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와대 민정수석실 등에서 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들 보라고 페북에 글 올렸다”
⊙ “反日 캠페인, 原電 폐기, 소득주도성장… 모두 대한민국을 멸망의 길로 끌고 들어가는 정책들”
⊙ “조국, ‘선비의 임무는 直言極諫’… 페북에 ‘죽창가’ 올리고, 하루에 3번이나 프사를 바꿨다”
⊙ “문체부가 해야 할 진짜 중요한 일은 民度 높이고 애국심 갖게 하는 것… 북한이 미사일 쏘는데 남북 체육·문화 교류 이해 안 가”
⊙ 대학 시절 운동권… 교사생활 거쳐 뒤늦게 고시 합격, 2017년 문체부 노조로부터 ‘바람직한 관리자 賞’ 받아
韓民鎬
1962년생. 서울대 역사교육과·미국 카네기멜론대 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졸업 / 문화체육관광부 공간문화과장·국제문화과장·지역민족문화과장·장관정책보좌관·국제체육과장·문화여가정책과장·미디어정책관·체육정책관·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사무처장 역임
⊙ “反日 캠페인, 原電 폐기, 소득주도성장… 모두 대한민국을 멸망의 길로 끌고 들어가는 정책들”
⊙ “조국, ‘선비의 임무는 直言極諫’… 페북에 ‘죽창가’ 올리고, 하루에 3번이나 프사를 바꿨다”
⊙ “문체부가 해야 할 진짜 중요한 일은 民度 높이고 애국심 갖게 하는 것… 북한이 미사일 쏘는데 남북 체육·문화 교류 이해 안 가”
⊙ 대학 시절 운동권… 교사생활 거쳐 뒤늦게 고시 합격, 2017년 문체부 노조로부터 ‘바람직한 관리자 賞’ 받아
韓民鎬
1962년생. 서울대 역사교육과·미국 카네기멜론대 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졸업 / 문화체육관광부 공간문화과장·국제문화과장·지역민족문화과장·장관정책보좌관·국제체육과장·문화여가정책과장·미디어정책관·체육정책관·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사무처장 역임
- 사진=조진우
지난 8월 20일 JTBC는 “친일이 애국?… ‘망언 자랑’ 고위 공무원 징계 회부”라는 보도를 내보냈다. JTBC는 “‘지금은 친일을 하는 것이 애국이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부끄럽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의 현직 고위 공무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국민을 모욕하는 듯한 표현도 나오는데, 정부가 이 공무원에 대한 징계 절차에 들어갔습니다”라고 보도했다.
다음 날부터 인터넷 매체 등에서는 이 ‘고위 공무원’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도 비난성명을 발표했다.
이 소식을 접하면서 문득 몇 년 전 문화계 사정에 밝은 지인(知人)이 “문체부에 아주 애국심 강하고 소신 있는 과장급 공무원이 하나 있다”고 말한 게 생각났다.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그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로부터 40일이 지난 10월 1일 우파인사들의 인터넷 카톡방(카카오톡방)에 “페이스북에 문재인(文在寅) 정권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한민호 문체부 국장이 파면됐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지인에게 확인해보니 역시 그 사람이 맞았다. 한민호(韓民鎬・56). 박근혜(朴槿惠) 정권 시절 국장(2급)급인 문체부 미디어정책관·체육정책관을 지냈고, 얼마 전까지 국무총리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 사무처장으로 있던 인물이다.
기자는 10월 2일 한민호 국장 파면에 대한 기사를 인터넷 매체 <월간조선 뉴스룸>에 올렸다. 이 기사는 하루 만에 1만여명, 일주일 사이에 3만2000여명이 볼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좀 더 자세한 얘기를 듣기 위해 10월 7일 한민호 전 국장을 만났다. 약속장소에 나타난 한 전 국장은 머리털을 완전히 밀어버린 모습이었다.
“대한민국을 멸망의 길로 끌고 들어가”
― 멋있습니다.
“굉장히 편해요. 머리카락이 얼마 안 남아서 오래전에 밀어버렸습니다.”
― 파면 통보를 받았을 때 느낌은 어땠습니까.
“페북(페이스북)을 전체 공개로 해놓고, 거기에 소속과 신분까지 밝히고 이런 얘기를 한 것은 어느 정도 불이익을 각오하고 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 특히 노모(老母)께서 놀라고 힘들어하시는 걸 보니 그건 조금 힘드네요.”
― 불이익을 각오하고 있었다는 건, 작심하고 페북에 글을 썼다는 얘긴가요.
한 전 국장은 망설임 없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네. ‘최악의 경우 파면까지 당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얘기는 해야겠다’ 하고 글을 올린 겁니다. 국대떡볶이 사장님도 ‘이 나라가 이렇게 망하나 저렇게 망하나, 할 말은 해야겠다’고 했잖아요. 그 말을 듣고 ‘동지가 또 있구나’ 싶어 반가웠습니다.”
― 그분은 내일 인터뷰할 겁니다.
“한번 만나고 싶네요.”
― 자신이 페북에 쓴 글들이 악의적으로 보도됐을 때 느낌이 어떻든가요.
“제가 페북에 올리는 글들을 청와대 민정수석실이나 민주당 사람들이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들이 보라고 올린 겁니다.”
― 강단이 보통 아니네요.
“반일(反日) 캠페인, 원전(原電) 폐기 정책, 소득주도성장. 이런 것이 모두 대한민국을 멸망의 길로 끌고 들어가는 정책들입니다. 대한민국 공무원이 100만명입니다. 그중에 단 한 명만이라도 ‘이건 아닙니다’라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페북에서 페친(페이스북 친구)들이 ‘나라가 이 지경인데 공무원 놈들은 도대체 뭐하는 거냐’고 할 때마다 정말 창피했습니다. 조국(曺國)이 과거 쓴 글 중에서 ‘선비가 해야 할 기본 임무는 직언극간(直言極諫)’이라는 게 있더군요. 조국이 그런 말 했다는 것을 알고 굉장히 반가웠습니다, 하하하.”
― 페북 내용은 어떻게 알려진 겁니까.
“저쪽 사람들이 꾸준히 워치(watch)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저쪽에도 지인들이 있거든요. ‘조심하라’는 얘기도 몇 번 들었습니다. 하지만 ‘너희도 민심이 이렇다는 걸 좀 봐라’ 하는 차원에서 계속 글을 올렸습니다. 징계사유서에도 페북에 ‘전체공개’해놓고 신분을 다 밝히고 글을 올린 게 괘씸하다고 되어 있더군요.”
성실의무 등 위반 이유로 징계
결국 이 때문에 한민호 전 국장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실 공직감찰반의 조사를 받았다. 문체부는 ‘징계의결요구서’에 아래와 같이 그 이유를 적시했다.
