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이 2014년 10월 8일 국정감사장에서 스마트폰으로 비키니를 입은 외국인 여성 사진을 보고 있는 모습을 한 인터넷매체가 보도했습니다. 바로 다음날 새정치민주연합은 벌떼같이 일어섰습니다. 박수현 대변인은 과거 새누리당 전·현직 국회의원의 추문까지 들춰냈습니다. 그는 “‘누드 심재철, 터치 박희태, 비키니 권성동’ 등 누리꾼들이 붙여준 새누리당 의원들 닉네임이 참으로 민망한 수준”이라며 “‘민의의 전당’이라는 본회의장에서 그리고 국정감사장에서 쳐다봐야 할 국민은 안 보고 딴짓에 열중하는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표할 자격이 없다”고 했습니다. 김영근 대변인도 서면 브리핑에서 ‘최소한의 품격과 자질을 의심케 만드는 것’이라고 했고, 수석부대변인이란 사람은 ‘환경노동위 여당 간사직 사퇴’를 주장했습니다. 뿐입니까. 여성위원회까지 나서 “국회의원 품위를 실추시키고 정치 불신을 야기한 권 의원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권 의원 측은 “환노위 관련 기사 검색 중 잘못 눌러 비키니 여성 사진이 뜬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반론이 맞는다면 더더욱 말할 것도 없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스마트폰에 여성 비키니 사진을 띄운 것이 이렇게까지 집중포화를 맞을 일입니까.
이런 장면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前身)인 민주당의 4년 전 모습과 같습니다. ‘강용석 한나라당 의원 성희롱 의혹’ 직후 말입니다. 2010년 7월 강 의원이 여대생들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아나운서 비하 발언’을 했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 민주당의 공세는 폭격(爆擊) 수준이었습니다. “패륜적 성 스캔들로 기록될 것” “의원직을 사퇴해야”(정세균 대표), “강 의원 발언은 엽기적이고 충격적”(이미경 사무총장), “한나라당은 차떼기당, 병역기피당, 성희롱당”(박지원 원내대표) 등 ‘듣기에도 민망한’ 말들이었습니다. 사실 ‘강용석 사건’은 당시 《중앙일보》의 관련 보도에 대해 당사자인 강 의원이 “잘못 전달됐다”고 반박하는 등 진실공방이 막 시작되고 있는 단계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야당은 바로 다음날부터 성 스캔들로 규정해 버렸습니다. 오랜 법정 공방 끝에 강용석씨는 2014년이 되어서야 대법원에서 무죄(無罪)를 확정받았습니다. 강 의원은 그 사이 한나라당에서 제명됐고, 2012년 총선에선 공천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정치인의 생명이 끊긴 것입니다. 그는 지금 TV 진행자·출연자로 유명세를 타고 있긴 합니다만.
강용석 사건과 대리기사 폭행 사건
새정치민주연합 김현 의원과 세월호 유가족 대책위 지도부가 식사를 마치고 나온 뒤 대리기사를 폭행한 사건이 일어난 것은 2014년 9월 17일 0시40분입니다. 이날 방송과 신문 모두 이 사건을 보도했습니다. 목격자도 여럿 있고, 주변 CCTV에 명백히 찍혔음에도 김현 의원은 처음 “폭행 현장에 없었다”고 잡아뗐습니다. 이 바람에 ‘폭행 사건’은 ‘김현 의원 거짓말 사건’으로 둔갑해 눈덩이처럼 커졌습니다. 게다가 김 의원은 경찰의 사건 처리 과정에도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가 경찰을 감독하는 역할을 하는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위원이었기에 가능한 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새정치민주연합은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약속이나 한 듯 조용했습니다. 심지어 최소한 안행위원은 사퇴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는 합당한 지적에도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새정치민주연합은 지금 비상(非常) 상황입니다. 7·30 재보선 참패의 민의(民意)를 받들어 새로운 모습을 보이겠다며 비상대책위원장까지 뽑아놓았습니다. 과거와 정말 다른 모습을 보여도 시원찮을 판에 그들의 대처는 과거보다도 못 한, 이해 못 할 상황의 연속이었습니다. 염장 지르는 것도 아닐진대 김현 의원을 감싸는 발언까지 나왔습니다.
