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협 3기 의장 출신 임종석 비서실장 "부끄럽게 살지 않았다"... 당시 전대협 "주한미군 철수투쟁은 反美 투쟁의 꽃" 주장

6일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전희경 한국당 의원-임종석 실장 격한 설전 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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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협 의장 출신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6일 청와대에 대한 국회 운영위 국정감사장에서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격한 설전을 벌였다. 전 의원이 "주사파가 청와대를 장악하고 있다"고 하자 임 실장은 "부끄럽게 살지 않았다. 강력한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강력 반발했다.
    
전희경 의원은 이날 국정감사에서 "주사파, 전대협이 장악한 청와대의 면면 실력을 봤다. 청와대가 전반적으로 한 축으로 기울어져 있으면서 오늘 이 자리에서 말끝마다 트럼프 방한을 운운하는 게 얼마나 이율배반적이냐"고 했다. 이어 임 실장이 과거 의장을 맡았던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을 언급하며 "전대협 강령과 회칙을 보면 '미국에 반대하고 외세에 부당한' 등등 민족과 민중에 근거한 진보적 민주주의를 밝히고 있다. 청와대에 들어간 전대협 인사들이 이 같은 사고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이런 인사들이 트럼프 방한에 때 맞춰 반미운동한다는 사람들과 뭐가 다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임 실장은 "매우 모욕감을 느끼고 강력한 유감의 뜻을 표한다"며 강력 반발했다. 그는 "5·6공화국 때 정치 군인들이 광주를 밟고 민주주의를 유린할 때 (전희경) 의원이 어찌 살았는지 살펴보진 않았다"며 "대부분의 사람이 인생과 삶을 걸고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했다. 의원이 그 정도로 말씀할 정도로 부끄럽게 살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게 질의인가. 매우 유감"이라고도 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국정감사장에 처음 나온 임종석 실장은 전 의원의 발언에 왜 이토록 발끈했을까. '전희경-임종석 설전'의 출발점은 임종석 실장의 '전대협 제3기 의장' 이력 때문이다.
     
전대협은 1987년 조직된 대학생 운동조직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의 약칭이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4·13 호헌조치로 전국 대학가에 투쟁 바람이 불었는데 그해 6월 연세대 이한열씨가 경찰 최루탄에 맞아 숨지면서 전국 단위의 학생조직의 필요성에 따라 전대협이 만들어졌다. 이념성향은 민족해방과 민중민주주의가 혼재돼 있었다. 그러나 핵심 인사들은 김일성 주체사상을 따르는 이른바 주사파였다.
        
전대협은 1988년 8·15 남북학생회담, 1989년 임수경 밀입북, 1990년 8·15 범민족대회 등을 추진하며 당시 대한민국 정치권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전대협은 1993년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으로 개편됐다. 전대협 출신들은 김대중 정권을 거쳐 노무현 정권 때 권력의 전면에 등장했다.
     
전대협 출신 인사는 2006년 당시 열린우리당 내 주요 세력을 형성했다. 전대협 1기 출신인 이인영·김태년·우상호, 2기 출신인 오영식·백원우·정청래·최재성, 3기 출신인 임종석·이기우·한병도·복기왕 등이 전직 또는 현직 국회의원으로 있었다.
   
전대협 출신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 측근 중에도 많았다. 김만수 전 청와대 대변인, 김성환 전 청와대 정책조정비서관, 김은경 전 대통령직속 지속가능발전위 비서관, 강현우 전 국회의장 기획총괄비서관, 서양호 전 대통령직속 동북아시대위 자문위원, 송인배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 행정관, 여택수 전 청와대 제1부속실 행정관, 이은희 전 청와대 제2부속실장 등이 그들이다.
  
전대협은 NL(민족민주) 노선에 입각해 한국을 미 제국주의에 의해 군사적으로 강점당하고 있는 식민지로 봤다. 이들은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평화협정 체결, 연방제 통일 등을 주장하며 사실상 북한 대남노선을 그대로 따랐다.
   
당시 전대협이 발간한 문건이나 학습자료, 핵심 인사들의 발언록 등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남과 북의 사상과 제도의 차이는 단기간에 없애기 힘든 상태이며 만약 억지로 없애려고 하면 대규모 충돌과 혼란을 피할 수 없으므로 두 개의 제도로 표현되는 연방제야말로 유일한 통일실현의 길이다.〉 (1991년 6월 전대협 조통위의 '연방제 통일방안의 이해를 높이기 위하여')
      
 <미·노(노태우) 정권 구도를 저지·파탄내고 연방제로 나아가기 위한 핵심적인 포괄적인 평화보장 쟁취투쟁으로 미·노 정권의 반통일적 본질을 폭로 타격해야 한다.〉 (1990년 전대협 제5기 투쟁노선) 
    
 <주한미군과 핵무기를 철폐하고 자주적인 원칙하에 연방제를 수립해야 합니다. 연방제 국가하에서는 국보법이 성립할 수 없고 통일 양심수가 있을 수 없습니다. 민족대단결의 기초하에 남과 북의 사상과 제도를 인정하고 이를 보장하는 연방제 통일을 이뤄야 합니다.〉 (전대협 제2기 학추위 1991년 사업계획서)
       
<이 땅에 상주하는 주한미군과 핵무기는 한반도의 긴장상태를 유발하는 화근(禍根)이고 민족의 생존을 파멸의 나락으로 몰아넣는 악마의 무기이다. 주한미군 철수투쟁은 반미(反美)투쟁의 꽃이다. 반전군축(反戰軍縮)의 요구를 내걸고 주한미군 철수의 전환적 상황을 열어젖히자.〉(1991년 4월 10일 전대협 제5기 총회자료집)
    
전대협은 11년 전인 2006년 이른바 '386 간첩단 사건'으로 다시 주목을 받았다. 386 간첩단 사건은 '북한공작원 접촉 의혹 사건' 또는 '일심회 사건' 등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국가정보원은 2006년 10월 북한에 밀입국해 군사정보를 알려주고 인터넷을 통해서 김일성(金日成)을 찬양하는 글 등 이적표현물을 게재한 혐의로 당시 민주노동당원을 긴급 체포,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후 장모씨가 핵심 인물로 등장, 체포됐고 관련자 여럿이 검찰 수사를 받았다. 사건 당사자들은 이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받았다.
      
사건 초기 당시 여당 거물 정치인 몇몇과 시민단체 인사 등의 연루설이 거론되면서 386 간첩단 사건은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측되기도 했다. 당시 이 사건 수사를 지시했던 김승규 국정원은 노무현 정권에 부담을 줬다는 이유로 스스로 물러났다.
        
임종석 현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미 알려진 것처럼 전대협 의장 출신이다. 그가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스스로 밝혔듯이 그동안 부끄럽게 살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1980년대라는 당시 시대적 상황에 의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해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임수경씨도 북한에 보냈을 것이다. 
     
내일(7일)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국빈 방문한다. 한때 젊어서 반미를 외쳤던 그가 지금은 대한민국 대통령비서실장이 돼 있다. 권력의 심장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 수 없지만 이제는 세계 속의 대한민국과 국민을 더 많이 생각하길 바랄 뿐이다.
      
글=백승구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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