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om Exclusive
뉴스의 人物/金石元 신임 전쟁기념관장 『전쟁은 역사책에나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예고 없이 우리 앞에 닥쳐오는 「현실」입니다. 애국심과 안보의식을 일깨우기 위해 비디오 세대들에게 視覺的으로 다가가는 기념관으로 거듭나겠습니』 지난 5월 10일 취임한 金石元(김석원ㆍ63) 신임 전쟁기념관장은 취임 一聲으로 『전쟁기념관을 模造品(모조품) 전시에서 탈피, 眞品(진품) 위주의 전시로 格을 한단계 높여나갈 방침』이라고 했다. 『6.25전쟁의 발발원인을 비디오 세대들에게 설명해도 피부로 느끼진 못합니다. 젊은세대들이 전쟁기념관의 전시물을 보면서 침략자가 누구인가하는 「解答(해답)」을 얻도록 하고, 戰禍(전화)를 이겨낸 한민족의 底力(저력)도 피부로 느끼도록 하는 게 전쟁기념관에게 주어진 임무입니다』 金관장은 부임한 지 나흘만에 부서 업무보고를 통해 업무 챙기기에 나섰다. 그는 遺物(유물) 확보를 위해 국립박물관과 협조하기로 하는 등 東奔西走(동분서주)하고 있다. 1994년 6월 출범한 전쟁기념관은 연평균 100만명의 국내외 관람객이 찾는 아시아의 名所(명소)다. 金관장은 전쟁기념관 개관 10주년을 맞아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기념관으로 도약해 청소년들의 護國(호국)의 전당으로, 가족 나들이 코스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했다. 金관장은 軍 시절 「작전통」 지휘관으로 이름을 날렸다. 주변에서는 金관장을 겸손하면서도 추진력이 강한 군인으로 기억한다. 그의 이런 스타일은 吳滋福(오자복) 現 성우회장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金관장이 15사단 39연대 작전주임으로 있을 때 吳회장은 39연대장이었고, 이때의 인연은 軍 복무기간 내내 이어졌다고 한다. 1940년 경북 영주 출생인 그는 영주 제일고를 졸업하고 1962년 갑종 166기로 임관했다. 1968년 2월, 그는 맹호부대(사단장 尹必鏞 소장) 기갑연대 3대대 작전장교로 베트남전에 참전한다. 그는 월맹군의 「구정 공세」 직후 戰場에 투입됐고, 「고보이 전투」등 越盟軍(월맹군)과 대대급 전투를 30여 차례를 치렀
미8군 사병 "SOFA 믿고 난동은 아니다" ------------------ 2004년 5월23일자 스포츠투데이에 실린 미 8군 사병 인터뷰입니다. 최근 주한미군 일부 병력의 이라크 차출과 관련, 미군들의 속내가 드러나 있어 눈길을 끕니다. 한동안 잠잠하던 서울 용산미군기지 앞이 최근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일부 미군의 칼부림 난동 사건과 미국 정부의 주한미군 이라크 파견 발표 등으로 미묘한 감정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20일 기자가 찾은 용산미군기지 앞은 전경과 시위대들로 북적거렸다. 부대 앞을 지나가는 미군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시위대를 애써 외면한 채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군당국에 따르면 미군들은 해외 파병이 필요할 경우 무작위 추첨을 통해 파병 인원을 결정한다. 또한 미국의 여러 해외 파병지 중 한국은 이라크에 이어 두 번째로 꺼려지는 곳이다. 전쟁 날 가능성이 크다고 여기기 때문. 이런 가운데 익명을 요구한 두 젊은 미군이 스투와 만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들은 “최근 다시 들끓는 반미감정 때문에 속이 상하지만 떠날때 떠나더라도 한국에 머무는 그날까지 주어진 임무를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국에 온 지 2년이 지났다는 A하사(30). 그는 다들 꺼리는 한국근무를 ‘자원’했다. “어렸을 때 태권도를 배우면서 알게된 ‘극동의 분단국가’ 한국이라는 나라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 태권도 선생님의 나라를 내 손으로 직접 지켜주고 싶었다”는 게 그 이유다. “하지만 당시 한국은 저를 반겨주지 않았어요. 연일 반미 시위가 일어나고 미군을 범죄자 취급했지요. 길거리에서 대놓고 손가락질하며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었어요.” A하사는 “한국은 오랜 우방국가여서 우릴 반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얼마 안 남은 계약기간이 채워지면 미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에요. 아마 다시 한국에 오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는 요즘 부대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나이와 계급을 밝히기를 꺼린 B씨
'현산어보를 찾아서(청람미디어)'라는 책이 나왔을 때 저는 저자가 32살(현재 33세)의 젊은 교사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모두 다섯 권으로 이루어 져 있는 이 책은 각 권이 4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입니다. 현산어보(혹은 자산어보)는 다산 정약용의 형님인 정약전이 1801년 흑산도에 유배생활을 하면서 쓴 흑산도 일대의 어류 보고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산어보를 찾아서'란 책을 몇 장만 넘겨 보면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얼마나 꼼꼼하게 자료 수집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저자는 책에 수많은 사진과 삽화 및 주석을 넣어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했으며, 정약전이 살았던 시대와 문화에 대해서도 광범위하게 고찰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이태원씨가 어제(19일) ‘신규장각’에서 개최한 ‘미래도서관 연구포럼’의 강사로 초청되어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날 두 분의 강사가 초청되었는데 이태원씨를 비롯 ‘다시 쓰는 택리지'를 쓴 신정일씨였습니다. 이 두분의 강사를 초청한 ‘新규장각’은 ‘광화문에 도서관을 세우자’라는 목표를 내걸고 활동중인 미래도서관 연구 단체입니다. 그저께 사단법인 등록을 마쳤습니다(홈페이지 주소: http://www.kyujang.org/, 네이버 카페 주소: http://cafe.naver.com/kyujang.cafe). 현직 고등학교 생물교사인 이태원씨는 이날 신규장각 포럼에 와서 ‘현산어보를 찾아서’란 책을 쓰게 된 동기와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이태원 선생님은 1996년 경 석사(서울대 생물교육학) 논문을 마치고 경남 마산에 있는 집에 갔다가 마산의 어느 서점에서 ‘자산어보’의 번역본(고 정문기 교수)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밤새 이 책을 읽어본 그는 200년 전 우리 조상이 이처럼 상세한 어류 조사보고서를 남겼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는 이 책의 내용을 하나씩 규명해 보고 자세한 번역본을 내겠다고 마음먹게 됩니다. 그 후 李선
