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정학적 갈등과 산업·기술 경쟁 심화… 초국적 범죄의 ‘전략적 활용’ 유혹 커져
⊙ 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 중국 영향권으로 들어가면서 중국 범죄 조직도 유입
⊙ 동남아 마약 소굴 ‘골든 트라이앵글’은 국민당 잔당과 CIA의 작품
⊙ 소련 붕괴 후 경찰과 마피아의 경계가 흐려지자 득세한 ‘올리가르히’
임명묵
1994년생.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졸업 / 現 서울대 대학원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재학 중. 《조선일보》 《시사저널》 칼럼니스트 / 저서 《러시아는 무엇이 되려 하는가》 《K를 생각한다》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
⊙ 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 중국 영향권으로 들어가면서 중국 범죄 조직도 유입
⊙ 동남아 마약 소굴 ‘골든 트라이앵글’은 국민당 잔당과 CIA의 작품
⊙ 소련 붕괴 후 경찰과 마피아의 경계가 흐려지자 득세한 ‘올리가르히’
임명묵
1994년생.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졸업 / 現 서울대 대학원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재학 중. 《조선일보》 《시사저널》 칼럼니스트 / 저서 《러시아는 무엇이 되려 하는가》 《K를 생각한다》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

- 중국어 간판이 즐비한 캄보디아 프놈펜 거리. 사진=조선DB
한국의 여론은 가히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요동쳤다. 사태 초기에는 국민이 타국에 감금되어 고문을 당하고 살해된다는 사실에 여론이 격앙되었으나, ‘범죄 단지’에서 돌아온 송환자들이 단순 피해자라고만 볼 수는 없는 여러 정황이 나타나며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한 언론 지면에 등장하는 캄보디아 실종자들의 출신지가 대체로 지방 중소도시인 점을 지적하며, 한국 사회의 지방 붕괴가 만들어낸 씁쓸한 단면이라는 분석도 꽤 자주 등장하였다.
중국과 캄보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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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훈 센 전 캄보디아 총리. 2023년 2월 10일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가졌을 때의 사진이다. 사진=신화/뉴시스 |
인구의 3분의 1이 희생된 킬링필드의 후유증을 복구하는 일은 무엇보다 막대한 시간과 재원을 필요로 했다. 더구나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처럼 이미 성장 동력을 확보한 이웃 국가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가난한 캄보디아가 의지할 수 있는 유력한 파트너는 많지 않았다. 이때 손을 내민 나라가 중국이었다. 중국은 국내 제조업 과잉을 해소하고, 동시에 해외에서 지정학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2013년 시진핑(習近平) 체제 출범 이후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을 적극 추진했다. 반면 캄보디아는 국가 재건과 산업 기반 형성을 위해 외부 자본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이해관계는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졌다.
이 결과 캄보디아는 미얀마, 라오스와 함께 동남아에서 대표적인 중국 협력국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 자본을 통해 인프라가 건설되고 제조업 투자가 유입되면서, 캄보디아는 서서히 신흥 성장국의 대열로 편입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중국에서 유입된 것은 인프라 건설을 위한 자본뿐만이 아니었다. ‘흑사회(黑社會)’라 불리는 중국계 범죄 조직도 함께 상륙했다. 본래 중국계 범죄 조직을 대표하는 집단은 홍콩, 대만에 거점을 둔 삼합회(三合會)였는데, 개혁·개방 이후 대륙에서 거대한 경제 발전이 일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대륙에 거점을 둔 신흥 범죄 조직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극심했던 중국 공산당의 부패와도 연계되며 마카오의 카지노 산업을 거점으로 중국 부유층의 자금을 세탁해 주고 역외 반출에 협조하는 등 어느 정도는 정부와 공생 관계를 이루기까지 했다.
그러나 시진핑 정권이 권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반부패 사정을 기치로 내걸며, 흑사회와 마카오 카지노 사업은 모두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 여기에 QR코드 기반 결제 확산과 현금 없는 사회로의 전환, 그리고 AI 안면인식 기술과 전국적 CCTV 감시망이 결합하면서 비공식 범죄 네트워크의 움직임은 점점 더 제약받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일부 조직은 대륙에서의 기반을 유지하기 어려워졌고, 활동 무대를 해외로 옮기기 시작했다. 마침 수백 년에 걸쳐 형성된 대규모 화교 네트워크가 존재하는 동남아시아는 그들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새로운 거점이 되었다.
