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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단독인터뷰] '한강 의대생' 故 손정민씨 어머니

손정민, 21살 아름다웠던 청년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서

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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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의 엄마는) 새벽 3시 반에 아이 전화를 받았으면 저에게 전화를 백 번은 하고도 남을 사이예요. 너무 이상하죠. 또 4시 반에 A가 귀가한 후에 자기들(A씨 가족)이 뛰어갈 정도로 이상한 상황이라면 저한테 전화를 하면서 나오는 게 정상이죠. 자기들끼리 와서 20~30분 동안 뭘 했을까요. 그 후에 우리한테 전화했다는 건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손정민씨가 숨진 채 발견된 서울 서초구 반포한강공원 수상택시 승강장 인근에 추모 공간이 마련돼 있다. 사진=조선DB


한강공원에서 친구를 만났다가 실종, 지난 4월 30일 사망한 채 발견된 중앙대 의대 본과 1학년 손정민(만21세)씨 사건의 미스터리가 풀리지 않고 있다. 결정적인 목격자가 없는데다 당시 동석했던 학과 동기 A씨가 사고·사망 경위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사건은 미궁에 빠져들었다.  네티즌 사이에서는 수많은 의혹이 불거졌고, 정민씨와 A씨의 관계 및 A씨 집안 등에 대해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난무했다.


아무래도 정민씨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A씨에 대해 잘 알고 있을 터였다.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지난 5월 13일 반포 모처에서 어머니(49)를 만날 수 있었다. 아버지 손현(51)씨도 동행했다. 인터뷰는 2시간 이상 이어졌다.


이날 오전 처음 언론에 공개된 목격자의 제보 사진(아래 사진)은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가져왔다. 목격자가 당일 새벽 2시18분에 찍은 것으로 정민씨는 바닥에 옆으로 누운 채 쓰러져 있고, A씨는 그 옆에 쪼그려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 사진을 하루 전날 제보자로부터 입수한 정민씨 부모는 “그때 우리한테 전화만 했어도 정민이는 살 수 있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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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격자가 25일 새벽 2시 18분에 찍어 경찰에 제보한 사진. 왼쪽이 A씨, 오른쪽이 손정민씨다.  

  

정민씨와 A씨, 입학때부터 친한 그룹 


정민씨 휴대폰은 잠금이 걸려 있지 않아 A씨가 마음만 먹으면 직접 정민씨 부모에게 전화할 수도 있었고, 엄마들끼리 교류가 있어 A씨가 엄마에게 연락을 부탁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정민씨와 A씨가 얼마나 가까운 관계였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만큼 추측만 많다. 정민씨 어머니가 A씨 가족과의 친분 관계에 대해 말했다.

 

―정민씨와 A씨가 늦은 밤에 단둘이 술을 마실 정도로 많이 친한 관계가 아니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런 건 아니에요. 의대 동기 일곱명 그룹이 있는데, 아이들끼리 해외여행도 몇 번 같이 가고 친한 편이었어요. 정민이는 다른 친한 그룹도 있었고요.”

 

―정민씨와 친구 B씨가 그날 A씨의 연락에 대해 ‘처음 있는 일’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왔나’라고 했다는데요.

“A가 본과 들어가면서 공부를 더 열심히 하기 시작했고, 여자친구도 있다 보니 밤에 친구들과 술 마시러 나오는 일이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그런 얘기를 한 거 같아요.”

 

―언제부터 (A와) 친하게 되었나요.

“2019년 대학 입학하면서부터죠.”

 

―그렇다면 A씨 어머니도 그 그룹의 어머니이고, 잘 아시는 거죠.

“2019년 3월에 처음 만났고요. 일곱명 어머니 중에서도 성향이 좀 맞는 셋이 자주 교류했어요.”

 

―그 셋 중에 A씨 어머니는 없었고요?

“아뇨. 셋 중의 한명이에요. 사건 전 주에도 만났어요'

 

― 또 다른 한 분은 그날 정민이가 카톡했던 친구(B씨)의 어머니인가요.

“그건 아니고요. 그분은 장례식장과 장지까지 같이 지켜주시고 많이 도와주셨어요. 친구 B도 매일 장례식장을 지키고 제보자 찾는 일 등 많이 도와줬고요.”


“새벽에 일 생기면 전화 백번은 하고도 남을 사이”


―어머님이 A씨도 잘 아시겠군요.

