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은 ▲일 잘하는 사람을 오래 쓰고 ▲사생활은 노터치하면서 능력위주로 인사하며 ▲필요한 사업에는 대통령 판공비까지 지원했고 ▲관계 장관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정책결정을 내렸으며 ▲ 교수들의 이론보다 경제관료들의 경험을 존중했다.
“코드인사, 연줄 인사는 왜 그리 많습니까. 편 가르기 코드 인사를 하더라도 제발 능력 있는 사람을 써주길 바랍니다.”
지난 7일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한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의 말이다. 그는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국제제재와 빈틈없는 최대한의 압박이 최선의 방책이며 한미(韓美)동맹을 근간으로 한 미국과의 공동보조가 최우선”이라며 문재인 정부의 ‘안보 대실패’도 결국 ‘인사(人事) 실패’로 귀착된다는 취지로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大選) 후보 시절 ‘인사 배제 5대 원칙’을 천명하고 ‘인사추천실명제’를 도입했다고 공약했다. 그런데 이 원칙은 집권 후 지켜지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노골화된 북핵·미사일 도발과 경제침체, 여기에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온 ‘복지요구’에 문재인 정부는 사실상 대중영합주의식(式)으로 대처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의 인사 대(大)원칙은 ‘사람이 먼저다’이다. 최근 청와대가 만든 ‘문재인 대통령 시계’ 뒷면에도 ‘사람이 먼저다’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이 말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평등할 것이다. 그 과정은 공정할 것이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니 사람들이 ‘문재인’에 빠져들고 있다. 당연히 문재인 정권도 사람들의 즉각적인 ‘호불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새 정부 출범 넉 달이 지나면서 경제, 안보 등에서 ‘정책 엇박자’가 계속되고 있다. ‘대화’와 ‘압박·제재’ 사이에 오간 대북정책, 환경영향평가와 임시배치로 오락가락 해온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수능 과목 절대평가를 놓고 우왕좌왕해온 교육정책 등 사례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이러니 야권에서 “코드인사라도 좋으니 제발 능력 있는 사람을 써달라”는 주문이 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大選) 후보 시절 ‘인사 배제 5대 원칙’을 천명하고 ‘인사추천실명제’를 도입했다고 공약했다. 그런데 이 원칙은 집권 후 지켜지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노골화된 북핵·미사일 도발과 경제침체, 여기에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온 ‘복지요구’에 문재인 정부는 사실상 대중영합주의식(式)으로 대처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의 인사 대(大)원칙은 ‘사람이 먼저다’이다. 최근 청와대가 만든 ‘문재인 대통령 시계’ 뒷면에도 ‘사람이 먼저다’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이 말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평등할 것이다. 그 과정은 공정할 것이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니 사람들이 ‘문재인’에 빠져들고 있다. 당연히 문재인 정권도 사람들의 즉각적인 ‘호불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새 정부 출범 넉 달이 지나면서 경제, 안보 등에서 ‘정책 엇박자’가 계속되고 있다. ‘대화’와 ‘압박·제재’ 사이에 오간 대북정책, 환경영향평가와 임시배치로 오락가락 해온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수능 과목 절대평가를 놓고 우왕좌왕해온 교육정책 등 사례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이러니 야권에서 “코드인사라도 좋으니 제발 능력 있는 사람을 써달라”는 주문이 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대로 ‘사람이 먼저고 사람이 전부다’. 이는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과 통한다.
우리나라의 역대 위정자들 중 최고의 생산성과 효율성, 그리고 최고의 인사(人事)정책을 발휘한 인물은 바로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다. 좌파 쪽에서는 ‘박정희는 민주적 리더십이 아니다’고 평가절하한다. 완벽한 대통령이 어디 있겠는가. 공과(功過)로 따지면 공이 훨씬 크다. 그는 국가경영의 핵심 요체를 파악하고 무엇이 진정 국민을 위한 길인가를 ‘인사(人事)’와 ‘정책(政策)’으로 말한 최고의 대통령이다.
역대 최장수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金正濂) 실장은 ‘박정희 성공비결’에 대해 “현실을 딛고 세계 최고를 지향한 리더십”이라고 했다. 핵심 내용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일 잘하는 사람을 오래 쓰고 ▲사생활은 노터치하면서 능력위주로 인사하며 ▲필요한 사업에는 대통령 판공비까지 지원했고 ▲정책결정은 관계 장관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 교수들의 이론보다 경제관료들의 경험을 존중했다.
《월간조선》 자매지 《징기스칸(현 톱클래스)》창간호(2004년 9월호)는 ‘사상(史上) 최고CEO 연구’ 제하의 특집기사에서 ‘박정희 리더십’을 정밀 분석했다.
