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한솔(왼쪽), 김정은. 사진=조선DB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연구소 소장(통일전문기자)에 따르면 김정은이 이복형 김정남을 치명적 독극물 VX를 이용해 암살한 데 이어 이번에는 그의 아들인 김한솔을 살해하기 위한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김 소장은 민감한 대북정보를 다뤄온 정부 고위인사들의 말을 인용, 한 주간지에 기고하는 글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김한솔 암살조가 베이징에서 중국 공안 당국에 체포됐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한 건 지난 9월 하순이다. 당시 중국은 19차 공산당 대회로 부산했고, 공안망도 강화된 상태였다. 그런데 북한 공작원들의 미심쩍은 활동이 감지됐다. 대북 소식통은 ‘7명 안팎으로 구성된 공작조 가운데 2명이 체포됐고, 극비리에 조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김한솔을 노리고 현지에 파견된 것이란 진술을 중국 공안 당국이 확보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김정은은 왜 이렇게까지 김한솔 제거에 집착하는 것일까.
대북 전문가들은 중국이 내세울 간판급 인물로 김한솔이 꼽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중국통’인 장성택에 이어 김정남까지 제거된 상황 속에서 중국은 유사시 대북 영향력 발휘에 내세울 간판급 인물이 필요한 데 김한솔의 존재는 중국에 요긴하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의 이야기다.
"김정은의 핵·미사일 도발 드라이브와 미국의 대북 압박에 골머리를 앓는 중국으로선 북한에서의 급변상황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 입장에서 볼 때 김정은 체제에 변고가 생길 경우 대안세력으로 내세울 수 있는 김한솔의 존재는 특별하다. 이런 분위기는 김정은을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고, ‘반드시 김한솔을 제거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하였을 수 있다고 했다."
김한솔에 대한 김정은의 학력, 외모 콤플렉스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슬림한 몸매와 ‘훈남 외모’를 지닌 김한솔은 1995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가 있는 마카오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마카오 국제학교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국제학교 ‘유나이티드 월드 칼리지(UWC)’ 모스타르 분교에서 공부했다. 2013년 9월 프랑스 명문인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르아브르 캠퍼스에 입학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대학 입학 직후 김한솔은 대학 동기들과 파티를 즐기는 등 평범한 대학생활을 했다. 그러나 그해 12월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이 처형된 이후 프랑스 사복경찰의 밀착 경호를 받으며 생활했다. 한때 신변이상설도 돌았지만 2014년 10월 다시 르아브르 캠퍼스에 모습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가 다닌 파리정치대학 르아브르 캠퍼스는 아시아 지역학(學)으로 특화된 곳으로, 입학생은 2년은 이 캠퍼스에서, 마지막 1년은 해외 자매학교나 파리 본 캠퍼스에서 공부하게끔 돼 있다. 현지 유학생들에 따르면 김한솔은 2년간 르아브르 캠퍼스에서 학업을 이수했고, 마지막 1년은 파리 캠퍼스에서 공부했다고 한다. 김한솔은 2016년 9월 영국 옥스퍼드대 대학원에 합격할 만큼 성적이 괜찮았다. 등록하지는 않았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김한솔이 영국 옥스퍼드대 대학원에 입학하려다가 살해될 가능성을 우려해 진학을 포기했다”고 보도했다.
반면 김정은은 유학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2010년 11월 24일 영국 일간지 《더 선(The Sun)》은 김정은이 스위스 유학시절 공부를 잘 못해 같은 반 학생들이 ‘김(Kim)’ 대신 ‘띨띨하다’ ‘둔하다’는 뜻의 ‘딤(dim)’을 붙여 ‘딤정은’으로 부를 정도였다고 전했다.
이 신문을 보면 스위스 최고 사립학교에서의 교육에 많은 돈을 쏟아부었지만, 김정은은 교실의 낙제생이었다. 중등교육 검정시험 자격증에 해당하는 것조차 따지 못했다. 결국 15세 때 베른국제학교에서 공립인 리베팰트학교로 전학했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금세 열등한 학생층으로 떨어졌다. 옆자리에 앉았던 포르투갈 외교관의 아들 조앙 미카엘루는 “김정은과 내가 반에서 가장 둔한 학생(the dimmest student)은 아니었다. 하지만 언제나 2군에 속했다. 김정은은 자신의 의견을 나타내기 위해 애를 썼지만, 독일어를 잘하지 못했다. 또 문제를 내고 대답을 하라고 하면 어쩔 줄 모르고 허둥대곤 했다”고 말했다.
