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언론계 대선배를 만났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을 도왔던 친이(親李)입니다. 잡지 얘기를 하다가 정치 얘기로 빠졌습니다. 그분은 시사 잡지의 경우 결국 ‘정치’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얘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죠. 그분 이야기입니다.
“《동아일보》 봤더니 안철수를 너무 세게 조집디다. 뭘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어. 안철수 현상은 내연(內燃)하던 정치권 불신이 극적으로 폭발한 것입니다. 그건 안철수가 아니어도 어떤 촉매제만 있으면 터지게 돼 있어요. 그 중심에 서 있는 안철수를 있는 그대로 봐야지 자꾸 비틀려고 하면 안 돼요. 유권자를 잘 모르는 겁니다.”
그러면서 저한테도 안철수를 어떻게 보느냐고 묻더군요. 전 “워낙 드러난 게 없어 잘 모르겠지만, 리더십이 약해 보이던데요. (제가) 정치인들을 오랫동안 취재해 봤지만 리더십이 약하면 결국은 우왕좌왕하다 끝나죠. 잘 아시다시피 동네북처럼 때릴 수 있는 게 정치지만 실제 하려고 하면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게 이 영역이거든요”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하나 더 보태더군요. “나도 기자 하다 정치에 발 담가봤잖아요. 리더십은 제도가 만드는 겁니다. 개인의 역량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참모를 누굴 쓰느냐에 따라 리더십은 얼마든지 보완할 수 있죠. MB 보세요. 부나방들만 쓰니 추락하잖아요.”
왜 질문에 답만 했을까
정말 그럴까요. 저만큼 정치 취재를 해본 분은 아니지만, 몇 년간 현실 정치에 투신하고 있으니 나름 일가견이 있으리란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마침 발간된 《안철수의 생각》이란 책을 들췄습니다.
책 표지를 보자마자 실망했습니다. 직접 쓴 게 아니더군요. 일간지 기자 출신의 교수가 묻고 안 원장이 답한 형식입니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하겠지만 인터뷰를 많이 해본 사람은 그 차이를 압니다. 이런 식에는 ‘정리자’의 생각이 많이 들어가 있게 마련입니다. ‘정리자’가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묻느냐에 따라 확 달라지거든요. 서두르다가 그랬는지 모르지만, 이런 방식은 자기 생각을 밝히는 정도(正道)가 아닙니다. 자서전형 책을 낸다고 알고 있었는데 약간 허탈했습니다.
읽다가 여기저기에서 생각이 복잡했습니다. 그런대로 넘어가다가 35쪽에서는 이건 아니다 싶더군요. ‘정리자’가 새누리당에 이어 민주당에 대한 입장을 물었습니다. 안 원장은 “(민주당이) 10년간 집권했으면 서민의 살림살이가 나아지도록 했어야 하는데 어땠습니까. 저는 말이나 생각보다 중요한 것이 결국 선택과 행동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민주당 정권의 경우… 선택과 행동이 국민에게 실망을 주고 말았어요”라고 했습니다. 읽는 순간 안 원장 본인의 ‘선택과 행동’이 당장 오버랩되더군요.
그는 1년 가까이 사실상 정치인으로 활동 중입니다. 그럼에도 계속 ‘선택과 행동’을 미뤄왔습니다. 그러더니 대선을 불과 5개월 앞두고 ‘생각’부터 내놨습니다. 국민들은 지금 그의 ‘선택과 행동’을 알고 싶어합니다. 본인 표현대로 ‘덜 중요한 것’은 나중에 알거나 때에 따라선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만약 그가 대선에 출마하지 않는다면 그가 세상의 일에 어떤 관점을 갖고 있는지 전 별로 알고 싶지 않습니다.
특정 진영 논리에 기댄 그의 생각
42쪽 리더십 얘기는 기자인 저에게 황당하게 들렸습니다. “지난 5년 동안 정당한 요구, 정당한 호소, 정당한 의사 표현 등이 많이 억압되지 않았습니까. ‘법질서 확립’이라는 명분 아래 정당한 요구들마저 불법적인 것으로 규정됐고 이 때문에 시민들의 분노가 상당히 누적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뭐가 정당한 의사 표현이고 뭐가 불법적인 것으로 규정됐단 말인지 없습니다. 광우병 시위를 말하는 것인가요, 용산 참사를 말하는 것인가요. 아님 다른 것을 염두에 둔 것인가요. 뒷부분에 ‘생존을 위한 요구와 주장’이란 표현이 나오긴 하는데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 것인지 분명하지가 않더군요. ‘이명박 정부 5년’을 이렇게 규정하는 것은 야당의 일방 주장입니다. “특정한 진영(陣營)의 논리에 기대지 않을 것”이라는 안 원장의 종전 발언과는 맞지 않습니다.
