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삶의 길을 두시고, 죽음의 길을 말씀하십니까”(최명길)
“살고자 할진대 치욕스런 삶을 구걸하려 하시옵니까”(김상헌)
“살고자 할진대 치욕스런 삶을 구걸하려 하시옵니까”(김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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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남한산성의 포스터. 지난 10월 3일 개봉해 많은 관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
요즘 가장 핫한 영화인 〈남한산성〉은 최근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여러 생각을 갖게 만든다. 3편의 인상깊은 장면을 소개한다.
그러나 영화가 주는 ‘굵은’ 메시지를 뺀다면 재미를 주는 자잘한 사건이나 극적 반전의 모티브가 없어 다소 무덤덤하다. 유연한 카메라의 테크닉 혹은 편집으로 관객을 몰입시키는 장치나 기교 역시 보이지 않는다. 재미있는 캐릭터(서날쇠의 동생?), 전시(戰時)라고는 하나 여배우의 존재도 미약하다.
시종 무겁고 답답하다는 점이 그야말로 이 영화의 매력이다. 메시지의 강렬함 때문이다. 그러나 무거움이 인물들에 대한 감정적 몰입을 방해하진 않는다.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 扮)과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 분)의 ‘날선’ 대화가 압권이지만, 그것만으로 작품의 질(質)이나 승패를 정하고 싶지 않다. 인조 역을 맡은 박해일, 영의정 김류 역을 맡은 송영창의 연기도 빼놓을 순 없다. 송영창·박해일이 없었다면 이병헌·김윤석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야도 닫혔으리라.
어찌 됐거나 이 영화는 잘 만든 영화다. 2시간이 넘는 러닝 타임이 금방 흘러간다. 영화 속 의미있는 몇 장면을 소개한다.
ps-한 가지 첨언하자면, 영화 〈남한산성〉은 역사 다큐나 사실의 적확한 재연을 목적으로 만든 드라마가 아니다. 역사적 진실과 다른 내용을 포함한 허구다. 영화 속 여러 장면들이 역사적 논란을 뭉떵거린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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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조판서 최명길로 열연한 배우 이병헌. 이조판서는 오늘날로치면 인사혁신처장이다 |
#1 “신은 이제 만고의 역적이옵니다.”
청나라 칸이 남한산성으로 항복하라는 문서를 보낸다.
<…네가 기어이 나의 적이 되어 거듭 거스르고 어긋나 환란을 자초하니, 너의 아둔함조차도 나의 부덕일진데, 나는 그것을 괴로워 여러 강을 건너 멀리 내려와 너에게 다다랐다. 너는 스스로 죽기를 원하느냐.…>
이를 두고 김상헌과 최명길은 답서를 보내느냐 마느냐를 두고 갑론을박한다.
인조 임금이 말한다. “답서를 보내야 하지 않겠느냐”
그리고 한마디 더 보탠다. “나는 살고자 한다. 그것이 나의 뜻이다.”
김상헌은 답서를 보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살고자 하시는 뜻은 거룩한 것이옵니다. 살고자 하실진대, 답서를 보내지 마옵소서. 만백성이 보는 앞에서 치욕스런 삶을 구걸하려 하시옵니까.”
최명길은 답서를 보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오랑캐의 발밑을 기어서라도 제 나라 백상이 살아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줄 수 있는 자만이 비로소 신하와 백성입니다. 지금 신의 목을 먼저 베시고 부디 전하께서 이 치욕을 견뎌주소서.”
그날 저녁, 임금이 조용히 최명길을 부른다.
인조 “이 답서를 가지고 가면 경은 전쟁이 끝나도 그 욕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최 “신은 그 욕을 감당하고자 합니다.
인조 “모두가 경을 역적이라 할 것이다.”
최 “전하. 궁으로 돌아가시더라도 상헌(김상헌)을 버리지 마시옵소서. 그는 이 성 안에 하나밖에 없는 충신이옵니다.”
인조 “경도 나의 충신이다.”
최 “신은 이제 만고의 역적이옵니다.”