시즌 맞은 계곡형 맹동지 신록의 골짜기마다 월척 몸부림 물에 잠긴 버드나무숲의 어른거리는 초록빛 수면에 떠있는 오색찌. 그 주변을 맴돌며 철퍼덕거리는 붕어들이 어신을 기다리는 꾼들의 애간장을 태운다. 〈산새들의 울음소리 울려 퍼지는 맹동지 상류의 새벽. 부스스 일어난 꾼들이 수몰 버드나무 근처로 조용히 찾아올 대물을 기다리고 있다.〉 5월2일 충북 음성군 맹동면 통동리에 있는 맹동지. 32만평 수면의 크고 작은 45개 골짜기마다 낚싯대를 드리운 ‘神仙’들이 가득하다. 서울을 비롯해 경인ㆍ충청지역에서 4백여 꾼들이 찾아와 모처럼 화창한 봄날의 신록을 만끽하고 있었다. 1983년 준공된 물 맑고 수심 깊은 계곡지인 맹동지 붕어는 이웃 초평지나 원남지보다 산란이 늦다. 이제야 상류와 중류 골자리로 올라붙은 붕어, 잉어, 향어들이 산란을 하느라 사방에서 소란을 피운다. 이때를 놓칠세라 꾼들이 맹동지로 몰려들어 대물을 연신 낚아내고 있었다. 맹동지 중상류권 호황은 5월 중순까지 이어지다가 이후 밤낚시 시즌을 맞는다. 조황문의 : 음성 중부낚시 043-535-1432. 맹동지 관리소 이재노씨 011-465-1898. (월간낚시 6월) 〈최상류 수몰 버드나무숲은 대물 붕어들이 우글거리는 최상의 포인트〉 〈“건너편에서 밤새도록 떠드니까 붕어들이 다 이쪽으로 몰려 왔나 봐요.” 최상류 관리사무소 건너편 산비탈을 타고 내려가 자리를 잡은 이천꾼 한상진씨는 1박2일 동안 40여수의 붕어를 낚았다.〉 〈5월1일 직장 동료들끼리 밤낚시를 왔다는 박용규, 김경호, 이한영, 유형근(왼쪽부터)씨가 밤사이에 잡은 준척 월척 붕어들.〉 〈문정규(왼쪽)씨가 낚은 40cm 향어를 친구 김영민씨가 들어 보이고 있다.〉 〈“우리 아빠가 낚은 토종붕어래요!” 중류 밭자리에서 아빠가 잡은 뼘치붕어를 동생과 함께 살펴보는 윤혜리양.〉 〈글루텐떡밥을 투척하고 있는 서울꾼 황용하씨. 그는 아침8시경 상류 4번 골자리
지난 5월2일 일요일 종묘제례에 참여했습니다. 재 작년인 2002년의 종묘제례가 월드컵으로 인해 밤에 거행되어서 아쉬움이 많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낮에 꼭 보고 싶었습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 때문에 종묘제례가 제대로 치루어 질 수있을 지 걱정을 하면서 30분 정도 늦게 도착했습니다. 이날 종묘제례를 본 느낌을 이곳에 글을 쓰려던 차 마침 오늘(7일) 자 조선일보에 종묘제례 참석자가 쓴‘독자의 편지’가 있어 여기에 먼저 소개합니다. --------------조선일보 독자의 편지에서---------- 추한 한국인 모습 제발 벗어나자 지난 2일 아이들과 함께 종묘대제(宗廟大祭)를 관람하러 갔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종묘제례와 제례악을 관람하려는 외국인 관광객과 일반관람객으로 붐볐다. 보슬비가 내렸지만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자녀들에게 우리 전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에 혼잡은 문제되지 않았다. 자녀에게 자세히 보여주려고 한 손으로 우산을 든 채 2시간여 앞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기다렸다. 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뒤쪽 처마에서 비를 피하던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주변은 시장바닥처럼 소란스러워졌다. 밀치고 들어온 한 아주머니는 일본인 관광객 사이에 자리를 잡았고, 뒤에 있던 친구까지 끌어들였다. 한쪽에선 30대 초반 여인이 앞으로 나가지 않겠다는 자녀를 야단치고 있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을 보러 참석한 외국인들의 불쾌해 하는 표정을 보았을 때는 비참했다. 무례한 한국인이란 인상을 갖고 떠날 외국인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편치 않다. 남을 배려해야 축제가 멋있어 진다. 김영서·서울보건대학 교수·경기 성남시 ------------------------------------------------------ 저는 30분 늦었기 때문에 위에 글을 쓴 교수님이 지적한 시간의 상황은 보지 못했지만, 위 지적이 아니더라도 종묘제례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이를 진행하는 주최측의 모습이 실망
엊그제 몇몇 일간지에 ‘우리의 김치가 일본의 기무치를 누르고 일본 자위대에 납품되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기사 내용은 물론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김치가 일본에서 생산된 김치를 누르고 납품되었다는 것이 요지입니다. 문제는 언론이 이런 기사를 쓰면서 꼭 ‘김치’와 ‘기무치’가 마치 다른 음식인양 구별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기무치’는 ‘김치’의 일본식 발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우리가 미국의 ‘맥도날드’를 미국에서 발음하는 것같이 정확하게 발음 하지 않지만 나름대로 노력해서 발음하듯이, 일본도 김치를 최선을 다해 원음(한국어)에 가깝게 표현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굳이 “한국의 ‘김치’가 일본의 ‘기무치’를 이겼다”는 식으로 표현 할 필요가 있을까요. 일본에서 생산된 김치가 일본인의 입맛에 변형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현상입니다. 맥도날드 한국지사에서 김치 햄버거, 불고기 햄버거를 만들어 팔듯이 일본도 그들의 입맛에 맛게 김치를 개발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김치는 맥도날드처럼 어느 한 회사가 개발한 고유 브랜드가 아니고 음식 자체이기 때문에 일본뿐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김치를 자기 입맛에 음식을 개발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기무치’가 자위대에 납품되었다고 하더라고 그것은 단지 일본에서 생산된 김치가 납품되었다는 뜻이지 우리 김치가 맛이 없다거나 우리가 음식 전쟁에서 졌다는 의미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일본인들이 자기 입맛에 맛는 김치를 ‘선택’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최선을 다해 김치를 ‘기무치’로 불러주는 것을 우리가 고마워 하지는 못할 망정 김치와 기무치가 다른 음식인 것처럼 구별하려고 달려드는 태도는 옳지 못하다고 봅니다. 일본이 ‘비빔밥’을 ‘비빈파’라고 부르면서 일본인이 좋아하는 바다 음식 몇 가지를 넣어 먹는다고 비빔밥의 국적이 어디 달아나지 않듯이 말입니다. 우리도 인도의 ‘카레’라는 음식을 먹으면서 밥을 섞어 먹기도 하고,