국정감사 개시를 하루 앞둔 10월 6일이 되어서야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입을 열었습니다. 사건 발생 19일 만입니다. 그는 김 의원에 대해 “세월호 유족의 아픔과 서러움을 치유하는 데 온몸을 던진 분” “여대생 자녀를 둔 어머니로 자식을 잃은 유족 옆에 늘 있었다”고 공적(功績)을 열거한 뒤 말미에 사과의 뜻을 밝혔습니다. 기자들은 ‘사과’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지만, 듣기에 따라서는 ‘공적’에 중점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손색이 없는 문장이었습니다.
스스로 추진했던 연금개혁, 왜 말이 없나
오래전 일까지 들춰내지 않더라도 유사한 부작위(不作爲)는 최근에 또 있었습니다.
기자인 제가 공무원연금에 관심을 가진 것은 새정치국민회의를 취재하던 1998년이었습니다. 현 새정치민주연합의 모태 정당입니다. 당시 정기국회를 앞두고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의 자료가 나왔는데, 그해에만 8000억원의 원금 잠식이 예상되고 그 돈을 정부 예산으로 메운다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당시와 같은 추세가 지속되면 2002년 말엔 6조2015억원에 이르렀던 원금이 바닥날 것이란 예상도 나왔습니다. 한동안 신문 지면에 ‘개선 시급’이란 보도가 쏟아질 수밖에요. 더구나 IMF라는 국난(國難)이 우리나라를 덮쳐 모두가 어려움을 호소할 때입니다. 김대중 정부도 개선을 약속하더군요. 제가 정책 담당이 아니라서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결과는 아무 성과도 없이 흐지부지됐다는 점입니다. 노무현 정부 때 역시 공무원연금 개혁 시도가 있었습니다. 역시 실패했죠. 개혁에 실패했다는 말은 공무원연금의 적자 폭이 그동안 더욱 늘었다는 얘기입니다.
마침내 박근혜 정부도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습니다. 9월 22일 한국연금학회와 함께 개선안 세미나를 열려다 공무원 노조의 물리적 저지로 무산됐습니다.
공무원연금 적자 보전 문제는 국가 재정(財政), 나아가 국가의 미래와 연관됩니다. 그런데도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은 꿀 먹은 벙어리입니다. 정부가 개혁을 선언했을 때에도, 세미나가 무산됐을 때도, 연금학회 회장이 파동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을 때도 새정치민주연합의 어느 누구 하나 코멘트하지 않았습니다. 정치·사회적 문제에 대해 회견이나 SNS를 통해 그렇게도 말을 잘하던 국회의원들은 다 어디 갔습니까. 더구나 자신들이 집권했을 당시 추진하다가 완수하지 못한 개혁과제를 박근혜 정부가 재추진한다면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지원해야 이치에 맞는데도 말입니다.
기껏 한다는 말이 사건 발생 15일이 지난 10월 7일에 열린 국정감사에서 연금 개혁에 찬성한다면서도 “개혁이 졸속” “폭력적 방식 추진” 등의 운운을 보고 어이없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우윤근 원내대표의 ‘품위 있는 야당’에 기대
정치인인 만큼 정치·사회적 현안에 대해 논평을 하는 것은 책무이기도 합니다. 정당과 정치인은 현안에 대한 나름의 기준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기준이란 것이 바뀔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달라졌을 때엔 국민들 앞에 설명을 해야 합니다.
몇몇 방송과 신문 외에 소통(疏通) 수단이 없던 시절과 지금은 확연히 다릅니다. 지금은 신문, 방송 외에도 각종 인터넷에 SNS까지 실로 정치인과 국민을 연결해 주는 창구가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논쟁적 주제에 대해 소나기만 피하면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구시대적 사고방식인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남의 잘못은 들보로 보고, 자기 잘못은 티끌로 보는 이중잣대로는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는 과거의 행동과 발언에 대한 검증이 즉각적으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국민 누구나 단 몇 분이면 이런 것들에 대해 확인이 가능합니다. 숨기려는 것이 더 큰 죄가 되는 세상입니다. 그런 점에서 새정치민주연합도 새로운 모습을 보이겠다고 선언한 마당에 보통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야 합니다. 우물 안에서 밖을 내다보지 않은 채 살면 영원히 2등밖에 할 수 없습니다.
