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형 감사원장 후보자 부친인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에 주목하는 이유

"국가가 최우선... 일 년내내 태극기 게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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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 사진=조선DB
문재인 대통령이 11월 7일 감사원장 후보자로 지명한 최재형 사법연수원장은 법조계에서 미담으로 유명하다. 사법연수원 시절 몸이 불편한 동료를 2년간 업어서 출퇴근시키고, 자녀들과 함께 4000만 원을 13개 구호 단체에 기부한 것이 대표적이다.
 
기자는 최 후보자의 부친과 인연이 있다. 최 후보자의 부친은 6·25 당시 대한해협해전 참전용사인 최영섭(해사3기) 예비역 해군 대령이다.
 
대한해협해전은 우리 ‘백두산함’이 부산 동북쪽 해상에서 무장 병력 600여 명을 태우고 남쪽으로 내려오는 1000t급 북한군 무장 수송선을 5시간에 걸친 추격과 교전 끝에 격침시킨 전투다. 이 전투의 승리로 6·25전쟁 초기 북한군의 후방 공격을 차단할 수 있었다. 이후 179만 명의 유엔군과 막대한 양의 전쟁 물자가 부산항을 통해 무사히 들어올 수 있었고, 이는 6·25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원동력이 됐다.
 
최 대령은 백두산함 갑판사관 겸 항해사·포술사였다. 제2함대 소속 '백두산함'은 당시 대한민국 해군이 보유한 유일한 전투함이었다.
 
백두산함의 전사인 최 대령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은 인천상륙작전 67주년이었던 2016년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위한 양동(陽動)작전에 투입된 LST 문산호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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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 감사원장 후보자.

최 대령은 민간인 신분으로 전쟁에 투입돼 철수작전, 상륙작전을 수행한 문산호의 선장과 선원의 명단을 입수, 《월간조선》에 제공했다.
 
당시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문산호 선장과 선원들의 흔적은 어떻게 찾게 된 것입니까.
“이름 없는 영웅들을 같이 기억하고 기리지 않는다면 누가 앞으로 국가와 공동체의 위기에 나서주겠습니까. 제 나이가 90(1928년생)이 다 되어 갑니다. 4년 전쯤인가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을 적어놓은 목록)’를 적었는데 그중 하나가 문산호 전사자에 대한 신원 확인입니다. 제가 그들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한국선주협회, 해기사협회, 해운조합 등에 연락해서 흔적을 찾으려 했는데 전혀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임성채 해군역사기록관리단 군사편찬과장에게 부탁했습니다. 임 박사가 제 부탁에 해군이 보관하는 자료란 자료는 모두 뒤져 명단을 찾아냈습니다.”
동석한 임성채 해군역사기록관리단 군사편찬과장에게 ‘덕분에 문산호 선장·선원의 이름이 66년 만에 빛을 보게 됐다’고 하자, 그는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자신을 낮췄다.
 
임 과장이 찾아낸 문산호 선장·선원 명단은 이들이 장사상륙작전에서 사망하자 육군이 해군 측에 인사 처리를 부탁했고,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6·25전쟁 중에 이름 없이 죽어간 영웅들이 많은데, 하필 문산호 선장과 선원들에게 관심을 가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제가 우리의 첫 전투함인 백두산함의 갑판사관 겸 항해사·포술사였습니다. 1950년 7월 26일 여수철수작전 당시 문산호를 백두산함이 엄호했지요. 그때 문산호 선장을 처음 봤는데, 애국심이 보통이 아니더라고요. 아주 용감했어요. 선원들도 마찬가지였고요.”
 
-문산호 외에도 조치원호, 안동호 등의 LST가 차출돼 활약하지 않았습니까.
“다른 LST의 선장과 선원은 전쟁으로 전사하지 않았습니다. 문산호 분들만 돌아가셨지요.”
 
-문산호 선장과 선원의 유가족은 국가로부터 전혀 지원을 받지 못하나요.
“6·25 전사자 연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가족은 만나보셨나요.
“만나진 못했지만 황재중 선장 따님은 지금 치매에 걸렸다고 하더군요.”
 
 -선원들의 유가족은 찾지 못했습니까.
 “선원 3~4명의 자식은 찾았습니다. 모두 어렵게 살고 있죠.”
 
 그가 말을 이었다.
 
“내가 최근에 죽었다가 살아났어요. 나이를 먹으니까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제 꿈은 문산호에 탔던 민간인들에 대한 추모사업을 하는 겁니다. 미국, 이스라엘 군대가 강한 이유를 아십니까. 국가를 위해 목숨 바친 것을 국가가 알아주기 때문입니다. 이게 국가의 책무입니다. 우리 국민의 책무이기도 하고요.”
 
취재 이후 인연이 되어 몇 번 최 대령의 집에 방문한 적이 있다.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마두동의 한 아파트 21층에는 일 년 내내 태극기가 걸려 있는데, 그곳이 최 대령의 자택이다.
 
글=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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