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진=유튜브 캡처.
“공정거래위원장으로서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 이 창업자가 정확하고도 용기 있는 비판을 해줬는데 감사하고 무겁게 받아들인다. 공직자로서 더욱 자중해 시장의 경쟁질서를 확립하고, 약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본연의 책무에 더욱 정진하겠다. 저의 부적절한 발언으로 논란이 커졌지만 이번 일이 한국 ICT(정보통신기술) 산업의 미래를 위해 좀 더 생산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으로 승화되기를 기대한다”
지난달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몸을 낮췄다. 9월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개최된 경제민주화 관련 단체와의 간담회 모두발언에서 자신의 적절치 못한 발언에 대해 사과를 전한 것이다. 앞서 김 위원장은 같은 달 7일자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고(故) 스티브 잡스(애플사 최고경영자)는 미래를 봤고 그 때문에 모든 사람이 그를 미워했지만 존경했다”며 “네이버 정도의 기업은 미래 비전을 제시해야 하지만 이해진 총수는 그걸 제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 이틀 뒤인 9일 이재웅 다음(Daum) 창업주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할 말이 많지만 딱 한 마디만 하겠다”고 김 위원장 발언에 대해 포문을 열었다.
이 창업주는 “김상조 위원장이 지금까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고, 앞으로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 것도 없이 맨몸으로 정부 도움 하나도 없이 한국과 일본 최고의 인터넷 기업을 일으킨 기업가(이해진 네이버 총수)를 이렇게 평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동료 기업가로서 화가 난다”고 덧붙였다. 이에 벤처기업인 출신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삼류가 일류를 깔본 셈”이라고 지원사격에 나섰다.
당초 이 창업주의 온라인상 해당 발언의 끝맺음은 ‘오만’이라는 단어였다. 이후 그는 “제 글이 언론에 인용될 줄 몰랐다”며 “오만이라는 표현은 부적절했다. 김상조 위원장의 표현도 부적절했습니다만 제 표현도 부적절했다”며 ‘오만’이라는 단어를 ‘부적절’로 수정했다.
공정위는 ‘재계 저승사자’, ‘경제 검찰’로 불릴 만큼 이번 정권 초기 막강한 위세를 지닌 정부기구다. 그런데 그 기구의 수장(首長)을 기업인 출신의 인사가 ‘오만’ 혹은 ‘부적절’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실명 비판에 나선 것이다. 당시 이 창업주의 ‘소신 발언’을 이례적인 일로 여긴 여러 언론들은 관련 사건에 대해 수차례 보도하기도 했다.
한편 당시 이 창업주의 온라인상 발언의 수위나 대상을 두고, 일부 네티즌들은 공정위의 네이버 총수 지정을 비판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냐는 조심스러운 추측도 나왔다. 9월 3일 공정위는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의 57개 기업집단을 ‘공시대상 기업집단’(준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해 발표했다. 해당 지정에는 인터넷 포털업체 네이버가 추가됐다. 이해진 네이버 전 의장 (네이버 창업자)도 총수(오너 경영인)로 지정됐다.
이에 따라 네이버 총수 일가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이 됐다. 비상장사 주요사항 등도 공시해야 된다. 이 전 의장의 개인회사인 컨설팅업체 '지음'과 친족기업 2곳이 네이버 계열사로 포함되는 등 총 71곳이 대기업 집단규제 적용 대상이 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의 연속선상에서 나온 이재웅 창업주의 온라인상 소신 발언은 의미심장했다. 네이버 총수 지정 및 일부 인터넷 업계의 고충을 대변하는 측면도 없지 않았다. 사실상 인터넷 관련 산업의 핵심 가치는 ‘개방과 공유’다. 지나친 정부규제는 인터넷 체제의 새로운 콘텐츠 창출 및 관련 산업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한다.