만민(萬民)이 기대고 산 ‘生居鎭川’의 진산 만뢰산성 어디나 명산에는 대찰(大刹)이 있다. 그 뿐인가. 나무와 바위와 계곡에는 저마다 전설이 열려있다. 명산 기슭에서는 그 산의 정기를 타고 태어난 명인들이 있다. 높기만 하다고 다 명산이 아니다. 산이 낮다 해도 산세나 풍기는 분위기가 뭔가 다른 산들이 있다. 김제의 금산사가 그렇고 경주 남산이 그렇다. 또 하나 옛부터 들이 넓고 물산이 풍부하여 살기 좋다 해서 ‘살아 진천, 죽어 용인’이라는 말 있었다. 그 말마따나 ‘생거진천(生居鎭川)’의 으뜸으로 알려진 만뢰산(萬賴山, 611.7m)이 진천에 있다. 일명 보련산·만노산·금물노산·이흘산이라고도 불렸던 이 산은 충남 천안시와 충북 진천군의 경계인 진천 연곡리와 백곡면 대문리에 솟아 있다. 만뢰산 기슭에는 우리나라 유일의 3층목탑이 있는 보탑사가 자리잡고 있는가 하면, 통일신라시대 명장 김유신(金庾信) 장군의 탄생지가 있다. 수해(樹海) 한가운데 펼쳐져 있는 만뢰산 연봉들은 활짝 핀 연꽃을 닮아 꽃잎처럼 부드럽다. 만뢰산 정상은 그 가운데 제일 큰 꽃잎이다. 우리나라 불교건축의 정수로 꼽히는 보탑사 3층목탑은 바로 연꽃술에 해당하는 곳에 앉혀져 있다. 진천군에서 제일 높다는 만뢰산은 옛날부터 군사요충지였다. 정상에는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 쌓았다는 둘레 1,300m나 되는 석성이 있다. 빗물을 모아 두었다가 썼을 우물터와 망루터·깨진 토기와 와당 그리고 이곳저곳에 나뒹구는 돌무더기를 들춰보면서 1,500년 전의 만뢰산성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그러나 최근 만뢰산의 모습이 확 바뀌었다. 우리나라에 3기 뿐인 고려 초기 때의 것으로 보이는 백비(白碑, 비문이 새겨있지 않은 비, 보물 제404호)와 5층 석탑만이 뒹굴던 비선골(碑立洞)에 큰 절이 섰다. 바로 그 절터에 우뚝 선 보탑사 3층목탑을 보려고 전국에서 수많은 산도들이 찾아온다. 20여 농가가 계단식 논농사를 지으며 조용히 살던 비선
진달래는 ‘참꽃’이라고도 합니다. 이른 봄 개나리와 함께 온 산을 분홍색으로 물들이는 진달래는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추억에 잠기게 되는 참으로 ‘신기한’ 꽃입니다. 초등학교 3~4학년 때입니다. 하루는 학교를 마치고 가까운 산 중턱에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우리일행 4~5명은 산으로 우르르 올라갔습니다. 진달래는 꽃이 연하고, 꽃을 따먹으면 별 맛이 없지만 그래도 조금 단맛이 나기 때문에 먹을 만합니다. 학교를 오가며 '뭐 재미있는 것 없나'하며 두리번거리며 다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먹음직스러운 진달래가 눈 앞에 잔뜩 있는 것을 그냥 지나치는 것은 촌 아이들의 습성상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진달래’를 열심히 따먹었습니다. 한참이나 따먹은 후 갑자기 아이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눈 앞이 캄캄해지고 머리가 헤롱헤롱하고 정신이 몽롱하여 한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 드러누워 잠을 잤습니다. 같이 꽃을 먹은 일행 중 두 명은 그래도 정신이 말짱한지 집으로 무사히 가서 부모님들께 아이들이 산에서 자고 있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가 먹은 꽃은 진달래가 아니라 진달래와 비슷한 ‘철쭉’이라고 부르는 꽃이었습니다. 철쭉은 꽃에 독성이 있어 많이 먹으면 위험하다고 합니다. 시골 아이들은 먹는 풀과 못 먹는 풀을 웬만하면 구별하는데 어떻게 시골 촌놈들이 대낮에 떼거지로 그런 실수를 했는지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어른들도 설마 떨떠름하고 맛없는 철쭉을 아이들이 따먹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하고 별로 주의를 주지 않았나 봅니다. 꽃 중에 제일 맛있는 것은 ‘아카시아 꽃’이라고 장담합니다. 5월이 되면 동구 밖의 아카시아 나무에서 풍겨나오는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찌릅니다. 낮은 곳에 있는 아카시아는 나름대로 열심히 따먹지만 키가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있는 것은 누나나 형들을 졸라 따 먹곤합니다. 아카시아는 꽃을 하나하나 따 먹는 것이 아니고, 꽃송이
모 인터넷 사이트에서 재미있는 글을 발견했습니다. 아마 언어에 관심이 있는 서울에 사는 어느 학생이 쓴 글 같은데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먼저 본인 허락 없이 옮겨서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아래에 인용 해 보겠습니다. ---------------------- 아 래 --------------------- 제가 흥미로운 예기 하나 해보려구요. 물론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서 줄곳 서울에서 자란 서울 토박이지만. 예전에 경상도 사투리에 관한 글을 본적이 있어서 그 기억을 더듬어보며 경상도 말의 장점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경상도 말은 서울 표준어보다 압축률도 뛰어나지만 또 다른 큰 장점이 있으니 바로 말의 높낮이로 표준어의 동음이의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네요.. 예를 들자면 한국어 "가지"란 말이 있습니다. "가지"는 1. 먹는 가지 2. 나뭇 가지 3. 갯수 셀 때(한 가지 두 가지) 4. 동사 (집에 가지) 의 여러 의미가 있지만 표준어에서는 동음이의어 문제는 다만 음의 장단 즉 발음을 길게 하거나 혹은 짧게 함으로 파악을 하거나 혹은 단순히 문맥으로 유추를 할 수 밖에 없죠. 하지만 경상도 방언은 다양한 음의 높낮이(Pitch)가 존재해서 단순히 음을 높였다가 내리던가 혹은 내렸다가 올리는 방식만으로도 동음 이의어를 경상도 주민들은 그게 무슨 단어인지 파악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지리적으로 볼 때 중국에는 4성이라는 성조가 있어서 음의 높낮이를 파악 할 수 있을뿐더러 베트남은 더 심한 5성, 게다가 일본도 이와 같은 음의 높낮이 (Pitch)가 존재 한다고 하네요. --------------------------------------------------------- 아울러 이분은 우리 말이 서울 지방의 말로 흡수되면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말이 오히려 퇴보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는 이야기를 덧붙혔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조금 국수주의적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한국어 자체가 언어 발달 단계상
