가 방문했을 때에도 잘 몰랐다. 그러나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일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원유 저장’이란 부수적 성과도 올려
MB는 원전 수주에 따른 부수적 성과도 올렸다. 모하메드 왕세제가 자국의 원유를 한국에 저장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피력한 것이다. 심지어 모하메드는 “한국이 필요하다면 사용하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MB는 “모하메드의 제안은 한국에 UAE 석유저장소를 만들어 동북아의 석유 물류 거점을 삼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MB는 “(원유 저장은) 우리 경제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제안이었다”며 “원전 이외에 모하메드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인 셈이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UAE는 약속대로 2011년 3월 원유 600만 배럴을 한국에 무상 저장하기로 우리 정부와 합의했다. 그해 2월부터 여수에 저장 탱크가 착공되어 2013년 4월 완공됐다. 이 밖에 모하메드는 UAE 유전 개발에 한국이 진출하는 역사적인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고 MB는 회고록에서 밝혔다. 2012년 3월 5일 한국석유공사와 GS에너지로 구성된 한국컨소시엄이 아부다비 국영석유회사(ADNOC)와 미개발 유전 세 곳의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