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난 산불로 강원도 낙산사 동종(銅鐘)이 녹아서 사라졌습니다. 이 동종은 보물(寶物)로 지정되어 있었지만, 우리의 국보(國寶)나 보물 지정 규정이 상당히 애매하기 때문에, 국보와 보물에 대한 구분은 사실상 큰 의미가 없습니다.(어차피 천만년 보존해야 할 국가 중요 유물을 굳이 '국보'니 '보물'이니 하며 나눌 필요도 없다) 때문에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 대부분은 사실상 국보급 문화재라고 이해하셔도 무방합니다.
특히 낙산사 동종은 국보 중의 국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그 역사성과 예술성, 문화적 가치가 높았던 범종이었습니다.
낙산사 동종은 조선 예종 원년(1469년)에 왕이 그의 아버지인 세조(수양대군)를 위해 제작해 낙산사에 보시(布施)한 범종입니다. 유교나라에서 임금이 아버지를 위해 종을 만든 것도 역사성이 크지만, 조선조 500년 간 하루도 쉬지 않고, 울렸을 범종의 세월을 생각하면 이 종을 우리 대에 와서 잃어버린 부끄러움에 몸둘 바를 모를 지경입니다.
당시 동종이 녹아내리자 문화재청에서는 “실측(實測) 자료가 있으니 똑같이 복원하면 큰 문제는 없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나라 모든 문화재는 전부 실측해놓고, 내팽개쳐 둔 다음 없어지면 계속 찍어내면 된다는 논리나 마찬가지기 때문입니다.
없어진 문화재를 다시 만들면 그만일 것 같으면, 실측 설계도 자체를 문화재로 지정해서 관리하는 편이 마땅할 것입니다. 굳이 실물을 문화재로 지정해 놓고 세금 들여서 관리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어쨌든 실측을 해서 똑같이 만들든, 사진을 찍어서 똑같이 만들든 간에 새로 만든 동종은 그저 새로 만든 복제품의 하나일 뿐입니다. 그 범종이 예종 임금이 아버지를 위해 만든 그 종이 될 턱이 없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이 정부 들어 귀중한 문화재를 태워먹은 것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2006년 5월에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 화성의 서장대((西將臺)가 소실되었습니다. 1910년 경에 발행한 엽서에 축성당시 서장대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봐서 이 건물도 200년 이상 서 있던 것을 우리 대에 와서 몽땅 태워먹었다는 소리가 됩니다. 화성 자체가 세계 문화유산이기 때문에 화성을 구성하는 서장대도 당연히 국보급 문화재라고 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목조 건물이 그 험한 세월을 버터온 것에 대한 보답치고는 너무나 허망한 대접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물론 1986년에 금산사 대적광전이 불에 타서 없어진 경우도 있고 해서, 굳이 문화재 화재 사건을 놓고 이 정부까지 들먹일 필요성을 못느끼지만, 역대 정부에서 국보급 문화재가 이처럼 무참하고 빈번하게 소실된 경우는 없었습니다. 낙산사 동종, 화성 서장대, 남대문까지 지난 3년 사이에 국보급 문화재를 3개나 태워먹은 것을 보고, 한심하다 못해 "이 따위로 엉망인 정부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어제 남대문에 불이 났다는 속보와 현장 사진을 보고 어차피 남대문은 완전 해체복원이 불가피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목조 건물 특성상 아무리 약한 불에 노출되었다 하더라도 건물 내부에서 불이 났다면 지붕을 새로 들어내고 조금이라도 불에 탄 목재는 전부 교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저는 남대문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문화재에서 완전 파괴와 부분 파괴는 하늘과 땅만큼으의 차이가 있습니다. 부분 소실이 되면 일단 문화재의 존재가 사라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복구를 해도 그 문화재가 가진 영속성이 유지가 됩니다. 역사성, 예술성, 문화적 가치가 모두 계승이 된다는 뜻입니다. 반면 완전 소실된 문화재는 복구나 복원을 한다고 해도 문화적 가치는 대부분 혹은 상당부분 사라지게 됩니다.
특히 목조 건물은 얼마나 오래 되었나 하는 것 자체가 문화재가 되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우리가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을 국보로 정한 것도 이 건물이 오래된 목조 건물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무량수전이 완전히 불에 탄 후 새로 지었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란 명성과 가치는 자동적으로 없어지게 됩니다.
