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듣는 공연 넘어 ‘겪는 음악’으로”…크라프트베르크 서울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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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4일 오후 8시, 서울 영등포구 명화라이브홀. 독일 전자음악 그룹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의 내한 공연은 시작부터 익숙한 듯 낯선 감각을 불러냈다.


공연을 지배한 것은 ‘새로움’이 아니라 오히려 ‘익숙함’이었다. 사운드는 이미 귀에 들어와 있었다. 20세기 음악이라는 인상이 강해서인지 그 패턴과 구조는 낯설지 않았다. 21세기 전자음악 전반에 스며든 원형을 실제로 마주하는 순간, 관객은 처음 보는 음악인데 이미 알고 있는 묘한 체험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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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석이 스탠딩인 객석 분위기도 인상적이었다. 남성 관객 비중이 높았다고 할까. 테크노 신디사이저 사운드를 중심으로 형성된 청취 문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외국인 관객도 적지 않았다. 중년의 서양 남성들이 다수 보였고, 곳곳에 중국어가 들렸다. 아마도 성조 때문이 아닐까. 친근함이 느껴졌다.


객석에서 몸을 흔드는 관객이 많았지만 과도한 충돌이나 간섭은 없었다. 디스코텍을 연상시키는 장면과, 움직임 없이 무대를 응시하는 관객이 공존했다. 일부는 가만히 서 있는 관객을 향해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공연을 ‘즐기는 방식’ 자체가 서로 다른 층위로 나뉘는 풍경이었다. 서로 다름이 공존한다고 할까.


무대는 전통적인 밴드 공연과는 전혀 달랐다. 기타와 드럼이 아닌 신디사이저와 영상이 중심을 이뤘다. 반복되는 이미지와 사운드가 결합된 일종의 ‘설치 무대’에 가까웠다. 인간 연주보다 시스템이 전면에 나선 퍼포먼스였다.


대표곡 Autobahn, The Robots, Computer Love, Trans-Europe Express는 공연의 중심축이었다. 고속도로, 네온 그리드, 로봇 이미지가 음악과 함께 유기적으로 작동했다. 입체 영상과 사운드의 동기화는 완벽에 가까웠다.


흥미로운 점은 영상이었다. 요란한 3D 효과를 앞세우기보다 절제된 그래픽을 유지했다. 테크노 음악에서 영상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구조를 완성하는 요소라는 점을 보여준다. 지나치게 앞서거나 뒤처지지 않는 균형감이 공연 전체를 지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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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 네 명의 멤버는 연주자라기보다 장치에 가까웠다. 연주 자체의 화려함보다, 그들이 구축한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가 중요했다. 공연이 진행될수록 이 낯선 형식은 점차 설득력을 얻었고, 오히려 그 정교함이 두드러졌다.


결국 관객은 노래를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구조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때문에 이날 공연은 단순한 라이브 무대를 넘어선다. 끝난 뒤에도 ‘봤다’가 아니라 ‘겪었다’는 감각으로 남는다.


크라프트베르크의 서울 공연은 전자음악이 어디에서 출발했고,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동시에 보여준 자리였다. 50대의 기자 귀에도 익숙하게 들린 이 사운드는, 이미 우리 시대의 음악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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