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 대사와 친분이 있거나, 그를 여러 차례 만난 적이 있는 우리 외교관들은 그의 외교업무 능력을 비교적 높게 평가하고 있다. 우리 외교관들의 그에 대한 評을 종합하면, 『유능하고, 성실하며, 부시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는 베테랑 외교관』으로 요약된다.
우리 정부는 그가 정치인이 아닌, 직업외교관 출신이기 때문에 美 상원의 인준청문회를 문제없이 통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 힐 대사는 토머스 허바드 주한 美 대사가 8월 이임한 후, 부임하게 된다.
駐마케도니아 대사, 코소보 특사, 국가안전보장회의(NSC) 南東유럽 담당 선임보좌관을 역임한 힐 대사는 주한 美 대사를 자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직 그 동기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힐 대사는 1985년 주한 美 대사관에 부임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처음 맺었다. 당시 그는 경제담당 1등 서기관으로 근무하면서, 정부 관계자 외에도 민간 기업체 인사들을 두루 만나 친분을 맺었다고 한다. 우리 정부 외에도 삼성·현대 등 대기업체에 知人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02년 6월 월드컵 당시 바르샤바의 駐폴란드 한국 대사관에서 한국 對 폴란드戰 등을 우리 외교관들과 함께 관전하면서 우리나라에 대해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힐 대사는 미국 국무부에서 손꼽히는 중부 유럽 전문가다. 힐 대사는 리처드 홀부르크 보스니아 특사의 수석보좌관으로 일하면서 1995년 보스니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의 경계선을 확정한 「데이톤 협상」에 관여했다. 그는 데이톤 협상의 공로를 인정받아 1996년 前 유고슬로비아연방에서 독립한 마케도니아의 첫 미국대사로 임명됐다. 이어 그는 마케도니아 대사를 겸임하면서, 1999년 新유고연방의 코소보자치주 인종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평화회담에 미국 측 대표로 참석, 협상력을 발휘했다. 그는 중부유럽지역에 대한 외교 공로로 美 국무부의 우수 외교관상을 받았다.
그는 민주당 클린턴 행정부 8년 동안 뛰어난 외교 활동으로 승승장구한 데 이어, 공화당 부시 행정부에서도 중용된 케이스다. 2000년 2월9일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폴란드 대사로 임명된 그는 2001년 부시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특명전권대사로서 그의 외교능력을 발휘했다고 했다.
부시 행정부는 9·11 테러를 전후로 유럽과의 동맹관계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중유럽에 위치한 폴란드를 전략적으로 중시하고 있다.
兩者차원에서 부시 대통령이 가장 먼저 방문한 곳도 폴란드였다. 이 과정에서 힐 대사가 양국관계를 신장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많다. 힐 대사는 특히 부시 대통령의 폴란드 방문과 폴란드의 이라크 파병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면서 부시 대통령의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힐 대사는 부시 행정부에서 폴란드의 중요성이 커지자, 그의 폴란드 근무를 연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파리에서 출생한 힐 대사는 1974년 미국 메인州 보두앵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94년에는 美 해군 국방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힐 대사는 폴란드語를 능숙하게 구사하며, 프랑스語, 알바니아語도 구사하는 등 語學에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77년 국무부에 들어가기 전에는 아프리카 카메룬에서 평화봉사단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부인 패트리샤는 힐 대사가 카메룬에서 평화봉사단원으로 활동할 때 동료로 처음 만났다.
힐 대사의 부인은 바르샤바를 비롯, 힐 대사가 외교관으로 근무한 주재국에서 영어교사로 활동하는 등 對外활동이 활발한 편이라고 한다. 두 사람 사이에 세 자녀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