특히 일대일로 사업이 추진되면서 중국 자본과 기업, 상인, 노동자가 대거 유입되었고, 국가 제도는 약하지만 훈 센 개인 권력은 강하게 작동하는 캄보디아의 정치 구조는 흑사회가 활동하기에 매우 유리한 환경이 되었다. 흑사회는 규제가 강화된 카지노 사업 거점을 캄보디아로 이전하여, 도박을 원하는 중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사업을 이어나갔다.
초국적 범죄 조직의 공생 거점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국경 이동이 사실상 차단되며 카지노 사업은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수익 모델을 모색한 범죄 조직들은 보이스피싱을 비롯한 각종 스캠 범죄를 돌파구로 삼았다. 이들은 건물 단지 전체를 통째로 범죄 운영 공간으로 전환하여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보이스피싱, 취업 사기, 로맨스 스캠 등을 조직적으로 수행했다. 범죄 단지의 운영자들은 캄보디아 정부와 관료들에게 대규모 뇌물을 제공했고, 일부는 기부를 통해 사회적 후견인 이미지까지 연출하며 사실상 안전지대를 확보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반 위에서 ‘캄보디아발(發) 스캠 산업’은 폭발적인 속도로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기회를 포착한 인근의 베트남과 태국, 그리고 대만, 한국, 일본의 범죄 세력까지 차례로 유입되면서, 캄보디아는 초국적 범죄 조직의 공생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너무나 명확한 중국계 범죄 조직의 주도성은, 이미 반중(反中) 정서가 확산된 한국 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다만 중국 역시 캄보디아 내 흑사회 활동으로 인한 피해를 입는 당사자이며, 중국 정부·훈 센 정권·범죄 단지 사이에 직접적인 공모 관계가 명확히 확인된 것은 아니라는 반론(反論)도 존재한다. 실제 이 사건이 지닌 음지적(陰地的) 속성과 은폐 구조를 고려하면, 실체적 진실이 단기간 내 드러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캄보디아 범죄 단지를 바라볼 때는 확인되지 않은 추측을 확대하기보다, 이를 국가와 범죄 조직이 특정 조건에서 관계를 맺는 일반적 패턴의 일부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할 수 있다.
범죄 조직과 초기 국가는 닮은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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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스 베버 |
범죄 조직은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하여, 그곳의 사람들에게 폭력을 매개로 자원 수탈을 행하는 집단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름의 질서와 규칙을 갖춘 조직이기도 하다. 예컨대 이들은 자신들의 영역 내 주민에게서 자원을 수취하는 대신, 외부 조직의 침입으로부터 보호를 제공한다. 또한 영역을 둘러싼 분쟁, 내부 서열과 의례, 장기적 전통 등 고유한 문화와 규범 역시 형성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캄보디아의 범죄 단지인 ‘태자단지’를 운영한 주범으로 알려진 천즈(陳志)는, 역설적이게도 현지에서는 자선사업가로도 활동하며 지역사회와 공생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이런 점에 주목하면, 범죄 조직의 형성과 확장은 인류가 정착 생활을 시작한 이후 무력(武力) 집단이 나타나고, 폭력을 기반으로 권력이 조직되던 과정, 즉 초기 국가의 등장 과정과 상당히 닮았다. 명문화된 법이 없고, 비윤리적 폭력이 일상적이며, 외부 집단을 약탈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초기 국가는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범죄 조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문명이 발전하고 국가가 정착되면서, 국가는 점차 범죄 조직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국가의 권위는 고등종교와 같은 초월적 윤리에 기반해 정당화되었고, 폭력 기구 역시 이러한 권위를 토대로 제도화되기 시작했다. 법전이 등장, 군대는 병영 밖에서 함부로 무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되었으며, 드물지만 평민이 권력자에게 불만을 제기할 때 국가라는 이름의 권위에 의지하여 보호를 요청하기도 했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국가의 이러한 특성을 관찰하며 “국가는 폭력의 독점체(獨占體)”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합리적 규칙 없이 힘과 상황에 따라 폭력이 행사된다면 이것은 국가라기보다 범죄 조직에 가깝고, 반대로 규칙을 제정하고 그 규칙에 따라 폭력을 행사하는 기구가 존재할 때 비로소 국가라는 것이다.