광우병 촛불집회 얘기도 그렇습니다. “광우병 촛불집회를 낳은 이명박 정부의 문제는 우선 과정 관리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필요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결정 과정에 대해 국민의 의문을 풀어주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이게 제대로 안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의견이 엇갈려 공개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전 이명박 정부를 옹호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 말은 납득이 어렵습니다. ‘과정 관리’만 잘했으면 ‘광우병 촛불집회’가 없었을까요. 그건 MBC가 오보(誤報·나중 법원 판결에서도 드러났습니다)로 국민을 선동했고,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출신) 인사(人事) 등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합세해 같은 목소리를 낸 것이 본질입니다. ‘광우병 위험성’에 공개토론이 필요하다는 것은 어이없기까지 합니다. 저와 제 가족도 그랬고, 안 원장도 미국에 사는 동안 쇠고기 많이 먹었을 텐데요. 과학을 전공한 안 원장의 생각이 정말 이런 것인지 아님 정리자의 편견이 개입됐는지 궁금한 대목입니다.
‘창의성’ 없는 모범답안식 답변
책 전반에 걸쳐 아쉬운 점은 현재 여(與)와 야(野) 주장을 다 비판하면서 모범(模範)답안만을 내놓고 있다는 점입니다. 몇 가지만 보겠습니다.
“(광범위한 사회 불안을) 개개인의 경쟁력이나 책임에만 맡기지 말고 국가가 기본적인 안전망을 제공해서 불안을 해소해 줄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81쪽) “재벌의 폐해가 커지는 과정에서 검찰과 법원이 ‘법치’를 바로 세우기 위한 역할을 제대로 못 했으니 사법개혁도 필요하고,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한 대가를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노사개혁도 함께 이뤄야 하겠죠.”(117쪽) “(대통령 측근 비리의 근본적 해법은) 여러 사람에게 특별히 신세진 일이 없는 사람이 인사권자가 되어 능력에 따라 적합한 사람들을 적재적소에서 일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144쪽)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은 교류협력으로 남북 긴장완화의 성과를 거둔 반면 퍼주기 논란 등 남남갈등, 즉 남한 내의 이념갈등을 유발했죠. 투명성이 부족했다는 문제도 있었고요. 반면 이명박 정부는 채찍만 써서 남북갈등이 심화됐습니다. … 이제 우리는 지난 15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장기적인 관점을 유지하면서도 유연한 대북전략을 세워야 합니다.”(153쪽)
이명박 정부도, 새누리당도, 민주통합당도 모두 이렇게 하려고 했거나 적어도 그런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어느 정부든 어느 정당이든 국민을 못 살게 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습니다. 여건이 안 될 뿐입니다. 사회안전망을 갖추자니 예산이 부족하고, 사법개혁을 하자니 관련자들 다툼으로 날 새고, 대선을 치르다 보니 신세진 사람이 너무나 많고, 북한이 워낙 예측 불가능이라 대응이 쉽지 않고 뭐 이런 식입니다. 제가 듣고 싶었던 것은 “밥 먹어라”가 아니라 “어떤 밥을 어떤 반찬과 함께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 것일까요.
기자와 소통 없는 언론관
제가 기자인지라 언론관도 언급 안 할 수가 없군요. 정리자가 KBS와 MBC 파업 얘기를 꺼내자 안 원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정권이 바뀐다고 언론의 논조가 왔다갔다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공영방송은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사장 후보 추천위원회를 구성해서 정권과 무관한 전문가를 사장으로 선임할 수 있도록 확고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226쪽)
이건 시쳇말로 ‘공자님 말씀’입니다. 어느 정부든 이렇게 말해왔고, 실제 형식상·제도상으로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딴판이었습니다. 지금 안 원장의 대변인은 유민영씨입니다. 유씨는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춘추관장이었습니다. 만약 안 원장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유씨 같은 사람이 방송사 사장에 거론될 것입니다. ‘제도적으로 공정한 절차’를 거쳐서요. 이런 걸 어떻게 막을 것이냐를 읽고 싶었는데 그런 건 없더군요.
