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진=조선DB
지난 17일은 북한 김정일이 급사하고 김정은이 집권한지 6년째 되는 날이었다. 지금껏 김정은은 군사적으로는 핵미사일 개발 등 무력 강화를 추진하고 내정에서는 숙청과 처형으로 상징되는 공포정치를 펼쳐나갔다. 그동안의 폭정(暴政)으로 자신의 친정체제를 공고히 하면서도 핵개발로 인해 국제사회의 전방위적 대북제재에 직면하기도 했다.
가속화된 핵·미사일 개발·도발
핵무기에 대한 김정은의 집착은 지난 6년간 4번의 핵실험으로 증명됐다. 북한은 지금까지 총 6차례의 핵실험을 했는데 절반이 넘는 횟수가 김정은 시기에 실시된 것이다. 탄도미사일 도발 또한 앞선 김일성과 김정일 시대보다 더 많아졌다.
이와 관련 18일 《자유아시아방송》은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의 보고서를 인용, “김정은 시기에는 (핵·미사일) 무기의 다양성과 활성화 수준이 높아졌다”고 보도했다.
![]() |
| 지난 11월 시험 발사된 북한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 사진=뉴시스 |
북한은 지난 11월 말 진행된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급 ‘화성-15형’ 시험 발사를 토대로 이달 13일 열린 군수공업대회에서 “핵 무력을 완성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최근 《자유아시아방송》 보도에서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또한 “북한이 쏴왔던 미사일을 보면 조금씩 나아졌다”며 “이번 미사일의 속도도 빠르고 고도도 높았다. 일본 상공을 넘어가진 않았지만 그 정도 고도와 속도면 ICBM급이라고 봐도 문제없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운구차 7인방 찍어내고 최룡해 길들여
김정은은 집권 초기 28살의 나이로 어리고 미숙했던 자신의 정권 기틀을 다지기 위해 고위 인사들을 중용하다가 다시 내치는 이른바 ‘당근과 채찍’ 전략으로 처형 정치를 펼쳐왔다. 거듭된 숙청으로 김정일 사망 당시 김정은의 후견인으로 점쳐졌던 총참모장 리영호, 인민무력부장 김영춘 등 이른바 ‘운구차 7인방’은 모두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먼저 표적이 된 것은 리영호였다. 2012년 7월 당시 조선중앙TV는 “리영호 동지를 신병(身病) 관계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정치국 위원,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한 모든 직무에서 해임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2013년 12월에는 고모부 장성택을 척결했다. 당시 조선중앙TV는 “흉악한 정치적 야심가, 음모가이며 만고역적인 장성택을 혁명의 이름으로, 인민의 이름으로 준열히 단죄·규탄하면서 공화국 형법 제60조에 따라 사형에 처하기로 판결했다”고 강조했다. 김정은은 숙청·처형·해임 등의 방법으로 차례차례 7인방을 찍어냈다.
특히 장성택을 제거한 사건은 북한 권력 구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장성택을 따르던 내각 및 노동당 간부 수십 명이 싹쓸이당한 것이다. 장성택을 찍어내는 데 앞장선 군 총정치국장 황병서와 국가안전보위부장 김원홍, 인민보안부장 최부일이 옹위세력으로 올라섰다.
![]() |
| 북한 군 총정치국장 황병서. 사진=조선DB |
김정은이 불러온 피의 숙청은 6년 세월 동안 계속됐다. 작년 4월 공개 처형된 인민무력부장 현영철에 이어 최근에는 다시 황병서와 김원홍이 퇴조했다. 특히 김원홍의 경우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권세가 막강했으나 올해 1월 전격 해임됐다. 김정은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했던 황병서 또한 지난 10월 12일을 마지막으로 공식석상에서 사라졌다.
다만 당 부위원장 최룡해의 경우 김정은의 반복적인 신임과 축출로 인해 부침(浮沈)을 거듭하다 다시 측근으로 부상했다. 지난 10월 7일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외 당 조직지도부장 직위까지 맡으며 위세를 떨쳤다.
잦은 직위 박탈과 인사 태풍으로 과거에 비해 북한 군부는 힘을 잃게 됐다. 김정일이 주창한 ‘선군정치’의 노선이 유명무실해진 것이었다. 특히 현영철의 축출에서 보듯 북한군의 총지휘관인 인민무력부장 자리는 5년 동안 6번이나 교체되는 등 변동이 심했다.
노구(老軀)들을 쳐낸 자리에 김정은은 혁명 3세대들을 한 자리씩 앉혔다. 전 인민무력부장 오진우의 아들 오일정을 상장으로 승진시켰고 이어 송석원, 채문석, 리종무 등 비교적 젊은 인사들을 요직에 중용했다.
“수백, 수천 명이 고사총으로 처형되고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
이와 관련 18일 《자유의 소리》 보도에서 이수석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박사는 “김정은 시대 들어서 4년 동안 처형된 간부만 100여 명에 이른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130여명에 이르는 정도까지 파악되고 있다”며 “(숙청 및 처형 등) 김정은의 공포정치는 권력 엘리트들을 옥죄는 통치방식”이라고 말했다.
![]() |
| 북한 인민무력부장 현영철. 사진=조선DB |
과거 《자유의 소리》 인터뷰에서 노동당 39호실 고위 간부 출신인 리정호 씨는 잔인한 숙청의 피바람을 불러일으킨 김정은의 공포정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제가 망명하던 2014년도는 참 살벌한 시기였습니다. 장성택 처형을 비롯해서 고위 간부들에 대한 대대적인 처형과 숙청이 있었습니다. 그 때 그들의 측근들과 그 가족들 수백 명이 고사총(高射銃)으로 처형됐고 수천 명이 숙청되는 무시무시한 분위기였습니다. 그 때 제가 알고 지내던 여러 명의 고위급 간부들이 고사총으로 무참히 처형됐고, 또 우리 자식들이 알고 지내던 친구들이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는 걸 보면서 정말 저희들은 강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16일 ‘연합뉴스TV’ 보도에서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김정은은) 갑작스럽게 후계자가 됐기 때문에 당·정·군의 고위층에 대해서는 공포 정치를 통해서 충성심을 이끌어낸다”면서 “(반면) 주민들에 대해서는 친화(親和) 정치를 통해 지지를 이끄는 이중적인 리더십을 가졌다”고 분석했다.
![]() |
| 북한 당 부위원장 최룡해. 사진=조선DB |
18일 《자유아시아방송》 보도에서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은 시대가 명실상부하게 개막했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최룡해가 눈에 띄지만 2인자를 허락하지 않는 북한의 권력 구조상 그가 실질적인 권력 기반을 가졌는지는 의문”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글=신승민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