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올 초 스프링캠프 시범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한 추신수가 동료 잭 한나한의 환영을 받은 후 더그아웃으로 걸어가고 있다.
추신수는 시즌 개막 후 줄곧 타율, 홈런, 출루율 등 공격 전 부문 상위권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 메이저리그 데뷔 후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고 있다. 추신수가 이처럼 시즌 초부터 두각을 나타내자 올 시즌 후 자유계약선수(FA)가 되는 그의 향후 행선지에 대한 국내외 야구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추신수는 올 시즌 새로 이적한 신시내티의 1번 타자 겸 중견수로 공수(攻守) 양면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다. 전형적인 ‘슬로 스타터(slow starter)’인 추신수가 예년과 달리 올해는 시즌 초부터 호성적을 거두며 만점 활약을 펼치자 《뉴욕타임스》는 “팀의 리빌딩을 위해 뉴욕 메츠는 추신수를 영입해야 한다”고 보도하는 등 예비 FA 추신수에 대한 미국 현지 언론들의 관심도 달아오르고 있다.
추신수 동료 브론슨 아로요, “우리팀 목표는 월드시리즈 우승”
기자가 만나 본 다수의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에 따르면 올 시즌 개막 전까지만 해도 추신수의 향후 FA 몸값은 계약기간 5년에 총액 900억원 선에서 형성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추신수가 개막 후 눈부신 활약을 이어 가자 현재는 최소 1000억원 이상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현재 추신수를 영입하려는 구단은 그의 현 소속팀인 신시내티를 비롯, 뉴욕 메츠와 시애틀까지 이미 알려진 곳만 벌써 3곳. 추신수의 호성적이 시즌 끝까지 유지된다면 그를 영입하려는 구단은 더 늘어날 게 분명하다.
익명을 요구한 시애틀 구단 관계자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추신수가 클리블랜드에서 뛰었던 지난해 트레이드를 통해 그를 영입하려고 했다. 하지만 당시 클리블랜드가 다수의 마이너리그 유망주를 요구해 협상이 결렬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도 추신수의 활약을 지켜보고 있다. 그가 원래 훌륭한 선수인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의 활약을 펼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며 “결과는 장담할 수 없지만 우리도 추신수를 영입하기 위해 움직일 것”이라고 밝혔다.
추신수의 소속팀인 신시내티 구단의 월트 자케티 단장 또한 추신수의 활약에 흡족해했다. 그는 기자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추신수는 우리 팀에서 가장 필요했던 부분을 잘 메워 주고 있으며 지금까지 1번 타자로서 그가 보여준 성적과 활약상은 메이저리그 전체 톱 타자 중 최고”라고 평가했다. 추신수의 현 소속팀 동료인 잭 한나한과 브론슨 아로요 등도 “추신수가 왔으니 당연히 올 시즌 우리 팀의 목표는 월드시리즈 우승”이라고 말할 만큼 추신수에게 거는 팀 동료들의 기대 또한 크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는 전 세계 야구선수들이 동경하는 꿈의 무대로 불린다. 하지만 그곳은 아무나 설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통계에 따르면 아마추어 선수가 프로에 진출해 메이저리그 무대에 설 수 있는 확률은 단 0.01%에 불과하다. 추신수는 그 어려운 무대에 진출한 것은 물론 그곳을 대표하는 선수로 우뚝 섰다. 미국 진출 12년 만이다.
기자가 추신수를 처음 본 것은 지난 2001년이었다. 미국 진출 첫해였던 당시 그의 외모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여느 청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소 마른 체형에 솜털마저 남아 있던 그의 얼굴은 운동선수의 강인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취재를 위해 근거리에서 확인한 그의 눈빛은 예사롭지 않았다. 특히 야구에 대한 열정과 메이저리그를 향한 자신의 인생목표에 대해 말할 때는 마치 발톱을 숨긴 맹수의 비장함마저 느낄 수 있었다.