<가. 국가공무원법 제56조 (성실의무) 위반 관련
국가공무원법 제56조(성실의무)에 따르면 “모든 공무원은 법령을 준수하며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혐의자는 현 정부 출범 후 대통령비서실 공직감찰반 조사 당일(2017. 6~2019. 7. 24)까지 사행산업감독위원회 사무처장으로 근무하는 시간 중 업무시간을 불문하고 수백 회에 걸쳐 페이스북에 글을 게시하였고, VIP와 정부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친일 게시물을 직접 작성하거나 관련 기사를 연결하여 공직감찰반 조사를 받았으며, 문답 조사를 받은 다음 날(2019. 7. 25)에도 업무시간에 정부정책 비판 글을 게시하거나 공유하여 개전의 정이 없음이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실 공직감찰반에서 확인된 사실이 있고,
나. 국가공무원법 제63조 (품위유지의무) 및 제65조 (정치운동의 금지) 위반 관련
국가공무원법 제63조(품위유지의 의무)에 따르면 “공무원은 직무의 내외를 불문하고 그 품위가 손상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되어 있는데, 혐의자는 본인이 고위 공직자임을 공개한 상태에서 현 대통령을 지칭하여 ‘외교천재’라고 비아냥거리는 표현을 사용하고, ‘아메바・지렁이’라는 표현을 인용(2019. 7. 23)하는 등 스스로 공직자 신분임을 망각하고, 현 정부의 대북 및 대일 정책을 편향되게 비판, 고위 공직자로서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하였고,
* 붙임1의 페이스북 게시글 요약의 “걱정할 것 없다. 우리는 외교천재를 보유한 나라다. 중국, 러시아가 까불면 촛불혁명을 수출하면 된다, 만세!”(2019. 7. 23)
또한 동법 제65조(정치운동의 금지)에 따르면 (중략) 혐의자는 페이스북에 본인이 문화체육관광부의 고위 공직자임을 공개한 상태에서 정부 정책과 VIP를 원색적으로 비방하는 등 언론에서 고위 공직자 페이스북 내용이라며 가짜 뉴스 생산 및 여론 호도용으로 활용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여, 동 사안이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실 공직감찰반 조사결과에 의하여 확인된 사실이 있으며 (후략)>
“어딜 가나 일 열심히 잘 한다”
― 성실의무 위반, 품위유지의무 위반에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까지 죄목(?)이 다양하네요.
“다행히 징계위원회에서는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은 해당사항이 없다고 결정 내려줬어요. 그건 고마운데, 성실의무 위반, 품위유지의무 위반은 받아들였습니다.”
― 근무 시간에 페북 활동한 건 사실인 거죠?
“페북이 처음 생겼을 때는 지인들끼리 신변잡기 나누는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미디어거든요. 선진국에서는 40%가 페북을 통해 뉴스를 접한다고 하고, 우리나라에서도 그 비율이 20%에 달한다고 합니다.
징계위에 ‘페북을 했다는 것 자체는 정부도 SNS에서 정책홍보를 하는 뉴미디어 시대에 문제가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제가 올린 글은 99.9%가 국내외 뉴스고 0.1% 정도가 신변잡기였습니다. ‘나라를 걱정해서 그와 관련된 뉴스를 올리거나 내 의견을 올린 거지, 내 신변잡기를 올리면서 노닥거린 게 아니지 않으냐’고 주장했습니다.”
한민호 전 국장은 “내가 페북만 하고 일을 소홀히 했느냐? 전혀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인 2017년 문체부 노조(勞組)가 4급 이하 전 직원을 대상으로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관리자’ 선정을 위한 무기명 설문조사를 처음 실시했는데 본부 국장으로는 제가 선정됐습니다. 이전부터 행해온 시상이 아니라 처음으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일 안 하고 노는 놈에게 노조에서 그런 상을 주겠습니까. 문화정책과장으로 있던 2015년에는 연말 근무성적평가에서 최고등급인 SS 등급을 받았습니다. 현 정부 출범 후 사감위 사무처장이라는 한직(閑職)으로 쫓겨 갔지만, 거기서도 저는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 사감위 사무처장으로 간 것은 문 정권에 찍혀서 좌천(左遷)된 거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건 진짜 자랑질인데, 저는 어딜 가나 열심히 일을 잘 해요. 직원들이 ‘전임 사무처장들에 비해서 5배는 일을 하는 것 같다’고 하면서도 저를 엄청 따랐습니다. 사행산업 3차 5개년종합계획을 입안해서 통과시켰고, ‘온라인불법도박단속에 관한 특별법안’을 마련해 의원입법으로 발의하도록 했습니다. 도박중독예방시민연대라는 시민단체에서 사감위 창립 이래 처음으로 제게 상을 주었습니다.”
한민호 전 국장은 우리나라 사행산업의 현황, 사감위 사무처장 재직 중 한 일들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다. ‘자랑질’이 아니라 ‘이 사람은 정말 일하는 공무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한민호 전 국장은 여기서 또 조국 법무부 장관 얘기를 꺼냈다.
“진정한 애국은 富國强兵에 기여하는 것”
“신문을 보니 조국은 하루 사이에 프사(페이스북에 나타나는 ‘프로필 사진’의 준말)를 세 번 바꾸었다고 하던데, 저는 2010년 페북 시작한 이래 프사를 한 번도 안 바꾸었어요.”
― 징계위에서 ‘VIP와 정부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는 부분은 어떻게 해명했습니까.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이 그를 옹호하기 위해 사용한 ‘외교천재’라는 말을 풍자적으로 사용한 것이 품위훼손인지는 의문이고. ‘지렁이-아메바’는 남의 글 가져오면서 따라온 거였습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에 대해서는 부적절했다고 인정했어요.”
― 솔직히 징계수위가 어느 정도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까.
“해임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여기 오기 전에 ‘한변’(한반도 통일과 인권을 위한 변호사 모임) 김태훈 변호사를 만나고 왔는데, ‘징계수준이 이건 말이 안 된다’고 하더군요.”
― 유사한 사례가 있을까요.
“저와 같은 케이스는 없지 않을까요. 민정수석이 ‘죽창가’를 페북에 올리며반일선동의 선봉에 서고, 대통령이 반일 캠페인을 주도하는 상태에서 공공연히 ‘나는 친일파다, 지금은 친일하는 게 애국이다’라고 하는 공무원은 그 전에도 없었을 것 같아요.”
― ‘지금은 친일하는 게 애국이다’ 같은 말은 국민 정서상 지나친 얘기 아닐까요.
“역사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저는 진정한 애국은 부국강병(富國强兵)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핵(北核) 문제, 경제 등에서 일본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일본과 갈등을 이어나가는 것은 국가적 자살(自殺)행위라고 생각했습니다. 진심으로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염려해서 한 말입니다.”
여기서 한민호 전 국장이 페북에 올린 글을 몇 개 보기로 하자.
“일제시대 그들의 과오를 비판해야지, 그들을 악마화하는 건 오늘의 우리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사실을 직시해야 하는 거다. 감정에 치우쳐 날조된 역사에 광분하는 게 애국이 아니다.”(8월 30일)
“국익과 동맹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동맹 없이는 국익을 지킬 수 없다. 동맹을 소홀히 하면 나라가 망한다. 국익을 위해 동맹을 버릴 수도 있다고? 무섭다.”(8월 29일, ‘아무리 동맹관계여도 국익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는 청와대 관계자 발언에 대한 비판)
“지소미아 파기에 이어, 한미동맹 파기를 선언하고 미군철수를 요구할까? 설마… 그러면 어떻게 하지? 내가 요즘 예민해진 모양이다. 쓸데없는 걱정을 다 하고…”(8월 26일)
“70여 년 전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의 100분의 1이라도 바로 지금 북한 여성들이 겪고 있는 참혹한 인권유린에 대해 기울여야 하는 거 아닌가? 어떻게 된 게 전혀 관심이 없나? 탈북한 모자가 굶어 죽었다.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8월 14일)
“개천의 붕어, 개구리, 가재도 아닌 나는?”