아산 백제성터 꾀꼴성·물앙성터를 찾아서 “우리 동네 허물어지긴 했어두 백제 때 쌓았다는 산성이 있는 산이 있었유. 가을에 한번 가보니까 숲이 우거져 하늘이 안보이고 밤이 지천에 깔려 있던 데유. 가을에 밤 줍기 아주 좋아유. 봄에는 지나다 보면 온 산이 빨갛게 진달래꽃으로 물들어유. 건너편 산에 산성이 하나 더 있다구 하드먼유.” 천안 에델바이스 산악회 최인묵 회장은 천안 주변 고을의 지리와 풍수에 훤하다. 문화재에도 관심이 많아 천안의 유, 무형 문화유산를 찾아 현장 답사를 열심히 다니며 사진도 찍는다. 그를 따라 천안에서 아산방조제로 가는 628번 도로를 지나면서 스치는 아산시 음봉면의 꾀꼬리(=꾀꼴산)산과 물한산을 오른다. 산 정상에 백제시대 때 쌓은 석성이 두 군데나 있다는 것이다. 산에 널린 문화재를 둘러보려면 수풀이 덮인 여름이나 가을철보다는 낙엽이 진 겨울이나 새순이 돋기 전인 봄철이 제격이다. 산등성이나 산꼴짜기에 자리 잡은 성벽이나 고분들과 깨진 기왓장이며 토기 조각들이 널려 있는 옛 집터나 절터를 둘러보려면 3~4월이 제철이다. 문화재 뿐만 아니라 산 구석에 자리 잡은 너럭바위나 기암괴석을 둘러보는 시기도 바로 지금이다. 충남 아산시 음봉면 송촌리 느티나무 앞에 차를 세워두고 꾀꼴성이 있다는 마을 뒷산을 오른다. 마을을 지나니 절의 규모는 잘 갖췄으나 지은 지가 얼마 되지 않은 청계사에 다다른다. 답사 산행은 이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절 앞까지 차로 갈 수 있다. 널찍한 산길을 20분 정도 걸어 올라가니 나지막한 산마루에 올라선다. 1천 5백여 년 전에 쌓았으리라고 짐작이 되는 석성을 찾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꾀꼬리산 정상을 향해 줄달음친다. 산성이 자리 잡은 산들이 다 그러하듯 꾀꼬리산 산성에 오르니 아산시와 천안 일대가 다 내려다보인다. 꾀꼬리 앵(鶯)자를 넣어 앵리산성(鶯里山城)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둘레가 375m, 높이 3m의 석성으로 축성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백제가 공
아, 대한민국에 이런 멋진 낚시터가 있었다니! 중부고속도로 진천IC를 나와 초평 쪽으로 가다가 우측으로 진입하는 초평농공단지 주차장에서 내려다본 초평지 최상류. 바둑판같은 논두렁에 앉아 봄의 흙냄새를 맡으며 꾼들이 휘두르는 낚싯대와 낚싯줄이 사방에서 반짝인다. 갓 피어난 연두빛 물버들가지를 오가며 끊임없이 지저귀는 박새 소리를 들으며 봄기운을 온몸에 쬐고 있는 수많은 꾼들이 초평지 최상류의 초봄 명낚시터 농공단지 둠벙과 수몰 논바닥을 가득 메웠다. 농공단지는 물빼기 전 산란기에 폭발조황을 보이는 곳으로 중부권꾼들에게 인기가 높다. 현재 만수위로 물이 올라 찬 둠벙과 샛수로마다 삭은 수초더미 사이에서 때깔 좋은 붕어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조황문의 음성낚시 043-535-1432.
鄭東泳 사퇴는 鄭夢準 철회(2002 大選)와 동일효과? 1.양당구도 (2002년)한나라당對민주당 (2004년)한나라당對열린당 2.당대표간 대결 (2002년) 이회창 對 노무현 (2004년) 박근혜 對 정동영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의 인물 검증은 關心事 밖의 일 3.주요 이슈 (2002년)서민론,감성자극ex)노무현의 눈물TV광고 (2004년)탄핵심판,감성자극ex)3월1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당 의원들의 눈물, 박근혜의 눈물 ==>정책 대신 感性만 자극하는 선거전략 4.선거 한달 전 돌출사태발생 (2002년)노무현-정몽준 단일화 합의->노무현 지지도 급상승 (2004년)국회탄핵안 가결->열린당 지지도 급상승 ==>돌출사태 前 한나라당의 자세: 대선 때는 大選승리를, 이번 總選때도 승리를 기대 5.선거 직전 돌발상황 발생 (2002년) 12월18일, 정몽준 노무현 지지철회->민주당(노무현) 지지자 결집현상->노무현 당선 (2004년) 4월12일, 정동영 선대위원장(비례대표) 사퇴->열린당 지지자 결집?->열린당 과반 획득? ==>노무현(열린당) 지지자들의 결집 현상이 총선에서 주요 관심대상
정동영 열린당 의장이 60대ㆍ70대는 투표 날 집에서 쉬어도 된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는 『젊은이의 투표를 독려하기 위한 표현을 하다보니 말이 그렇게 되었다』고 변병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명색이 여당 당수라는 사람이 선거를 앞두고 기자와 카메라 앞에서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 평소 그의 인격과 사고의 깊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열린당 지지자들 입장에서는 『별것 아닌 일로 말꼬리 잡고 늘어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의 말이란 천금과도 같은 것이기에, 특히 일국의 지도자 급에 있는 사람의 말은 더욱 분별이 있어야 하기에 말꼬리를 잡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봅니다. 저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뭔가 나사 빠진 상태가 된 가장 큰 이유를 전통과 현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못하는 것에서 찾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도 이곳에 「재너머 이야기」란 제목을 붙여 놓고 글을 쓰면서, 아버지 세대와 우리 젊은 세대를 이어줄 수 있는 공감대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노인 공경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겼습니다. 노인 공경은 자기 부모나 조부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노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왔습니다. 따라서 노인들은 물질적 풍요는 부족할 지 몰라도 자부심을 가지고 사회의 일원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는 70세 이상의 노인들은 사형수라도 사형을 면해주었고, 아버지의 감옥생활을 자식이 대신 하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임금은 일정 기간마다 70세 혹은 80세, 100세 이상의 노인들 현황을 파악해 수시로 궁으로 초청해 잔치를 열었으며, 70세 이상의 원로 신하들을 위해서는 기로소를 두어 돈독한 대우를 해주었습니다. 심지어 80세 이상의 노인들은 천민이라도 천민신분을 벗어나게 해 주고, 형식적인 벼슬을 주어 함부로 대하지 않았으니 노인들을 국가차원에서 이처럼 깎듯이 대한 나라는 세계역사상 유래를 찾기 힘이 들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이처럼 나라의
