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의 일본 추월은 예상했던 일이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여
⊙ “3위가 되면 미국의 견제가 적어져 일본경제에는 오히려 유리하다”는 견해도 나와
⊙ 오마에 겐이치, “‘꼬리를 말고 도망가는 개’ 연상돼, 역경을 넘어서겠다는 자세 중요”
李佑光
⊙ 1952년생. 중앙대 통계학과 졸업. 日도쿄대 경제학부 박사과정 수료.
⊙ 삼성경제연구소 일본연구팀장, 해외연구실장 역임.
⊙ “3위가 되면 미국의 견제가 적어져 일본경제에는 오히려 유리하다”는 견해도 나와
⊙ 오마에 겐이치, “‘꼬리를 말고 도망가는 개’ 연상돼, 역경을 넘어서겠다는 자세 중요”
李佑光
⊙ 1952년생. 중앙대 통계학과 졸업. 日도쿄대 경제학부 박사과정 수료.
⊙ 삼성경제연구소 일본연구팀장, 해외연구실장 역임.

- 톈진항에서 수출을 기다리고 있는 중국 자동차들.
일본의 3위 전락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양국(兩國)의 성장률 격차 때문이다. 중국은 최근 들어 10% 전후(前後)의 성장을 계속해 왔지만, 일본은 과거 20년간 평균 1% 정도의 성장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5년간 평균성장률을 보아도 중국은 명목 16.4%, 실질 10.4% 성장을 지속해 왔으나, 일본은 명목 -0.9%, 실질 0.2%이다. 일본경제의 장기 침체가 이제는 일본의 국제적 위상마저도 떨어뜨리기에 이른 것이다. 1994년 일본의 GDP 세계 점유율은 17.8%였으나 15년 후인 2009년에는 그 반인 8.7%에 불과하니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중국의 성장속도는 상당히 빠르다. 개혁을 시작한 지 20년 만인 2000년에는 세계 7위로 올라서더니 2007년에는 독일을 제치고 3위가 됐고, 그리고 다시 3년 만에 2위가 된 것이다. 참고로 세계 경제규모 순위는 미국이 약 14조 달러로 1위이고, 4위 이하로는 독일, 프랑스, 영국, 브라질, 이탈리아 순이다. 한국은 15위이다.
日本化
세계 3위로 전락한 일본의 분위기는 비교적 차분하다. 역사적 전환점을 계기로 분발을 촉구하려는 분위기가 전혀 아니다. 성장률 격차가 현저하고 인구도 10배가량 많기 때문에 중국에 따라잡히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또 중국의 명목GDP에는 인플레이션과 환율 요인이 가미되어 있기 때문에 경제규모를 정확하게 나타내는 척도가 아니며 중국이 발표를 하지 않고 있는 실질GDP에서는 일본이 중국보다 훨씬 앞설 것이라는 보고서가 나올 정도이다. 인구규모가 10배인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일본의 10분의 1 이상이 되면 중국이 앞서는 것은 당연하며 국민들의 실생활이 금방 변화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다지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객관적인 분석이 많다.
일본의 차분한 분위기와는 달리 서양 미디어들은 중국이 세계경제 2위로 올라선 것을 예사롭게 보지 않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세계경제의 전환점”이라면서 “중국의 대두는 매력적이지만 위협이기도 하다”며 “중국은 경제뿐만이 아니라 안전보장에 있어서도 주변국과 마찰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는 논평을 냈다. <뉴욕 타임스>는 “세계의 새로운 경제대국을 인식해야 한다”며 일본의 상황에 대해서는 “경제뿐만이 아니라 정치도 쇠퇴하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 결과이며, 현실적으로 중국 우위를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일본의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의 성장은 일본의 이익이 된다”며 일본에 대해서는 디플레이션 억제책을 구사할 것을 주문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중국은 자본주의를 도입한 지 30년 만에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으며 이제 중국도 이에 걸맞은 책임 있고 존경받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서양 언론들이 일본이 세계경제 3위로 밀려난 것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일본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인식하는 동시에 중국의 부상을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월스트리트에서는 ‘일본화(日本化·Japanification)’라는 신조어(新造語)가 유행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의 미국의 경제상황이 일본의 1990년대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미국이 주택버블 붕괴 이후 경기회복을 위한 각종 정책을 구사해 봐도 효력은 없고 경제가 일본처럼 조금씩 ‘디플레이션 함정’으로 빠져드는 것 같다는 우려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전문가들은 일본을 전형적인 신(新)쇠퇴국, 즉 NDC(Newly Declining Country)로 지목하고 ‘일본처럼(like Japan)’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서슴없이 한다. 이제 일본경제는 전(全) 세계적으로 반면교사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꼬리를 말고 도망가는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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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에 겐이치. |
언론들도 예견된 일이어서인지 사실보도와 미국의 논조를 소개하는 정도이다. 그보다는 실효성 있는 엔고(高) 대책을 내놓으라 한다.