― 페북 내용이 우연히 언론에 알려졌다기보다는 현 집권세력이 이미 한 국장님의 성향을 알고 있었고, 그것 때문에 찍혀서 잘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죠. 정권 바뀐 직후인 2017년 7월 사감위로 쫓겨 갔으니까요.”
― 그 직전에 임했던 체육정책관은 문체부 안에서는 꽤 요직이라고 들었습니다.
“제가 맡았을 때는 박근혜 정부가 유언비어 때문에 그야말로 하루가 다르게 패주(敗走)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제가 체육정책관을 맡기 전 대한체육회 회장 선거 과정에서 정부가 이기흥 현 회장의 당선을 막기 위해 부당한 개입을 했다고 해서 체육계의 원성(怨聲)이 높았어요. 게다가 체육정책관실 직원들이 국정농단에 연루됐다고 해서 검찰에 불려 다니느라 뒤숭숭한 상황이었습니다. 정부와 체육계의 갈등을 봉합하고, 직원들을 보듬어주는 일에 주력했고, 나름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 파면 처분을 받은 후 문체부 선후배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퇴직한 선배들, 모셨던 장·차관님들로부터 위로하는 문자나 전화를 많이 받았습니다.”
‘인간 한민호’를 알아보기 위해 개인사(個人史)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아버지는 평남 대동군 출신으로 1・4후퇴 때 열여섯에 혼자 월남(越南)하셨어요. 그러니 얼마나 고생하셨겠습니까. 끼니 걱정하는 집안의 막내딸인 어머니와 만나 결혼했는데, 제가 태어난 지 1년 만에 돌아가셨어요. 저는 아버지 얼굴도 모릅니다. 이북에 있는 친가 어르신들이라도 죽기 전에 한번 뵈었으면 좋겠어요. 어머니는 온갖 험한 일을 다 하셨죠.”
조국 사태로 시끄럽던 지난 8월 20일 그가 페북에 올린 “개천의 붕어, 개구리, 가재도 아닌 나는 뭘까? 송사리? 소금쟁이? 방개?”라는 글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反日? ‘소주성’… 無知해서 저지르는 것”
― 서울대 역사교육과를 나왔더군요.
“저도 이른바 586세대로, 대학 다닐 때는 공산주의 내지 사회주의 사상이 대학가를 휩쓸던 불행한 시절이었습니다. 저도 운동권 언저리에 몸을 담았습니다. 2학년 올라가면서 과(科)를 선택해야 했는데, 당시 운동권 핵심들이 역사교육과에 몰려 있었어요. 그래서 역사교육과에 간 거죠.”
― 저도 어려서부터 역사를 좋아해서 한때 역사교육과에 진학해볼까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안 가길 잘한 겁니다. 지금 한일관계가 이 모양이 된 것은 한국 사학계 내지 역사 선생님들이 공부를 안 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해악(害惡)을 너무 많이 끼쳤어요.”
― 학생운동은 얼마나 열심히 했습니까.
“대단하게 한 건 아닌데, 대학 다니는 동안 학교 공부를 거의 안 했어요. 마르크스-레닌주의, 각국 공산주의운동사 이런 것들만 공부했죠. 데모하다가 걸려서 1년 무기(無期)정학을 받기도 했고, 학사경고도 두 번 받았습니다. 간신히 졸업은 했는데, 아마 역사교육과가 생긴 이래 졸업생 중에는 제가 최악의 점수를 받았을 거예요.”
― 저는 운동권 근처에도 안 가봤지만, 1980년대에 정말 공부 안 했죠.
“1980년대 학번, 586세대는 기본적으로 공부를 안 한 세대예요. 그러면서 민주화 세대라고 잘난 척은 오지게 하고…. 그러니 정권을 잡고서도 잘못된 선택들을 하는 겁니다. 반일정책, 은근히 반미(反美)하는 것, 친중(親中)·친북(親北) 정책, 듣도 보도 못한 ‘소주성’(소득주도성장), 원전 폐기 정책…. 하나같이 무지(無知)해서 저지르는 것들이거든요. 공부를 안 한 세대가 수십 년간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다는 게 참 답답한 일입니다. 우리 앞 세대가 죽을 둥 살 둥 나라를 키워놓은 저력(底力) 때문에 그나마 이 정도 버티는 거죠. 이렇게 나라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일본이 도와줬기 때문이고….”
후배들을 집단 전향시킨 운동권 선배
― 8년간 교사생활을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만 해도 국립 사범대학을 나오면 별도의 시험 없이 교사가 될 수 있었어요. 그 성적에도 불구하고….”
― 운동권 출신인데 전교조 활동은 안 했습니까.
“초기에 잠시 관여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운동에서 멀어졌습니다.”
― 그런 계기가 있었나요.
“제가 선배를 참 잘 만났어요. 저를 의식화시킨 서울대 78학번 선배가 있었습니다. 서울대에서는 유명한 마르크스-레닌주의자였죠.
그런데 고르바초프가 등장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고 생각하는데, 하루는 그 선배가 후배들을 소집했습니다. ‘중요한 얘기를 하겠다’면서 두 시간 정도 발제를 하더군요.”
― 무슨 얘기였습니까.
“먼저 공산주의를 하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더군요. ‘공산주의를 하려면 생산수단을 국유화(國有化)하고 계획경제를 해야 한다. 계획경제 자체도 매우 비효율적인데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계획경제를 하려면 독재가 불가피하다. 그런데 독재는 반드시 부패한다. 따라서 공산주의라는 정치·경제 모델은 인류가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는 얘기였습니다. 그 유명한 마르크스-레닌주의자가 그렇게 말하니, 우리 입장에서는 황당했죠. 그러고 나서 대한민국에서 공산혁명이 불가능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 뭐라고 하던가요.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대강 ‘대한민국 사회가 이미 상당 수준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시민들이 공산혁명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공산혁명을 하기에는 너무 발전한 나라’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선배는 ‘나는 좀 늦었지만 독일로 유학을 가겠다. 너희는 전향(轉向)해라’고 하더군요.”
― 정말 대단한 분이네요.
“그냥 술집에서 심경 토로하는 것도 아니고, 정식으로 자리 만들어서 후배들을 모아놓고 말했으니, 그런 선배가 어디 있겠어요. 그때 그 양반도 20대 후반에 불과했을 때인데…. 한동안 방황하다가 결국 전향했죠.”
“공무원이 진짜 중요하다”
― 교사생활은 왜 그만둔 건가요.
“한 3년 정도 재미있게 교사생활을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정말 애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싶더군요. 마침 고교 동창 하나가 행시(行試) 공부를 같이 하자고 하더군요. 그게 31세 때쯤이었는데 운이 좋았는지 2년 남짓 공부하고 합격했습니다.”