때문에 이번 남대문은 초기에 진압을 해서 그 상당 부분을 보존했어야 마땅합니다. 부분 전소가 되었다면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라는 명성은 그대로 가져 갈 수 있었고, 남대문이 가진 엄청난 역사적 무게를 고스란히 계승할 수 있었을 겁니다. 1962년에 남대문을 고쳐 지을 때도 비록 목재의 반 이상을 새로운 것으로 대체했지만, 이는 새로 지은 것이 아니라 기존의 건물을 고쳐 지은 것이기 때문에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란 영속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남대문 화재가 심해진다는 소식을 듣고, ‘현판 만이라도 보존해야 할 텐데...’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뉴스에서 "화재 진압 과정에서 현판이 떨어져 나갔다"고 보도를 했기 때문에 저는 편액이 땅에 떨어져 파손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내내 불안했습니다. 아침에 출근하자 마자 뉴스를 검색해보니 다행히 남대문이 전소되기 전에 소방대원이 현판을 떼어냈다고 합니다.
간신히 현판은 건졌지만 저는 왜 불이 나자마자 일단 현판부터 떼어내서 보관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세종대왕의 형님인 양녕대군이 썼다는 남대문 현판도 무엇과 비할 수 없는 귀중한 문화유산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남대문 소실 사건을 보면서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문화재든 아니든, 목조건물이든 철조건물이든 간에 수도 서울 한 복판에서 불이 났는데도 어떻게 초기에 불을 끄지 못했나 하는 것입니다. 단 한번의 있을 지 모를 전투를 위해 60만 대군을 상시로 유지하듯이, 단 하나의 국보도 멸실 없이 온전히 지키라고 문화재청을 만들고, 공무원에게 월급을 줘 온 것입니다. 공무원의 군기가 빠져도 이 보다 더 빠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
후기(1):
1922년 일제가 광화문을 헐어버리려고 하자 야나기 무네요시라는 일본 학자가 광화문을 위한 애도의 시를 지어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1926년 일제가 광화문을 헐어서 옮길 때도 동아일보의 설의식이란 주필이 '헐려짓는 광화문'이란 사설을 지어 시대의 아픔을 대변했습니다. 이제 후대를 위해 600년 간 도성을 지켜운 남대문을 장사지내는 애도시를 하나 지어 남겨놓고 싶어도 그럴 재주가 없는 것이 못내 한스러울 뿐입니다.
후기(2)
화재 진압시 떼어낸 현판을 저는 소방 사다리 차에 잘 싣고 내려 온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현판은 떼어내는 순간 높은 곳에서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상당히 손상이 갔습니다. 몇 시간 동안 불탄 건물에서 현판 하나 제대로 구해내지 못한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특히 낙산사 동종은 국보 중의 국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그 역사성과 예술성, 문화적 가치가 높았던 범종이었습니다.
낙산사 동종은 조선 예종 원년(1469년)에 왕이 그의 아버지인 세조(수양대군)를 위해 제작해 낙산사에 보시(布施)한 범종입니다. 유교나라에서 임금이 아버지를 위해 종을 만든 것도 역사성이 크지만, 조선조 500년 간 하루도 쉬지 않고, 울렸을 범종의 세월을 생각하면 이 종을 우리 대에 와서 잃어버린 부끄러움에 몸둘 바를 모를 지경입니다.
당시 동종이 녹아내리자 문화재청에서는 “실측(實測) 자료가 있으니 똑같이 복원하면 큰 문제는 없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나라 모든 문화재는 전부 실측해놓고, 내팽개쳐 둔 다음 없어지면 계속 찍어내면 된다는 논리나 마찬가지기 때문입니다.