앞으로 그에게서 구름 위의 얘기 말고 땅을 딛고 하는 말을 들었으면 합니다. 지금 같아선 그런 기회가 올지 안 올지 모르겠군요.⊙
“《동아일보》 봤더니 안철수를 너무 세게 조집디다. 뭘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어. 안철수 현상은 내연(內燃)하던 정치권 불신이 극적으로 폭발한 것입니다. 그건 안철수가 아니어도 어떤 촉매제만 있으면 터지게 돼 있어요. 그 중심에 서 있는 안철수를 있는 그대로 봐야지 자꾸 비틀려고 하면 안 돼요. 유권자를 잘 모르는 겁니다.”
그러면서 저한테도 안철수를 어떻게 보느냐고 묻더군요. 전 “워낙 드러난 게 없어 잘 모르겠지만, 리더십이 약해 보이던데요. (제가) 정치인들을 오랫동안 취재해 봤지만 리더십이 약하면 결국은 우왕좌왕하다 끝나죠. 잘 아시다시피 동네북처럼 때릴 수 있는 게 정치지만 실제 하려고 하면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게 이 영역이거든요”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하나 더 보태더군요. “나도 기자 하다 정치에 발 담가봤잖아요. 리더십은 제도가 만드는 겁니다. 개인의 역량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참모를 누굴 쓰느냐에 따라 리더십은 얼마든지 보완할 수 있죠. MB 보세요. 부나방들만 쓰니 추락하잖아요.”
왜 질문에 답만 했을까
정말 그럴까요. 저만큼 정치 취재를 해본 분은 아니지만, 몇 년간 현실 정치에 투신하고 있으니 나름 일가견이 있으리란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마침 발간된 《안철수의 생각》이란 책을 들췄습니다.
책 표지를 보자마자 실망했습니다. 직접 쓴 게 아니더군요. 일간지 기자 출신의 교수가 묻고 안 원장이 답한 형식입니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하겠지만 인터뷰를 많이 해본 사람은 그 차이를 압니다. 이런 식에는 ‘정리자’의 생각이 많이 들어가 있게 마련입니다. ‘정리자’가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묻느냐에 따라 확 달라지거든요. 서두르다가 그랬는지 모르지만, 이런 방식은 자기 생각을 밝히는 정도(正道)가 아닙니다. 자서전형 책을 낸다고 알고 있었는데 약간 허탈했습니다.
읽다가 여기저기에서 생각이 복잡했습니다. 그런대로 넘어가다가 35쪽에서는 이건 아니다 싶더군요. ‘정리자’가 새누리당에 이어 민주당에 대한 입장을 물었습니다. 안 원장은 “(민주당이) 10년간 집권했으면 서민의 살림살이가 나아지도록 했어야 하는데 어땠습니까. 저는 말이나 생각보다 중요한 것이 결국 선택과 행동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민주당 정권의 경우… 선택과 행동이 국민에게 실망을 주고 말았어요”라고 했습니다. 읽는 순간 안 원장 본인의 ‘선택과 행동’이 당장 오버랩되더군요.
그는 1년 가까이 사실상 정치인으로 활동 중입니다. 그럼에도 계속 ‘선택과 행동’을 미뤄왔습니다. 그러더니 대선을 불과 5개월 앞두고 ‘생각’부터 내놨습니다. 국민들은 지금 그의 ‘선택과 행동’을 알고 싶어합니다. 본인 표현대로 ‘덜 중요한 것’은 나중에 알거나 때에 따라선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만약 그가 대선에 출마하지 않는다면 그가 세상의 일에 어떤 관점을 갖고 있는지 전 별로 알고 싶지 않습니다.
특정 진영 논리에 기댄 그의 생각
42쪽 리더십 얘기는 기자인 저에게 황당하게 들렸습니다. “지난 5년 동안 정당한 요구, 정당한 호소, 정당한 의사 표현 등이 많이 억압되지 않았습니까. ‘법질서 확립’이라는 명분 아래 정당한 요구들마저 불법적인 것으로 규정됐고 이 때문에 시민들의 분노가 상당히 누적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뭐가 정당한 의사 표현이고 뭐가 불법적인 것으로 규정됐단 말인지 없습니다. 광우병 시위를 말하는 것인가요, 용산 참사를 말하는 것인가요. 아님 다른 것을 염두에 둔 것인가요. 뒷부분에 ‘생존을 위한 요구와 주장’이란 표현이 나오긴 하는데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 것인지 분명하지가 않더군요. ‘이명박 정부 5년’을 이렇게 규정하는 것은 야당의 일방 주장입니다. “특정한 진영(陣營)의 논리에 기대지 않을 것”이라는 안 원장의 종전 발언과는 맞지 않습니다.