스위스 일간지 《르 마탱》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은 1990년대 스위스에서 2년간 다닌 국제학교에서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이 신문은 2012년 4월 1일 자 일요판에서 익명의 소식통들을 인용해 김정은이 스위스 베른 국제학교 시절 첫해에 75일, 두 번째 해엔 105일을 결석했다며 이같이 전했다. 당시 김정은과 같은 반 학생이었다는 사람은 그가 오후에만 학교에 나온 적이 많았다면서 성적도 좋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들에 따르면 당시 ‘박은’이란 가명을 쓴 김정은의 자연과학 성적은 6등급 가운데 3.5등급이었다. 또 수학·문화·사회·독일어 등에서 과락을 겨우 넘는 성적이었고, 영어는 처음 고급반에 들어갔다가 보통반으로 재배치됐고 과락을 겨우 넘겼다. 반면 음악과 기술은 최고 등급인 6등급 바로 밑의 5등급이었다.
할아버지 김일성의 모습을 흉내 내기 위해 일부러 살을 찌우고 성형까지 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김정은은 집권 이후 과도한 스트레스와 음주·흡연, 스위스산 에멘탈 치즈 등 고단백 식품 과다 섭취 등으로 인해 비만이 심하다. 2016년 7월 국가정보원의 조사로는 김정은은 지난 4년 사이 몸무게가 40㎏ 이상 늘었다. 2012년 처음 등극했을 때는 90㎏이었는데 2014년 120㎏, 최근에는 130㎏까지 증가했다.
김정은의 키는 171㎝쯤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의 키와 몸무게, 나이(32세)로 비만 정도를 추정하는 ‘체질량지수(BMI)’를 계산하면 지수가 44(정상 20~25)를 넘는다. 초고도 비만에 해당하는 수치다. 정보 당국은 김정은의 사진과 영상 등을 활용해 몸무게를 추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 김정일도, 이복동생 김평일에 대한 열등감 강해
경쟁자에 대해 심한 외모, 학력 콤플렉스를 느낀 것은 아버지 김정일도 마찬가지였다.
김정일이 몹시 증오한 인물 중 하나는 이복동생 김평일이었다. 작고 뚱뚱하고 수줍은 정일과 달리 평일은 잘생기고 운동도 잘했고 호방한 성격이어서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김일성가의 가정교사로 지근거리에서 이 집안을 볼 수 있었던 김현식 교수는 탈북 후 회고에서 순진한 소년이었던 김정일이 폭군이 된 이유 중 하나가 김평일에 대한 열등감이었다고까지 평가한다.
김정일이 몹시 증오한 인물 중 하나는 이복동생 김평일이었다. 작고 뚱뚱하고 수줍은 정일과 달리 평일은 잘생기고 운동도 잘했고 호방한 성격이어서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김일성가의 가정교사로 지근거리에서 이 집안을 볼 수 있었던 김현식 교수는 탈북 후 회고에서 순진한 소년이었던 김정일이 폭군이 된 이유 중 하나가 김평일에 대한 열등감이었다고까지 평가한다.
러시아의 모스크바 방송도 1997년 ‘다큐멘터리 김정일편’에서 이렇게 분석했다.
“김정일은 일찍이 생모(김정숙)를 여의고 계모(김성애) 밑에서 자라 애정 결핍 콤플렉스와 아버지 콤플렉스를 동시에 겪고 있는 인물이다. 이 때문에 작고 뚱뚱한 유라(김정일의 어릴 때 러시아 이름)는 미모와 큰 키를 계모로부터 물려받은 이복동생(김평일)을 미워했다.”
“김정일은 일찍이 생모(김정숙)를 여의고 계모(김성애) 밑에서 자라 애정 결핍 콤플렉스와 아버지 콤플렉스를 동시에 겪고 있는 인물이다. 이 때문에 작고 뚱뚱한 유라(김정일의 어릴 때 러시아 이름)는 미모와 큰 키를 계모로부터 물려받은 이복동생(김평일)을 미워했다.”
김평일은 2015년 초 16년 만에 주(駐)폴란드 대사에서 체코 대사로 자리를 옮겼는데, 이는 그의 위상이 커질 것을 우려한 김정은의 견제 때문이었다. 김정은은 폴란드 대사직을 수행하던 김평일을 가택에 연금하기도 했다.
글=월간조선 최우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