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소설가 김정현의 ‘저 높은 중국, 낮은 중국’ ⑦

중국 요리, 2박3일 즐기는 ‘만한취안시’

  • 글 : 김정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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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한취안시 전 과정의 1인당 비용은 3만4800위안(약 630만원)
⊙ 중국 8대 요리를 모두 모아… 화합 상징하는 불도장(佛跳墻)을 최고로 여겨
⊙ 중국 4대 요리는 산둥(山東), 화이양(淮陽), 쓰촨(四川), 광둥(廣東) 요리

金正賢
⊙ 55세. 서울경찰청 경위 퇴직.
⊙ 주요 작품으로 《아버지》 《어머니》 《맏이》 《누이》 등 가족 연작.
⊙ 2002년부터 중국 베이징에 체류하며 《중국인 이야기》 시리즈 준비 중.
만한전석 御宴場.
1771년 9월, 청(淸) 건륭제(乾隆帝)는 자신의 회갑을 맞아 전국에서 65세 이상의 노인 2800명을 초대하여 성대한 연회를 열었다. 할아버지 강희제(康熙帝)와 아버지 옹정제(雍正帝)의 뒤를 이어 3대째 극성기를 이루고 있던 황제로서는 자신의 치적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면서도 피지배 민족이 된 한족(漢族)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도 싶었을 것이다. 이때 연회에 오른 음식은 통치세력인 만주족과 수천 년 역사 동안 중원의 주인을 자임해 온 한족의 음식을 아울러 가장 진귀한 음식들이었다.
 
  그 거창하고 화려한 광경에 만족한 건륭제는 친히 만족과 한족의 모든 음식이 올랐다는 뜻의 ‘만한취안시(滿漢全席·이하 만한전석)’란 명칭을 지어 불렀다.
 
 
  황실요리 보존하는 중국정부
 
  그렇지 않아도 지대박물(地大博物)의 중국에서는 진작부터 다양한 음식문화가 발전해 왔다. 전통적인 4대 요리를 보면, 먼저는 루차이(魯菜)라 칭하는 산둥(山東)요리로, 무엇보다 가짓수가 많은 것을 특징으로 내세운다. 노(魯), 제(齊) 등 고대 황허문명의 중심을 이룬 나라들의 터전인 넓은 산둥 벌판과 동쪽으로 면한 황해에서 산출되는 다양한 먹거리가 바탕이었다.
 
  장쑤(江蘇)성 일대를 터전으로 하는 화이양(淮陽)요리는 제철 산물을 재료로 하여 담백함과 소박함이 특징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쓰촨(四川)요리는 매운 것이 특징인 줄 알지만 맛을 잘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즉 각각의 맛이 또렷하다는 의미이다. 나머지 하나인 광둥(廣東)요리는 ‘못 먹는 것이 없다’는 말처럼 재료의 다양함을 그 특징으로 한다. 또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는 남방의 고온다습한 기후 탓에 신선하지 않으면 뒤탈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 4대 요리 중 베이징(北京)요리는 중국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명칭이고, 상하이(上海)요리도 상하이시가 근대에 들어서야 부각된 도시인만큼 그와 궤를 같이한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8대 요리를 마저 알아보면 민난(閩南)차이로 불리는 푸젠(福建)요리, 매운 맛으로 쓰촨요리 뺨을 친다는 후난(湖南)요리, 중동부 내륙의 안후이(安徽)요리, 그리고 우리가 상하이요리라 칭하는 저장(折江)요리가 추가된다.
 
  아무튼 이러한 전통의 다양한 중국음식은 현대에 들어서도 프랑스요리와 함께 세계 음식문화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데 그중 백미는 단연 만한취안시, 즉 만한전석이다. 드라마 ‘대장금’ 이래 우리의 한식도 이른바 건강식으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는데, 전통의 만한전석을 통해 음식문화 창조의 비결을 엿볼 수 있을 듯싶었다.
 