마침 우윤근 신임 원내대표가 취임하면서 “균형을 갖고 합리적으로 품위 있는 야당이 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품위(品位)란 사람이 갖추어야 할 위엄이나 기품을 말합니다. 여태껏 야당 수뇌부한테서 들어본 적이 없는 단어여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이런 장면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前身)인 민주당의 4년 전 모습과 같습니다. ‘강용석 한나라당 의원 성희롱 의혹’ 직후 말입니다. 2010년 7월 강 의원이 여대생들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아나운서 비하 발언’을 했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 민주당의 공세는 폭격(爆擊) 수준이었습니다. “패륜적 성 스캔들로 기록될 것” “의원직을 사퇴해야”(정세균 대표), “강 의원 발언은 엽기적이고 충격적”(이미경 사무총장), “한나라당은 차떼기당, 병역기피당, 성희롱당”(박지원 원내대표) 등 ‘듣기에도 민망한’ 말들이었습니다. 사실 ‘강용석 사건’은 당시 《중앙일보》의 관련 보도에 대해 당사자인 강 의원이 “잘못 전달됐다”고 반박하는 등 진실공방이 막 시작되고 있는 단계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야당은 바로 다음날부터 성 스캔들로 규정해 버렸습니다. 오랜 법정 공방 끝에 강용석씨는 2014년이 되어서야 대법원에서 무죄(無罪)를 확정받았습니다. 강 의원은 그 사이 한나라당에서 제명됐고, 2012년 총선에선 공천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정치인의 생명이 끊긴 것입니다. 그는 지금 TV 진행자·출연자로 유명세를 타고 있긴 합니다만.
강용석 사건과 대리기사 폭행 사건
새정치민주연합 김현 의원과 세월호 유가족 대책위 지도부가 식사를 마치고 나온 뒤 대리기사를 폭행한 사건이 일어난 것은 2014년 9월 17일 0시40분입니다. 이날 방송과 신문 모두 이 사건을 보도했습니다. 목격자도 여럿 있고, 주변 CCTV에 명백히 찍혔음에도 김현 의원은 처음 “폭행 현장에 없었다”고 잡아뗐습니다. 이 바람에 ‘폭행 사건’은 ‘김현 의원 거짓말 사건’으로 둔갑해 눈덩이처럼 커졌습니다. 게다가 김 의원은 경찰의 사건 처리 과정에도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가 경찰을 감독하는 역할을 하는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위원이었기에 가능한 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새정치민주연합은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약속이나 한 듯 조용했습니다. 심지어 최소한 안행위원은 사퇴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는 합당한 지적에도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새정치민주연합은 지금 비상(非常) 상황입니다. 7·30 재보선 참패의 민의(民意)를 받들어 새로운 모습을 보이겠다며 비상대책위원장까지 뽑아놓았습니다. 과거와 정말 다른 모습을 보여도 시원찮을 판에 그들의 대처는 과거보다도 못 한, 이해 못 할 상황의 연속이었습니다. 염장 지르는 것도 아닐진대 김현 의원을 감싸는 발언까지 나왔습니다.
국정감사 개시를 하루 앞둔 10월 6일이 되어서야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입을 열었습니다. 사건 발생 19일 만입니다. 그는 김 의원에 대해 “세월호 유족의 아픔과 서러움을 치유하는 데 온몸을 던진 분” “여대생 자녀를 둔 어머니로 자식을 잃은 유족 옆에 늘 있었다”고 공적(功績)을 열거한 뒤 말미에 사과의 뜻을 밝혔습니다. 기자들은 ‘사과’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지만, 듣기에 따라서는 ‘공적’에 중점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손색이 없는 문장이었습니다.