없어진 문화재를 다시 만들면 그만일 것 같으면, 실측 설계도 자체를 문화재로 지정해서 관리하는 편이 마땅할 것입니다. 굳이 실물을 문화재로 지정해 놓고 세금 들여서 관리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어쨌든 실측을 해서 똑같이 만들든, 사진을 찍어서 똑같이 만들든 간에 새로 만든 동종은 그저 새로 만든 복제품의 하나일 뿐입니다. 그 범종이 예종 임금이 아버지를 위해 만든 그 종이 될 턱이 없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이 정부 들어 귀중한 문화재를 태워먹은 것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2006년 5월에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 화성의 서장대((西將臺)가 소실되었습니다. 1910년 경에 발행한 엽서에 축성당시 서장대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봐서 이 건물도 200년 이상 서 있던 것을 우리 대에 와서 몽땅 태워먹었다는 소리가 됩니다. 화성 자체가 세계 문화유산이기 때문에 화성을 구성하는 서장대도 당연히 국보급 문화재라고 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목조 건물이 그 험한 세월을 버터온 것에 대한 보답치고는 너무나 허망한 대접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물론 1986년에 금산사 대적광전이 불에 타서 없어진 경우도 있고 해서, 굳이 문화재 화재 사건을 놓고 이 정부까지 들먹일 필요성을 못느끼지만, 역대 정부에서 국보급 문화재가 이처럼 무참하고 빈번하게 소실된 경우는 없었습니다. 낙산사 동종, 화성 서장대, 남대문까지 지난 3년 사이에 국보급 문화재를 3개나 태워먹은 것을 보고, 한심하다 못해 "이 따위로 엉망인 정부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어제 남대문에 불이 났다는 속보와 현장 사진을 보고 어차피 남대문은 완전 해체복원이 불가피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목조 건물 특성상 아무리 약한 불에 노출되었다 하더라도 건물 내부에서 불이 났다면 지붕을 새로 들어내고 조금이라도 불에 탄 목재는 전부 교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저는 남대문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문화재에서 완전 파괴와 부분 파괴는 하늘과 땅만큼으의 차이가 있습니다. 부분 소실이 되면 일단 문화재의 존재가 사라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복구를 해도 그 문화재가 가진 영속성이 유지가 됩니다. 역사성, 예술성, 문화적 가치가 모두 계승이 된다는 뜻입니다. 반면 완전 소실된 문화재는 복구나 복원을 한다고 해도 문화적 가치는 대부분 혹은 상당부분 사라지게 됩니다.
특히 목조 건물은 얼마나 오래 되었나 하는 것 자체가 문화재가 되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우리가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을 국보로 정한 것도 이 건물이 오래된 목조 건물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무량수전이 완전히 불에 탄 후 새로 지었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란 명성과 가치는 자동적으로 없어지게 됩니다.
때문에 이번 남대문은 초기에 진압을 해서 그 상당 부분을 보존했어야 마땅합니다. 부분 전소가 되었다면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라는 명성은 그대로 가져 갈 수 있었고, 남대문이 가진 엄청난 역사적 무게를 고스란히 계승할 수 있었을 겁니다. 1962년에 남대문을 고쳐 지을 때도 비록 목재의 반 이상을 새로운 것으로 대체했지만, 이는 새로 지은 것이 아니라 기존의 건물을 고쳐 지은 것이기 때문에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란 영속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남대문 화재가 심해진다는 소식을 듣고, ‘현판 만이라도 보존해야 할 텐데...’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뉴스에서 "화재 진압 과정에서 현판이 떨어져 나갔다"고 보도를 했기 때문에 저는 편액이 땅에 떨어져 파손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내내 불안했습니다. 아침에 출근하자 마자 뉴스를 검색해보니 다행히 남대문이 전소되기 전에 소방대원이 현판을 떼어냈다고 합니다.
간신히 현판은 건졌지만 저는 왜 불이 나자마자 일단 현판부터 떼어내서 보관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세종대왕의 형님인 양녕대군이 썼다는 남대문 현판도 무엇과 비할 수 없는 귀중한 문화유산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남대문 소실 사건을 보면서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문화재든 아니든, 목조건물이든 철조건물이든 간에 수도 서울 한 복판에서 불이 났는데도 어떻게 초기에 불을 끄지 못했나 하는 것입니다. 단 한번의 있을 지 모를 전투를 위해 60만 대군을 상시로 유지하듯이, 단 하나의 국보도 멸실 없이 온전히 지키라고 문화재청을 만들고, 공무원에게 월급을 줘 온 것입니다. 공무원의 군기가 빠져도 이 보다 더 빠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
후기(1):
1922년 일제가 광화문을 헐어버리려고 하자 야나기 무네요시라는 일본 학자가 광화문을 위한 애도의 시를 지어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1926년 일제가 광화문을 헐어서 옮길 때도 동아일보의 설의식이란 주필이 '헐려짓는 광화문'이란 사설을 지어 시대의 아픔을 대변했습니다. 이제 후대를 위해 600년 간 도성을 지켜운 남대문을 장사지내는 애도시를 하나 지어 남겨놓고 싶어도 그럴 재주가 없는 것이 못내 한스러울 뿐입니다.
후기(2)
화재 진압시 떼어낸 현판을 저는 소방 사다리 차에 잘 싣고 내려 온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현판은 떼어내는 순간 높은 곳에서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상당히 손상이 갔습니다. 몇 시간 동안 불탄 건물에서 현판 하나 제대로 구해내지 못한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