총선을 보름 앞두고 있습니다. 최근 60~70년대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주축이 된 한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YS정권 당시 청와대 고위직을 지냈던 사람과 여론조사기관의 대표도 참석했습니다.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에 대해 참석자들간에 진지한 얘기가 오갔습니다. 탄핵, 총선, 盧武鉉 정부의 성격,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現위치 등에 대해 토론이 있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대목만 소개하겠습니다. 『역량 있는 者가 미래를 이끌어 가야한다.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닌 제3의 대안세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보수세력에 대한 외면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동안 한국은 해방이후 한 쪽만이 집권해온 세상이었다. 이제 그 반작용으로 이른바 진보를 앞세운 세력이 등장하고 있다. 국민들도 기존 집권세력에 대한 실망으로 열린당과 같은 새로운 세력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라는 것이 正反合과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반드시 발전한다는 보장은 없다. 正과 反이 대결하면서 합리적 모델인 合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전혀 엉뚱한 방향을 갈 수 있는 것이 사회이고 국가이다』 『지금은 소수의 정보생산자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영향을 받는 세상이다. 정보를 생산하는 사람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던 날 열린당 의원들이 「민주주의 수호」, 「국회 쿠데타」를 외치며 눈물흘리던 장면을 방송이 전국에 생방송했다. 국민들은 그것을 보고 분노하고 있다』 『문제는 정보의 왜곡이다. 그것이 과연 옳은가이다. 현재 한국의 인터넷 기반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아쉽게도 인터넷 기반 위에 흐르는 정보는 쓰레기 같은 잡스러운 것이 너무나 많다』 『열린당은 사람을 기분좋게 만들어주는 기획력을 가지고 있다. 大衆을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능력 때문에 지지를 받고 있다. 지금은 「다수의 지지한다」는 수치가 正義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사람들이 그것을 옳은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의 CEO라면 그 다수의 결과에 토대로 영업전략을 수행하
참으로 오랜만에 반가운 소식이 들렸습니다. 강원도 양구에서 여우의 사체가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1978년 지리산에서 사체가 발견된 이후 처음이라고 합니다. 생김새로 보아 토종여우가 확실하다고 합니다. 죽은 채로 발견되어 안타깝기 그지 없지만, 죽은 지 2~3일 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하니 필경 이 여우 외에도 몇 마리의 여우가 더 살아 있을 것입니다. 우리 민간 설화나 전설에 여우를 빼면 이야기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여우는 우리 가까이서 살아온 동물입니다. 1978년 이후 공식적으로 발견된 여우가 없다고 하지만, 저는 초등학교 때 여우 소리를 몇 번 들은 적이 있습니다. 밤에 산길을 걷다 “응애 응애” 하는 아기 울음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것이 여우 울음소리 라는 것입니다. 밤중에 아기 울음소리를 내기 때문에 여우는 사람들에게 그리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나 봅니다. 특히 죽은 지 얼마 안된 사람이 묻힌 무덤을 파내서 간을 빼 먹는다는 소문 때문에 우리 민족은 여우를 부정적으로 묘사해 왔습니다. 천년 묵은 여우는 사람으로 변신하는 등 요상한 짓을 많이 하여 더욱 평판이 좋지 않습니다. 경상도 북부지방에서는 여우를 '예끼'라고 부릅니다. 이 예끼란 놈은 사람이 혼자 밤길을 걸으면 앞에 나타나 사람 키를 훌쩍 뛰어 넘는다고 합니다. 그때 정신을 바짝 차리고 넘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만약 홀려서 넘어지는 날이면 간을 파 먹히는 것은 시간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여우보다 더 숭악한 놈은‘개호지’라는 정체불명의 동물입니다. 제가 개호지를 보았다는 어른들의 말을 종합하여 내린 결론은 개호지가 살쾡이의 일종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호지는 영악하기가 여우에게 절대 뒤지지 않으니, 이놈을 머리 나쁜 고양이과 동물이라고 보기에 무리가 따르기도 합니다. 개호지는 영악함이 여우 뺨치는 수준입니다. 개호지는 밤길을 걷는 사람에게 흙을 퍼 부어 눈을 뜨지 못하게 하여 잡아 먹는다고 합니다. 꼬리에 흙을 묻혀 사람에게 뿌린
월척 몸짱! 겨울과 봄 사이, 꽃샘추위가 뼛속까지 스며든다. 이런 늦추위 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붕어들은 기지개나 켰을까? 이런 궁금증은 금방 풀렸다. 2월29일 일요일, 바지장화와 보트를 이용해 수초치기를 전문으로 하는 꾼들 1백여명이 몰린 정읍 애당지에서 월척을 포함해 씨알 좋은 붕어들이 마릿수로 쏟아졌기 때문이다. 전북 정읍시 소성면 애당리에 있는 애당지는 2천여평 규모의 방죽형 저수지로 지난해 월간낚시가 처음 소개한 이후 서울의 우정, 한일, 흥인낚시회 등 수초구멍치기를 즐겨하는 낚시회들의 단골터가 됐다. 이날도 상류 부들밭 사이에 지렁이 미끼를 드리운 꾼들은 연신 월척 준척 붕어를 뽑아냈다. 월척만 5마리, 수초더미 속에서 때깔 좋은 붕어들이 몸부림치며 얼굴을 내밀었다. 어느덧 보트와 바지장화 수초치기가 최대의 호황을 누리는 시즌이 열린 것이다. 조황문의 서울 우정낚시 02-355-6666.
