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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편지

새해 대한민국에 던지는 노(老) 언론인의 통찰

글 :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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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산케이(産經)신문》의 서울특파원을 지낸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 씨가 《날씨는 맑으나 파고(波高)는 높다》는 책을 냈다. 책에는 ‘최장수(最長壽) 서울특파원이 들여다본 한일(韓日) 현대사의 뒤안길’이라는 부제(副題)가 달려 있다. 최장수가 어느 정도인가 살펴봤다. 그는 1989년부터 2012년까지 특파원을 지냈고 한국에서만 35년째 살고 있다.
 
  우리는 흔히 구로다 씨를 자국을 편들고 한국에는 비판적인 ‘극우 언론인’으로 알고 있다. 이런 인식을 가진 것은 그가 주로 독도·일제시대에 대해 우리와는 다른 시각의 글을 썼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새해를 맞아 77세가 되는 1941년생 노(老) 언론인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는 될 수 없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사장이 그를 평한 글을 옮겨본다.
 
  “구로다 가쓰히로 기자와는 30년 이상 알고 지내는 사이다. 그는 일본의 우파적 시각을, 나는 한국의 우파적 시각을 가졌으므로 독도, 위안부 등 이른바 역사·영토 문제에는 시각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를 만나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事實)을 중시하는 기자였기 때문이다. 구로다 기자와 나는 두 가지 점에서 의견이 일치한다. 북한 정권에 대한 분노, 한국 현대사의 성취에 대한 호감이 그것이다….”
 
  구로다 씨의 책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흥미가 있는 부분이 눈에 띄어 자세히 살펴봤다. 책 마지막 부분의 ‘친일’과 ‘반일’이 낳은 역설(逆說)이라는 부분이었다. 《월간조선》 독자들께서도 “또 《월간조선》이 일본을 옹호하려 한다”며 덮어놓고 흥분부터 하지 말고 차분하게 음미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인용해 본다.
 
  일본 지배로부터 해방된 전후의 한반도에서는 일본에 협력한 과거는 굴욕이 되고 반항한 과거는 영광이 되었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친일파’라는 말이 ‘민족적 배신자’라는 뜻으로 정치적, 사회적으로 인격 부정에 가까운 비난과 매도(罵倒)의 효과를 발휘한다.
 
  한편 일본 통치시대에 파출소나 경찰서에 잡혀간 경력이 있으면 그것이 불량소년이었건 좀도둑이 되었건 해방 후에는 ‘항일영웅’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한국의 고로(古老)로부터 쓴웃음과 함께 종종 들었다.
 
  그 결과 일본 육군사관학교 졸업의 경력을 가진 박정희의 과거는 ‘굴욕의 과거’였고 항일 투쟁을 한 김일성의 과거는 ‘영광의 과거’였다. 그러나 이미 쓴 것처럼 앞쪽은 그 굴욕을 국가경영에 살려 성공했으나 뒤쪽은 과거의 영광에 만족함으로써 새로운 발전을 이루지 못한 채 실패했다.
 
  박정희는 ‘친일’이라는 ‘과거의 패자(敗者)’였기에 미래를 향하여 노력했다. 김일성은 ‘항일’이라는 ‘과거의 승자’로서 과거에 안주한 탓에 미래를 향해서는 실패했던 것이다. 김일성이 북한에 남긴 것은, 과거의 영광을 자화자찬하는 무수한 동상과 벽화, 그리고 시신을 안치한 거대한 궁전을 위시한 기념비적 건조물이 압도적이다. 그는 생전에도, 사후에도 ‘일본과의 과거’에 안주했다. 그것이 그의 생애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일성은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는 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김정일 시대를 포함하여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기는 했다. 박정희 시대의 한국이 경제발전을 이룩한 것에 자극받아, 일본의 협력에 의해 경제재건을 시도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일본과의 굴욕의 과거를 짊어진 박정희는 장래를 생각하여 정상화를 결단했다. 이에 비해 김일성은 영광의 과거에 매여 살았고, 미래를 향한 절박감이나 절실함이 없었기에 정상화에 나서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공산주의화로 남하(南下) 위협을 증가시키는 북한에 대항하느라 일본 시절 유산을 많이 남겨 활용했다. 신생 한국은 미국의 지배 아래 들어갔기 때문에 나라나 사회의 기본적인 형태가 혁명적으로 변화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국가경영에 있어서는 과거의 ‘일본’을 활용하여 참고로 삼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행정조직에서 법 제도, 기업경영, 인재, 경험, 사고방식, 문화 등 여러 분야에 다 해당되었다. 따라서 앞서 말한 ‘일본 부정, 신한국인 만들기’ 작업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나름대로 남았다. 아니, 남겨진 셈이다. 이것은 반일(反日)이었던 이승만의 딜레마이기도 했다. 이런 사실은 나중에 한국 내에서 좌익이나 반정부파에 의한 체제 비판의 재료가 되었다.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친일파’ 비판이 정치적,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가진 배경이 되기도 했다.
 