― 문체부에는 어떻게 들어가게 된 건가요.
“역사교육과 나왔으니 문화 쪽에서 할 일이 있겠다 싶어서 선택했습니다.”
《서울신문》이 2012년 연재한 ‘공직열전2012’ 기사를 보면, 한민호 당시 지역민족문화과장에 대해 언급하면서 “역사교사 8년 만에 뒤늦게 뜻한 바가 있어 공무원이 됐으나 너무 정열적이라는 평가다”라고 했다.
― 요즘 열성적으로 일하는 공무원을 찾기 힘듭니다. 공무원이 열심히 일하면 그만한 성과가 있나요.
“성과에 대한 보상(인센티브)은 없어요. 하지만 공무원이 진짜 중요합니다. 사무관만 돼도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사무관 시절이던 1998~1999년 공연법 전부개정안을 제가 만들었어요.”
여기서 또 ‘자랑질’이 시작됐다.
“그때 김대중(金大中) 정부가 들어서면서 규제개혁이 화두(話頭)였어요. 각 과(課)별로 규제개혁안을 내놓으라고 하더군요.
그때만 해도 공연법에 쓸데없는 규제가 많았어요. 공연하려면 신고를 해야 하고, 사전(事前)에 각본심의도 받아야 하고, 공연사는 시·군·구청에 등록하게 되어 있었어요. 외국인 공연은 허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황당할 정도로 규제 일색의 법이었습니다. 그런데 규제를 다 들어내니 공연법이 이름만 남게 될 판이었습니다.”
― 그래서요.
“‘이 법을 무엇으로 채워 넣을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공연장 안전점검 제도와 무대예술인 자격증 제도를 만들어 공연법 안에 넣었습니다.”
― 무대예술인 자격증이라….
“무대가 돌아가려면 무대기술자, 조명, 음향… 이런 분들이 필요하잖아요. 전문성을 가진 분들임에도 그동안 막노동자 취급을 받았거든요. 공연과에 오래 근무하면서 그분들의 사정을 알고 있던 터라 자격증 제도를 만들어 그분들이 대우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법으로 금지하고 있지 않으면 합법”
다시 ‘일’에 관한 얘기로 넘어가자 한민호 전 국장은 신이 나는 듯했다.
“역시 공연과 사무관 때인데, 한 지방자치단체에서 연락이 왔어요. ‘자동차극장을 (운영)하겠다는 사람이 왔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공연법에 자동차극장에 대한 규정이 없었어요. 자동차극장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에 없었으니까요.”
― 어떻게 문제를 풀었습니까.
“제가 법을 해석하는 기준은 이렇습니다. ‘법으로 금지하고 있지 않으면 합법이다.’”
― 그렇죠.
“너무 당연한 거잖아요. 그런데 공무원들이 이런 생각을 안 해요. 한 가지 걱정은 ‘자동차극장이 탁 트인 공간인데 거기서 19금(禁) 영화를 상영하면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동차극장을 하겠다는 사람들을 불렀어요. 그 사람들은 씩 웃으면서 ‘청소년보호법이 있는데 우리가 19금 영화를 상영하겠느냐.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시라’고 하더군요. 청소년보호법에 의하면, 청소년들에게 19금 영화를 보여줄 경우 형량이 무척 무거워요.
그걸로 오케이 됐습니다. 질의가 온 지자체뿐 아니라 전국 시·군·구에 공문을 보냈어요. ‘자동차극장은 합법’이라고 알리면서 ‘다만 산림법·농지법·청소년보호법 등의 법령에 저촉되지 않아야 한다’고 주의를 환기시켰어요. 그 후에 자동차극장이 많이 생겼어요.”
‘자랑질’이었지만 듣기만 해도 시원했다. 대개의 경우 새로운 일이 생기면 문제가 생길까 봐 먼저 ‘안 된다’는 소리부터 하는 공무원이 많은 세태에서 ‘이런 공무원도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 공무원 생활 중 가장 보람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공간문화과장 시절 유·무형 문화 콘텐츠를 가지고 도시재생사업을 한 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2007년 2월부터 2010년 8월까지 3년 6개월 동안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일이 너무 보람 있어서 자원해서 그 자리에 오래 있었습니다.
군산 근대문화거리, 대구 동성로 리모델링 사업, 부산 광복동, 대구 중구 근대문화골목 사업 등을 그때 했지요. 금강 하구의 익산 성당포구에는 마을 사람들이 운영하는 연수원을 지어주었는데, 유명한 연수 겸 관광지가 됐습니다. 그 마을 대표님은 수시로 제게 전화를 해서 ‘고맙다. 한민호 국장 퇴임식은 반드시 여기서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역대 문체부 장관 중에 인상적인 분이 있습니까.
“YS 시절 장관을 지낸 김영수(金榮秀) 전 장관은 검찰 출신으로 안기부 차장과 민정수석을 지낸 분입니다. 퇴임 후에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고 청소년운동 인천아시안게임조직위원장 등 공익을 위해 봉사한 분이어서 존경합니다.
박지원(朴智元) 전 장관은 공보관실 사무관으로 일하면서 모셨는데, 정말 부지런하고 최선을 다하는 분이었습니다. 정치적 생각은 다르지만 그분에게 많이 배웠습니다.”
― 박지원 전 장관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니 의외입니다.
“김대중 정부 초기 남북정상회담 할 때가 바로 박지원 장관을 모시고 일할 때였습니다. 저도 이산가족이어서 그때는 ‘남북관계가 정말 획기적으로 개선되는 게 아닌가’ ‘나도 이북에 있는 친척들을 만나볼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희망에 부풀었습니다. 얼마 안 가서 북한에 완전히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더 이상 환상을 갖지 않게 되었지요. 지금은 오히려 북한을 직시하고 최대한의 압박을 통해 북한의 핵무장을 해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체부가 할 일
― 우파 성향인데 좌파 정권 시절에 좌파 성향 장관들 밑에서 일하면서 갈등은 없었습니까.
“예컨대 이 정부 들어와서 남북 체육・문화 교류 같은 것들을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건 문제라고 봅니다.
북한이 비핵화(非核化)를 하고 명실상부하게 남북 공존관계로 가는 분위기 속에서라면 남북 체육 교류도 좋고 문화 교류도 좋죠. 하지만 북한이 하루가 멀다 하고 미사일 쏘아 대고, 남북대화와 미북대화를 하는 중에도 핵폭탄을 만드는 상황에서 그런 교류를 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 문화 영역이 이념 대결의 최전선인데, 문체부에서 일하면서 문화계의 좌편향성 문제를 체감(體感)한 적은 없습니까.
“개인적으로 특별히 그런 경험은 없는 것 같네요. 다만, 문체부가 해야 할 진짜 중요한 일은 국민들의 민도(民度)를 높이고, 애국심을 갖게 하고, 이런저런 국내외 사안들에 대해 제대로 된 판단력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저는 문체부와 교육부를 합치는 게 옳다고 봅니다.”
― 흥미로운 발상이네요.