추신수 인생을 바꾼 세계청소년야구
‘구도(球都)’ 부산에서 태어난 추신수는 8살이던 부산 수영초등학교 시절 야구를 시작했다. 그의 외삼촌인 박정태(전 롯데 코치)의 영향도 있었지만 ‘아들이 태어나면 반드시 야구선수로 키우겠다’고 다짐한 그의 부친 때문이었다. 부산중학교를 거쳐 야구명문 부산고등학교에 진학한 추신수는 아마추어시절 투수와 4번 타자로 활약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왼손투수라는 희소성에 시속 140km가 넘는 강속구를 보유한 그는 각종 전국대회 우승은 물론 최우수선수와 최우수투수상을 휩쓸며 주목 받았다. 당시만 해도 추신수의 꿈은 소박했다. 외삼촌처럼 부산을 연고로 한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해 프로야구선수가 되는 것. 하지만 그의 인생행로가 바뀌는 계기가 일어났다.
추신수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지난 2000년, 한국청소년야구 대표팀에 선발돼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렸던 제19회 세계 청소년야구선수권 대회에 참가했다. 당시 한국대표팀의 전력은 약체로 평가됐으나 지금은 고인이 된 조성욱 전 부산고 감독의 지도 아래 근성과 열정 그리고 투지로 무장했다. 그 결과 당초 예상을 깨고 캐나다, 일본, 쿠바, 미국 등 강력한 우승후보들을 연파하며 우승이란 기적을 일궈냈다.
추신수는 이 대회에서 최우수선수는 물론 최우수투수상마저 휩쓸며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선수로 발돋움했다. 당시 한국청소년대표팀에는 김태균(한화), 정근우(SK), 이대호(일본 오릭스) 등 현재 한국과 일본프로야구에서 맹활약 중인 선수들도 있었지만 추신수의 기량에는 미치지 못했다. 추신수가 이처럼 국제무대에서도 실력을 입증하자 그를 눈여겨보았던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 구단은 계약금 15억원이란 파격적인 조건을 앞세워 결승전 직후 추신수와 입단계약을 체결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추신수는 장차 메이저리거가 되겠다는 청운의 꿈을 안고 2001년 봄 태평양을 건넜다. 그가 도착한 곳은 시애틀 구단의 스프링캠프가 위치한 미국 애리조나주(州) 피오리아라는 도시였다. 한낮 최고기온이 섭씨 40도를 넘나들어 열사의 땅으로 유명한 그곳에서 추신수를 반기거나 알아보는 이는 없었다. 한국 최고의 선수였던 추신수도 그곳에선 그저 잠재력을 지닌 수백 명의 유망주 중 한 명일 뿐이었다.
한국프로야구는 1군과 2군으로 나뉘어 팀마다 대략 60명 안팎의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다. 미국프로야구 또한 크게 우리의 1군이라 할 수 있는 메이저리그와 2군 격인 마이너리그로 나뉜다. 하지만 마이너리그에는 루키(Rookie)부터 시작해 싱글 에이 로(Low)-싱글 에이 하이(High)-더블 에이-트리플 에이까지 총 5개의 리그로 분산돼 운영된다. 개중에는 싱글 에이 숏시즌(Short season)을 추가해 6개 리그를 운영하는 팀도 있다. 야구단 규모나 시설 자체가 한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뿐더러 그만큼 우리네 1군 격인 메이저리그에 진입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도 오래 걸린다.
추신수는 미국 진출 첫해이던 2001년 루키리그에 배정돼 시즌을 준비했다. 하지만 연습 첫날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운동장에 모여 간단한 미팅을 끝내고 투수들의 훈련장소로 이동하던 추신수에게 코치가 외야로 나가 수비훈련을 하라고 지시한 것. 훗날 추신수는 TV에 출연해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시애틀에 투수로 입단한 줄 알았는데 갑자기 외야 수비훈련을 하라고 해 적잖이 당황했다. 알고 보니 구단은 처음부터 나를 투수가 아닌 타자로 키우기 위해 영입했다”는 일화를 털어놓았다. 그는 이어 “예상치 못한 포지션 변경 때문에 한동안 마음 고생이 심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갑작스런 포지션 변경이나 낯선 미국 땅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각종 어려움도 추신수의 꿈을 꺾진 못했다. 추신수는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오히려 더 야구에 집중하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성적으로 자신의 입지를 다져 나갔다.