‘산업자본주의’와 ‘전쟁자본주의’
특히 18세기 이후 유럽 국가들은 종교적 권위가 아닌 인간 이성(理性)에 기반한 계몽주의를 원리로 삼기 시작하며 폭력을 더욱 효과적으로 다스렸다. 헌법에 명시된 권리를 시민 모두가 누리고, 사적(私的) 폭력으로부터 보호받는 체계는 재산권 보장과 치안 유지를 안정적으로 가능하게 했다. 이러한 국가는 전통적 통치 형태보다 훨씬 발전된 모습을 보이며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근대 국가’의 기준을 새롭게 설정했다.
문제는 인류사의 일대 도약이라 불릴 만한 근대 국가 모델이 모든 지역에 동시에 확산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었다. 근대 국가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효율적 관료제, 조세(租稅) 제도, 상비군(常備軍), 그리고 헌법에 기반한 제도화된 정치 문화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러한 조건들은 서구 내부에서도 수세기에 걸친 갈등과 조정의 산물이었으며,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못한 지역에서는 당연히 정착되기 어려웠다.
이때 유럽에서 무역과 상거래에 종사하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무장까지 갖춘 상인 집단이 등장했다. 이들은 유럽 내부에서는 법치(法治)에 따른 재산권 보호를 받았지만, 유럽 바깥의 지역은 이러한 보호 체계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지 규칙을 고려하지 않은 폭력을 행사했다.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토지 수탈과 학살, 아프리카 노예 무역, 동남아시아 향료 무역의 지배 과정이 대표적 사례다. 그리고 바로 이 비유럽 지역에서 토지·자원·노동을 강제적으로 수취하며 축적된 자본이, 유럽 본토에서는 산업혁명과 근대 자본주의의 성장을 촉발했다.
이에 대해 하버드대 역사학자 스벤 베커트는 그의 저서 《면화의 제국》(2014)에서 서로 상반된 공간을 기반으로 두 가지 자본주의가 동시에 형성되었다고 설명한다. 하나는 제도와 권리를 토대로 작동하는 ‘산업자본주의’, 다른 하나는 폭력과 약탈을 통해 자원을 수취하는 ‘전쟁자본주의’. 아메리카 원주민에게서 빼앗은 금과 은을 싣고 돌아오는 스페인 선박을 영국 정부의 후원을 받는 해적 선단을 운영하여 약탈한 프랜시스 드레이크(1540~1596년)는 ‘전쟁자본주의’ 간의 쟁투(爭鬪)를 대표하는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주먹이 가까운 주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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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메드 알리 |
근대 유럽과 접촉하며 제도적으로 가장 발전한 형태의 이슬람 국가를 구축한 오스만 제국에서도, 비제도적 폭력을 국가가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전통은 유지되었다. 북아프리카에서 ‘바르바리 해적’으로 알려진 무슬림 해적 집단은 오스만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지중해 건너편 기독교 해안 도시를 대상으로 빈번한 약탈과 인신(人身) 포획을 감행해 악명을 떨쳤다. 오스만 제국은 이들의 항해·전투 능력을 높이 평가하여 태수(太守) 직위를 내리고, 필요할 때는 해군 전력(戰力)으로 동원하기도 했다. 바르바리 해적들은 활동 범위를 대서양까지 넓혀 미국 상선을 나포하고 선원을 노예로 잡아가, 독립 직후 미국이 맞닥뜨린 외교적 골칫거리가 되기도 했다.
한편 발칸 반도의 무슬림 집단인 알바니아계 부족은 산악 지형을 기반으로 사실상 반(半)자치적 지위를 부여받으며, 제국이 필요할 때 용병(傭兵)·무력 집단으로 동원되었다. 이들은 인근 그리스 마을을 약탈하거나 이스탄불에서 범죄 조직을 형성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제국의 반란 진압과 전쟁에서 충성스러운 무력 자원으로 기능했다. 이 알바니아계 무장 네트워크 출신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메메드 알리(1769~1849년)다. 그는 제국의 명령으로 이집트에 파견된 뒤, 현지 세력을 제압하고 사실상 독자 왕조를 수립할 만큼 강력한 지역 권력으로 성장했다.
골든 트라이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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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덕화 주연의 영화 〈이역〉(1991). 윈난성 국경지대로 흘러들어간 국민당군 잔당의 이야기다. |
냉전기 미국 CIA와 세계 각지의 범죄 조직이 결탁한 사례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도 미얀마·라오스·중국 윈난성(雲南省)을 잇는 ‘골든 트라이앵글’은 최근 캄보디아 범죄 단지 사태와의 구조적 유사성 때문에 다시 주목받고 있다.