스스로 추진했던 연금개혁, 왜 말이 없나
오래전 일까지 들춰내지 않더라도 유사한 부작위(不作爲)는 최근에 또 있었습니다.
기자인 제가 공무원연금에 관심을 가진 것은 새정치국민회의를 취재하던 1998년이었습니다. 현 새정치민주연합의 모태 정당입니다. 당시 정기국회를 앞두고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의 자료가 나왔는데, 그해에만 8000억원의 원금 잠식이 예상되고 그 돈을 정부 예산으로 메운다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당시와 같은 추세가 지속되면 2002년 말엔 6조2015억원에 이르렀던 원금이 바닥날 것이란 예상도 나왔습니다. 한동안 신문 지면에 ‘개선 시급’이란 보도가 쏟아질 수밖에요. 더구나 IMF라는 국난(國難)이 우리나라를 덮쳐 모두가 어려움을 호소할 때입니다. 김대중 정부도 개선을 약속하더군요. 제가 정책 담당이 아니라서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결과는 아무 성과도 없이 흐지부지됐다는 점입니다. 노무현 정부 때 역시 공무원연금 개혁 시도가 있었습니다. 역시 실패했죠. 개혁에 실패했다는 말은 공무원연금의 적자 폭이 그동안 더욱 늘었다는 얘기입니다.
마침내 박근혜 정부도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습니다. 9월 22일 한국연금학회와 함께 개선안 세미나를 열려다 공무원 노조의 물리적 저지로 무산됐습니다.
공무원연금 적자 보전 문제는 국가 재정(財政), 나아가 국가의 미래와 연관됩니다. 그런데도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은 꿀 먹은 벙어리입니다. 정부가 개혁을 선언했을 때에도, 세미나가 무산됐을 때도, 연금학회 회장이 파동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을 때도 새정치민주연합의 어느 누구 하나 코멘트하지 않았습니다. 정치·사회적 문제에 대해 회견이나 SNS를 통해 그렇게도 말을 잘하던 국회의원들은 다 어디 갔습니까. 더구나 자신들이 집권했을 당시 추진하다가 완수하지 못한 개혁과제를 박근혜 정부가 재추진한다면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지원해야 이치에 맞는데도 말입니다.
기껏 한다는 말이 사건 발생 15일이 지난 10월 7일에 열린 국정감사에서 연금 개혁에 찬성한다면서도 “개혁이 졸속” “폭력적 방식 추진” 등의 운운을 보고 어이없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우윤근 원내대표의 ‘품위 있는 야당’에 기대
정치인인 만큼 정치·사회적 현안에 대해 논평을 하는 것은 책무이기도 합니다. 정당과 정치인은 현안에 대한 나름의 기준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기준이란 것이 바뀔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달라졌을 때엔 국민들 앞에 설명을 해야 합니다.
몇몇 방송과 신문 외에 소통(疏通) 수단이 없던 시절과 지금은 확연히 다릅니다. 지금은 신문, 방송 외에도 각종 인터넷에 SNS까지 실로 정치인과 국민을 연결해 주는 창구가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논쟁적 주제에 대해 소나기만 피하면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구시대적 사고방식인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남의 잘못은 들보로 보고, 자기 잘못은 티끌로 보는 이중잣대로는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는 과거의 행동과 발언에 대한 검증이 즉각적으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국민 누구나 단 몇 분이면 이런 것들에 대해 확인이 가능합니다. 숨기려는 것이 더 큰 죄가 되는 세상입니다. 그런 점에서 새정치민주연합도 새로운 모습을 보이겠다고 선언한 마당에 보통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야 합니다. 우물 안에서 밖을 내다보지 않은 채 살면 영원히 2등밖에 할 수 없습니다.
마침 우윤근 신임 원내대표가 취임하면서 “균형을 갖고 합리적으로 품위 있는 야당이 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품위(品位)란 사람이 갖추어야 할 위엄이나 기품을 말합니다. 여태껏 야당 수뇌부한테서 들어본 적이 없는 단어여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