앞길 가로막은 ‘이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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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야구의 영웅이자 과거 추신수의 동료였던 스즈키 이치로. 추신수는 이치로 때문에 시애틀에서 주전자리를 확보하지 못하고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됐다. |
하지만 타율 0.056의 저조한 성적을 보이자 시애틀은 추신수를 다시 마이너리그로 내려보냈다. 사실 마이너리그에서 거둔 추신수의 성적을 토대로 한다면 그는 2005년 이전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앞길을 가로막는 이가 있었다. 팀 동료 스즈키 이치로(40·뉴욕 양키스)였다.
일본야구의 영웅 이치로는 일본프로야구(NPB)를 평정한 후 2001년 시애틀과 계약하며 메이저리그로 직행했다. 투수가 아닌 일본인 야수가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것은 이치로가 처음이었다. 그는 미국 진출 첫해에 타율 0.350, 56도루, 242안타라는 눈부신 성적을 기록하며 꿈의 무대 메이저리그에 황색돌풍을 일으켰다. 그해 아메리칸리그 최우수선수(MVP)와 신인왕 타이틀은 이치로의 몫이었을 만큼 당시 그의 활약은 대단했다. 그 후 이치로는 현 소속팀인 뉴욕 양키스로 이적하기 직전인 2011년 시즌까지 시애틀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최정상급 외야수로 군림했다.
이치로가 본의 아니게 추신수의 앞길을 가로막게 된 것은 둘의 수비위치가 우익수로 같았기 때문이다. 구단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치로에게 중견수로 이동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지만 ‘수비위치 변경은 경기력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이 때문에 2004년부터 매년 시애틀 매리너스 구단의 최고 유망주로 손꼽혔던 추신수는 예상보다 늦게 메이저리그에 데뷔했으며 그곳에서도 주전 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채 이따금 대타나 대주자로 출전한 것이 전부였다.
꿈을 향한 궁핍한 생활
이처럼 실력은 되지만 주변환경 때문에 메이저리그 진출이 늦어지자 추신수는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한국으로의 복귀를 심각하게 고려했다. 여기에는 경제적인 어려움도 크게 작용했다.
메이저리거가 되면 최하 연봉이 우리 돈 5억원에 육박할 만큼 경제적으로 풍요해진다. 반면 마이너리그 선수들의 월급은 어느 리그에서 뛰느냐에 따라 최하 월 600달러에서 최대 3000달러 선이다. 매달 지불해야 하는 아파트 월세와 식비, 교통비 등을 충당하기에 빠듯한 금액이다. 이 때문에 마이너리그 선수들은 보통 방 2개짜리 아파트를 임차해 적게는 3~4명에서 많게는 6명까지 함께 산다. 게다가 추신수는 당시에 부인 하원미씨와 동거 중이었다. 추신수는 훗날 “마이너리그 시절, 방 2개짜리 아파트에서 거실까지 침실로 사용해 가며 최대 8명까지 함께 산 경우도 있다. 아내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가려 했다”고 말했다. 이때 흔들리던 추신수를 잡아 준 것은 그의 아내였다.
그녀는 “그 어떤 고생도 감수할 수 있으니 당신의 꿈을 향해 정진하라”며 추신수를 적극 성원했다.