탄핵을 반대하는 집회가 광화문 네거리에서 연일 열리고 있습니다. 여론조사에서는 조사대상자의 70%정도가 탄핵을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탄핵역풍을 맞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일부 의원들은 탄핵철회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탄핵 찬ㆍ반 집회가 선거운동 효과를 낳는 측면도 있습니다.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는 한겨레신문 홈페이지에 「당신들은 미쳤다」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정씨는 『국민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기들 이익에 따라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탄핵한 사실에 분노하는 것』이라면서 『야당과 수구언론은 그들 전체를 친노그룹으로 매도하거나 특정 정당 총선전략의 일환으로 몰아붙인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조선일보 칼럼에서 탄핵반대 여론이 盧武鉉 대통령의 책임까지 면제받는 非이상적인 현상을 꼬집었습니다. 유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동아일보 칼럼에서 現 정부를 『털끝만큼도 사회통합을 고려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없는 정권』이라면서도 한나라당과 민주당 내에서 일고 있는 탄핵철회론에 대해 『탄핵이라는 「장난」을 저지른 의원들에게는 인격살인을 당해 물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한 기업인의 마지막 자존심마저도 찾아 볼 수 없는가』라며 비판했습니다. 아래에 정혜신, 윤평중, 유석춘씨가 쓴 글을 순서대로 올렸습니다. 한번 精讀(정독)해보시죠. 1.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당신들은 미쳤다」 의회 쿠데타라고까지 표현되는 야3당의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보면서 한 시인은 ‘나는 총을 들고 싶었다’고 절규한다. 그의 목소리는 바늘처럼 가슴을 찌른다. 하지만 부당한 탄핵에 대한 국민들의 정당한 분노를 친노그룹의 과격한 정치행동으로 규정하는 수구언론의 작태는 여전하다. 지난 토요일 한 조간신문 데스크 칼럼의 제목은 ‘이제 다들 제자리에 앉자’였다. 탄핵안이 가결된 전날의 여의도 거리가 친노·반노 단체들의 격렬한 집회로 갈렸다며 ‘나라의 두 동강 현상’을 걱정한다. 아직 이 어처구니없고 끔찍
바른선택국민행동, 자유시민연대등 300여개 단체로 구성된 ‘노무현 대통령 탄핵지지 국민연대’ (대표 임광규) 회원등 5천여명은 19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국민의 공적 KBS 응징 국민대회’를 가졌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지지 국민연대는 ‘헌정파괴, 국회 파괴를 선동하는 KBS 관계자를 내란 선동 혐의로 고발하고 시청료를 내지 말자.’며 ‘국회는 빨리 시청료 분리법안을 통과시키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집회 장소 곳곳에는 ’노무현 정권의 나팔수 KBS', ‘사당(私黨) 방송국 자폭하라‘등의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참가자들은 KBS란 글씨에 X자 표시를 한 깃발을 흔들며 ’KBS는 여론 선동 중지하고 정연주 사장은 물러나라.‘ ’탄핵반대 여론 조작하는 KBS를 끝장내자.‘란 구호를 외쳤으며 ‘영어로 NO KBS,' ’시청료를 거부한다.’등의 구호가 적힌 TV 6대를 각목으로 부수는 퍼포먼스도 벌렸다. 이날 노무현 탄핵지지 대학생 모임인 ’청년 아카데미‘와 미래한국연구회’ 소속 대학생 100여명은 ‘선동방송 KBS 시청료 물어내라,’ 'KBS 연기대상 노무현‘등이 적힌 플래카드와 함께 ’근조 KBS'라고 적힌 카드를 들고 입장하여 ‘KBS장례식’ 퍼포먼스를 벌려 참가자들의 박수 갈채를 받았다. 이들은 ‘대통령이 탄핵 될만한 사유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반 국민들이 방송 보도만 보고 감정적으로 대하는 것 같아서 이를 바로잡기 위해 시위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대회가 끝날 때쯤 참가자들은 KBS 본관을 인간 띠잇기로 둘러싸고 ‘내란 선동하는 KBS에 국민들은 분노한다.’등의 구호를 외쳤다. 한때 참가자들은 퍼포먼스에 사용했던 TV 6대를 불태워 KBS 본관 앞이 검은 연기로 뒤덮혔으나 소방차가 출동해 이를 곧바로 진화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지지 1000만인 서명운동도 함께 시작한 이날 대회에는 경찰 21개 중대 5000여명이 KBS 본관 앞을 막아 만일의 충돌에 대비했다.
金大中 정부 당시 청와대에서 고위직을 지냈던 한 人士를 만났습니다. 저녁 식사 겸 소주 한 잔 했습니다. 안주는 감자탕, 술은 소주였습니다. 소주 세 병을 마시는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개인적인 일부터 정치 현안까지. 그 분은 필자에게 몇 가지를 주문했습니다. 月刊朝鮮이 그동안 金大中 前 대통령과 金大中 정권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를 비교적 많이 보도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은 月刊朝鮮에 대해 개인적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月刊朝鮮이 그동안 구축해온 역사적 역할을 인정하고, 향후 月刊朝鮮이 풀어야할 과제 등을 제시했습니다. 그 분은 月刊朝鮮에 대해 애정어린 비판을 한 것입니다. 소주 잔이 몇 잔 돌았습니다. 취기도 올랐습니다. 대화의 소재는 자연스럽게 탄핵정국으로 옮아갔습니다. -도대체 대한민국의 정치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당분간 힘들지 않겠어요. 청와대와 국회가 서로 싸우고 있으니』 -탄핵안이 가결됐는데 잘잘못을 따지는 건 의미가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더 잘못한 겁니까. 『대통령이 잘못한 건 사실이죠. 그런데 대통령에게 뺨 한 대 때리면 될 일을 국회가 총을 쏜 겁니다. 문제는 그 총알이 엉뚱한 데 가서 꽂힌 겁니다. 대통령은 목숨을 건진 것은 물론이고 자기 집안을 살리고 도와주는 사람까지 얻은 셈입니다』 -일부에서는 盧대통령이 탄핵안 가결사전에 계획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탄핵을 앞두고 어떤 전략을 짜지는 않았을 겁니다. 아마도 盧대통령은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래서 자기 방식대로 11일날 기자회견을 하고 사과도 안했습니다. 설령 탄핵안이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憲裁에서 통과되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을 겁니다. 이 과정에서 盧대통령 자신은 이런 생각을 했을 겁니다. 「탄핵정국에서 나는 잃을 것이 별로 없다. 잘되면 잘 되었지 손해는 안본다」고 말입니다. 대선과 총선은 다르다고 하지만, 이번 총선은 지난 2002년 대선의