국공내전(國共內戰)에서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이 패배하자, 일부 잔당(殘黨)은 해발 수천 미터의 국경 고산(高山)지대로 피신했는데, 이곳은 각국 정부의 통제력이 미치기 어려운 공간이었다. 이들은 현지 부족 세력과 연합해 ‘중국을 해방한다’는 명분 아래 해방구(解放區)를 구축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목표는 반공(反共)이 아닌 마약 재배와 유통을 통한 수익 확보로 기울어갔다.
미국 CIA는 반공이라는 공통 이해를 기반으로 이 골든 트라이앵글의 마약왕들과 접촉했다. CIA는 이들을 대중국 첩보·공작 네트워크로 활용했을 뿐 아니라, 마약 거래를 통해 발생한 자금을 은밀한 작전 자금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비슷한 일은 니카라과에서도 일어났다. 1979년 니카라과에 산디니스타 사회주의 정권이 수립되자, 미국은 이에 맞서는 콘트라 반군을 지원했다. 그러나 콘트라의 주요 재정 기반 역시 마약 재배와 판매였고, 이 과정에 CIA가 연루되었다는 논란이 지속되었다. 실제로 CIA는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이란 호메이니 정부에 무기를 판매하고, 그 자금을 콘트라 반군 지원에 전용(轉用)하는 방식으로 국제 공작을 수행하기도 했다. 더 아이러니한 점은, 이렇게 무장을 지원받은 호메이니 정권이 다시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 조직 헤즈볼라를 후원했다는 사실이다. 레바논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사실상 미치지 않는 지역에 준(準)독립적 거점을 구축한 헤즈볼라 역시, 마약 밀매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는 세력이다.
옛 소련 제국의 마피아들
때로는 강력한 통치력을 갖고 있던 국가가 혼란에 빠지면서 범죄 조직이 급부상하기도 한다. 1991년 소련 해체 이후의 탈(脫)소비에트 공간이 대표적인 예다.
소련도 사람이 사는 곳이니만큼 범죄 조직은 존재했지만, 국가가 이동과 상거래를 통제하고, 광범위한 감시 체제를 유지하던 공산주의 체제의 특성으로 조직 범죄가 대형화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소련이 급작스럽게 해체되고, 신생 독립국 대부분에서 심각한 경제난과 정치적 혼란이 겹치자, 광대한 구소련 지역은 단숨에 범죄 조직의 천국이 되었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같은 대도시에서는 민족·출신 지역별로 마피아 조직이 형성되어 시민에게서 금전을 갈취했고, 인신매매·마약 밀매·국유 자원 밀반출 등 각종 범죄 비즈니스에 뛰어들었다. 경찰과 사법기관도 조직 축소와 급여·복지 삭감으로 부패에 쉽게 노출되자 치안은 사실상 붕괴 상태에 접어들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경찰과 마피아의 경계가 사실상 흐려질 정도였다.
특히 이들 마피아가 국영 자산을 헐값에 불하받으며 등장한 과두재벌 ‘올리가르히’와 결탁한 사실은 악명이 높다. 올리가르히들은 각자 세력권을 구축하고 남아 있던 국가 자산을 차지하기 위해 청부 살인을 포함한 혈투(血鬪)를 벌일 정도였다.
21세기에 접어들며 탈소비에트 국가들에 안정적인 행정 체계가 재확립되면서 범죄 소탕이 시작되었고, 이전만큼은 아닐지라도 치안도 다시 회복되었다. KGB 출신으로 검찰, 군, 정보부를 ‘실로비키(‘제복 입은 사람들’이라는 의미-편집자 주)’라는 이름의 권력 연합으로 묶은 블라디미르 푸틴의 러시아가 대표적이다. 강력한 권위주의 국가들이 수립된 중앙아시아도 상황은 비슷했다.
우크라이나의 범죄 단지
하지만 모든 국가가 같은 길을 걷지는 않았다. 독립 이후 계속된 정치 혼란을 겪은 우크라이나가 대표적인 사례다. 우크라이나는 동서 지역으로 갈려 친(親)러시아와 친유럽 노선이 충돌하며 강력한 행정부 권력을 회복하지 못했는데, 이 과정에서 각 지역에 거점을 둔 올리가르히들의 발호가 21세기에도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들 올리가르히들은 지역에서 국가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때로 행사하기도 하며, 다른 올리가르히들과 이합집산(離合集散)을 벌이며 경쟁에 나섰다. 국가 행정이 제대로 확립되지 못하자 부패가 기승을 부렸고, 범죄 조직들도 따라서 발전했다. 흑해 최대의 항구 중 하나인 오데사는 밀수의 거점이 되었고, 인신매매와 마약 문제도 지속되었다. 범죄 조직과 결탁한 올리가르히는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에 따라서 서방 국가들, 혹은 러시아와 손을 잡았고, 서방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향로를 결정할 때 이들의 영향력을 십분 활용했다.