아내의 내조 때문이었을까? 추신수에게 기회가 왔다. 시애틀 구단이 외야수 자원을 필요로 하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추신수를 트레이드한 것. 이때가 2006년 7월 26일이었다. 정든 시애틀을 떠나는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추신수에겐 본인의 활약 여부에 따라 메이저리그 주전 자리를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실력은 이미 메이저리그급이었지만 이치로라는 장애물 때문에 오랜 시간 마이너리그에서 절치부심하던 추신수는 기다렸다는 듯 그 기회를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클리블랜드 이적후 친정팀에 홈런포로 ‘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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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시절의 추신수가 경기 전 필드에서 몸을 풀고 있다. |
새로 이적한 클리블랜드에서 친정 팀을 상대로 승리타점을, 그것도 홈런포를 기록하며 강한 인상을 심어 준 추신수는 이후 출전기회가 잦아졌다. 2006년 하반기에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된 추신수는 그해 총 45경기에 출전해 타율 0.295 3홈런 22타점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입증했다. 하지만 그에게 또 다시 불행의 그림자가 엄습하고 있었다.
풀타임 메이저리거를 꿈꾸며 새롭게 맞이한 2007년. 하지만 추신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부상이었다. 왼쪽 팔꿈치 부상으로 2007년 상반기 동안 재활만 하며 메이저리그 복귀를 준비했지만 차도가 없었다. 결국 추신수는 선수생명을 담보로 그해 9월 팔꿈치 수술을 감행했다. 추신수는 훗날 방송에 출연해 “당시에 와이프와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그만큼 야구선수에게 팔꿈치 수술은 위협적인 것이었다.
어느 종목을 막론하고 운동선수에게 부상은 필연적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감수하고 이겨내기까지는 일반인이 알지 못하는 피나는 노력과 인내가 요구된다. 추신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이 모든 과정을 극복하고 이듬해인 2008년 5월 31일 메이저리그에 복귀했다. 그리고 보란 듯이 연일 맹타를 쏘아 올리며 자신의 가치와 존재를 실력으로 입증했다. 그해 추신수는 메이저리그 주전 자리를 확보하며 타율 0.309 14홈런 66타점의 호성적을 기록했다. 특히 9월 한 달간 4할 타율에 홈런 5개를 몰아쳐 아메리칸 리그 이달의 선수로 선정되는 영예도 안았다.
LA 다저스 류현진과의 인연
그토록 갈망했던 메이저리거 풀타임 선수가 된 추신수는 이후 거침이 없었다. 2009년 추신수는 타율 0.300 20홈런 21도루를 기록하며 메이저리그에 새로운 스타 탄생을 알렸다. 2010년에도 그는 타율 0.300 22홈런 22도루를 기록했다.
특히, 호타준족의 상징으로 불리는 ‘20(홈런)-20(도루)’을 2년 연속 달성한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흔히 ‘20-20 클럽’으로 불리는 이 기록은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선수 총 750명 가운데 매년 10명 미만의 소수만 달성하는 어려운 기록이다. 추신수는 또 20-20을 달성했던 2009년과 2010년 모두 3할 대의 타율을 기록해 메이저리그 전국구 스타로 떠올랐다. 당시 20-20에 3할 타율을 기록한 이는 추신수를 포함, 단 3명뿐이었으며 아메리칸 리그에선 추신수가 유일했다. 아울러 추신수는 이 기록을 달성한 최초의 동양인 메이저리거라는 영예도 안았다.
그토록 갈망했던 메이저리그 풀타임 선수라는 꿈을 이뤘지만 추신수에겐 풀지 못한 숙제가 있었다. 한국남자라면 누구나 피해 갈 수 없는 병역문제였다. 하지만 이를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국가대표로 선발돼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면 군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추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2009년과 2010년 2년 연속 맹활약하자 한국야구대표팀은 그를 2010년 아시안게임 대표선수로 차출했다. 2000년 청소년국가대표 이후 또 다시 가슴에 태극마크를 단 추신수는 2010년 11월 중국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오랜 시간 풀지 못했던 병역문제를 4주간의 군사훈련으로 대체할 수 있었다.
