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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편지

문재인 정권은 ‘국군의 뿌리’를 왜 하필 홍범도에게서 찾았을까?

글 : 배진영  월간조선 편집장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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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사단장, 육군참모총장을 대신하여 명령한다. 38선을 돌파하라! 38선은 없다!”
 
  1950년 10월 1일, 김백일(金白一) 1군단장은 정일권(丁一權) 육군참모총장과 논의 끝에 이종찬(李鍾贊) 3사단장에게 38선 돌파를 명령했습니다. 이미 38선에 도달한 일부 국군 장병들은 38선을 넘나들면서 북진(北進)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이승만(李承晩) 대통령도 38선 돌파를 갈망하고 있었지만, 작전권이 유엔군사령관에게 있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국군 수뇌부는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결국 북진을 감행했습니다. 10월 1일이 국군의날로 지정된 것은 이를 기념해서입니다.
 
 
  ‘정규 육사 첫 교장’으로 광복군 출신 선택한 이종찬 장군
 
  이종찬 장군은 1951년 6월 제6대 육군참모총장이 됩니다. 그의 재임 기간 중 정규 육군사관학교가 문을 엽니다. 종전의 육사는 주로 과거의 군 경력자들을 대상으로 수개월 정도 교육을 하고 장교로 배출했는데, 미 8군 사령관 밴플리트 장군의 노력으로 미국 웨스트포인트를 본뜬 4년제 정규 육사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당시 육군의 장성들 가운데는 ‘정규 육사의 첫 교장’이 되고 싶어 한 이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대개 일본군이나 만주군 출신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종찬 참모총장이 정규 육사의 첫 교장으로 선택한 인물은 안춘생(安椿生) 준장이었습니다. 안춘생 장군은 안중근 의사의 5촌 조카로 광복군에 몸담았던 독립운동가 출신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일본군에 몸담았던 것을 항상 죄스러워했던 이종찬 장군은 국군의 정통성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정규 육사의 첫 교장은 광복군 출신이 맡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일본 육사를 나와 일본군 소좌(少佐)까지 올라갔던 이종찬 장군은 젊은 시절 일본군에 몸담았던 것을 평생 괴로워했습니다. ‘다시는 잘못된 인생을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그는 해방 후 국군에 몸담는 것도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 당시 정부와 군부 인사들의 강권으로 뒤늦게 국군에 참여했습니다. 1952년 부산정치파동 당시 정치적 목적으로 군을 동원하려는 이승만 대통령의 요구에 감연히 항거한 것도 ‘다시는 잘못된 인생을 살지 않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지금도 ‘참군인’으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한강방어전의 영웅 김홍일 장군
 
  공교롭게도 안춘생 장군의 전임 육사 교장 두 분도 광복군 출신이었습니다. 이준식(李俊植) 장군과 김홍일(金弘壹) 장군이 그분들입니다.
 
  김홍일 장군은 6·25 개전 초기 시흥지구전투사령관으로 붕괴한 국군 부대들을 수습해 한강을 7일간이나 방어했습니다. 중국군 소장 출신인 김 장군은 당시 국군 지휘관들 가운데 사단급 이상 부대를 지휘해본 유일한 인물이었습니다. 김홍일 장군이 한강에서 일주일을 버텨낸 덕분에 유엔군이 참전하고 낙동강 교두보를 구축할 시간을 벌 수 있었습니다. 당시 북한군을 지도하고 있던 소련군 군사고문조차 “부실하기 짝이 없던 남한군이 불과 일주일 만에 견실한 전투부대로 바뀌었다”며 김홍일 장군의 역량에 감탄했다고 합니다. 김홍일 장군은 이봉창·윤봉길 의사의 의거 당시 폭탄을 제공한 분이기도 합니다.
 
  이준식 장군은 낙동강 방어전 당시 3사단장으로 영덕지구 전투를 이끌었습니다. 광복군 출신으로 국군에 들어와 별을 단 분 가운데는 상해 임시정부 대통령 박은식(朴殷植) 선생의 아들 박시창(朴始昌) 장군, 독립운동가 박찬익 선생의 아들 박영준(朴英俊) 장군도 있습니다.
 
  이런 사례에서 보듯 해방 이후 창군(創軍) 과정에서 국군에 참여한 광복군 출신들이 꽤 있습니다. 현대적 군사 교육을 받은 일본군·만주군 출신들이 국군에 많이 참여했고, 이후 그들이 군의 주류를 형성한 것은 사실이지만, 광복군 출신 또한 국군의 정신적 뿌리를 만드는 데 일조했습니다.
 