  ‘팡산반점(仿膳飯店)’은 중국 정부가 전통음식문화 보존을 위해 특별히 국영체제로 운영하고 있는 식당이다. 황실요리인 ‘어선(御膳)’의 전통을 잇고 있는데 특히 만한전석의 진수를 가장 잘 지켜 오고 있어, 2011년에는 중국 국가급 비물질문화유산(우리의 무형문화재에 해당)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팡산’은 그 이름부터 의미가 깊다. 20세기 초, 청 왕조가 멸망하자 어선을 조리하던 황실 요리사들은 졸지에 갈 곳을 잃게 됐다. 살길을 모색하던 이들은 1925년 지금의 장소에 식당을 열며, 황실은 없어졌지만 그래도 감히 ‘어선’이라는 이름을 쓸 수는 없으니 모방한다는 뜻의 ‘방(仿·팡)’을 붙여 ‘팡산’으로 상호를 정한 것이다.
 
 
  2박3일 동안 6차례 나뉘어 나와
 
호수 뒤로 보이는 북해공원을 배경으로 들어선 의난당이 팡산반점이다.
  벌써 88년의 역사를 지닌 ‘팡산’의 주방장 쉬셴치(許先麒)는 뜻밖에도 1972년생으로 올해 41살에 불과했다.
 
  —만한전석을 총지휘하는 주방장이면 나이가 많을 줄 알았는데.
 
  “주방장은 행정업무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비교적 젊은 사람으로 임명합니다. 저의 사부님도 주방장을 거친 뒤 지금은 요리연구에만 전념합니다.”
 
  —언제부터 팡산에서 일했나요.
 
  “베이징시 서비스관리 고급기술학교(北京市 服務管理 高級技工學校) 요리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 팡산에 입사했습니다.”
 
  —요리사 입장에서 팡산반점에 입사한 건 행운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럼요. 황실 요리도 요리지만, 만한전석은 모든 요리의 정점이고 팡산의 만한전석은 전통에 가장 충실하니까요.”
 
  —만한전석에 나오는 요리의 가짓수는 얼마나 되나요.
 
  “건륭제 당시의 요리 수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지만 청나라 말 서태후(西太后) 때의 기록에 따르면 러차이(熱菜·열을 가해 조리한 음식을 지칭하나 일반적으로는 주요리를 말한다)만 108가지였습니다. 그밖에 량차이(凉菜·전채요리)나 탕(湯·국), 주요리 뒤에 나오는 밥이나 면(麵) 등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것들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한 끼에 그 많은 요리를 모두 차리거나 먹지는 않을 것 같네요.
 
  “예, 만한전석은 보통 2박3일 동안 1선(膳)부터 6선까지 6차례로 나눠 먹습니다. 아침은 제외하고 점심과 저녁상으로 올리는 거죠.”
 
  팡산반점 만한전석 차림표를 보면 매 선은 11코스로 구성된다. 첫 코스는 도봉향차(到奉香茶)라 칭하는데, 이는 어연장(御宴場)에 드는 황제를 향기로운 차로 맞이하는 의례이다. 이때 우려낸 차는 두 번째 코스인 사간과사밀전(四干果四蜜餞)을 먹을 때 함께 마신다.
 
  사간과사밀전은 말리거나 꿀에 저민 열매 또는 과일류를 각각 4종씩 8종 내는 것을 말하는데, 이를테면 껍질을 벗겨 우윳빛이 돌도록 말린 살구씨인 내백행인(奶白杏仁), 꿀에 저민 은행인 밀은행(蜜銀杏) 등이다.
 
  세 번째 코스는 자희어점사품(慈禧御点四品)으로 자희태후(서태후)가 즐겨 먹었다는 갱(羹·떡과 유사) 종류 네 가지를 내는 것인데, 저마다 완두황(豌豆黃·완두를 갈아 만든 떡으로 황색을 띤다) 등의 고귀한 이름이 붙는다.
 