“네. (A는) 우리 집에 와서 자고 간 적도 있고, 작년 말 생일파티를 집에서 했는데 그때도 왔고요. 집도 멀지 않고 자주 만나는 친구였어요.”

 

―그날 편의점이나 배달음식 등 정민씨가 거의 계산을 했는데요. 일반적이지 않은 것 같긴 합니다.

“제가 친구들 밥 사주는 거 아까워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날도 쿠팡이츠 삼겹살집 결제 문자가 제 폰으로 왔기에 ‘삼겹살 맛있게 먹어~’라고 카톡을 보낸 거고요. 우리는 특별히 잘사는 건 아니어도 아이가 하나라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줬습니다. 그리고 경찰조사에 의하면 A도 2회 술 구매한 건이 있더군요. 당일 쓴 금액으로 따지면 정민이가 4만원정도, A가 13000원정도 나눠냈어요.”

 

―정민씨가 A씨에 대해 어떻게 얘기했습니까.

“정민이가 두루두루 잘 지내고 사람을 좋아하는 아이여서, 친구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진 않았어요. 제가 A와 많은 대화를 할 사이는 아니고 A에 대해서는 그 엄마한테 들은 얘기가 더 많지요.”

 

―그렇다면 꽤 친한 사이인데, 그 어머니는 왜 그 새벽에 정민씨를 찾으러 한강까지 가면서 전화를 하지 않았을까요.

“제가 가장 놀라고 이해할 수 없는 게 바로 그겁니다. (A엄마와) 아이한테 무슨 일이 생겼는데 늦은 밤이라고 전화 못 할 사이가 아니니까요. 3시 반에 아이 전화를 받았으면 저에게 전화를 백 번은 하고도 남을 사이예요. 너무 이상하죠. 그것도 실종 후 그 부부가 우리와 만났을 때는 (새벽) 3시37분에 A가 전화했단 얘기를 숨겼어요. 그때 연락만 해줬어도 정민이가 살 수 있었을 거예요.”

 

―A씨 가족이 정민씨 어머니에게 연락을 한 건 두 시간 후였죠.

“4시 반에 A가 귀가한 후에 자기들이 뛰어갈 정도로 이상한 상황이라면 저한테 전화를 하면서 나오는 게 정상이죠. 자기들끼리 와서 20~30분 동안 뭘 했을까요. 그 후에 우리한테 전화했다는 건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A가 자취한다는 얘기도 있는데 A의 집이 한강에서 멉니까.

“자취 아니고 서래마을 아파트에 가족이 같이 살고 있어요. 우리 집은 한강, 그것도 A가 왔다 갔다 한 반포나들목 바로 옆이고요.”

 

―A씨 휴대폰만 찾아도 상당 부분 의문이 풀릴 텐데요. 지금도 수색 중이라고요.

“한강에 버리거나 잃어버렸을 거라 생각지 않아요. 사진 보면 그렇게 야무지게 자기 짐 다 싸고 갈 준비를 한 아이가 자기 휴대폰을 잃어버렸을까요? 3시 반에 자기 아빠한테 전화도 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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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포한강공원 수상택시 승강장 인근에서 경찰이 손정민씨 친구 A씨의 휴대전화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조선DB


 

―사건 이후 A씨 가족과 연락은 되나요.

“실종 후 사흘째 되던 날까지도 그쪽을 의심하진 않았어요. A의 엄마에게 아이들 놀던 장소를 지도에서 표시해 줄 수 있느냐, 통신사를 통해 A의 휴대폰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느냐, 그 정도의 연락을 했어요. 26일 A와 그 부모를 만나 사건 당일 얘기를 들었고, 27일 오전 현장을 보고 싶다 했더니 아이 없이 부부가 나왔고, 오후에는 최면수사를 위해 다시 만났습니다. 그때 그날(25일) 새벽 3시37분에 A가 부모와 통화한 사실을 알게 돼 의구심을 갖게 되었고, 29일 최면수사에 변호사를 대동했다는 걸 알게 된 후로 의구심은 확신이 되어 더 이상 연락할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장례 4일째 되던 날 새벽 1시30분에 A가 작은아버지를 대동하고 무례하게 장례식장을 방문했고, 다음날 A의 아빠에게서 문자가 왔지만 답하지 않았습니다.”


A씨 변호인의 정체는


이쯤에서 세간에 불거진, ‘A씨 측에 권력기관 등 든든한 뒷배경이 있다’는 의혹의 실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 손씨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경찰과 A씨의 변호사 때문에 '피꺼솟'(피가 거꾸로 솟음)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네티즌들은 A씨 측과 경찰의 유착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 사연을 아버지에게 물었다.