광우병 촛불집회 얘기도 그렇습니다. “광우병 촛불집회를 낳은 이명박 정부의 문제는 우선 과정 관리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필요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결정 과정에 대해 국민의 의문을 풀어주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이게 제대로 안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의견이 엇갈려 공개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전 이명박 정부를 옹호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 말은 납득이 어렵습니다. ‘과정 관리’만 잘했으면 ‘광우병 촛불집회’가 없었을까요. 그건 MBC가 오보(誤報·나중 법원 판결에서도 드러났습니다)로 국민을 선동했고,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출신) 인사(人事) 등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합세해 같은 목소리를 낸 것이 본질입니다. ‘광우병 위험성’에 공개토론이 필요하다는 것은 어이없기까지 합니다. 저와 제 가족도 그랬고, 안 원장도 미국에 사는 동안 쇠고기 많이 먹었을 텐데요. 과학을 전공한 안 원장의 생각이 정말 이런 것인지 아님 정리자의 편견이 개입됐는지 궁금한 대목입니다.
‘창의성’ 없는 모범답안식 답변
책 전반에 걸쳐 아쉬운 점은 현재 여(與)와 야(野) 주장을 다 비판하면서 모범(模範)답안만을 내놓고 있다는 점입니다. 몇 가지만 보겠습니다.
“(광범위한 사회 불안을) 개개인의 경쟁력이나 책임에만 맡기지 말고 국가가 기본적인 안전망을 제공해서 불안을 해소해 줄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81쪽) “재벌의 폐해가 커지는 과정에서 검찰과 법원이 ‘법치’를 바로 세우기 위한 역할을 제대로 못 했으니 사법개혁도 필요하고,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한 대가를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노사개혁도 함께 이뤄야 하겠죠.”(117쪽) “(대통령 측근 비리의 근본적 해법은) 여러 사람에게 특별히 신세진 일이 없는 사람이 인사권자가 되어 능력에 따라 적합한 사람들을 적재적소에서 일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144쪽)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은 교류협력으로 남북 긴장완화의 성과를 거둔 반면 퍼주기 논란 등 남남갈등, 즉 남한 내의 이념갈등을 유발했죠. 투명성이 부족했다는 문제도 있었고요. 반면 이명박 정부는 채찍만 써서 남북갈등이 심화됐습니다. … 이제 우리는 지난 15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장기적인 관점을 유지하면서도 유연한 대북전략을 세워야 합니다.”(153쪽)
이명박 정부도, 새누리당도, 민주통합당도 모두 이렇게 하려고 했거나 적어도 그런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어느 정부든 어느 정당이든 국민을 못 살게 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습니다. 여건이 안 될 뿐입니다. 사회안전망을 갖추자니 예산이 부족하고, 사법개혁을 하자니 관련자들 다툼으로 날 새고, 대선을 치르다 보니 신세진 사람이 너무나 많고, 북한이 워낙 예측 불가능이라 대응이 쉽지 않고 뭐 이런 식입니다. 제가 듣고 싶었던 것은 “밥 먹어라”가 아니라 “어떤 밥을 어떤 반찬과 함께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 것일까요.
기자와 소통 없는 언론관
제가 기자인지라 언론관도 언급 안 할 수가 없군요. 정리자가 KBS와 MBC 파업 얘기를 꺼내자 안 원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정권이 바뀐다고 언론의 논조가 왔다갔다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공영방송은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사장 후보 추천위원회를 구성해서 정권과 무관한 전문가를 사장으로 선임할 수 있도록 확고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226쪽)
이건 시쳇말로 ‘공자님 말씀’입니다. 어느 정부든 이렇게 말해왔고, 실제 형식상·제도상으로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딴판이었습니다. 지금 안 원장의 대변인은 유민영씨입니다. 유씨는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춘추관장이었습니다. 만약 안 원장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유씨 같은 사람이 방송사 사장에 거론될 것입니다. ‘제도적으로 공정한 절차’를 거쳐서요. 이런 걸 어떻게 막을 것이냐를 읽고 싶었는데 그런 건 없더군요.
앞으로 그에게서 구름 위의 얘기 말고 땅을 딛고 하는 말을 들었으면 합니다. 지금 같아선 그런 기회가 올지 안 올지 모르겠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