당시 추신수는 올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류현진(26·LA 다저스)과 함께 방을 사용했고, 후배가 빨래와 청소 등 궂은 일을 하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병역혜택을 받기 위해 누구보다 더 금메달이 절실했던 추신수는 당시 국가대표 에이스였던 류현진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궂은 일을 도맡아 했으며 식사마저 방으로 가져다 주는 등 오히려 후배인 류현진을 말년 병장 모시듯 했다. 이때의 인연이 계기가 돼 류현진과 추신수는 절친한 선후배 사이가 됐고, 류현진이 미국에 진출하자 추신수가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내년 연봉은 200억원대 될 듯
병역문제마저 해결한 추신수에게 더 이상의 장애물은 없었다. 그래서 2011년 시즌은 그 어느 해보다 더 기대가 컸다. 하지만 인생사 호사다마라고, 추신수에게 2011년은 최악의 한 해가 되었다. 시즌이 시작된 지 약 한 달의 시간이 흐른 5월 4일, 추신수는 경기 후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귀가하다 음주운전으로 체포됐다. 흐트러진 모습의 사진과 함께 보도된 추신수의 음주운전 뉴스는 미국 현지는 물론이고 국내 팬들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군 면제를 받고 살 만해지니 긴장이 풀렸다’는 등 팬들의 조롱과 질타가 쏟아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6월 24일 경기에선 상대팀 투수가 던진 공에 맞아 엄지손가락이 골절되는 부상마저 당했다. 6주간의 결장이 불가피한 중상이었다. 결국 추신수는 그해 타율 0.259 8홈런 12도루에 그치며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된 후 가장 저조한 성적을 남겼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추신수는 그 어느 해보다 더 일찍 그리고 성실하게 2012년 시즌을 준비했다. 와신상담한 추신수는 그해 부상 없이 다시 힘차게 달릴 수 있었고, 그 결과 시즌 타율 0.283 16홈런 21도루의 성적을 올리며 예전의 기량을 되찾았다. 추신수를 향한 팬들의 사랑도 여전했다. 클리블랜드 야구장에 가면 추신수의 별명인 ‘Choo Choo Train’이나 ‘Go Choo’ 같은 응원문구를 쉽게 볼 수 있다. 추신수의 성을 빗대어 만든 ‘Choo Choo’는 우리 말로 ‘칙칙폭폭’을 뜻하는 의성어로 잘 치고 잘 달리는 추신수에게 잘 어울리는 별명이다. 아울러 우리 말로 옮길 경우 ‘잘해라 추신수’라는 뜻의 ‘Go Choo’는 그 뜻은 좋지만 발음상 ‘고추’가 된다. 그래서 추신수는 미국 팬들이 자신을 위해 ‘고추’라고 외치면 고맙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웃음이 나온다고 한다.
2012년 정규시즌이 끝난 지난해 12월 11일, 추신수는 클리블랜드, 애리조나, 그리고 신시내티 세 팀이 참여한 삼각 트레이드를 통해 신시내티로 이적했다. 당시 클리블랜드는 추신수를 잡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지만 메이저리그 스타급 플레이어로 성장한 추신수를 잡기에는 구단의 재정상태가 좋지 않았다.
지난해 클리블랜드에서 490만 달러(한화 약 55억원)의 연봉을 받았던 추신수는 올해 신시내티에서 지난해보다 약 50% 인상된 737만 달러(한화 약 80억원)의 연봉을 받는다. 올 시즌이 끝나고 FA가 되면 그의 연봉이 200억원이 되는 것도 더 이상 꿈이 아닌 현실이 될 전망이다. 불과 6년 전, 방 2개짜리 아파트에서 6~7명의 동료와 함께 살아야 했던 추신수의 ‘눈물 젖은 빵’ 이야기는 이제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추신수 성공의 비결은?