  광복군 출신 중에는 시인이자 군인으로 활약한 장호강(張虎剛) 장군도 있습니다. 광복군 제3지대 비밀공작원으로 활동했던 장 장군은 6·25 당시 전선을 누비면서 전공(戰功)을 세웠습니다. 장호강 장군은 1950년대 ‘진중(陣中) 문학’을 대표하는 분인데, 저는 그분의 ‘총검부(銃劍賦)’라는 시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격전의 날
  마침내 최후 승리를 결판 지워야 할
  돌격의 신호가 오를 때
  총아!
  너는 네 몸이 불덩어리로 녹을 때까지
  원수들의 피를 마셔라.
  검아!
  너는 네 몸이 은가루로 부서질 때까지
  원수들의 살을 삼켜라.
  오! 내 가슴에도 원수의 총알이 쏟아져 오면
  내 사랑하는 조국의 제단 앞에
  몸소 방울방울 깨끗이 드리오리니.〉

 
  아, 초대(初代) 국무총리와 국방부 장관을 지낸 이범석(李範奭) 장군을 잊을 뻔했네요. 약관(弱冠)의 나이에 청산리 전투에 참가했었고, 반생을 만주와 중국 대륙을 떠돌면서 무장항일투쟁을 해오신 분이죠. 광복군 참모장 등을 지내면서 미국 OSS(전략활동국)와 손잡고 국내진공작전을 추진했던 분입니다. 별을 달지는 못했지만 광복군 출신으로 29세의 나이로 청송 전투에서 장렬하게 산화(散華)한 ‘대한민국 마지막 기병대장’ 장철부(본명 김병원) 중령 같은 분도 광복군 출신 국군 장교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분입니다.
 
 
  왜 하필 홍범도·김원봉인가?
 
  백선엽(白善燁) 장군이나 정일권 장군, 이종찬 장군, 김백일 장군 같은 분들이 아무리 대한민국을 위해 혁혁한 공로가 있다고 해도 만주군이나 일본군에 몸담았다는 젊은 날의 흠결 때문에 적어도 육사 생도들의 모범이 되기에는 적절치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독립운동가 출신 가운데서 훌륭한 분들을 찾아서 육사 생도들의 사표(師表)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문재인 정권이 하필이면 소련군이 동료 독립군들을 살상하는 데 동조했고 소련공산당원으로 생을 마친 홍범도 같은 이를 골라서 육사에 그 흉상을 세운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월북(越北)해서 김일성 정권의 국가검열상·노동상 등을 지낸 김원봉을 ‘국군의 뿌리’로 내세우려 기를 쓴 것도 납득할 수 없는 일입니다.
 
  왜 문재인 정권은 김홍일 장군, 안춘생 장군, 이준식 장군처럼 광복군 출신으로 국군에 참여했고, 육사 교장을 지냈고, 6·25 때 몸 바쳐 대한민국을 지키신 분들은 외면한 것일까요? 특히 김홍일 장군은 독립운동가로서나, 군인으로서나,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분인데 그런 분을 제쳐놓고 홍범도나 김원봉을 열심히 띄운 이유가 뭘까요? 혹시 홍범도는 소련공산당원이었고, 김원봉은 북한으로 가서 각료급 지위에 올랐다는 것 때문에 저들의 관심 대상이 된 것은 아닐까요? 반면에 육사 교정에 독립운동가들의 흉상을 세울 때 김홍일 장군 등이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한 것은 대한민국 국군으로 6·25 때 공산군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켰다는 ‘죄(罪) 아닌 죄’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저는 문재인 정권이 육사 교정에 홍범도 흉상을 들여놓은 것은 단편적인 에피소드가 아니라, 대한민국과 국군의 정통성을 변조(變造)하려는 끈질긴 공작의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 30여 년 전부터 일부 좌파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국군의날을 국군이 북괴군을 격파하고 38선을 돌파한 10월 1일에서 광복군 창건일인 9월 17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노무현 정권이나 문재인 정권 시절에는 여당 의원들이 이러한 내용을 담은 결의안을 여러 차례 내놓기도 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보다는 관념적인 ‘민족’을 앞에 놓는 사고 방식의 소산입니다.
 
  하지만 ‘국군(國軍)’은 글자 그대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군대입니다. 장호강 장군이 ‘총검부’에서 노래한 ‘내 사랑하는 조국’은 대한민국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린 군인들은 모두 대한민국의 애국자였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군에 총을 겨눈 자는 대한민국과 국군의 ‘원수’입니다. 건군(建軍) 75주년을 축하하며, 국군 장병들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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