“문화가 없는 교육은 공허합니다. 뇌가 없이 빈 몸만 있는 것이나 다름없죠. 반면에 교육이 없는 문화는 신체가 없이 뇌만 있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소소한 불이익 때문에 입 다물 수 없다”
― 앞으로 소청(訴請)심사, 소송 등을 해야 할 텐데…. 이렇게 언론과 인터뷰하는 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걱정은 없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죠. 소청심사위원회는 어차피 행정부 소속이고, 법원에도 좌편향 판사들이 있다고 하니까요. 하지만 국대떡볶이 사장님 말씀처럼, 개인의 소소한 불이익 때문에 나라가 절벽으로 향하고 있는 상황에서 입을 다물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50~60%가 조국의 법무부 장관 임명·재임을 반대하는데, 이런 상황을 도대체 언제까지 끌고 갈 건지…. 경제・군사적으로 국제정세도 위중하고… 너무 걱정이 돼서 잠을 자다가 수시로 깨곤 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기 전 한민호 전 국장은 다시 한 번 말했다.
“이 얘기는 꼭 좀 써주십시오, ‘100만명의 공무원 중에서 나 한 사람만이라도 이런 소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요. 상황이 이렇게 됐지만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다음 날부터 인터넷 매체 등에서는 이 ‘고위 공무원’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도 비난성명을 발표했다.
이 소식을 접하면서 문득 몇 년 전 문화계 사정에 밝은 지인(知人)이 “문체부에 아주 애국심 강하고 소신 있는 과장급 공무원이 하나 있다”고 말한 게 생각났다.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그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로부터 40일이 지난 10월 1일 우파인사들의 인터넷 카톡방(카카오톡방)에 “페이스북에 문재인(文在寅) 정권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한민호 문체부 국장이 파면됐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지인에게 확인해보니 역시 그 사람이 맞았다. 한민호(韓民鎬・56). 박근혜(朴槿惠) 정권 시절 국장(2급)급인 문체부 미디어정책관·체육정책관을 지냈고, 얼마 전까지 국무총리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 사무처장으로 있던 인물이다.
기자는 10월 2일 한민호 국장 파면에 대한 기사를 인터넷 매체 <월간조선 뉴스룸>에 올렸다. 이 기사는 하루 만에 1만여명, 일주일 사이에 3만2000여명이 볼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좀 더 자세한 얘기를 듣기 위해 10월 7일 한민호 전 국장을 만났다. 약속장소에 나타난 한 전 국장은 머리털을 완전히 밀어버린 모습이었다.
“대한민국을 멸망의 길로 끌고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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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는 지난 8월 20일 한민호 전 국장의 페북 글들을 비난하는 방송을 내보냈다. 사진=유튜브 캡처 |
“굉장히 편해요. 머리카락이 얼마 안 남아서 오래전에 밀어버렸습니다.”
― 파면 통보를 받았을 때 느낌은 어땠습니까.
“페북(페이스북)을 전체 공개로 해놓고, 거기에 소속과 신분까지 밝히고 이런 얘기를 한 것은 어느 정도 불이익을 각오하고 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 특히 노모(老母)께서 놀라고 힘들어하시는 걸 보니 그건 조금 힘드네요.”
― 불이익을 각오하고 있었다는 건, 작심하고 페북에 글을 썼다는 얘긴가요.
한 전 국장은 망설임 없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네. ‘최악의 경우 파면까지 당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얘기는 해야겠다’ 하고 글을 올린 겁니다. 국대떡볶이 사장님도 ‘이 나라가 이렇게 망하나 저렇게 망하나, 할 말은 해야겠다’고 했잖아요. 그 말을 듣고 ‘동지가 또 있구나’ 싶어 반가웠습니다.”
― 그분은 내일 인터뷰할 겁니다.
“한번 만나고 싶네요.”
― 자신이 페북에 쓴 글들이 악의적으로 보도됐을 때 느낌이 어떻든가요.
“제가 페북에 올리는 글들을 청와대 민정수석실이나 민주당 사람들이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들이 보라고 올린 겁니다.”
― 강단이 보통 아니네요.
“반일(反日) 캠페인, 원전(原電) 폐기 정책, 소득주도성장. 이런 것이 모두 대한민국을 멸망의 길로 끌고 들어가는 정책들입니다. 대한민국 공무원이 100만명입니다. 그중에 단 한 명만이라도 ‘이건 아닙니다’라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페북에서 페친(페이스북 친구)들이 ‘나라가 이 지경인데 공무원 놈들은 도대체 뭐하는 거냐’고 할 때마다 정말 창피했습니다. 조국(曺國)이 과거 쓴 글 중에서 ‘선비가 해야 할 기본 임무는 직언극간(直言極諫)’이라는 게 있더군요. 조국이 그런 말 했다는 것을 알고 굉장히 반가웠습니다, 하하하.”
― 페북 내용은 어떻게 알려진 겁니까.
“저쪽 사람들이 꾸준히 워치(watch)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저쪽에도 지인들이 있거든요. ‘조심하라’는 얘기도 몇 번 들었습니다. 하지만 ‘너희도 민심이 이렇다는 걸 좀 봐라’ 하는 차원에서 계속 글을 올렸습니다. 징계사유서에도 페북에 ‘전체공개’해놓고 신분을 다 밝히고 글을 올린 게 괘씸하다고 되어 있더군요.”
성실의무 등 위반 이유로 징계
결국 이 때문에 한민호 전 국장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실 공직감찰반의 조사를 받았다. 문체부는 ‘징계의결요구서’에 아래와 같이 그 이유를 적시했다.
<가. 국가공무원법 제56조 (성실의무) 위반 관련
국가공무원법 제56조(성실의무)에 따르면 “모든 공무원은 법령을 준수하며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혐의자는 현 정부 출범 후 대통령비서실 공직감찰반 조사 당일(2017. 6~2019. 7. 24)까지 사행산업감독위원회 사무처장으로 근무하는 시간 중 업무시간을 불문하고 수백 회에 걸쳐 페이스북에 글을 게시하였고, VIP와 정부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친일 게시물을 직접 작성하거나 관련 기사를 연결하여 공직감찰반 조사를 받았으며, 문답 조사를 받은 다음 날(2019. 7. 25)에도 업무시간에 정부정책 비판 글을 게시하거나 공유하여 개전의 정이 없음이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실 공직감찰반에서 확인된 사실이 있고,
나. 국가공무원법 제63조 (품위유지의무) 및 제65조 (정치운동의 금지) 위반 관련
국가공무원법 제63조(품위유지의 의무)에 따르면 “공무원은 직무의 내외를 불문하고 그 품위가 손상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되어 있는데, 혐의자는 본인이 고위 공직자임을 공개한 상태에서 현 대통령을 지칭하여 ‘외교천재’라고 비아냥거리는 표현을 사용하고, ‘아메바・지렁이’라는 표현을 인용(2019. 7. 23)하는 등 스스로 공직자 신분임을 망각하고, 현 정부의 대북 및 대일 정책을 편향되게 비판, 고위 공직자로서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하였고,
* 붙임1의 페이스북 게시글 요약의 “걱정할 것 없다. 우리는 외교천재를 보유한 나라다. 중국, 러시아가 까불면 촛불혁명을 수출하면 된다, 만세!”(2019. 7. 23)
또한 동법 제65조(정치운동의 금지)에 따르면 (중략) 혐의자는 페이스북에 본인이 문화체육관광부의 고위 공직자임을 공개한 상태에서 정부 정책과 VIP를 원색적으로 비방하는 등 언론에서 고위 공직자 페이스북 내용이라며 가짜 뉴스 생산 및 여론 호도용으로 활용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여, 동 사안이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실 공직감찰반 조사결과에 의하여 확인된 사실이 있으며 (후략)>
“어딜 가나 일 열심히 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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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호 전 국장은 2017년 7월 문체부 최초로 노조가 뽑은 ‘바람직한 관리자 상’을 받았다. 이 상 수상자들의 사진을 담은 포스터가 1년간 문체부 로비에 걸려 있었다. |
“다행히 징계위원회에서는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은 해당사항이 없다고 결정 내려줬어요. 그건 고마운데, 성실의무 위반, 품위유지의무 위반은 받아들였습니다.”
