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북한 김정은이 대동강자라공장을 시찰하며 화를 내는 모습. 사진=노동신문
국가정보원은 11월 20일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 황병서, 제1부국장 김원홍 등 총정치국 정치 장교들이 처벌을 받았다는 첩보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이날 국회 정보위 여야 간사들에 대한 북한 동향 보고에서 "최룡해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의 주도하에 당 조직지도부가 군 총정치국에 대한 검열을 진행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정보위원들이 전했다.
황병서와 김원홍은 '장성택 숙청'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이에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과 마찬가지로 '토사구팽' 전략을 쓰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정일은 90년대 후반 경제난을 일컫는 ‘고난의 행군’ 시기 북한 주민들과 간부들 사이에 체제에 대한 불만이 싹트자 책임을 아버지 김일성에게 돌렸다. 8000명에 달하는 비밀경찰 조직 심화조를 구성, 김일성 측근을 간첩으로 몰아 숙청한 것이다.
심화조는 주민등록 관련 문건을 심화한다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북한 주민에게는 각각 세 개의 경력카드가 있다. 북한은 이 카드를 이용해 평생 주민을 감시하고 구속한다. 하나는 인사사업을 위한 당위원회 보관용 간부문건으로 불리는 주민등록 요해(了解) 문건, 또 하나는 국가보위부에서 그 사람의 정치적 동향이며 발언까지 일일이 기록한 사상검토 차원의 주민등록 요해 문건, 나머지는 사회안전성에서 사돈의 12촌까지 기록한 족보집 같은 주민등록 요해 문건이다.
김정일은 당시 사회안전부(현 인민보안성) 정치부장 채문덕에게 심화조 작전의 전권을 부여했는데, 3년여 동안 숙청된 인사는 가족까지 포함해 2만5000여 명에 달했다.
그 유명한 '심화조 사건'이다.
심화조 사건으로 인해 민심은 악화될 대로 악화된 상태였다. 공포에 질린 군·정의 간부들도 김정일을 멀리했다.
당황한 김정일은 극도로 분노한 인민들과 간부들을 어떤 수를 써서라도 달래야 했다. 그러자면 방법은 단 하나 김정일의 비호 밑에 지금까지 온갖 악행을 저지른 ‘심화조’ 사건을 또다시 뒤집어엎는 것밖에 없었다.
김정일은 자신의 최측근이자 심화조를 진두지휘한 채문덕에게 모든 책임을 넘겼다.
전 인민무력부 총정치국 소속 고위 탈북자는 한 언론 기고문에서 이같이 밝혔다.
"철면피한 김정일은 채문덕을 안기부의 배후 조종으로 숱한 간부들을 처형한 제2의 김성도(항일 투쟁시기 1930년대 민생단 사건의 기본 주모자로서 숱한 애국자들을 민생단으로 몰아 처형한 국제당 순시원)라고 하면서 자기의 권좌를 노린 반혁명분자라는 감투를 씌워 인민의 이름으로 처단할 것을 명령했다. 김정일 자기를 위해 수십 년간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해 온 친구들까지 손에 피를 묻혀가며 처형한 ‘충신’을 하루아침에 또다시 칼도마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당시 김정일은 간부 강연에서 "전 사회안전부 정치부장 채문덕은 공명에 눈이 어두워 젊은 사회 안전원들을 내몰아 왜놈들보다 더 악착하게 고문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최문덕은 제2의 김성도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채문덕은 2000년 처형됐다.
'저승사자' 조연준… 제2의 채문덕 되나?
고위급 탈북민 A씨는 "지금 흐름을 보면 황병서·김원홍 등 2013년 장성택 처형에 앞장섰던 인물들이 차례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며 "장성택 숙청의 기획자로 알려진 조연준 전 당 조직지도부 1부부장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김정은이 장성택 처형을 주도한 황병서·김원홍·조연준을 숙청하고 장성택의 명예를 회복해 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조연준은 2012년 1월을 기준으로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전격 승격되면서 장성택과 현영철 등 수많은 거물을 처리하는 '저승사자'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2017년 10월 7일 김정은 주재하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2차 전원위원회에서 조연준은 당 검열위원장이 됐다.
당 검열위원장은 우리의 감사원장에 해당하는 직책이지만 1980년대 이후 검열위원회는 사실상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했다.
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조직지도부가 모든 권한을 장악하고 있어 검열위원회는 형식상 감사 업무밖에 할 수 없다"고 했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에 따르면 조연준은 1937년 함경남도 고원에서 출생했다.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모교에서 상급교원으로 사회의 첫발을 뗐다. 이후 중앙당 조직지도부 과학교육 담당 지도원, 함경남도 조직지도부 책임지도원을 거쳐 함경남도 도당 조직비서를 지내기도 했다.
글=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