어떻게 보면 선진국 국민답게 냉정한 판단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포자기의 분위기도 역력하다. 그리고 중국의 역전(逆轉)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이다.
심지어 “3위로서의 메리트를 살려야 한다”, “3위가 되면 미국의 견제가 적어져 일본경제에는 오히려 유리하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일본은 그동안 2위였기 때문에 1위인 미국으로부터 섬유, 반도체, 자동차 수출규제뿐만 아니라 자본자유화, 엔화 절상과 같은 압력을 받아왔다. 따라서 앞으로 3위가 되면 이러한 압력이 약해져 일본의 수출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라는 논리이다.
이러한 일본의 분위기를 두고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는 블로그에서 “‘꼬리를 말고 도망가는 개’가 연상된다”고 비꼬았다. 경쟁상대와 대항해서 이겨야겠다는 패기(覇氣)는 없고 일찌감치 패배를 인정해 버리는 일본의 분위기가 안타깝다는 것이다. 그는 “만회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므로 역경(逆境)을 넘어서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렇다면 왜 일본국민들은 이러한 폐색감(閉塞感)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경제 때문인지 정치 때문인지 아니면 사회 문제 때문인지 도대체 그 이유를 종잡을 수가 없다. 원인을 알아야 처방이 가능할진대 분석은 제각각이고 일본국민들을 한 방향으로 끌고 갈 리더십도 없다. 이는 기업도 정부도 마찬가지이다. 서양 전문가들이 “일본의 디플레이션을 연구해 봐도 도대체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라고 하는 말이 이를 대변해 주는 것 같다.
과거에도 일본이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일본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일본 경제학자들은 실업과 인플레이션도 없이 성장을 지속하는 ‘일본적 경제 시스템’을 자랑하기에 바빴다. 오히려 과(過)소비로 경상적자(經常赤字)를 내면서도 일본을 압박하는 미국을 비난했다. 또 종신고용과 장기지향 경영을 하는 ‘일본적 경영’을 자화자찬하며 주주(株主) 중시의 단기지향 경영을 하는 미국을 비난했다. 이때는 오히려 일본의 미래를 너무 장밋빛으로 보는 것이 문제였다.
2010년 세계경제 1위 등극 꿈꾸던 일본
여기서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자. 일본의 유명 경제 잡지 <주간동양경제>는 버블붕괴가 시작된 이듬해인 1991년 6월 7일호에 ‘일본의 GNP가 세계 1위가 되는 날’이라는 5000호 기념 특집기사를 실었다. 전문가 129명에 대한 앙케이트 조사를 바탕으로 2010년에는 일본이 미국을 제치고 GDP 규모 세계 1위로 올라설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다. 당시 일본의 GDP 규모가 미국의 60% 정도였으므로 한 20년 열심히 노력하고 또 엔화가 절상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기사를 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 2010년 일본의 경제력에 대해 “현재 이상으로 강력해질 것이다”가 15%, “무역흑자(黑字)는 축소되겠지만 구미(歐美)가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저하되고 있기 때문에 현재(1991년)와 같이 일본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의견이 42%로 낙관적인 예측이 대다수였다. 반면 “급속하게 지반침하(地盤沈下)하고 무역적자국이 될 것이다”라는 의견은 12%에 불과했다.
이 잡지는 “현재 일본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강력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고, 또 한국의 일본 따라잡기도 한계를 보이고 있어 20년 후에도 지금과 같이 강력한 경쟁력을 유지할 것이라는 견해는 타당해 보인다”라는 해설을 덧붙이고 있다.
국민들에게 비전을 제시하려는 편집의도였겠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너무나 판이한 결과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2010년의 중국에 대한 예측이다. “시장경제가 발전할 것이다”가 40%, “시장경제와 사회주의의 모순이 분출할 것이다”가 이와 비슷한 38%, “정치적 불안정으로 난민(難民)이 유출될 것이다”가 20%나 되었다.
현실은 바로 그 2010년에 일본은 1위는커녕 2위 자리마저도 중국에 내주게 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일본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중국경제에 대한 신뢰는 별반 없었다. 경제규모가 한국보다 6배나 큰 일본의 중국에 대한 직접투자가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것을 보아야 일본의 중국에 대한 인식을 읽을 수 있다.