― 근무 시간에 페북 활동한 건 사실인 거죠?
“페북이 처음 생겼을 때는 지인들끼리 신변잡기 나누는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미디어거든요. 선진국에서는 40%가 페북을 통해 뉴스를 접한다고 하고, 우리나라에서도 그 비율이 20%에 달한다고 합니다.
징계위에 ‘페북을 했다는 것 자체는 정부도 SNS에서 정책홍보를 하는 뉴미디어 시대에 문제가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제가 올린 글은 99.9%가 국내외 뉴스고 0.1% 정도가 신변잡기였습니다. ‘나라를 걱정해서 그와 관련된 뉴스를 올리거나 내 의견을 올린 거지, 내 신변잡기를 올리면서 노닥거린 게 아니지 않으냐’고 주장했습니다.”
한민호 전 국장은 “내가 페북만 하고 일을 소홀히 했느냐? 전혀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인 2017년 문체부 노조(勞組)가 4급 이하 전 직원을 대상으로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관리자’ 선정을 위한 무기명 설문조사를 처음 실시했는데 본부 국장으로는 제가 선정됐습니다. 이전부터 행해온 시상이 아니라 처음으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일 안 하고 노는 놈에게 노조에서 그런 상을 주겠습니까. 문화정책과장으로 있던 2015년에는 연말 근무성적평가에서 최고등급인 SS 등급을 받았습니다. 현 정부 출범 후 사감위 사무처장이라는 한직(閑職)으로 쫓겨 갔지만, 거기서도 저는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 사감위 사무처장으로 간 것은 문 정권에 찍혀서 좌천(左遷)된 거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건 진짜 자랑질인데, 저는 어딜 가나 열심히 일을 잘 해요. 직원들이 ‘전임 사무처장들에 비해서 5배는 일을 하는 것 같다’고 하면서도 저를 엄청 따랐습니다. 사행산업 3차 5개년종합계획을 입안해서 통과시켰고, ‘온라인불법도박단속에 관한 특별법안’을 마련해 의원입법으로 발의하도록 했습니다. 도박중독예방시민연대라는 시민단체에서 사감위 창립 이래 처음으로 제게 상을 주었습니다.”
한민호 전 국장은 우리나라 사행산업의 현황, 사감위 사무처장 재직 중 한 일들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다. ‘자랑질’이 아니라 ‘이 사람은 정말 일하는 공무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한민호 전 국장은 여기서 또 조국 법무부 장관 얘기를 꺼냈다.
“신문을 보니 조국은 하루 사이에 프사(페이스북에 나타나는 ‘프로필 사진’의 준말)를 세 번 바꾸었다고 하던데, 저는 2010년 페북 시작한 이래 프사를 한 번도 안 바꾸었어요.”
― 징계위에서 ‘VIP와 정부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는 부분은 어떻게 해명했습니까.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이 그를 옹호하기 위해 사용한 ‘외교천재’라는 말을 풍자적으로 사용한 것이 품위훼손인지는 의문이고. ‘지렁이-아메바’는 남의 글 가져오면서 따라온 거였습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에 대해서는 부적절했다고 인정했어요.”
― 솔직히 징계수위가 어느 정도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까.
“해임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여기 오기 전에 ‘한변’(한반도 통일과 인권을 위한 변호사 모임) 김태훈 변호사를 만나고 왔는데, ‘징계수준이 이건 말이 안 된다’고 하더군요.”
― 유사한 사례가 있을까요.
“저와 같은 케이스는 없지 않을까요. 민정수석이 ‘죽창가’를 페북에 올리며반일선동의 선봉에 서고, 대통령이 반일 캠페인을 주도하는 상태에서 공공연히 ‘나는 친일파다, 지금은 친일하는 게 애국이다’라고 하는 공무원은 그 전에도 없었을 것 같아요.”
― ‘지금은 친일하는 게 애국이다’ 같은 말은 국민 정서상 지나친 얘기 아닐까요.
“역사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저는 진정한 애국은 부국강병(富國强兵)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핵(北核) 문제, 경제 등에서 일본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일본과 갈등을 이어나가는 것은 국가적 자살(自殺)행위라고 생각했습니다. 진심으로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염려해서 한 말입니다.”
여기서 한민호 전 국장이 페북에 올린 글을 몇 개 보기로 하자.
“일제시대 그들의 과오를 비판해야지, 그들을 악마화하는 건 오늘의 우리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사실을 직시해야 하는 거다. 감정에 치우쳐 날조된 역사에 광분하는 게 애국이 아니다.”(8월 30일)
“국익과 동맹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동맹 없이는 국익을 지킬 수 없다. 동맹을 소홀히 하면 나라가 망한다. 국익을 위해 동맹을 버릴 수도 있다고? 무섭다.”(8월 29일, ‘아무리 동맹관계여도 국익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는 청와대 관계자 발언에 대한 비판)
“지소미아 파기에 이어, 한미동맹 파기를 선언하고 미군철수를 요구할까? 설마… 그러면 어떻게 하지? 내가 요즘 예민해진 모양이다. 쓸데없는 걱정을 다 하고…”(8월 26일)
“70여 년 전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의 100분의 1이라도 바로 지금 북한 여성들이 겪고 있는 참혹한 인권유린에 대해 기울여야 하는 거 아닌가? 어떻게 된 게 전혀 관심이 없나? 탈북한 모자가 굶어 죽었다.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8월 14일)
“개천의 붕어, 개구리, 가재도 아닌 나는?”
― 페북 내용이 우연히 언론에 알려졌다기보다는 현 집권세력이 이미 한 국장님의 성향을 알고 있었고, 그것 때문에 찍혀서 잘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죠. 정권 바뀐 직후인 2017년 7월 사감위로 쫓겨 갔으니까요.”
― 그 직전에 임했던 체육정책관은 문체부 안에서는 꽤 요직이라고 들었습니다.