1. 박정희는 위대한 설득자다. 그는 조직운영에서 지도자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설득이며, 설득은 쉽고 구체적이고 정확한 말로써 해야 한다는 원리를 터득한 대통령이었다. 그의 구두(口頭)지시를 옮겨놓은 것을 지금 다시 읽어봐도 ‘어떻게 이처럼 쉽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2. 박정희는 주체적으로 사고(思考)하는 지도자다. 그는 사물을 판단할 때 항상 자신의 기준을 세워서 했다. 남의 기준을 빌려 판단하면 그 결과는 남에게 유리할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손해가 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판단기준을 세울 때까지 공부하고 검토하고 토론했다.
3. 박정희는 중점주의, 즉 선택과 집중에 능통한 정치인이다. 특히 행정에 중점적 시책을 선정해 역량과 자원을 집중하라고 강조해왔다. 그가 이끈 대한민국이 고속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전략적 목표와 우선순위를 잘 선택해 제한된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입한 결과였다.
4. 박정희는 세계 최고의 목표를 설정하고 달려간 국가경영자다. 수출지향적 경제정책, 베트남 파병, 한일 국교정상화, 중동진출 등 그의 눈은 항상 세계를 향해 있었다.
5. 박정희는 권한을 부하에게 과감히 위임한 분권형 통치자다. 박정희는 국방과 외교, 새마을운동과 고속도로 건설 등 핵심 사항만 챙기고, 그 밖의 일들은 관계 장관들에게 위임했다. 차관급 이하의 인사도 장관에게 위임했다. 대신 그렇게 해서 기용된 부하의 잘못에 대해서는 함께 책임을 물었다.
6. 박정희는 다독(多讀)하고 사색(思索)하는 비전 제시자다. 그는 권한 위임을 통해 생긴 여유 시간을 독서와 사색 그리고 각종 보고서를 재검토하는 데 썼다. 이를 통해 장기적인 국가발전전략을 모색하고 비전을 창출할 수 있었다.
5. 박정희는 권한을 부하에게 과감히 위임한 분권형 통치자다. 박정희는 국방과 외교, 새마을운동과 고속도로 건설 등 핵심 사항만 챙기고, 그 밖의 일들은 관계 장관들에게 위임했다. 차관급 이하의 인사도 장관에게 위임했다. 대신 그렇게 해서 기용된 부하의 잘못에 대해서는 함께 책임을 물었다.
6. 박정희는 다독(多讀)하고 사색(思索)하는 비전 제시자다. 그는 권한 위임을 통해 생긴 여유 시간을 독서와 사색 그리고 각종 보고서를 재검토하는 데 썼다. 이를 통해 장기적인 국가발전전략을 모색하고 비전을 창출할 수 있었다.
7. 박정희는 현장과 실무자를 중시한 행정가다. 그는 현장을 누비며 국가사업의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관계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8. 박정희는 능력 위주로 최고의 인물을 쓴 인사(人事) 전문가다. 그는 단순히 ‘사람’ 자체가 아닌 ‘그 사람’의 능력을 최우선시 했다. 금전 문제를 제외한 개인적 과오는 거의 문제 삼지 않았다. 그는 자기 앞에서도 ‘아닌 것은 아니다’고 말할 수 있는 반골 기질 인사를 좋아했다.
8. 박정희는 능력 위주로 최고의 인물을 쓴 인사(人事) 전문가다. 그는 단순히 ‘사람’ 자체가 아닌 ‘그 사람’의 능력을 최우선시 했다. 금전 문제를 제외한 개인적 과오는 거의 문제 삼지 않았다. 그는 자기 앞에서도 ‘아닌 것은 아니다’고 말할 수 있는 반골 기질 인사를 좋아했다.
9. 박정희는 시간 관리의 최고 매니저이다. 그는 근대화에서 뒤쳐진 우리나라가 단시일 내에 경제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빠른 시간 내에 결과물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가 현장을 자주 방문해 관계자들을 독려한 것도 이 때문이다. 1980~90년대 민주화 이후 ‘빨리빨리’ 정책은 지탄의 대상이 됐지만 글로벌 경쟁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깊게 그러면서 빨리’는 여전히 통하는 경영원칙이다.
10. 박정희는 역사전문가다. 그는 고도의 균형감각을 가진 국가통치자였다. 세계화를 추구하면서도 한국의 역사적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고, 경쟁을 조장하면서도 필요한 분야에는 집중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남의 의견을 경청하면서도 자신의 주체성을 잃지 않았으며, 자신이 직접 챙겨야 할 일과 권한을 위임해야 할 일을 잘 구분했다. 자신의 청렴을 남에게 자랑하지도, 강요하지도 않았다. 관념과 위선을 경계했고,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 아래 국민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우선시했다. 이 같은 균형감각은 그가 역사책을 즐겨 읽으면서 역사에서 수많은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글=백승구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