 
  원숭이 골, 곰발바닥은 동물보호규정 때문에 금지
 
  앞의 세 코스가 연회 전의 간식이었다면 네 번째 코스는 전채요리로 이름 역시 전채대조각(前菜大彫刻)이다. 이름에 조각이 들어간 것은 매 선에 이룡희주(二龍戱珠·두 마리 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놀다), 백옥공작(白玉孔雀·무로 만들어 백옥처럼 하얀색의 공작), 붕정만리(鵬程萬里·만리를 날아가는 대붕) 등과 같은 화려한 이름의 조각을 배경으로 각각 8가지의 찬 음식을 차리기 때문이다. 음식으로는 소금물에 절인 사슴고기인 염수녹육(鹽水鹿肉), 새우를 나비 모양으로 만들어 요리한 호접하(蝴蝶蝦) 등 특별한 것도 있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오향우육(五香牛肉) 같은 것들도 있다.
 
  다섯 번째는 품과어연탕(品鍋御宴湯)으로, 이름 그대로 뜨거운 탕 요리다. 매 선에 오르는 요리는 악어발탕인 관민악어장(罐燜鰐魚掌), 콩 싹과 사슴꼬리를 재료로 한 두묘녹미탕(豆苗鹿尾湯), 약재인 천마와 거북을 곤 천마금구(天麻金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불도장(佛跳墻), 여덟 가지 진기한 재료로 만든 팔진일품과(八珍一品鍋), 악어의 혀와 발을 뭉근하게 끓인 악어설회장(鰐魚舌燴掌) 등이다.
 
  이어지는 어연대채(御宴大菜)는 주요리다. 이 여섯 번째 코스에는 모두 5차례 음식이 오르는데 그중 4차례는 각각 4개의 요리로 구성되어 있고, 한 차례는 구운 고기 2종이 오른다. 이때 사용되는 재료야말로 산해진미이고 기이한 재료들이다.
 
  —주요리에 사용하는 특별한 재료를 든다면.
 
  “잘 알려진 상어지느러미, 바다제비집(燕窩·연와), 원숭이머리버섯, 동충하초 등 여러 진기한 재료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재료와 양념 하나하나 모두를 최상품으로만 쓴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천자인 황제를 위한 음식이었기에 당연히 그러해야 했고, 현대에 들어와서도 그 전통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양념도 모두 천연재료를 쓰는데, 이를테면 단맛 하나도 옥수수에서 추출한 단맛과 호박에서 추출한 단맛을 제각각 다른 요리에 씁니다. 호박과 어울리는 음식에 옥수수의 단맛을 쓰면 맛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이롭지 못한 것과 같은 이치 때문이죠.”
 
  —곰발바닥 같은 특별한 재료도 사용하나요.
 
  “제가 처음 팡산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곰발바닥, 천산갑(穿山甲), 코끼리 코, 원숭이 골 등 기이한 재료들을 볼 수 있었지만 현재는 동물보호규정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그런 기이한 재료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도대체 중국에서는 왜 그처럼 기이한 재료의 요리가 발달했을까요.
 
  “결국은 자보(滋補)와 양생(養生)입니다. 기본적으로 중국은 땅이 넓고 물산이 다양하니 지역마다 그 환경과 산물에 따라 특색 있는 요리가 발전할 수밖에요. 그런 데다가 특히 권력은 천자(天子)라는 황제 한 사람에게 집중되니 세상의 진기하고 몸에 좋은 음식은 모두 황실에 바쳐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죠. 개중에는 황제의 건강과 장수를 위해 특별히 연구한 요리도 있었을 테고요. 그러다가 보니 희귀한 재료일수록 더욱 귀하게 대접받았을 것이고요.”
 
 
  중국 대륙의 융합 의미하는 불도장
 
팡산 주방장 쉬셴치.
  —익숙한 상어지느러미나 제비집 같은 요리는 뭐가 좋은 건가요.
 