“제가 맡았을 때는 박근혜 정부가 유언비어 때문에 그야말로 하루가 다르게 패주(敗走)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제가 체육정책관을 맡기 전 대한체육회 회장 선거 과정에서 정부가 이기흥 현 회장의 당선을 막기 위해 부당한 개입을 했다고 해서 체육계의 원성(怨聲)이 높았어요. 게다가 체육정책관실 직원들이 국정농단에 연루됐다고 해서 검찰에 불려 다니느라 뒤숭숭한 상황이었습니다. 정부와 체육계의 갈등을 봉합하고, 직원들을 보듬어주는 일에 주력했고, 나름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 파면 처분을 받은 후 문체부 선후배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퇴직한 선배들, 모셨던 장·차관님들로부터 위로하는 문자나 전화를 많이 받았습니다.”
‘인간 한민호’를 알아보기 위해 개인사(個人史)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아버지는 평남 대동군 출신으로 1・4후퇴 때 열여섯에 혼자 월남(越南)하셨어요. 그러니 얼마나 고생하셨겠습니까. 끼니 걱정하는 집안의 막내딸인 어머니와 만나 결혼했는데, 제가 태어난 지 1년 만에 돌아가셨어요. 저는 아버지 얼굴도 모릅니다. 이북에 있는 친가 어르신들이라도 죽기 전에 한번 뵈었으면 좋겠어요. 어머니는 온갖 험한 일을 다 하셨죠.”
조국 사태로 시끄럽던 지난 8월 20일 그가 페북에 올린 “개천의 붕어, 개구리, 가재도 아닌 나는 뭘까? 송사리? 소금쟁이? 방개?”라는 글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 서울대 역사교육과를 나왔더군요.
“저도 이른바 586세대로, 대학 다닐 때는 공산주의 내지 사회주의 사상이 대학가를 휩쓸던 불행한 시절이었습니다. 저도 운동권 언저리에 몸을 담았습니다. 2학년 올라가면서 과(科)를 선택해야 했는데, 당시 운동권 핵심들이 역사교육과에 몰려 있었어요. 그래서 역사교육과에 간 거죠.”
― 저도 어려서부터 역사를 좋아해서 한때 역사교육과에 진학해볼까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안 가길 잘한 겁니다. 지금 한일관계가 이 모양이 된 것은 한국 사학계 내지 역사 선생님들이 공부를 안 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해악(害惡)을 너무 많이 끼쳤어요.”
― 학생운동은 얼마나 열심히 했습니까.
“대단하게 한 건 아닌데, 대학 다니는 동안 학교 공부를 거의 안 했어요. 마르크스-레닌주의, 각국 공산주의운동사 이런 것들만 공부했죠. 데모하다가 걸려서 1년 무기(無期)정학을 받기도 했고, 학사경고도 두 번 받았습니다. 간신히 졸업은 했는데, 아마 역사교육과가 생긴 이래 졸업생 중에는 제가 최악의 점수를 받았을 거예요.”
― 저는 운동권 근처에도 안 가봤지만, 1980년대에 정말 공부 안 했죠.
“1980년대 학번, 586세대는 기본적으로 공부를 안 한 세대예요. 그러면서 민주화 세대라고 잘난 척은 오지게 하고…. 그러니 정권을 잡고서도 잘못된 선택들을 하는 겁니다. 반일정책, 은근히 반미(反美)하는 것, 친중(親中)·친북(親北) 정책, 듣도 보도 못한 ‘소주성’(소득주도성장), 원전 폐기 정책…. 하나같이 무지(無知)해서 저지르는 것들이거든요. 공부를 안 한 세대가 수십 년간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다는 게 참 답답한 일입니다. 우리 앞 세대가 죽을 둥 살 둥 나라를 키워놓은 저력(底力) 때문에 그나마 이 정도 버티는 거죠. 이렇게 나라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일본이 도와줬기 때문이고….”
후배들을 집단 전향시킨 운동권 선배
― 8년간 교사생활을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만 해도 국립 사범대학을 나오면 별도의 시험 없이 교사가 될 수 있었어요. 그 성적에도 불구하고….”
― 운동권 출신인데 전교조 활동은 안 했습니까.
“초기에 잠시 관여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운동에서 멀어졌습니다.”
― 그런 계기가 있었나요.
“제가 선배를 참 잘 만났어요. 저를 의식화시킨 서울대 78학번 선배가 있었습니다. 서울대에서는 유명한 마르크스-레닌주의자였죠.
그런데 고르바초프가 등장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고 생각하는데, 하루는 그 선배가 후배들을 소집했습니다. ‘중요한 얘기를 하겠다’면서 두 시간 정도 발제를 하더군요.”
― 무슨 얘기였습니까.
“먼저 공산주의를 하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더군요. ‘공산주의를 하려면 생산수단을 국유화(國有化)하고 계획경제를 해야 한다. 계획경제 자체도 매우 비효율적인데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계획경제를 하려면 독재가 불가피하다. 그런데 독재는 반드시 부패한다. 따라서 공산주의라는 정치·경제 모델은 인류가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는 얘기였습니다. 그 유명한 마르크스-레닌주의자가 그렇게 말하니, 우리 입장에서는 황당했죠. 그러고 나서 대한민국에서 공산혁명이 불가능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 뭐라고 하던가요.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대강 ‘대한민국 사회가 이미 상당 수준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시민들이 공산혁명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공산혁명을 하기에는 너무 발전한 나라’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선배는 ‘나는 좀 늦었지만 독일로 유학을 가겠다. 너희는 전향(轉向)해라’고 하더군요.”
― 정말 대단한 분이네요.
“그냥 술집에서 심경 토로하는 것도 아니고, 정식으로 자리 만들어서 후배들을 모아놓고 말했으니, 그런 선배가 어디 있겠어요. 그때 그 양반도 20대 후반에 불과했을 때인데…. 한동안 방황하다가 결국 전향했죠.”
“공무원이 진짜 중요하다”
― 교사생활은 왜 그만둔 건가요.
“한 3년 정도 재미있게 교사생활을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정말 애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싶더군요. 마침 고교 동창 하나가 행시(行試) 공부를 같이 하자고 하더군요. 그게 31세 때쯤이었는데 운이 좋았는지 2년 남짓 공부하고 합격했습니다.”
― 문체부에는 어떻게 들어가게 된 건가요.
“역사교육과 나왔으니 문화 쪽에서 할 일이 있겠다 싶어서 선택했습니다.”
《서울신문》이 2012년 연재한 ‘공직열전2012’ 기사를 보면, 한민호 당시 지역민족문화과장에 대해 언급하면서 “역사교사 8년 만에 뒤늦게 뜻한 바가 있어 공무원이 됐으나 너무 정열적이라는 평가다”라고 했다.
― 요즘 열성적으로 일하는 공무원을 찾기 힘듭니다. 공무원이 열심히 일하면 그만한 성과가 있나요.
“성과에 대한 보상(인센티브)은 없어요. 하지만 공무원이 진짜 중요합니다. 사무관만 돼도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사무관 시절이던 1998~1999년 공연법 전부개정안을 제가 만들었어요.”
여기서 또 ‘자랑질’이 시작됐다.
“그때 김대중(金大中) 정부가 들어서면서 규제개혁이 화두(話頭)였어요. 각 과(課)별로 규제개혁안을 내놓으라고 하더군요.
