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기자를 하다 《월간조선》으로 오니 저의 생각과 생활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일간신문은 하루살이와도 같습니다. 아침에 출근해 기사 기획하고 취재해 저녁에 원고를 냅니다. 지극히 단순화하면 ‘기사의 생로병사(生老病死)’가 하루에 응축돼 있습니다. 하루가 후딱 지나갑니다. 일주일은 매우 길지요. 주말이 왜 그렇게 안 오는지요. 한 달은 말할 것도 없고요.
월간지에 근무하게 되니 한 달이 꼭 하루처럼 느껴지더군요. 어떻게 된 일인지 금세 흘러갑니다. 반면에 하루하루는 다소 느긋합니다. 일간신문의 마감이 임박한 저녁시간은 더욱 비교가 됩니다. 때문에 하루가 길게 느껴집니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뤄도 되고요.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를 시간 단위로 쪼개 살던 때와 한 달을 며칠 단위의 토막으로 나눠 살아야 하는 때는 크게 다르더군요. 외부인과의 약속이 비교적 자유롭고, 약속 시간에도 여간해선 늦지 않습니다. 계획적인 삶이 가능합니다.
그보다 더 바뀐 것은 요즘 언론과 매체에서 다루는 기사를 보는 눈입니다. 제가 일간신문사에서 일할 당시, 그게 불과 몇 년 전이지만, 기자들 간 공감대(共感帶)가 상당했습니다. 불의(不義)를 보면 《조선일보》 기자와 《한겨레》 기자가 같이 흥분하곤 했습니다. 불의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적어도 대학 정도 졸업한 사람이 갖고 있는 상식(常識)이고요. 좀 더 유식한 척하면 자연법(自然法)적 원리에 기초한 원칙이나 약속을 말하는 것이지요.
이런 것 중의 하나가 아주 흔한 말이지만 신뢰입니다.
요즘 정치권의 최대 이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입니다. 노무현 정부가 이니셔티브를 취해 미국과 합의했습니다. 발효(發效)만 미뤘지요. 이걸 이명박 정부가 약간의 재협상을 거쳐 시행하고 있습니다. 내용은 노무현 정부 때보다 한미 간 평등 쪽으로 이동했지요. 재협상 자체가 민주당의 요구였기 때문입니다.
자기 말을 손바닥처럼 뒤집는 사람들
그런데 노무현 정부 때 한미 FTA를 적극 지지했던 한명숙, 정동영, 유시민씨 등은 말을 바꿔 이제 반대의 선봉에 서고 있습니다. 한명숙씨가 대표인 민주통합당은 집권 후 한미 FTA를 폐기한다는 서한을 미국에 보내기까지 했습니다. ‘노무현의 아바타’라는 ‘담백한 정치인’ 문재인씨도 뒤늦게 재협상 얘기를 꺼냈습니다.
제가 미국의 통상 당국자라면 흥분보다는 그냥 웃어넘길 것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요? ‘FTA 폐기’ 서한을 주도한 사람들이 모두 말 바꾸기를 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한 말을 처음 뒤집을 땐 용기가 필요합니다. 총리나 장관과 같이 ‘책임 있는 당국자’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살아온 전 생애를 걸어야 합니다. 몇년 전의 ‘자기’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 어디 쉽습니까. 그런데 한 번 ‘책임’을 내팽개친 사람의 두 번째 자기부정은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습니다.
미국의 ‘책임 있는 당국자’들이 이런 것을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러니 민주통합당의 행태를 ‘언제 바꿀지 모를 제스처’로 여기지 않겠습니까. 이런 것에 예민하게 반응했다가는 ‘한국을 다룰 줄 모른다’는 내부 비판에 직면할 것입니다. 그만큼 한국 정치인들, 나아가 그들을 뽑은 한국민들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지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더불어 제가 아쉬워하는 것은 《한겨레》가 줄곧 한미 FTA에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 하더라도, 말 바꾸기나 또는 국가 간 관계를 국내 정치용으로 쓰려는 소아적 행태에 대해서조차 눈을 크게 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안의 본질과 그것을 다루는 잘못된 태도는 구분해서 대응해야 하는데도 말입니다. “요즘 현장 기자들 분위기가 그렇게 많이 변했나”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칩니다.