  “모두 저지방 고단백 식품으로 보양에 좋다고 보면 됩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양도 양이지만 그처럼 여러 음식을 한꺼번에 취하면 몸속에서 트러블이 일어날 것 같은데.
 
  “그건 아닙니다. 우리 중국에서는 수천 년의 전통으로 서로 상생이 되는 음식과 상극이 되는 음식을 잘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한꺼번에 여러 종류의 음식을 먹더라도 상극의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할 뿐 아니라 양이 많을 때는 소화를 촉진하는 요리도 함께 차려 건강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배려합니다.”
 
  —만한전석은 11개 코스로 구성되어 있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먼저는 향기로운 차향으로 손님을 환영하고, 간단한 간식과 함께 자리한 사람들의 우의를 나눈 다음 전채요리로 입맛을 돋웁니다. 주요리에 앞서 탕을 먹는 것은 위를 안정시키기 위함이고, 주요리 뒤에는 가벼운 주식과 후식, 과일 등이 나오고 마지막에는 고별의 차를 마시고 끝납니다.”
 
  주요리 뒤에 나오는 주식은 주로 야채나 다진 육류로 속을 채운 전병류이거나 물만두 종류다. 다음의 후식은 부드럽고 단맛이 나는 빵이나 과자류인데 그 또한 4종류다. 그러고도 다시 갱이나 죽이 나온다. 10번째 코스는 각종 신선한 과일이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차를 마시는 의식은 고별향차(告別香茶)다. 식사 과정에 술이 곁들여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개인적으로 가장 훌륭한 요리를 꼽는다면.
 
  “모든 요리가 다 훌륭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불도장을 아주 귀하게 여깁니다. 불도장은 원래 푸젠요리에 속하는데, 기본적으로 전복, 해삼, 상어지느러미, 가리비 말린 것과 돼지 뱃살, 닭발, 거위 알, 화퇴(火腿·수제 햄의 일종) 등 8가지 재료를 푹 고아 만듭니다. 8가지 재료는 중국 8대 요리를 의미하는데, 그렇게 8대 요리를 한꺼번에 모아 진국을 만드는 건 중국 대륙을 융합한다는 의미인 거죠.”
 
 
  만한전석 코스는 1인당 약 630만원
 
샥스핀 요리인 차이바위츠.
  —모든 코스를 마무리하는 데 시간도 꽤 걸리겠습니다.
 
  “일반적으로 2시간에서 3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값은 어떤가요.
 
  “현재 매 선당 5800위안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6선 전 과정을 먹자면 1인당 3만4800위안(약 630만원)이 드는 거죠. 또 1인이나 소수 인원으로는 예약을 받지 않고 10인 이상이 최소 7일 전에는 예약해야 가능합니다. 그것은 재료의 수급에 필요한 최소 양이나 시간 때문입니다.”
 
  —홍콩 어느 식당에서는 1년 동안 예약 받아 이듬해에 만한전석연을 여는데 보통 1인당 1만 달러(1100만원) 이상이더군요.
 
  “저도 들어본 적이 있는데 가격이 그처럼 비싼 것은 법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보호동물까지 요리해 내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지만 저희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식당이기에 절대 법에 어긋나는 재료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전복요리인 황파이다바오위.
  —그래도 1인당 3만4800위안이면 엄청난 금액인데 고객이 있나요.
 
  “실제로는 마오타이 같은 고급술까지 곁들이니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듭니다. 그래서 만한전석 예약은 1년에 몇 차례 정도입니다. 하지만 저희 식당에서는 전통 황실 요리를 단품으로도 내기에 손님은 항상 많은 편입니다.”
 
  —만한전석을 예약하는 손님은 주로 어떤 사람들인가요.
 
  “가장 많기로는 타이완과 홍콩 사람들이고 라오베이징런(老北京人)도 있습니다. 바쁜 현대생활에서 2박3일 동안 한꺼번에 전부 즐기기는 어려우니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한 번에 1선씩 6개월 정도에 나눠 즐기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한국 손님은 없나요.
 