에즈라 보겔의 빗나간 예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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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경제를 낙관했던 에즈라 보겔. |
미국의 최고 동아시아 전문가인 에즈라 보겔(Ezra Feivel Vogel) 전(前) 하버드대 교수는 1979년에
에즈라 보겔의 일본사랑은 지극했던 것 같다. 2006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일본의 경제력을 여전히 높이 평가했고, 한국은 통일이 되더라도 일본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일본의 저력(底力)을 믿었다. 기회가 있다면 지금 일본이 ‘Japan as No Three’가 된 이유를 묻고 싶다.
1990년에 버블붕괴가 시작되었지만 전성기의 막바지에서 일본의 장기정체(長期停滯)를 점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도 일본기업의 침체를 예측한 사람은 있었다. 1990년대 초반 이미 이러한 조짐들은 있었다.
1994년에 출간된 <일본기술이 위험하다>의 저자 윌리엄 파이넌과 제프리 프라이는 일본기업을 방문했을 때 화려한 미술품으로 장식된 임원 회의실을 보고 일본기업이 변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고 했다. 전자산업 전문가들인 이들은 일본기업의 경쟁력 비결을 조사하기 위해 일본에서 기업을 방문하는 도중에 이러한 사실을 알아차리고 생각을 바꾸어 일본기업의 문제점을 조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일본의 전자업체들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는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었고, 탄탄하다고 하는 기술력의 배후에는 유연하지 못한 엔지니어링 문화 때문에 기술발전에 한계가 보였으며, 하드웨어에 치중한 제품은 소프트웨어 때문에 위기를 맞을 것이라 했다. 이처럼 이미 일본은 1990년대 초반부터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지적은 지금도 일본기업에 통용되는 논리이다. 지금 읽어보아도 시대를 간파하는 두 사람의 선견성(先見性)이 돋보이는 책이다. ‘성공의 복수’ 때문인지 일본기업들이 얼마나 변하지 않았는가를 상기시켜 주고 있으며 한국기업에도 많은 충고가 될 것이다.
일본, 주변국과 협조 통해 활로 모색해야
GDP 규모가 세계 2위에서 3위로 전락하면 무엇이 달라질까? 일본경제연구센터의 아라이(新井淳一) 회장은 일본은 3위가 된 독일의 경험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세계는 항상 1위와 2위 간에 치열한 주도권 경쟁을 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우선 미국의 중국 견제가 심해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과거 미국과 일본과의 각종 경제마찰이 이를 말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미국은 중국에 수출규제는 물론 위안화 압력, 환경문제에 대해 압력을 행사할 것이며 양국 간의 긴장관계가 심화될 것이라고 한다.
아라이 회장은 “따라서 일본은 이제 독일처럼 주변국과의 협조를 통해 살아가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독일이 숙적(宿敵) 프랑스나 유대인과의 적대 관계를 해소하고 EU의 중심이 된 사실에 주목하여 일본도 동(東)아시아 국가들과 FTA망(網)을 구축해 교류, 무역을 확대하여 경제연대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당히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들린다. 요즘 일본에서 자주 들리는 ‘동아시아공동체구상’과도 상통하는 논리이다.
사실 일본은 지금까지 메이지(明治)유신 때의 ‘탈아입구(脫亞入歐)’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일본에 아시아는 항상 생산과 투자의 대상이었지 더불어 살아가는 대상이라는 의식은 희박했다. 이제 일본인들의 뇌리에서 ‘탈아입구’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지울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의 GDP 규모 3위 전락은 예견된 사실이기는 하지만 향후 동아시아의 판도 변화를 예견하는 큰 전환점이 될 것이다. 한 10년 후에는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1위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향후 10년간은 미국과 중국 간의 치열한 주도권 경쟁이 예상된다. 일본의 전성기였던 1980년대 후반부터 미국은 일본에 대해 압력을 가하는 한편 내적으로는 산업구조를 제조업에서 금융, 소프트웨어로 빠르게 바꾸었고 또 이를 성공시켰다. 향후의 미국의 대응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사실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에서 일본 따라잡기에 성공한 것은 1980년대 후반의 미국과 일본 간의 무역마찰 때문이라고 일본의 전문가들은 종종 지적한다. 이제 우리 기업들도 성장동력을 잃은 일본의 비애를 반면교사로 삼음과 동시에 미국과 중국의 주도권 경쟁을 예의주시하여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