대표적인 친러 성향 올리가르히로 유명한 빅토르 메드베드추크는 러시아와 연결된 자원 밀매, 자금 세탁 혐의로 젤렌스키 정부의 제재를 받았다. 반대로 2019년에 젤렌스키를 후원한 이호르 콜로모이스키는 드니프로시(市)를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악명 높은 스캠 범죄 단지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드니프로 범죄 단지는 현재도 러시아어권을 향한 금융 범죄, 보이스피싱의 중심지로 작동하고 있다.
초국적 범죄의 ‘전략적 활용’의 유혹
이러한 역사를 보면, 캄보디아의 중국계 범죄 단지가 매우 특수한 예외적 현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근대 국가의 행정력이 충분히 미치지 않는 공간에서 독자적 무력·경제 조직이 영역을 구축하는 현상은 인류사에서 반복되어 온 상수(常數)에 가깝다.
이들 조직은 국경을 넘나들며 ‘비즈니스’를 전개하고, 필요할 경우 국가와 협상하거나 거래하며 나름의 질서를 형성한다. 국가는 자국민 피해를 막기 위해 이들을 단속하기도 하지만, 정치·경제적 이해가 맞아떨어질 때는 오히려 손을 맞잡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캄보디아 사례는 캄보디아인이나 중국인이 딱히 다른 민족보다 더 사악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킬링필드의 참혹한 후유증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캄보디아나 내전으로 오랜 기간 혼란을 겪어온 미얀마에는 여전히 국가 권력이 미치지 않는 광범위한 회색지대가 남아 있다. 한편 중국은 그 자체로 거대한 경제권을 이루고 있으며, 동남아시아 전역에 형성된 광범위한 화교 네트워크와 연결되어 있어, 초국적 범죄 조직의 활동도 대규모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캄보디아 범죄 단지 문제를 언제나 있는 일로만 간주해 버려도 곤란하다. 국가와 범죄 조직의 다양한 관계가 보여주듯, 자국 내에서 철저한 치안을 유지하는 국가라도 타국에서는 범죄 조직을 자국 이익을 위해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 지정학적 갈등과 산업·기술 경쟁이 심화하는 오늘날은 초국적 범죄의 ‘전략적 활용’의 유혹이 갈수록 커지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인터넷의 발달과 암호화폐처럼 음성적 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신기술은 초국적 범죄의 속도와 파급력을 더욱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를 위협하는 초국적 범죄 조직이 더 심각한 안보적 위협까지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내부의 ‘작은 왕국’들
또 하나 명심해야 할 점은, 이 문제가 결국 캄보디아와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결국에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서 한국인을 유인하고 한국인을 상대로 보이스피싱 범죄를 저지른 핵심 세력은 한국인 조직이었다. 우리가 좋은 치안을 누릴 수 있는 이유는 한국인들의 본래적으로 선량한 품성에 있지 않다. 국가의 치안 유지 제도와 그 기능이 얼마나 잘 작동하는지가 핵심이다. 치안을 유지하는 국가의 제도와 행정력이 약화된다면, 한국 역시 초국적 범죄에 사회가 유린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사실 그 전조(前兆)는 이미 드러나고 있다. 우리가 스캠 범죄보다 더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은, 해외의 더 강력한 범죄 조직과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지능형 금융 범죄다. 부산저축은행, 라임펀드 등 굵직한 권력형 비리와 횡령 자금이 캄보디아로 유입된 뒤 사라졌다는 보도가 상대적으로 큰 관심을 끌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다.
우리 내부에도 이미 자신들만의 질서와 영향권을 가진 ‘작은 왕국’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국의 범죄 구조, 심지어 타국 정부 자체와 기꺼이 손을 잡을 수 있음은 역사 속 수많은 사례가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전략 경쟁-초국적 범죄-국내 치안을 하나의 연속선상에서 이해하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 동시에 당사국 정부와 협력할 수 있는 신뢰 기반을 구축하는 외교적 노력도 필요하다. 그러니 지금은 캄보디아와 중국을 감정적으로 비난하기보다는, 우리 자신의 태세를 점검하는 일에 더욱 집중해야 할 때다. 결국 우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뿐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