  “97년 외환위기 이전에는 자주 만날 수 있었는데 그 이후로는 뜸하다가 최근에는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생선살이나 닭고기살로 원앙 모양을 낸 챠오두이위옌양.
  —어쨌거나 여섯 차례의 입 호사를 위해 그만한 돈을 쓴다는 건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네요.
 
  “그렇습니다. 더구나 현대에 들어서는 먹을 것이 그리 부족하지도 않은데 구태여 그렇게까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황제와 같은 의식을 치른다는 건 개인적으로는 큰 의미가 있을 겁니다. 또 단순히 느껴 보는 게 아니라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여유가 있으면 평생에 한 번쯤은 즐겨볼 만한 일이 아닐까요.”
 
  —프랑스요리와 중국요리의 차이는 뭘까요.
 
  “우열을 가리는 건 의미가 없을 것 같고, 프랑스요리의 특징은 무엇보다 섬세하고 정밀한 점이겠지요. 그래서 특별히 레시피를 변경하지 않는 한 언제나 일정한 맛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일 테고요. 반면 우리 중국요리는 종류와 맛의 다양함을 우선 들 수 있겠지요. 그래서 각 지역에서 나는 특성 있는 재료로 다른 맛을 내 8대 요리로 구분되는 것 아닙니까.”
 
  —베이징요리가 있나요.
 
  “하하, 중국인은 베이징요리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굳이 베이징요리라고 하자면 황실이 있어 사방의 모든 음식이 모여들었으니 8대 요리 전부를 모아놓은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어떤 재료든 궁중요리법으로 만드는 것이 황제의 요리
 
금두꺼비모양의 진찬위바오.
  —왜 하필 요리사를 직업으로 선택했나요. 혹시 부모님이?
 
  “아닙니다. 부모님은 두 분 다 전통 베이징런으로 사무원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배를 곯은 것도 아닌데 막상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평생 일할 직업을 고민해 보니 요리사가 좋겠다는 판단이 들어 직업학교를 간 겁니다. 그때는 꽤 어려운 시기였는데 요리를 배우면 직장이 아니더라도 작게나마 개업할 수도 있으니 평생 가족들 밥 굶기지 않겠다 싶었던 거지요.”
 
  —팡산에서 요리사의 길을 걷는 데 어려움도 많았겠어요.
 
  “기본적으로는 요리학교에서 모두 배우지만 저는 특별히 팡산에서 일하고 싶어 무작정 찾아와 사부님께 무릎을 꿇고 사정했습니다. 다행히 사부님이 받아는 주셨는데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배우듯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곳은 황실의 어선 전통을 지켜야 하는 곳이니 경건한 마음가짐에서 시작하여 다듬기, 썰기, 볶기 등 전 과정의 어느 것 하나 조금도 소홀히 할 수 없으니까요. 보천지하막비왕토(普天之下莫非王土)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늘 아래 황제의 땅 아닌 곳이 없다는 뜻이죠. 그러니 대개는 조리법만 봐도 어느 지방 요리인지 알 수 있는데, 팡산에 들어서면 그때부터는 모든 걸 궁중요리 방식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러니 쉽지 않았지요.”
 
  —황실 요리법의 특징은 뭔가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겁니다. 재료를 최상등품으로 고르는 것에서부터 조리를 완성하기까지 전 과정에서 황제에 대한 예의를 갖추듯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낙타발바닥 요리인 사저우타추이(沙舟踏翠).
  —예술 하는 기분이겠군요.
 
  “하하, 아직 예술적 경지에 이르렀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완벽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요리에 대한 당신의 철학은 뭡니까.
 
  “그저 밥 한 그릇을 짓더라도 황제를 위한 것이다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자는 거지요. 저에게는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황제이니까요.”
 
