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권의 책

강단에서 만나는 이어령 (강인숙 엮음 | 열림원 펴냄)

“선생님의 수업은 ‘도끼질 같았다’”

  •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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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1934~2022년). 대중에게 그는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의 문명비평가이자 한국 지성사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30년 넘게 강단을 지킨 ‘선생 이어령’은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영인문학관 강인숙 관장은 책 서문에서 ‘배우지 못한 채 가르쳐야 하는 난처한 초창기의 현대문학 교수였다’고 남편을 소개한다. 한국문학과가 없던 식민지에서 태어나 해방 후 홀로 공부해야 했던 세대, 그 고뇌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이어령은 1960년 석사 과정을 마친 27세 때 강의를 시작했다. 서울대 오세영 교수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바슐라르의 현상학, 영미 신비평, 롤랑 바르트의 구조주의를 결합한 방법론을 60년대 초 한국의 강의실에서 들었노라고. “본고장인 프랑스에서도 아직 이러한 문학연구 방법론이 확립되지 않을 무렵이었다”는 것이다.
 
  강의실은 100여 명 규모의 단층 목조건물이었지만, 200~300명이 빽빽이 들어찼다. 강의가 끝나면 문학청년들을 이끌고 인근 다방으로 자리를 옮겨 한두 시간씩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두 번째 강좌’의 단골이 김현·김치수·김승옥·하길종이었다.
 

  1967년 이화여대 전임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제자 김혜니(1961년 국문과 입학)는 “선생님의 강의 노트는 언제나 새로웠다. 결코 묵은 노트로 되풀이하신 적이 없었다”고 증언한다. 마지막 제자인 김민희 《톱클래스》 편집장은 “1990년대 후반 그의 수업은 ‘도끼질 같았다’. 수업 때마다 머릿속이 쩍쩍 갈라지는 듯한 경이로움을 느꼈다”라고 했다.
 

  사실 평생의 강의록을 본격적인 학문서로 펴내는 것이 이어령의 버킷리스트였다. 수사학·기호학·문학연구방법론을 집대성하고 싶었으나 암 선고를 받으며 뜻을 이루지 못했다. 강의 노트 17권, 그의 컴퓨터 7대에 잠들어 있는 자료는 언제쯤 눈을 뜰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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