전 SK 감독으로 현재 국내 유일의 독립구단인 고양 원더스를 지휘하고 있는 김성근 감독은 “야구는 원래 잘하는 사람이 잘한다”는 말을 했다. 이는 야구 실력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크다는 뜻이다. 8살의 어린 나이에 야구를 시작한 추신수는 타고난 재능도 좋지만 후천적인 노력 또한 게을리하지 않았다. 추신수는 매년 스프링캠프가 시작되는 2월 중순 이전에 시즌을 준비하고 스프링캠프가 시작되면 팀 동료 중 제일 먼저 캠프에 도착해 제일 늦게 떠나는 연습벌레로 유명하다. 이는 스프링캠프 취재차 추신수의 소속팀을 방문했을 때 그의 동료나 구단직원들이 기자에게 들려준 이야기이다.
과거 추신수의 마이너리그 시절 동료이자 지금은 시애틀 산하 마이너리그 팀 감독이 된 맨차카(Manchaca)는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추신수는 타고난 재능도 좋은 데다 엄청난 훈련량을 소화하는 연습벌레였다”며 “추신수가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할 줄 알았다”고 말했다. 현재 시애틀 산하 마이너리그 더블 A팀에 소속된 최지만(22) 또한 “시애틀 구단에는 아직도 추신수 선배를 기억하는 코칭스태프가 많다. 그래서 내가 조금이라도 연습을 게을리하면 추신수 선배는 예전에 그러지 않았다며 핀잔을 듣는다”고 말하며 웃었다.
추신수와 새벽까지 데이트하다 쓰러진 여자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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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초 추신수의 스프링캠프 시범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추신수의 부인(하원미)과 아이들. |
추신수와 동갑내기 아내 하원미가 처음 만난 것은 그들이 21살이던 지난 2003년이었다. 미국에서 시즌을 마치고 휴식차 방문했던 고향 부산에서 추신수는 지인의 소개로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둘은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 그 후 매일 새벽까지 이어진 데이트로 만난 지 1주일 만에 추신수의 아내는 과로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을 만큼 둘의 사랑은 열렬했다.
2개월간의 만남이 지속된 후 추신수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고 이를 아쉬워한 둘은 양가 부모의 허락하에 함께 미국으로 향했다. 21살의 젊은 여성이 말도 안 통하는 낯선 타향에서 오직 한 남자만을 바라보며, 그것도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하며 산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굳건한 믿음과 진정한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추신수의 아내는 남편을 위해 스포츠마사지를 배워 매일 밤 전신 마사지를 해주는 것은 물론 남편의 체력보강을 위해 한국에서 공수해 온 신토불이 재료를 이용해 직접 두부까지 만든다고 한다. 하지만 둘은 혼인신고만 했을 뿐 아직까지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다.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에 벌써 둘 사이에는 3남매가 태어났다. 지난해 스프링캠프에서 만났던 추신수에게 언제쯤 아내를 위해 결혼식을 할 것이냐는 질문을 던지자 그는 멋쩍은 미소와 함께 “이왕 늦은 거 FA 대박계약을 체결한 후 아내를 위해 멋진 결혼식을 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추신수를 취재하기 위해 신시내티 스프링캠프를 찾았을 때 그곳에는 그의 부인과 처제 그리고 아이들도 와 있었다.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자 불현듯 12년 전 추신수를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낯선 타향, 그것도 40도의 뜨거운 햇살이 이글거리는 열사의 땅에서 땀 흘리던 추신수의 안쓰러운 모습은 이제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각종 난관을 이겨내고 자신의 꿈을 이룬, 자랑스러운 한국인 메이저리거 추신수만 있었다.
박찬호가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를 개척했다면 오늘날 추신수와 류현진은 메이저리그에 한국인 전성시대를 열어 가고 있다. 미국 팬들이 지어 준 별명(Choo Choo Train)에 걸맞게 올 시즌 거침없이 달리고 있는 추신수의 다음 정착역은 어디가 될까. 야구팬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