 

―‘피꺼솟’한 구체적인 이유는 뭡니까.

“제가 경찰에 ‘경찰 수사 결과를 믿을 테니 반드시 진실을 밝혀달라’고 했고, 경찰 측은 ‘그러겠다’고 했어요. 전담 형사들은 저에게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했고요. 그런데 그날 언론에 경찰이 ‘손씨의 사망과 A씨의 행동을 직접 연관지을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했다는 겁니다. 저한테는 분명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겠다고 하고선 언론에는 왜 그렇게 얘기를 합니까. 결국 경찰의 속내는 이런 거였나 해서 화가 난 거죠.”

 

―변호사 관련 건은요.

“A의 변호사가 어느 회사 소속인지 알고 있고 그 모회사가 어딘지도 알고 있는데 경찰이 저런 식으로 나오니까요.(편집자 주: A변호인의 법무법인측은 정민씨 아버지가 언급한 법무법인과 상호 무관하다고 알려왔다나는 그저 내 아들이 왜 물에 들어가서 죽었는지를 밝히려는 것뿐인데 이게 이렇게까지 커질 일인가, 그래서 경찰이 저러고 있는 건가 해서 울분이 터진 겁니다.”

 

A씨 집안에 대해서는 정민씨 어머니가 더 잘 알 것 같아 어머니에게 물었다

 

―그쪽 집안이 권력기관과 관계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게 맞습니까.

“그런 얘기는 못 들었어요. 그냥 그 변호인이 A의 아버지, 작은아버지와 친분이 있어서 사건을 맡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제가 아는 그 집은 그저 아버지가 의사이고 아들이 의대생인, 보통의 의사 집안입니다. 어머니는 전업주부고요. 더 정확히는 잘 모릅니다.”


정민씨의 동기들과 친구들


-일각에서는 사건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의대 동기들이 너무 잠잠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학교나 과에서 함구령 내린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옵니다.

“동기들은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실종 당시 ‘에타’(에브리타임·대학생 전용 앱)에 전단도 게시해주고, 댓글에 목격자가 나오면 연락도 해주고 적극적으로 도왔어요. 20명 정도의 과 동기들은 매일 장례식장에 와서 정민이에게 인사를 하고, 정민이 학교생활을 이야기해주며 저를 보살폈습니다. 대부분의 동기들이 조문을 왔었고, 중대의대에서만도 40여명의 친구들이 장지까지 함께 해주어 너무 감사했죠. 학교에서도 함구령 같은 건 없었어요. 근거 없는 얘기는 하지 않으면 좋겠다 정도였어요. 사건당일에 대해 아는것도 없을뿐더러, 둘다 과 동기이다 보니 조심스런 아이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하고요. 이번일로 동기들이 괜한 오해를 받거나 욕을 먹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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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민씨 실종 당시 부모가 정민씨를 찾기 위해 한강에 게시한 현수막. 부모는 전단도 2000여장을 

         제작해 뿌렸다.  사진=조선DB

 

-정민씨 친구들이 적극적으로 나섰다고요. 

“실종 당시 저희 부부는 전단과 현수막을 만들어 뿌렸고, 정민이 친구들 10여명이 매일 전국 각 대학 게시판(에브리타임)과 각종 커뮤니티, sns에 실종 전단을 게시하고 목격자를 찾아주었어요. 10명 모두 유치원, 초중고, 재수, 대학 친구들인데 이 친구들이 정말 자기일처럼 밤낮으로 게시하고 댓글 검색하고 목격자 연락처까지 찾아 저에게 전해주었어요. 이를 통해 실제로 유의미한 목격자들을 확보할수 있었고요. 2시 18분 사진 목격자도 이 친구들이 찾아줬습니다. 정말 제일 크고 강하게 영향을 준 아이들의 노력이고 이것때문에 (정민아버지)블로그도 같이 이슈화된 걸로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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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민씨의 친구들이 목격자를 찾기 위해 대화한 내용.  사진=손정민씨 어머니 제공

 

 

-유치원부터 대학까지면 서로 모르는 사이였겠네요. 

“그렇죠. 제가 한명씩 부탁하기가 어려워 단톡방에 초대하고 부탁했더니, 서로 소개도 하고 상황보고도 하고 문구나 컨텐츠 상의도 하더군요. 순식간에 엄청나게 파급력이 강했습니다. 너무 고마운 친구들이에요.”