그때만 해도 공연법에 쓸데없는 규제가 많았어요. 공연하려면 신고를 해야 하고, 사전(事前)에 각본심의도 받아야 하고, 공연사는 시·군·구청에 등록하게 되어 있었어요. 외국인 공연은 허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황당할 정도로 규제 일색의 법이었습니다. 그런데 규제를 다 들어내니 공연법이 이름만 남게 될 판이었습니다.”
― 그래서요.
“‘이 법을 무엇으로 채워 넣을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공연장 안전점검 제도와 무대예술인 자격증 제도를 만들어 공연법 안에 넣었습니다.”
― 무대예술인 자격증이라….
“무대가 돌아가려면 무대기술자, 조명, 음향… 이런 분들이 필요하잖아요. 전문성을 가진 분들임에도 그동안 막노동자 취급을 받았거든요. 공연과에 오래 근무하면서 그분들의 사정을 알고 있던 터라 자격증 제도를 만들어 그분들이 대우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법으로 금지하고 있지 않으면 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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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호 전 국장은 공간문화과장으로 일하면서 군산 근대문화거리 조성 등을 위해 힘썼다. |
“역시 공연과 사무관 때인데, 한 지방자치단체에서 연락이 왔어요. ‘자동차극장을 (운영)하겠다는 사람이 왔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공연법에 자동차극장에 대한 규정이 없었어요. 자동차극장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에 없었으니까요.”
― 어떻게 문제를 풀었습니까.
“제가 법을 해석하는 기준은 이렇습니다. ‘법으로 금지하고 있지 않으면 합법이다.’”
― 그렇죠.
“너무 당연한 거잖아요. 그런데 공무원들이 이런 생각을 안 해요. 한 가지 걱정은 ‘자동차극장이 탁 트인 공간인데 거기서 19금(禁) 영화를 상영하면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동차극장을 하겠다는 사람들을 불렀어요. 그 사람들은 씩 웃으면서 ‘청소년보호법이 있는데 우리가 19금 영화를 상영하겠느냐.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시라’고 하더군요. 청소년보호법에 의하면, 청소년들에게 19금 영화를 보여줄 경우 형량이 무척 무거워요.
그걸로 오케이 됐습니다. 질의가 온 지자체뿐 아니라 전국 시·군·구에 공문을 보냈어요. ‘자동차극장은 합법’이라고 알리면서 ‘다만 산림법·농지법·청소년보호법 등의 법령에 저촉되지 않아야 한다’고 주의를 환기시켰어요. 그 후에 자동차극장이 많이 생겼어요.”
‘자랑질’이었지만 듣기만 해도 시원했다. 대개의 경우 새로운 일이 생기면 문제가 생길까 봐 먼저 ‘안 된다’는 소리부터 하는 공무원이 많은 세태에서 ‘이런 공무원도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 공무원 생활 중 가장 보람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공간문화과장 시절 유·무형 문화 콘텐츠를 가지고 도시재생사업을 한 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2007년 2월부터 2010년 8월까지 3년 6개월 동안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일이 너무 보람 있어서 자원해서 그 자리에 오래 있었습니다.
군산 근대문화거리, 대구 동성로 리모델링 사업, 부산 광복동, 대구 중구 근대문화골목 사업 등을 그때 했지요. 금강 하구의 익산 성당포구에는 마을 사람들이 운영하는 연수원을 지어주었는데, 유명한 연수 겸 관광지가 됐습니다. 그 마을 대표님은 수시로 제게 전화를 해서 ‘고맙다. 한민호 국장 퇴임식은 반드시 여기서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역대 문체부 장관 중에 인상적인 분이 있습니까.
“YS 시절 장관을 지낸 김영수(金榮秀) 전 장관은 검찰 출신으로 안기부 차장과 민정수석을 지낸 분입니다. 퇴임 후에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고 청소년운동 인천아시안게임조직위원장 등 공익을 위해 봉사한 분이어서 존경합니다.
박지원(朴智元) 전 장관은 공보관실 사무관으로 일하면서 모셨는데, 정말 부지런하고 최선을 다하는 분이었습니다. 정치적 생각은 다르지만 그분에게 많이 배웠습니다.”
― 박지원 전 장관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니 의외입니다.
“김대중 정부 초기 남북정상회담 할 때가 바로 박지원 장관을 모시고 일할 때였습니다. 저도 이산가족이어서 그때는 ‘남북관계가 정말 획기적으로 개선되는 게 아닌가’ ‘나도 이북에 있는 친척들을 만나볼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희망에 부풀었습니다. 얼마 안 가서 북한에 완전히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더 이상 환상을 갖지 않게 되었지요. 지금은 오히려 북한을 직시하고 최대한의 압박을 통해 북한의 핵무장을 해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체부가 할 일
― 우파 성향인데 좌파 정권 시절에 좌파 성향 장관들 밑에서 일하면서 갈등은 없었습니까.
“예컨대 이 정부 들어와서 남북 체육・문화 교류 같은 것들을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건 문제라고 봅니다.
북한이 비핵화(非核化)를 하고 명실상부하게 남북 공존관계로 가는 분위기 속에서라면 남북 체육 교류도 좋고 문화 교류도 좋죠. 하지만 북한이 하루가 멀다 하고 미사일 쏘아 대고, 남북대화와 미북대화를 하는 중에도 핵폭탄을 만드는 상황에서 그런 교류를 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 문화 영역이 이념 대결의 최전선인데, 문체부에서 일하면서 문화계의 좌편향성 문제를 체감(體感)한 적은 없습니까.
“개인적으로 특별히 그런 경험은 없는 것 같네요. 다만, 문체부가 해야 할 진짜 중요한 일은 국민들의 민도(民度)를 높이고, 애국심을 갖게 하고, 이런저런 국내외 사안들에 대해 제대로 된 판단력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저는 문체부와 교육부를 합치는 게 옳다고 봅니다.”
― 흥미로운 발상이네요.
“문화가 없는 교육은 공허합니다. 뇌가 없이 빈 몸만 있는 것이나 다름없죠. 반면에 교육이 없는 문화는 신체가 없이 뇌만 있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소소한 불이익 때문에 입 다물 수 없다”
― 앞으로 소청(訴請)심사, 소송 등을 해야 할 텐데…. 이렇게 언론과 인터뷰하는 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걱정은 없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죠. 소청심사위원회는 어차피 행정부 소속이고, 법원에도 좌편향 판사들이 있다고 하니까요. 하지만 국대떡볶이 사장님 말씀처럼, 개인의 소소한 불이익 때문에 나라가 절벽으로 향하고 있는 상황에서 입을 다물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50~60%가 조국의 법무부 장관 임명·재임을 반대하는데, 이런 상황을 도대체 언제까지 끌고 갈 건지…. 경제・군사적으로 국제정세도 위중하고… 너무 걱정이 돼서 잠을 자다가 수시로 깨곤 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기 전 한민호 전 국장은 다시 한 번 말했다.
“이 얘기는 꼭 좀 써주십시오, ‘100만명의 공무원 중에서 나 한 사람만이라도 이런 소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요. 상황이 이렇게 됐지만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