믿음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만행’은 ‘정봉주법’에서 그대로 나타납니다.
정봉주法 추진은 ‘만행’
간단히 말하면, 정봉주 전 열린우리당 의원은 BBK 사건과 관련해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법원의 판결을 받아 감옥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민주통합당은 현행법을 바꿔 ‘허위임을 알고, 후보자를 비방할 목적이 있어야’ 처벌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걸 정말 법제화한다면 우리 사회가 그동안 믿고 가꿔 왔던 두 가지 중요한 약속을 허무는 것입니다.
하나는 공적(公的) 관심 사항에 대해 “거짓인 줄 몰랐다” “비방할 목적은 없었다”고 하면 상당 부분 면책한다는 것인데, 이건 황당하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된다면 공인(公人)들, 특히 정치인들은 아마도 수백 번 소설 속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것입니다.
민주당 사람들이 앞장서 법을 만들었다고 피해 갈 수가 있겠습니까. 북한을 방문했다 하면 “김정은에게 충성 맹세했다”는 말이 구체적인 허위사실들과 함께 무성할 것이고, 업자만 만났다 하면 “돈 받았다”는 공격에 시달릴 것입니다. 선거 때만 되면 “혼외(婚外) 자식이 있다” “이혼했다” “대학 학력이 허위다”는 소문이 판치는 게 정치판의 현실입니다. 그걸 모두 다 극복하고 배지를 단 분들이 이런 주장을 한다는 점에서 전 감히 ‘만행’이라고 규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봉주 살리자고―그래 봤자 상식이 살아 있는 한 살 수도 없습니다만―흙탕물을 뒤집어쓰자는 것인데, 그럴 수는 없지요.
또 하나는 민주당이 이 법을 만들어 정 전 의원을 소급(遡及)해서 풀어 주자는 것인데, 이것도 헌법에서 명시한 소급입법 금지에 반하는 것입니다. 소급입법 금지는 대학 교양과목 수준에서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법의 일반 원칙입니다.
그런데도 몇몇 신문을 보면 사실보도만 할 뿐 사회적 약속에 대한 배신을 별도로 지적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정말 현장의 기자들도 서로 다른 원칙에 따라 우리 편이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기사를 쓰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합니다. 적어도 2000년 전후, 제가 현장에서 취재할 때 《조선일보》 기자나 《한겨레》 기자나 기자실에서 만나 얘기해 보면 시각차가 별로 없었는데 말입니다.
2월 9일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한 ‘부실 저축은행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조치법’ 역시 상식으로 세상을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믿음을 저버린 전형입니다.
부산저축은행 사건으로 부산 지역 민심이 악화한 건 사실입니다. 평생 모은 재산을 다 넣었다가 잃게 된 안타까운 사연이 많은 것 또한 인정합니다. 저축은행이 문 닫으면 5000만원 이상은 받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고 예금한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행 예금자보호법 체계를 허무는 것은 해법이 아닙니다.
‘학습효과’가 두려운 저축은행 사건
저축은행이 높은 이자를 주는 것은 그만큼 리스크(위험)가 크기 때문입니다. 신용금고가 저축은행으로 간판을 바꿔 달도록 하는 바람에 예금자들을 헷갈리게 한 측면은 있지만, 어쨌든 위험은 기본적으로 예금자가 져야 합니다. 은행 소유자도 책임을 져야 하고요. 그걸 일반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메워 준다는 것은 복지(福祉)도, 상호부조(相互扶助)도 아닙니다.
소급입법의 문제와 함께 경제논리가 아닌 정치논리에 따른 결정이란 것도 문제입니다. 새누리당이 부산 선거에서 지금처럼 어렵지 않아도 이런 결정을 했을까요? 민주통합당이 부산에서 의석을 전혀 얻을 가능성이 없었다면 이런 결정에 동의했을까요?