 

사랑받고 자란 아이

 

-정민씨는 어떤 아들이었습니까.

“속을 전혀 안 썩이는 착한 아이였어요. 공부 열심히 하고 해주는 대로 잘 먹고, 딱히 사달라는 것도 없었고. 우리에겐 외아들이고 양가에서 사랑도 엄청나게 받아서 사랑받은 티가 나는 아이였죠. 외가에선 첫아이라고 사랑받고, 친가에선 막내여서 귀여움을 독차지했어요.중·고등학교 때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밤늦게까지 공부만 하고…. 이제 목표를 이뤘으니 앞으로 행복하게 살 날만 남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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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시절 손정민씨(왼쪽)와 아버지. 사진=손정민씨 아버지 블로그 

 

―A씨가 정민씨 실종 후에 ‘정민이가 요즘 힘들어한다’고 했다면서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자살이나 가출로 몰고가려 했던 거 같아요. 근데 정민이 카톡 보면 전혀 그런 거 없었고요. 몇주간의 힘든 해부학 실습과정을 마치고 월요일에도 좋아하는 친구들 만난다는 약속이 있었고, 그 후에도 쭉 친구들과 약속이 있었어요.”

 

―사건 당일은 세간에 알려진 대로 시험 때였습니까.

“아니에요. 보통 1~2주 간격으로 시험이 있는데 4월 시험이 다 끝났고, 다음 시험까지는 9일 정도 남아 있었어요. 또 6주간 하는 해부학 실습이 있었는데 그것도 끝나서 여유가 있는 상태였어요.”

 

―그래도 늦은 시간이라 걱정이 됐겠군요.

“많이 늦을 땐 거의 제가 먼저 카톡을 보내요. 새벽 2시 넘으면 제가 연락을 하고 ‘술 조금만 먹어’ 하면 정민이가 바로 답을 하고 더 안 먹고 들어오고 그랬는데, 그날은 1시 반 넘어 정민이랑 카톡을 했잖아요. 그래서 제가 마음을 놓아버린 거죠. 후회가 되고, 안 그랬으면 2시 이후에 연락을 제가 했을 거고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텐데…. ” 이때 어머니는 참고 있던 눈물을 터뜨렸다. 


“용서할 수 없어”


정민씨 부모는 인터뷰 내내 침착하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마무리 단계에 기자가 ‘A씨가 진심으로 사죄하면 용서하겠느냐’고 묻자 표정이 바뀌며 단호하게 말투가 변했다. 

 

―A가 이제라도 제대로 얘기하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검으로 돌아온 아이를 부검까지 해야 했어요. 절대 용서할 수 없어요.” (어머니)

“아들이 쓰러져 있는 그 사진을 보고 용서할 수 있는 부모가 있겠습니까?” (아버지)

 

아버지 손씨는 “A씨 측에서 신변보호 요청을 했다고 한다”는 기자의 말에 이렇게 답했다. “쇼(show)하는 거 아니겠어요. 오히려 신변보호 신청을 하면 이민이나 도망은 못 가겠네요.” 심신이 지친 아버지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어머니의 이야기다. 

“우리에겐 정민이가 전부였는데…. 지금은 진상을 밝히자는 목적이 있지만, 우리가 원하는 바를 얻고 난 후엔 뭘로 살아야 될지 모르겠어요. 정민이가 아팠다면 제가 눈이든 장기든 다 줬을 텐데, 통째로 내 몸하고 바꿔도 되는데, 우리는 살 만큼 살았는데, 아이는 그럴 기회도 안 주고 떠나버렸어요. 뭔가를 해줄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는 게 너무 마음이 아파요. 꿈을 이루기 위해서 마음놓고 놀지도 못하고 공부만 하다, 이제 뭔가 좀 알고 즐길 수 있는 시기가 왔는데 고생만 하다 간 것 같아서 아이가 너무 아까워요. 살아만 있었으면 행복하게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 수 있었을 텐데…. 우리도 다 해줄 수 있었는데….”


정민씨 부모는 “아들을 잃고 나니 온갖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며 지금까지의 사연을 토대로 사건이 일어나게 된 이유와 배경, 사건 처리 과정에 대해 다양한 추정을 내놓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괴로운 상상을 많이 해야 하는 부모의 처절한 마음이 느껴져 안타까웠다. 그들 부부와 정민씨가 한 점 억울함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글=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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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시간 분량의 인터뷰 전문(全文) 5 17일 발행 <월간조선> 6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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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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