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DDT는 ‘만병통치약’과도 같았다. 농작물에 기생하는 해충 뿐 아니라 몸에 들끓던 이를 박멸하는데 그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어머니는 DDT를 넣은 작은 주머니를 만들어 식구들의 옷에 넣어 주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몸에 득실거리던 이가 사라지고 마는 것이었다.
1970년대 말까지 군(軍)에 갔던 사람들이라면 군종병이 나눠주던 DDT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군인들은 그걸 온 몸에 뿌리고 킬킬거렸다. 짓궂은 누군가는 혀에 대고 맛을 보기도 했다. 2차 대전이 끝나자 미국 등 연합군이 독일 수용소에서 제일 먼저 한 일이 포로들에게 DDT를 뿌리는 것이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약 3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100만 여명은 발진티푸스에 의한 것이었다. DDT가 이 무서운 질병을 퇴치했음은 물론이다.
우리나라에서도 DDT는 너무나 고마운 약이었다. 이나 발진티푸스 뿐 아니라 말라리아도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벼나 기타 작물에 들러붙는 해충박멸에도 효과를 발휘해 생산성 증대에도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이 ‘마술사’가 실력을 너무 발휘해 문제가 됐다. 해충은 물론 그 천적마저 죽여 버림으로써 살충제 살포를 중단한 후에는 오히려 해충이 창궐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또 곤충들이 내성을 가지게 됐다.
DDT의 폐해에 대해 일부에서나마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62년 미국의 여성 생물학자 카슨이 낸 《침묵의 봄》 때문이다. “그리하여 자연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이상하리만큼 조용해 졌다. 그처럼 즐겁게 재잘거리며 날던 새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봄은 왔는데 침묵만이 감돌았다”는 문장은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이로 인해 사용금지 운동이 벌어졌으며 미국은 1972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1979년부터 사용이 금지됐다. 현재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가 매일 먹는 계란과 닭에서도 DDT 성분이 나왔다고 한다. 몇 달 안 된 방목 닭에서 검출됐다는 것도 충격이다. DDT의 토양 내 반감기는 15~30년이다. DDT의 사용을 금지한 1979년 이전에 살포된 DDT가 아직 잔류돼 있었고 이번에 검출된 닭들이 그 흙을 먹고 오염됐을 가능성도 있다. 카슨이 살아있었다면 《침묵의 봄》이 아닌 《침묵의 여름》이라고 책 제목을 바꿨을지도 모르겠다.
글=주장환 월간조선 뉴스룸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