결국은 만수무강으로 귀결된다.
  —팡산의 주방장 정도면 외국의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을 것 같은데요.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습니다. 보수적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중국 대표 요리인데 이 땅에서 만들고 전통을 지켜 나가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팡산반점은 자금성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조성한 황가(皇家) 원림(園林)인 북해(北海)공원 안에 자리한 의난당(漪瀾堂) 건물을 그대로 쓴다. 의난당은 건륭 18년 건축했는데 북해공원을 산책하던 황제가 휴식을 취하거나 황후, 비빈들과 함께 식사하는 장소로 주로 이용하였으니 만한전석의 전통을 잇기에는 맞춤한 장소인 셈이다.
 
  —집에 가면 직접 요리를 하나요.
 
  “가끔 합니다. 그럴 때는 아내도 아이도 좋아는 하지만 주방 일에 지친 모습이 안쓰럽다며 대놓고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중국요리는 불의 예술이다.
  —집에서는 주로 어떤 요리를 즐기나요.
 
  “일반인들과 똑같습니다. 간단한 야채볶음이나 고기요리 한두 가지로 밥을 먹지요. 그게 제일 좋아요.”
 
  —본인이 만드는 요리와 평소에 즐기는 음식 사이에 괴리감 같은 걸 느끼지는 않나요.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다면 좋겠지요. 그렇지만 그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고, 한편으로는 그렇게 차이가 큰 생활 속에서 보존할 가치 있는 문화가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싶어서 딱히 불편한 감정은 없습니다. 만한전석은 제 일이고, 저는 함께하는 가족 중의 한 사람이잖아요. 그걸로 충분히 행복합니다.”
 
 
  빈부에 따라 차이가 큰 중국인의 밥상
 
쉬셴치의 조리장면.
  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 백성에게는 먹을 것이 하늘이라는 말이다. 중국에서는 1957에서 1960년 사이의 대약진운동 기간에 1500만명 이상이 아사하는 비극을 겪었다. 그 뒤로도 꽤 오랜 시간 많은 이가 배고픔을 인내해야 했다.
 
  G2로 꼽히는 경제강국이 된 현재에도 굶어 죽는 사람은 없다 해도 변방의 적지 않은 지역에서는 최소한의 먹거리로 연명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마천루를 이루고 휘황찬란한 조명이 번쩍거리는 도회에서도 비슷한 삶을 영위하는 이들이 있다.
 
  특히 고향을 떠나 도회의 공사장에서 땀 흘리는 소위 농민공(農民工)들의 생활은 눈물겹다. 이른 아침 길거리 행상에서 파는, 결코 위생적으로 봐줄 수 없는 먹거리로 배를 채우고 공사장으로 나선다. 필경은 자주 갈지 않을 식용유로 굽거나 튀긴 밀가루 병(餠)에 몇 가지 야채나 햄 등을 넣은 전병이 선호된다. 종일 땀 흘리는 중노동에 기름기가 당기는 까닭일 것이다.
 
  점심과 저녁은 손잡이 달린 냄비 같은 밥그릇 하나에 밥과 반찬, 국을 한꺼번에 그러담은 먹거리다. 대개는 식탁도 없다. 공사판 구석이든 길거리든 가리지 않는다. 그래도 그들은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일한다. 마치 60, 70년대 대한민국 아버지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아니, 그때 우리의 아버지들은 그래도 신 김치 한 접시에 막걸리 잔이나마 기울였다. 하긴 이들도 어두운 숙소에서 싸구려 백주(白酒) 몇 잔은 비울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래도 기껏 1년에 한 번 고향으로 돌아가서야 가족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처지니 날마다 저물녘이면 귀가가 그리울 그들에게 애잔함을 떨칠 수 없다.
 
