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9월 18일 경기도 광주의 해공 신익희 선생 생가에서 창당기념식을 하기에 앞서 추미애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가 전시된 사진들을 돌아보고 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은 9월 18일 경기 광주시에 있는 해공 신익희(海公 申翼熙)선생 생가에서 제62주년 창당 기념식을 가졌다.
추미애 대표는 이날 “현존하는 한국 정당 중에서 역사를 자신 있게 드러내 놓고 말할 수 있는 정당은 아마 민주당이 유일할 것”이라면서 “민주당의 역사는 그 자체로 전후 민주헌정의 재건과 수호의 역사였으며 산업화와 민주화에 헌신한 국민과 함께 걸어온 길”이라고 자평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역사가 62년이나 된다는 것은 생뚱맞다. 더불어민주당이라는 이름을 쓰는 정당이 등장한 것은 2015년 12월 28일이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은 안철수씨의 새정치연합과 김한길씨의 민주통합당이 합쳐져서 새정치민주연합이 된 것은 2014년 3월 26일이었다.
그런데도 더불어민주당은 1955년 민주당 창당에서 자기들의 뿌리를 찾으려 한다. 민주당은 한국민주당에 뿌리를 둔 야당 민주국민당과 자유당 탈당파, 흥사단계 등이 통합해 만든 정당이다. 해공 신익희 선생은 민주당의 대표최고위원을 맡았고, 이듬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이승만 정권과 정면으로 맞섰다. 해공 선생은 우리나라 민주야당의 상징적 존재였다.
그래서 더불어민주당은 작년에 김민석 전 의원의 민주당과 합당할 때에도 해공 생가를 찾았다 (이 합당 덕분에 더불어민주당은 ‘민주당’을 약칭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이 해공 신익희 선생이나 민주당을 자기들의 뿌리라고 말할 자격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해공 신익희 선생의 정치적 족적을 보면, 민주당과 상충되는 부분이 하나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첫째, 신익희 선생은 1948년 대한민국의 건국을 긍정한 분이다. 해공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내무부장 출신이었다. 하지만 그는 김구 선생의 남북협상론을 거부하고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했다. 제헌의회가 구성되자 부의장을 지냈고, 초대 의장인 이승만 박사가 대통령이 된 후에는 국회의장이 됐다.
해공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출신임에도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했다는 인식을 분명히 갖고 있었다. 1950년 광복절에 신익희 국회의장이 이날을 “대한민국 독립 2주년 기념일”이라고 말한 것이 그 증거다.
반면에 지금 민주당은 1948년 건국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민주당이 배출한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정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라고 공언하고 있다.
둘째, 신익희 선생은 이승만 정권에 맞서는 야당 지도자였지만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다. 해방 후 귀국한 신익희는 정치공작대를 만들었다. 이 정치공작대는 우익단체 백의사와 합작해 1946년 3.1절 기념식장에서 김일성에게 수류탄을 투척했다.
6.25가 일어나자 신익희 선생은 북한의 남침을 규탄하고 정부의 전쟁수행노력을 지지하는 국회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잇단 패배에도 불구하고 국회를 수습해 피난수도 부산으로 이전했다.
국내 정치문제에서 이승만 정권과 충돌하기는 했지만, 신익희 선생은 한번도 반공노선을 포기하지 않았다. 1955년 창당한 민주당 역시 ‘반공’을 분명히 했다.
추미애 대표의 민주당이, 문재인 대통령이 단 한번이라도 ‘반공’을 입에 올린 적이 있나? 한번이라도 북한의 김씨 세습독재와 인권유린을 규탄하고, 자유통일을 이야기한 적이 있나?
9월 18일 기념사에서 추미애 대표는 “문재인 정부 역시 최악의 한반도 위기 속에서도 전쟁을 반대하고 궁극적으로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적 해법을 지향하고 있다”며 “호전 세력이 발호할수록 민주당 정부가 추구해 온 한반도 평화원칙이 더욱 빛을 발할 것이라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해공 선생의 반공노선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셋째, 신익희 선생은 친일파 청산 문제에 대해 실용적이고 화합적인 입장에 섰다. 그는 1945년 귀국한 후 일제시대에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해 총독부에서 과장으로 근무했던 최하영 등을 모아 임시정부 산하에 행정연구회라는 것을 만들었다. 신익희 선생은 스스로 친일파라며 머리를 숙이는 최하영에게 독립운동가들에게 국정운영 능력이 부족함을 솔직히 토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앞으로 시정(施政)할 수 있도록 입법, 사법, 행정 각 분야에 있어 조사와 시책을, 고등문관 시험을 합격한 자들을 모아 급속히 작성해 주기 바라네. 이건 우리가 급해서 하는 것이지 자네들에게 특별한 친근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사무적인 일일세.”
‘단지 사무적인 일이다’ ‘이것으로 당신들의 죄가 사(赦)해 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긋기는 했지만, 신익희의 솔직, 간곡한 태도는 최하영을 울렸다. 유진오 박사가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는 제헌헌법초안은 바로 이 행정연구회가 만든 초안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렇게 총독부 관리까지 인간적으로 감화시켜가면서 건국 과정에 활용했던 분이 신익희 선생이었다. 신익희 선생은 민주당을 창당하는 과정에서도 친일 경력이 있다고 해서 사람을 배척하지는 않았다.
반면에 지금 민주당은 어떠한가? 일제시대에 미관말직을 지낸 조상이라도 두고 있으면 그 후손들까지 '친일파'로 낙인찍는 행태를 서슴지 않아 왔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은 해공이 참여했던 대한민국의 1948년 건국을 부정하고, 해공의 중요한 정치원칙 중 하나였던 반공을 부정하고 있다. 건국과 민주화를 위해서라면 친일경력자라도 포용했던 해공과는 달리 뒤늦게 ‘친일청산’을 내세워 국민을 편가르기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해공 신익희'를 찾는 것은 역사에 대한 무지 때문인가? 아니면 환부역조(換父易祖)’를 해서라도 역사를 우롱하자는 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