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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편지

가상(假想)시나리오 | 김정은 단독 인터뷰

글 :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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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주석궁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의 집무실에 들어설 때의 생경(生硬)했던 느낌을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북한 노동당 조직지도부는 돌연 《월간조선》 편집장인 내게 김정은과의 단독 인터뷰를 주선했다. 그 저의(底意)가 무엇이며 어떤 기사를 원하는 것인지 말해 주지 않았지만 짐작 가는 바가 없지 않았다.
 
  이때 대한민국이라는 국호(國號)는 사어(死語)처럼 취급받고 있었다. 남북은 홍콩이 중국에 귀속할 때처럼 ‘일국양체제’로 결합됐다. ‘공화국 남반부’에 허울뿐인 자치권이 있었지만 외교·국방·내정에 관한 전권은 ‘공화국 북반부’가 행사했다. “남조선을 깔고 앉겠다”는 김정은의 호언(豪言)은 허언(虛言)이 아니었던 것이다.
 
  정세(情勢)가 변하자 ‘공화국 남반부’에 뿌리 깊게 박혀 있던 종북주의자들이 일제히 가면을 벗어 던졌다. 청와대·국회·행정 각 부처뿐 아니라 신문·방송·잡지·인터넷 매체의 주요 간부, 대학교수, 기업인, 법조인들까지 김정은을 향해 충성 맹세를 했다. 교언영색(巧言令色)이 극에 달했다. 내가 김정은이었어도 진력이 날 만했다.
 
  김정은과의 단독 인터뷰는 색다른 자극을 보여 달라는 주문과 다름없다는 건 바보라도 알 수 있었다. 당시 《월간조선》은 ‘공화국 남반부’에 마지막으로 남은 애국우파의 잔존세력 같은 존재였다. 그 ‘반동 중의 반동’들이 스스로 써바치는 김정은 찬양가는 종북매체가 떠들어대는 어떤 아양보다 효과적일 것이라고 그들은 계산했을 것이다.
 
  이탈리아제 가죽 소파에 영국 포트넘메이슨에서 특별 주문한 차를 제공하는 등 대접이 극진했지만 동석자들은 날카로운 눈빛을 쏘아 댔다. ‘알아서 기라’는 무언(無言)의 협박이었다. 나는 그의 기분이 틀어지지 않도록 통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그에 대한 소회를 물었다. 김정은의 지도력이 ‘남달랐다’는 아부도 격조 있게 곁들였다.
 
  김정은의 기분이 풀어질 즈음 “언제쯤 대한민국이 무너질 것으로 확신했느냐”고 물었다. 마지막 남은 기자(記者)로서의 본능이었다. 그는 ‘대한민국’이란 단어에 잠깐 미간을 찌푸렸으나 이내 통 큰 지도자로서의 관용을 보이겠다는 듯 씩 웃으며 “적장(敵將)들이 한꺼번에 숙청(肅淸)됐을 때”라며 이렇게 부연설명하는 것이었다.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은 북조선에선 원수나 다름없었소. 그는 분쟁이 일어나면 원점을 타격하겠다고 했고 지도자 동지(김정일)의 사진을 집무실에 붙여 놓은 악질 중 악질이었소. 그런 자를 스스로 잡아넣다니 그건 싸우기 싫다는, 항복하겠다는 뜻이 아니갔소? 게다가 그즈음에 스파이 총책(總責) 셋이 달려 들어갔잖소.”
 
  내가 박근혜 전 대통령 집권 당시의 남재준·이병호·이병기 전 국정원장을 머릿속으로 떠올릴 때 김정은은 비웃으며 이러는 것이었다. “남조선 동무들은 《손자병법》이나 《삼국지》도 안 읽는가? 전쟁은 무기가 아니라 사람이 하는 거란 말이오. 그런데 장수를 제 스스로 잡아넣으면 전쟁은 해 보나 마나지, 아이 그렇소?”
 
  그 순간 내 머릿속엔 촛불집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잇단 장군들의 구속→ 국정원 망신주기→ 방송장악→ 총수 구속을 통한 기업 길들이기→ 애국보수단체 말살의 순(順)으로 전광석화처럼 행해진 ‘대한민국 해체’가 떠올랐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라는 말처럼, 쌓기는 어려워도 무너뜨리기는 쉽다.
 
  그러면서 김정은은 말했다. “거 언제인가, 동무가 일하는 《월간조선》에서도 송나라 때 명장 악비(岳飛)에게 진회(秦檜)가 죄를 뒤집어씌우며 막수유(莫須有·분명하지는 않지만 그런 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뜻)란 말을 했다고 쓰지 않았소? 내 그때 ‘남조선에도 이런 글쟁이들이 있구나’ 하고 얼마나 가슴이 뜨끔했던지.”
 