  일본이 떠난 다음의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의 지배 아래 남북이 동족에 의한 전쟁을 경험했다. 그 후 남북 분단이 고정된 채 어느 쪽이 이기느냐 지느냐 하는 치열한 체제 경쟁을 전개했다. 이 경쟁은 시대적으로는 거의 같은 시기에 태어나, 만주(滿洲)에서 기구하다고 해야 할 대조적인 인생을 보낸 김일성과 박정희의 전쟁이기도 했다.
 
  두 사람이 싸운 결과에 대해서는 이렇게 적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즉 되풀이되지만 한반도에서의 남북 대결은 일본을 받아들인 ‘친일’이 이끌던 남한이 이겼고 일본을 줄기차게 거부한 ‘반일’의 북한이 졌다고. 일본 통치가 끝나고 일본인이 떠난 다음에도 한반도에는 이처럼 ‘일본’이 줄곧 남아 있었던 것이다.

 
  구로다 씨는 그러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불행을 나름대로 해석하고 있다.
 
  “한일 국교정상화 반대의 학생 데모에서 분출한 반일감정은 그 뒤로도 박정희 정권 반대의 반정부운동에서 유효한 민족적 애국 포퓰리즘으로 작용했다. 다음은 여담(餘談)인데 반세기 이상 지난 다음, 박정희의 딸 박근혜 대통령 시대가 되어서도 이것이 ‘박근혜 끌어내리기’에 이용되었다. 가설적으로 말하자면 탄핵, 파면을 당한 그녀는 이른바 ‘아버지의 대역(代役)’으로 구속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나는 이렇게 한일관계-남북관계를 명료하게 요약한 학자나 언론인을 본 적이 없다. 그러면서 최근 중국을 방문해 혼자 밥을 먹고 자신을 따르던 기자들은 중국인들의 구둣발에 짓밟히고 두들겨 맞게 했으며 외교적으로 무시당한 것도 모자라 대한민국 전체의 국격(國格)을 싸구려처럼 만들어 버린 문재인 대통령의 사고(思考)의 이면을 짐작해 본다.
 
  문 대통령을 비롯한 좌파 진영은 일본은 악(惡), 그런 일본을 돕는 미국은 거악(巨惡)이라고 보는 것 같다. 반면 중국은 그런 일본에 한국과 함께 대항하다가 비극의 역사를 함께 겪었으니 선(善)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짙어 보인다. 이것은 그야말로 스스로가 천박한 역사관, 협소한 세계관의 소유자임을 자인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세계는 누가 뭐래도 힘의 논리를 바탕으로 한다. 이상(理想)은 힘의 논리를 포장하는 형용사일 뿐이다. 유교적 사고가 뼛속까지 박인 한국인들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이상과 현실을 오인하면서 엉뚱한 소리를 하는데 나라 밖에서 이런 말을 했다가는 정신이상자 취급받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대한민국을 둘러싼 힘의 논리라는 말인가.
 
  한국은 미국과 일본, 즉 한미일(韓美日) 동맹을 지키지 않으면,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국이나 러시아와는 경제적 협력을 바탕으로 하되 정치적 갈등이 발생하지 않는 수준의 관계만 유지하면 된다. 만일 사드 갈등 같은 것이 재현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 ‘내정간섭’이나 ‘주권훼손’이다. 그래도 안되면 한국은 미국과 일본의 힘에 기대 저항해야 한다. 안타깝지만 그 수밖에는 대한민국을 지킬 도리가 없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미국에 맞서는 척하고, 일본은 완전히 무시했으며 중국에는 저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본인이나 주변 세력들은 그게 당당하고 멋져 보이겠지만 나 같은 사람의 눈에는 덩치가 산만 한 데다 흉기까지 든 조폭(粗暴) 앞에서 아무 힘도 없는 초등학생이 부리는 치기(稚氣)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중국이 얼씨구나 하고 한국에 화답할 것 같지만 조폭은 조폭일 뿐이다. 조폭은 상대를 힘으로 굴복시킬 뿐이지 머리를 쓰지 않는다. 누구는 이런 말에 “그렇다면 미국과 일본은 뭐냐”고 물을 것이다. 미국·일본도 본질적으로는 신사는 아니다. 대신 깡패도 아니다. 더구나 그들은 우리를 잘 알고 있으며 할 수 있는 한 도우려고 한다.
 
  이런 친구들을 놓고 굳이 조폭에게로 달려가려는 심사를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부디 2018년에는 2017년의 잘못을 돌이켜보고 올바른 길로 되돌아갔으면 한다. 계속 잘못된 길로 가겠다고 고집을 부린다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결딴날 것 같은 두려움이 새해 초부터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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