물론 이 창업주는 이 같은 일각의 추측에 대해 9월 11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글의 맥락을 보면 제가 총수 지정이나 대기업 집단 지정이 오만했다고 비판한 것이 아니다”라며 “‘이해진 이사를 만나서 짧게 이야기해봤더니 미래 비전이 없다’고 공직자가 비평한 것을 비판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맨 몸에서 시작해서 의미 있는 기업을 키워낸 기업가들이 우리 사회에서 너무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화가 나서 짧게 이야기하다보니 문제가 생겼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재벌만 때려잡기보다 ‘혁신 생태계’ 키워내는 게 사회발전의 더 좋은 방향”
해당 게시물 말미에 이 창업주는 “재벌만 때려잡는 방향보다 혁신 기업과 혁신 기업가의 생태계를 키워내는 방향이 사회가 발전하는 더 좋은 방향 아닐까 싶다”고 덧붙이며, “이것을 마지막으로 오지랖은 그만 떨고 저도 제 일을 하겠다. 저 스스로도 혁신 기업가의 일원으로서 할 일이 아직도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글을 마쳤다.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재웅 창업주는 영동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전산과학과(현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했다. 동(同) 대학원까지 마친 이 창업자는 이듬해 프랑스 파리 제6대학원에서 인지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창업 전까지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 창업주는 1995년 2월 이택경, 고(故) 박건희 씨와 함께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설립했다. 당시 그의 나이 26세였다. 1997년 국내 최초의 이메일 서비스인 ‘한메일’ 창설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인터넷 비즈니스 산업을 펼쳐나갔다. 1999년 다음 카페 등을 론칭하고 같은 해 코스닥 상장과 함께 벤처 성공신화를 이룩했다. 2000년에는 세계경제포럼이 선정하는 ‘미래의 세계 지도자’ 100인에 선정됐다. 2001년 당시 KBS 9시 뉴스의 앵커 황현정 전 KBS 아나운서와 결혼했다.
이 창업주는 허례허식(虛禮虛飾)을 싫어했다고 한다. 직급과 위계(位階)가 아닌 성명 뒤에 ‘님’자를 붙여 호칭하는 수평적인 기업 문화를 유도했다. 2004년 제주도로 본사를 이전해 혁신 의지를 다졌으며 같은 해 미국 검색엔진 라이코스를 인수하는 활약도 보였다. 2007년 전문 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고 등기이사직을 사임한 뒤 2008년 6월 이사회 의장 자리마저 물러나며 퇴사했다. 2014년 1월에는 자신이 보유한 지분까지 카카오에 매각, 양사(다음, 카카오)가 통합한 ‘다음카카오’(현 ‘카카오’) 그룹의 경영과는 관계가 없다.
이 창업주는 일반적인 기업경영 외에 사회공헌에도 각별한 관심을 지닌 인사다. ‘다음’(Daum-多音)이라는 기업명을 정한 이유도 다양한 음률(音律)의 조화, 미래 지향적인 가치를 추구했기 때문이었다. 차세대 커뮤니케이션을 주도해나가는 회사, 다양한 소리의 조화로운 화음을 중시했던 그는 열린 미디어, 참여 미디어의 선구자가 됐다. 다음의 구체적 명칭인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작명한 이유도 인터넷 산업이 단순히 컴퓨팅(Computing), 즉 전산의 개념을 초월해 커뮤니케이션 즉 소통의 공간을 창출해내야 한다는 뜻이었다.
컴퓨터와 인터넷, 전산의 개념에서 소통의 공간으로
2014년 ‘넥슨컴퓨터박물관’ 측과의 인터뷰에서 이 창업주는 컴퓨터가 자신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저에게는 컴퓨터가 ‘커뮤니케이터’(Communicator)라고 생각한다. 컴퓨터를 통해서 바깥세상하고 이야기하는 도구가 저에게는 컴퓨터다. (…) 컴퓨터가 제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컴퓨터를 통해서 많은 정보를 접했고, 그게 제 전공이 되기도 했으며 제 일이 되기도 했다. 지금도 컴퓨터를 통해서 여러 가지 것들을 즐기기도 하고 정보도 얻는다. 저는 컴퓨터가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싶기도 하다. 컴퓨터는 제 인생의 대부분을 좌지우지한 도구였다.”