  나라 밖에서도 동맹해체의 굉음(轟音)이 서서히 커진 것도 그즈음이었다. 처음에 미국은 3개 항공모함 전단(戰團)까지 보내며 혈맹다운 의지를 과시했으나 우리는 중국 눈치만 보며 명청(明淸) 사이에 낀 조선처럼 갈팡질팡했다. 미국이 그 눈치를 챈 뒤 “돈이나 벌고 한국을 버리자”고 마음먹었다는 게 훗날 문서 공개로 밝혀졌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최첨단 전략무기를 한국에 팔 것처럼 했지만 알고 보니 미국에서는 군이 더 이상 구매하지 않기로 함에 따라 생산업체들에 대체판로를 열어 주기 위해, 그동안 대외수출을 금지해 온 ‘전략무기’들을 선심 쓰듯 고가(高價)에 떠넘겨 버렸다. 한미FTA마저 재협상해 대한민국의 국고를 알뜰히 털어 갔다. 한국은 미국과 함께 동맹 대오를 지켜야 할 일본을 괴상한 새우 한 마리로 화나게 했다.
 
  훗날 미국과 일본의 정상은 우리를 ‘덩치는 큰데 속은 새우처럼 좁은 부족국가’ ‘한번도 제 힘으로 나라를 지켜 본 적이 없는 나라’ ‘보호받지 못할 나라는 보호할 필요가 없다’고 비웃으며 함께 미국산 쇠고기로 만든 특제 햄버거를 먹었다고 한다. 언론이 통제된 ‘공화국 남반부’에서 그 소식을 아는 이는 극소수뿐이었다.
 
  나는 겨우 용기를 내 김정은에게 물었다. “장군님도 많은 측근을 처형하지 않았습니까? 고사기총이나 화염방사기로 ….” 비대한 ‘장군’은 중요한 정보라도 전해 주는 듯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건 공포의 패러독스라고 할까? 우린 그래서 더 충성심이 높아졌고 그쪽은 그래서 더 분열됐고. 다 팔자소관이오.”
 
  나는 최후의 질문을 던졌다. “미국이 한국을 버리고 중국은 북한을 안 버릴 것이라는 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김정은은 말했다. “그게 공산주의라는 거요. 미국은 남조선을 버려도 일본이 있잖나? 중국은 우리가 없어지면 자기들이 위험해지거든. 중국이나 우리나 다투는 척하면서 남조선이 무너지길 기다린 게 적중한 것이오.”
 
 
  김정은과의 단독 인터뷰 기사를 쓰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문장 하나하나마다 검열을 받았고 그를 더 기분좋게 만들 수 있는 단어를 뒤지고 또 뒤졌다. 그야말로 나는 ‘언론의 기쁨조’가 된 것이었다. 수없이 많은 퇴고(推敲) 끝에 인터뷰 기사가 활자화됐다. 그것은 내가 쓴 마지막 기사였다. 며칠 뒤 나는 기차에 올라탔다.
 
  끝없이 이어지던 서울의 아파트군(群)은 이미 북한 인민들에게 무상분배됐다. 당성(黨性)이 높거나 간부들은 강남의 아파트를 차지했고 서열대로 집과 차량과 재물이 배분됐다. ‘일등국민’인 ‘공화국 북반부’ 주민들과 달리 ‘하류국민’이 된 ‘공화국 남반부’ 주민들은 거리로 쫓겨나거나 한 가구에 수십 명이 끼여 살게 됐다.
 
  내가 도착한 곳은 함경남도에 있는 요덕수용소였다. 소지품을 다 빼앗기고 그들이 던져준 허름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있는데 거대한 어항에 사람의 해골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게 보였다. 한참 전 본 영화 〈킬링필드〉의 한 장면이 현실로 내 앞에 나타나는 것이었다. “저 해골들은 다 반동분자들입니까?”라고 묻자 관리인이 말했다.
 
  “저 반동들은 한때 남조선에서 종북세력이라고 몰렸던 것들이오. 우리는 배신자를 제일 싫어하오. 한번 배신한 인간들은 또 배신하는 법이지. 게다가 머릿속에 먹물 가득찬 반동들은 교화하기도 어렵거든. 그래서 저놈들부터 처분했지. 총알도 아까워 개돼지처럼 곡괭이자루로 때려죽였다오. 죽을 때 오줌을 질질 싸더구먼, 흐흐흐.”
 
  시일이 지나 관리인과 조금 친해지면서 조각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뒤바꾼 촛불집회 때 결정적 역할을 한 정치인과 방송인과 교수 등 몇몇은 이름뿐인 고위직에 올랐다고 했다. 나머지는 ‘미제의 간첩’이니 ‘부역자’니 하는 죄명을 뒤집어쓰고 숙청됐는데 겨우 살아남은 이들이 간 곳은 풍계리라는 것이다.
 
  잇단 핵실험으로 붕괴된 풍계리의 갱도를 복구하는 것이 그들에게 맡겨진 임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방사능 범벅인 풍계리의 땅속에서 암을 비롯한 온갖 질병에 시달리며 변변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죽느니만 못한 삶을 연명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개마고원에서 불어대는 삭풍은 살을 에는 듯했다. 나는 그나마 ‘장군님’에 대한 칭송 글을 썼다는 이유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는데 고물트럭이 덜컹거리며 또다른 수용자들을 데려오는 것이었다. 얼핏 보니 내리는 사람 중에 신문이나 TV에서 자주 보았던, 권력의 명을 받아 숙청의 칼춤을 추던 유명 검사와 판사도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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