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15년 3월 21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조선DB
방중(訪中)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팔을 ‘툭툭’ 치며 인사를 나눈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문 대통령이 먼저 친근함의 표시로 팔을 두드리면서 인사를 건네자 왕 부장 역시 문 대통령의 팔을 치면서 화답했다.
이를 두고 서로가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는 과정이었다는 말들이 있는 반면, 아무리 그렇다 해도 장관급 인사(人士)가 한 나라 대통령의 팔을 치면서 인사를 나누는 것은 ‘외교적 결례’라는 지적도 있다.
고집스런 ‘늦깎이’ 대학생
중국 외교부장 왕이는 1953년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1969년 고등학교 졸업 후 문화대혁명에 휘말려 헤이룽장(黑龍江)성으로 내려가 복무생활을 한다. 7년 5개월 간 육군 군단 소속으로 건설과 농업 등에 종사한 후 ‘문혁’이 끝난 1977년에서야 베이징으로 돌아온다.
그해 12월 왕이는 베이징 제2외국어대 아시아아프리카어학부 일어과에 합격한다. 대학 진학 당시 만 25세의 나이로 학과에서 가장 연장자였던 그는 신중한 성격에 말수도 적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자기 주관과 의견이 분명해 사고나 화법 면에서는 고집스러울 만큼 논리적이었다고 전해진다.
1982년 대학을 졸업한 후 그는 외교부에 몸을 담고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주일(駐日) 중국대사관 참사관과 공사(公使)를 시작으로 중국 외교부 아주국 국장, 주일 중국대사관 대사(大使) 등을 두루 역임하면서 중국 외교계에서 ‘일본통’으로 부상했다. 실제 왕이는 원어민 수준의 일본어를 구사할 줄 알고 후쿠다 야스오 전 일본 총리, 아키히토 일왕 내외 등 일본의 고위인사들과도 교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1년 왕이는 만 48세의 나이로 중국 외교부 사상 역대 최연소 부부장(외교부 서열 3위, 차관급) 자리에 오르는 등 고속 승진을 했다. 이후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주임을 역임하고 마침내 2013년 시진핑 체제 하에서 제11대 중국 외교부 부장을 맡게 됐다.
의전(儀典)을 무기로 삼는 전략가
한편 왕이가 자기 고집과 주장이 강하다는 평가는 그가 외교가에서 활동했던 역대 사례들에서 유추할 수 있다.
2016년 왕이는 한 캐나다 기자가 ‘중국 인권에 대한 의문점이 있다’고 묻자 “당신의 의문은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한 편견으로 꽉 차 있고 내가 어디인지 모르는 곳에서 온 거만”이라며 “이것은 전체로 봐서 나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일”이라고 쏘아붙였다.
특히 왕이는 국제 외교에서 의도적인 ‘의전 소홀’ 등을 전략으로 삼아 상대를 압박하는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간혹 약속 시간보다 20분이나 30분 정도 늦게 나타나면서 상대의 집중력을 잃게 만든다고 한다. 그러면 상대가 ‘왜 이렇게 늦는 것일까. 얼마나 더 늦을까’ 등을 되뇌면서 정작 기억해야 할 협상의 쟁점과 설득 기술 등을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중국 외교의 상징인 왕이의 이 같은 내력과 행실에서 이번 방중 당시 중국이 보여준 오만과 비례(非禮)의 뿌리를 짐작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글=신승민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