최도술과 再신임 발언 盧武鉉 대통령의 탄핵안이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입니다. 「헌정 초유의 사태」, 「국가 위기 상황」이라는 말이 연일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盧武鉉 정권의 13개월을 되돌이켜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盧武鉉 대통령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정치적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헌법과 헌법기관을 통해 상황를 모면했다는 점입니다. 2003년 10월10일 盧武鉉 대통령은 예정에 없던 「긴급 국정현안 브리핑」을 통해 『국민에게 再신임을 묻겠다』고 폭탄발언을 했습니다. 당시 청와대는 『2003년 12월15일 前後』라며 구체적인 날짜까지 지정했습니다. 憲政史上 유래가 없는 일로 政局은 再신임 국면에 빠져 들었습니다. 당시 盧대통령은 核心측근이었던 최도술 前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SK 비자금 수수 의혹으로 위기 상태에 놓였습니다. 그러나 盧대통령에게 치명타를 가할 것으로 예상됐던 「최도술 비리사건」은 再신임 발언 이후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갔습니다. 대신 정치권에서는 違憲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李萬燮(이만섭) 前 국회의장은 2003년 10월28일 盧대통령의 再신임 국민투표 제안이 違憲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李 前 의장의 주장은 이랬습니다. 『대통령 중심제 下에서 대통령직을 그만두는 방법은 자진사임과 탄핵밖에 없으므로 再신임 국민투표는 違憲이며, 대통령직에 대한 再신임 국민투표는 국민의 행복추구권, 재산권, 선거권 등 기본권을 침해하는 공권력 남용이므로 違憲이다』 당시 언론은 盧대통령의 再신임 여부를 묻는 여론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결과는 盧대통령에게 유리하게 나타났습니다. 대통령을 뽑은 지 일년도 되지 않은 상황 탓인지 여론은 「再신임한다」는 것이 50%를 넘었습니다. 측근비리로 인한 盧대통령의 위기는 어쨌든 여론上으로 용서받는 셈입니다. 재판관 9명 중 각하 5명, 위헌 4명 정치권에서 再신임 違憲 논란은 계속 됐습니다. 再신임 違憲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
봄 눈 녹은 산골짜기 양지바른 언덕이나 밭둑을 거닐다보면 어느덧 피어난 들꽃들이 눈에 띈다. 낙엽 속에서 꽃대를 먼저 내밀고 핀 노루귀, 양지바른 밭둑에서 겨우내 푸르름을 잊지 않고 있다가 앙증맞게 짙은 하늘색 꽃을 피운 봄까치꽃, 군데군데 잔설이 남아 있는 산기슭에서 맨 먼저 꽃방울을 터트린 복수초. 애잔한 아름다움을 간직하지 않은 꽃들이 없다. 4월은 들꽃산행 계절이다. 무조건 산을 오르기보다 메마른 풀숲에서 강인하게 꽃을 피어 낸 들꽃의 아름다움을 눈여겨보는 즐거움도 함께 한다. 이른 봄에 피는 들꽃들은 무리 지어 피어난 들꽃들이 아니면 작아서 눈에 잘 띄지 않다. 이러한 들꽃들은 한 발작씩 힘들여서 산을 오를 때 눈에 잘 띈다. 오르막길에서 잘 보이나 산을 내려 올 때는 잘 보이지 않는다. 힘들이지 않고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는 것처럼 어떤 목표를 향해 정진을 하다보면 어느덧 정상에 다다르고 그과정에서 얻는 것들이 많다. 너무 편하게 산행을 하다보면 들꽃들이 눈에 잘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우리네 인생살이에서 보고 느끼는 것과 똑 같다. 계절마다 피고 지는 들꽃의 종류와 생태를 공부해 두면 관찰하기 쉽다. 아는 것만큼 들꽃들이 보인다. 1천m가 넘는 큰산 아래 자락에는 신록이 물들었어도 오를수록 기온이 4-5도 낮아져 산 윗자락 골짜기에는 겨울이 그대로 머물고 있다. 이런 산에서는 초여름에서 이른봄에 피는 들꽃들을 두루 관찰할 수 있다. 그냥 보고 지나칠 것이 아니라 들꽃의 자태와 생태-꽃잎과 잎사귀와 줄기와 서식 환경을 사진 찍어두면 좋은 교육자료도 된다. 그뿐만 아니라 들꽃의 아름다움을 담은 멋진 예술 작품도 된다. 먼저 클로즈업을 해서 꽃모양을 잘 나타내고 다른 커트는 주변 서식 환경이나 배경도 잘 나오게 찍는다. 꽃잎의 빛깔과 모양을 잘 나타내려면 햇빛을 등지고 찍기보다는 빗겨오는 햇살을 이용해서 찍어야 한다. 들꽃 무리는 배경이 되는 주변 산세도 모든 다 잘 나오도록 초점을 맞추고 조리개를 조여서 찍는다. 카메라 앞에
경기도 인천시 김포반도의 끝머리에 있는 문수산(文殊山, 376m) 정상에 서면 북한의 개풍군과 황해도 연백 일대의 산천이 손에 잡힐듯 내려다 보인다. 김포반도에서 제일 높은 문수산은 크리스마스 때나 석가탄신일 때 오색등을 밝히는 애기봉(愛妓峰)보다 더 높다. 김포군 월곶면 군하리 뒷산인 문수산은 강화도를 건너는 다리 맞은편에 높이 솟은 봉우리로, 48번 국도를 따라 강화도를 가다 강화대교를 건너기 직전 오른쪽에 보이는 산이다. 큰길에서 올려다 보면 산의 등성이를 따라 쌓은 성터의 흔적을 더듬어볼 수 있다. 성(城)은 예로부터 흐르는 강줄기를 끼고 있으면서 동서남북 들판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쌓았다. 문수산도 강화도와 한강 하구를 지키는 전략적 요충지였기에 정상과 서쪽으로 뻗어내린 두줄기의 산등성이와 해안에 굳건한 성을 쌓았다. 문수산은 한강만 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임진강도 끼고 있다. 북쪽으로 이 두 강이 합쳐져서 서해로 유유히 흐르며, 두 물줄기의 합수머리가 내려다 보이는 문수산 서쪽 기슭에 문수산성(文殊山城)이 있다. 한강 너머 북쪽으로 북한산과 그 자락에 자리를 잡고 있는 서울시 그리고 경기도 고양시가 보인다. 서쪽으로는 강 같은 바다 건너로 강화도 땅이 손에 잡힐 듯 내려다 보인다. 남쪽으로는 반짝이는 인천 앞바다와 대형여객기가 쉼없이 뜨고 내리는 영종도도 보인다. 북쪽으로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갈 수 없는 땅 북한의 개성시가지와 송악산이 아스라이 보인다. 그뿐인가. 강 건너 마을 개짖는 소리도 들릴듯한 황해도 연백평야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이처럼 문수산성이 있는 문수산은 지척에 살면서 오가지 못하는 민족 분단의 아픔을 실감하는 현장이기도 하다. 문수산 산기슭과 해안을 성채로 연결해 쌓은 둘레 2.4㎞의 문수산성(사적 제139호)은 1694년(숙종 20)에 쌓은 성이다. 강화도 갑곶진(甲串鎭)과 마주보며 강화도 입구를 지키는 문수산성에는 취예루(取豫樓), 공해루(控海樓) 등 문루와 세 군데의 암문을 두었