그는 2001년 다음세대 재단을 설립 정보화 격차 해소 등의 활동을 펼쳤다. 현재는 소셜 벤처기업 ‘소풍’(SOPOONG-소셜 파워 오브 네트워크 그룹의 약자)을 세워 파트너로 활동 중이다.
2008년과 2009년 두 차례 제주에서 개최된 ‘리프트 아시아 컨퍼런스’ 개최에도 기여했다. 해당 컨퍼런스는 유럽의 3대 혁신 컨퍼런스 기획사 중 하나인 리프트(lift)에 의해 진행됐다. 2009년 해당 컨퍼런스에서 이 창업주는 인터넷 비즈니스에 있어서 전문 예측에 앞서 미래 비전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미래에 대한 예측을 정확히 하고 잘 준비해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갖고 꾸준히 해나가는 것도 더 중요하다. (…) 이용자에 대한 예측을 정확히 하는 것보다 미래 비전을 갖고 하나씩 적용해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2004년 《월간중앙》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 창업주는 자신의 능력과 성격에 대해 “제가 남보다 뛰어난 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너무 밋밋한 사람”이라며 “학교 다닐 때도 평범한 학생이었다. 남들과 다른 점이라면 어렸을 때부터 지적호기심이 많았다는 것과 변화를 즐긴다는 것 정도”라고 겸손해했다.
이어 해당 인터뷰에서 그는 “언젠가 학생들한테 강연을 갔을 때 이런 말을 했다. ‘길게 보고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일을 하면 성공할 수 있다’”며 “재미없는 일에 성공하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하면 성공하기는 힘든 것 같다. 회사에도 늘 얘기하는 것이 재미있게 일해 세상을 변화시켜 보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회 공헌과 공유 경제의 가치
그는 위 인터뷰 내용처럼 평소 호기심이 많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많은 신중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유달리 철저한 준비성으로 창업신화를 써내려간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35명의 ‘중요한 선택’을 정리한 청소년 도서 《16살, 네 꿈이 평생을 결정한다》 제2권(국내편)에는 이 창업주의 성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기도 했다. (2006년 출간된 해당 책은 16살 아들에게 아버지가 반년 동안 보내는 애틋한 편지내용으로 위인들의 삶을 통해 인생의 현명함을 전해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는 어려서부터 몸에 밴 걱정으로 늘 새로운 걱정에 빠져 있지만, 세계 정상급 인터넷 기업을 잘 꾸려가고 있지. 이재웅 사장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극장에 갈라치면 일단 비상구부터 찾았다는구나. 혹시 불이 나면 재빨리 탈출하기 위해서였지. 어느 날은 자기는 왜 이렇게 걱정거리가 많은지 그게 또 걱정이었대. 하지만 이런 걱정은 다음을 위한 준비로 이어질 수 있는 실마리를 만들어주지. 게다가 걱정은 적당한 긴장을 만들어주기도 하거든.”
순간의 이익보다 사회적 공헌을 중시했던 그는 최근 공유경제에도 관심이 깊다고 한다. 공유경제의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한 번 생산된 제품을 여럿이 공유해 쓰는 협업 소비를 기본으로 한 경제’를 뜻한다. 기존에 생산된 제품을 여럿이 함께 공유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이른바 협력 소비경제를 의미하며 대량생산체제의 소유 개념과 대조되는 개념이다. 이 창업주는 공유경제의 가치와 미덕을 통해 공급자, 이용자, 중계자 모두가 함께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봤다.
이 창업주는 2015년 부산 공유경제 혁신학교에서 “공유경제는 첨단 IT 기술을 활용해 지금까지는 상상도 못했던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더해 “특히 양심, 신뢰, 행복 등 자본주의 시대에서 잊혔던 인간성을 회복시킬 수 있는 패러다임 변화의 중심에 공유경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산’(Computing)보다 ‘소통’(Communication)에, 눈앞의 성공보다 사회적 가치에 열중한 다음의 창업주 이재웅. 관(官)의 입장에서 김상조 위원장의 평가를 소신 비판한 그의 발언 배경에도 이처럼 올곧은 창업정신의 바탕이 깔려있었던 것은 아닐까.
글=신승민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