최명길의 “만고의 역적”이란 표현이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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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김윤석이 예조판서 김상헌로 분했다. 예조판서는 오늘날 외교부 장관이다. |
#2 “격서를 받은 적이 없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예판 김상헌이 척화(斥和)를 주장하는 이유가 있었다. 청의 용골대가 남한산성으로 쳐들어올 때까지 조선군 누구와 싸우지 않았다. 북방의 우리 군사들이 아직 온전하니 적 보급로를 끊어주리라 상헌은 믿었다. 또한 경상·전라·충청의 삼남(三南)이 궐기해 남한산성으로 달려오리라 기대했다. 어쩌면 명나라도 아우 조선의 딱한 사정을 듣고, 원군을 보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상헌의 믿음은 오판이 아니다. 삼남의 병사들이 기꺼이 남한산성으로 달려왔다면, 어쩌면 칸을 향해 인조가 삼배고구두(三拜叩九頭·세 번 절하고, 땅에 아홉 번 머리를 찧는)를 안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백성 누구도 사지의 임금을 걱정하지 않았다. 영화에서 대장장이 서날쇠는 상헌의 지시로 삼남에 보낼 격서를 품고 산성을 나선다. 격서에는 임금의 국새가 찍혀 있다.
죽을 고비를 겪고 가까스로 격서를 전했지만 조선군의 도원수와 장군들은 군사를 거둘 궁리만 한다. 영화 속 대사다.
“아무리 전시라고는 하지만 천한 대장장이에게 격서를 맡겼다는 게 말이 되는 이야기옵니까?”
이 말에 다른 군사(軍司)도 동의한다. “그러하옵니다. 도원수대감. 그 자가 가지고 온 격서는 어찌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도원수는 격서가 진짜라고 말한다. “격서에 찍힌 것은 틀림없는 주상의 국새다.”
다시 그의 부하가 말한다. “하지만 대감. 보름날 검단산에 봉화를 올렸다가 적들에게 발각이 되면 우리만 사지로 내몰릴 수 있습니다.”, “남한산성은 그렇게 쉽게 깨질 수 있는 곳은 아닙니다. 성안에서 스스로 살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일단 군사를 물리시고 안전한 곳에서 일단 지켜보시지요.”
누구도 자기 목숨을 임금과 나라를 위해 내놓기를 꺼려한다.
도원수 역시 살 궁리만 한다. “격서를 받고서도 따르지 않으면 어명을 어기는 것이야. 나중에 뒷감당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자 군사가 꾀를 낸다. “그럼. 격서를 받은 적이 없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서날쇠를 죽이자는 말이다. 그만 죽이면 격서를 받은 일이 없고, 군사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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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박해일. 고뇌는 하나 스스로 어려움을 풀 수 없는 무능한 인조 역을 맡았다. |
#3. “낡은 것이 모두 사라지는 세상”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최명길과 김상헌이 나눈 마지막 대화일지 모른다. 극심한 감정과 감정이 격돌하는 파열음이 아니라는 점에서 좀 싱겁지만 그래도 여운을 준다. 두 사람은 조선의 미래와 백성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이 대화는 김훈의 소설에는 없다.
최명길 “사직서를 올리셨다 들었습니다.”
김상헌 “이제 전쟁 끝났으니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겠지요. 나는 내가 져야할 책임을 피하지 않을 것이오.”
최 “이 모든 책임을 예판에게 돌릴 순 없습니다. 이 나라가 여기까지 온 책임을 묻는다면 저 또한 그 죄를 면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대감! 함께 도성으로 돌아가 다시 조정을 일으켜 세워야죠. 그것이 예판과 제가 져야할 책임이 아니겠습니까.”
김 “내가 살아온 자리가 그랬듯이 내가 죽어야할 자리가 있다면 오랑캐들의 발아래는 아닐 것이오.”
최 “죽다니요. 왜 삶의 길을 두시고, 굳이 죽음의 길을 말씀 하십니까. 예판께서 말씀하시는 죽음은 정녕 삶이 있는 것입니까.”
김 “이판께서 말씀하시는 삶의 길이란 무엇이오?”
최 “살아야만 걸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이지요.”
김 “그 길은 백성의 길이요? 임금의 길이요?”
최 “백성과 임금이 함께 걸어갈 길입니다.”
김 “나도 그리 생각했소. 하지만 틀렸소. 백성을 위한 새로운 삶의 길이란 낡은 것들이 모두 사라지는 세상에서 비로소 열리는 것이오. 그대도, 나도, 그리고 임금까지도 말이오. 그것이 이 성안에서 내가 깨달은 것이오.”
김상헌의 새로운 세상은 조선이란 틀 안에서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한다. 척화를 주장했으나 그의 머릿속에는 임금, 신하, 백성의 구별이 없는 진정한 평등 세상을 꿈꾸었다.
영화에서는 김상헌이 칼로 자결하지만 실제로는 스스로 목을 맸으나 실패했다. 82세까지 장수하다 1652년(효종 3) 사망했다. (참조 《월간조선》 2017년 4월호 〈김상헌과 최명길과 남한산성의 비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