아차산(峨嵯山)의 아차산성 북한산이나 남산에 올라 서울의 풍수만 보아온 이들이라면 동쪽 광나루 한강변에 우뚝 솟은 아차산(287m)에 올라 서울이 앉은 자리를 둘러보라, 또한번 기막힌 풍수에 감탄하게 된다. 한북정맥의 한 지맥이 축석령에서 가지를 쳐 수락산과 불암산으로 이어내려오다가 한강에 잠기는 자락에 아차산은 솟아 있다. 중랑천을 가운데 두고 서울의 진산(鎭山)인 북한산과 마주보고 있는 아차산은 동쪽으로 왕숙천을 끼고 있고 남쪽으로는 한강을 끼고 있다. 남북으로 길게 누운 아차산 줄기는 용마봉(348m)에서 우뚝 솟았다가 망우리 고개까지 이어지며 잠시 머리를 숙인 후 불암산(508m)으로 어어져 북쪽으로 뻗어간다. 서울의 동부지역을 감싸고 있는 아차산은 가까이 중랑구, 광진구, 강동구 주민들과 경기도 구리시 주민들의 휴식처이기도 하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늑대·여우가 우글거려 동네 사람들이 사냥을 다녔다는 아차산. 지금은 산자락마다 아파트들이 들어서서 도시 한가운데 떠있는 무인도 같은 산이 돼버렸다. 골짜기 능선마다 역사의 발자취 남아 행정구역으로는 서울과 경기도 구리시가 인접하고 있다. 워커힐 뒷산으로 더 잘 알려진 아차산에는 백제·신라·고구려 때 축조한 산성이 있다. 무너져 내린 토사에 묻힌 산성은 지금 보아도 산성임을 알 수 있게 희미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아차산성 성터의 상당 부분이 워커힐호텔과 그 주변 아파트 공사를 하면서 훼손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같은 아차산성은 일명 아단성(阿旦城), 아차성(阿且城), 양진성(楊津城), 광진성(廣津城) 등으로 불린다. 1973년 사적 제234호로 지정된 이 산성에서는 한강 건너로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이성산성, 남한산성, 미사리 선사유적지, 암사동 선사유적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아차산 남쪽 봉우리(205.5m)를 중심으로 축조된 산성은 작은 계곡을 끼고 있다. 길쭉한 6각형 모양으로 전체 길이는 1,125m, 내부
충주 남산성(南山城) 충주의 남산(南山, 636m)은 15만 충주 시민들의 모산(母山)이다. 동트기 전 새벽부터 시도 때도 없이 남산을 오르내리는 충주 사람들에게는 삶의 의욕과 용기를 불어 넣어주는 산이다. 충주는 서쪽으로 달천과 북동쪽으로 계명산(鷄鳴山, 775m), 남동쪽으로 남산, 남쪽으로 대림산(489m)과 대룽산(459m)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자리잡고 있다. 충주의 진산인 남산 옛부터 충주 읍에는 연꽃 무늬 모양으로 화려하게 쌓은 꽃성(蘂城) 즉, 예성이라 부르는 읍성이 있었고 충주의 진산(鎭山)인 남산에는 굳건한 산성을 쌓았다. 시내에서 빤히 올려다 보이는 남산은 충주시내 동쪽에 남북으로 길게 누워 있다. 남산 너머는 충주호. 그야말로 산과 물이 어우러진 곳이 충주이며, 그 한가운데 기(氣)가 세다는 남산이 떡 버티고 있다. 이웃의 계명산이 더 우람해 보이기는 해도 사람들은 남산을 더 가까이 하고 있다. 남산에서 보면 멀리 남쪽으로 조령산(1017m)과 월악산(1093m) 줄기가 병풍처럼 늘어섰다. 남산의 소나무는 원래 우리 소나무인 적송이었으나 일제시대에 다 베어가 사라지고 대신 잡종 소나무들이 터를 잡고 서있다. 남산의 사계절 가운데 가장 좋은 때는 봄. 늦은 봄 신록이 물들기 시작한 남산의 남쪽 능선 길은 진달래와 철쭉으로 뒤덮인다. 남산에 피는 철쭉은 다른 철쭉과 달리 빛깔이 조금 하얗다. 소백산맥에서 시작해서 조령산에서 만 볼 수 있는 꼬리 철쭉이다. 꼬리 철쭉은 겨울에도 잎이 지지 않고 새파랗게 살아 있다. 신록으로 물든 남산은 아침·저녁·낮에 따라 빛깔이 다다르다. 그래서 남산의 사계절 가운데 남산의 봄을 제일로 친다고 한다. 삼국시대 여러나라의 각축장이었던 충주 이런 남산의 중턱에는 일명 남산성(南山城), 금봉산성(錦鳳山城)이라고 부르는 성이 있다. 충주시에서는 이곳을 충주산성이라고 못박아 놓았지만, 충주사람들은 그저 남산에 있는 성이니까 남산성으로 안다. 충주분지의 동서 남북 여러
‘한국판 마추피추’ 가평 운악산성 해발 1천미터나 되는 험준한 바위산 중턱에 언제 누가 쌓았는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석성터가 최근에 발견됐다. 한국판 마추피추라고 불리우는 경기도 가평군 화현면의 운악산(雲岳山 935.5m)에 있는 운악산성이다. ‘경기오악’의 하나인 유명산 운악산은 경인지역 등산인이면 누구나 한 번쯤 가보았던 산이다. 그러나 운악산 중턱에서부터 시작하여 정상을 잇는 삼국시대 말 고구려의 부흥운동을 일으켰던 궁예가 쌓았다고 전해 내려오는 산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거의 없다. 운악산의 서쪽 깊은 골짜기와 기암절벽으로 이뤄진 산등성이를 이은 운악산성은 일부 구간을 남기고 허물어져 산비탈 아래로 흘러내렸지만 험준한 산곡대기에 자리잡은 운악산성의 형세는 궁예와 고려 태조 왕건의 싸움, 병자호란 등 우리 민족이 겪었던 비장했던 지난 날의 역사를 뒤돌아보게 한다. 운악산은 서울의 북한산·도봉산·관악산 다음으로 경인지역 등산인들이 많이 찾는 곳의 하나이면서도 길이 2.5km쯤 되는 산성이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무심히 지나치면 돌담이요 돌 무더기에 지나지 않을터이지만, 1천2백여년 전에 쌓은 산성이라는 것을 모르고 지나치기 일쑤이다. 운악산의 한 구석인 운악산성을 둘러보는 산성일주 산행 코스는 서울~일동 47번 국도 포천군 화현면 화현리 운주사나 대원사 입구에서부터 시작된다.한겨울이면 뾰쭉한 봉우리 사이에 걸린 거대한 빙폭이 차창 너머로 올려다 보이는 산이다. 많은 등산인들은 가평군 하면 하판리에서 현등사를 거처 운악산 정상을 오른 다음 포천군 화현면 화현리 대원사 코스나 운주사 코스로 내려온다. 파주군 감악산(675m)·가평군 화악산(1468.3m)·개풍군 송악산(560m)·서울 관악산(629m)과 함께 경기 5악의 하나로 손꼽히는 명산인 운악산은 옛부터 경인지방의 무속인들이 찾아와 치성을 드리는 민속 신앙의 근거지로 충남 계룡산 만큼이나 산 곳곳을 훼손하고 있어 등산인들의 이맛살을 찌프리게 하는 곳이다.
'지방선거 구인난' 국민의힘, 추미애에 맞설 경기도지사 후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