  중국인들의 먹성은 특별하다. 최근 들어 다이어트를 위해 절식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보통사람들은 여전히 먹는 것을 제일의 기쁨으로 여긴다. 아마 공금으로 접대할 기회가 있으면 그를 빌미로 호화판 연회를 즐겨 첫 번째 부패로 지탄받는 데는, 먹을 것이 하늘인 마음이 뿌리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는 G2의 반열에 올랐지만 직장에서 점심을 제공받는 어지간한 직장인들의 그것은 공사장 농민공의 밥그릇과 별반 다르지 않다.
 
농민공들의 아침 식사.
  아침도 대부분은 집이나 직장 근처의 허름한 식당에서 조찬 메뉴로 내놓는 끓인 콩국물인 더우장(豆醬)을 기본으로, 밀가루 등을 반죽해 기름에 튀긴 유탸오(油條), 계란을 차와 간장을 넣어 삶은 지단(鷄蛋), 작은 만둣국인 훈둔(混沌), 여러 가지 곡물을 재료로 한 죽인 각종 저우(粥), 우리의 만두와 같은 바오쯔(包子) 등으로 간단하게 때운다.
 
  그렇다고 퇴근 뒤의 저녁밥상이 제대로 차려지는 것도 아니다. 퇴근 무렵 일반 중국인 주거지에서는 그날 저녁 해 먹을 몇 가지 찬거리를 비닐봉투에 담아 자전거에 매달고 가는 남자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고기나 야채볶음 한두 가지가 일상의 반찬이다. 그러니 민이식위천이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이들로서는 그저 배만 채우는 것이 아닐 텐가.
 
  그럼에도 가장 놀라운 점은 만한전석과 한 그릇에 서너 가지를 그러넣은 음식의 다름에도 대부분은 그 자체에 크게 불만을 품지 않는다는 것이다. 차이를 불공평이 아니라 있을 수 있는 다름으로 받아들이고 오히려 전통문화로 자랑스러워하는 큰마음이라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먹기 위해 사는 것과 살기 위해 먹는 삶은 분명 다르다. 차이를 다름으로 받아들이는 큰마음은 최소한 먹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아무 곳에나 쭈그려 앉으면 식탁이다.
  점점 세상이 두려워지는 것은 차이를 다름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쟁과 질투심 때문이다. 누가 무엇을 한다면 나도 반드시 그처럼 하거나, 최소한 비슷하게라도 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난다. 맛도 모르고 흥도 없이 그저 흉내일 따름인데도.
 
  그러니 속은 빈 강정이라도 겉만 번지르르하면 그곳으로만 모여든다, 꾸역꾸역. 더구나 문제는 겉을 번지르르하게 만들려면 단번에 많은 돈이 들어가야 하니 필경은 대자본가들이 주인이라는 점이다. 자본은 이익이 최우선이니 전통과 문화가 자리 잡을 여력이 점점 없어지는 것이다.
 
  ‘대장금’의 대단한 왕실음식만이 아니라 시장의 장국밥, 비빔밥 한 그릇도 버젓한 음식문화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자원이다. 그것을 지켜 가려는 사람들은 있는데 돌아봐 주는 사람이 없으니 기어이는 대물림이 끊어지고 그 자리는 대자본가가 차지한다. 그나마 맛이라도 지켜 주면 다행인데, 역시나 눈에만 화려하고 뒷맛은 비싸다는 떨떠름함뿐이니 그로써 문화는 사멸되고 허영의 거래만 남게 된다.
 
  브랜드 가치 1조2000억원으로 평가받는 베이징의 유명한 오리요리 전문점 ‘취안쥐더(全聚德)’의 오리구이 한 마리 가격은 190위안(3만4000원) 남짓이다. 우리 대기업 브랜드 전문점에서의 비빔밥 두어 그릇 값 정도이다. 어쩌다 오랜만에 오리나 맛보자며 서너 사람이 가 달랑 오리구이 한 마리만 시켜도 눈치 보이지 않고 서비스도 달라지지 않는다. 만일 한국에서 서넛이 몰려가 달랑 비빔밥 두 그릇 시켜서 나눠 먹겠다면 과연 어떤 눈빛들일지 새삼스레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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