현실적인 우려는 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2008년 9월 이후 영업정지된 저축은행 18개 외에도 부실 은행이 속출할 것이라고 합니다. 몇천억, 몇조가 들더라도 해 준다고 칩시다. 더 큰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예금자보호법’ ‘소급입법’ 등의 장애를 모두 무너뜨린 것이 이번 사태입니다. 이는 ‘밀어붙이니 되더라’는 학습효과를 낳을 것입니다. 이걸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입니까. 좀 심하게 말하면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안되는 일이란 없게 될 판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건 사리에 맞지 않고…” “이건 법에 안되게 돼 있는데…” 등으로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구분해 왔습니다. 그것이 무너지면 법도, 사리도, 상식도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원시사회나 다름 없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만은 《조선일보》도, 《한겨레》도 시각차가 크지 않아 다행입니다. 그렇지만 파장을 충분히 알 텐데, 다른 기사들 때문인지 생각보다 적게 다룬 듯합니다. 3월입니다. 정치판에도, 언론에도 얼음이 녹아내렸으면 좋겠습니다.⊙
월간지에 근무하게 되니 한 달이 꼭 하루처럼 느껴지더군요. 어떻게 된 일인지 금세 흘러갑니다. 반면에 하루하루는 다소 느긋합니다. 일간신문의 마감이 임박한 저녁시간은 더욱 비교가 됩니다. 때문에 하루가 길게 느껴집니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뤄도 되고요.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를 시간 단위로 쪼개 살던 때와 한 달을 며칠 단위의 토막으로 나눠 살아야 하는 때는 크게 다르더군요. 외부인과의 약속이 비교적 자유롭고, 약속 시간에도 여간해선 늦지 않습니다. 계획적인 삶이 가능합니다.
그보다 더 바뀐 것은 요즘 언론과 매체에서 다루는 기사를 보는 눈입니다. 제가 일간신문사에서 일할 당시, 그게 불과 몇 년 전이지만, 기자들 간 공감대(共感帶)가 상당했습니다. 불의(不義)를 보면 《조선일보》 기자와 《한겨레》 기자가 같이 흥분하곤 했습니다. 불의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적어도 대학 정도 졸업한 사람이 갖고 있는 상식(常識)이고요. 좀 더 유식한 척하면 자연법(自然法)적 원리에 기초한 원칙이나 약속을 말하는 것이지요.
이런 것 중의 하나가 아주 흔한 말이지만 신뢰입니다.
요즘 정치권의 최대 이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입니다. 노무현 정부가 이니셔티브를 취해 미국과 합의했습니다. 발효(發效)만 미뤘지요. 이걸 이명박 정부가 약간의 재협상을 거쳐 시행하고 있습니다. 내용은 노무현 정부 때보다 한미 간 평등 쪽으로 이동했지요. 재협상 자체가 민주당의 요구였기 때문입니다.
자기 말을 손바닥처럼 뒤집는 사람들
그런데 노무현 정부 때 한미 FTA를 적극 지지했던 한명숙, 정동영, 유시민씨 등은 말을 바꿔 이제 반대의 선봉에 서고 있습니다. 한명숙씨가 대표인 민주통합당은 집권 후 한미 FTA를 폐기한다는 서한을 미국에 보내기까지 했습니다. ‘노무현의 아바타’라는 ‘담백한 정치인’ 문재인씨도 뒤늦게 재협상 얘기를 꺼냈습니다.
제가 미국의 통상 당국자라면 흥분보다는 그냥 웃어넘길 것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요? ‘FTA 폐기’ 서한을 주도한 사람들이 모두 말 바꾸기를 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한 말을 처음 뒤집을 땐 용기가 필요합니다. 총리나 장관과 같이 ‘책임 있는 당국자’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살아온 전 생애를 걸어야 합니다. 몇년 전의 ‘자기’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 어디 쉽습니까. 그런데 한 번 ‘책임’을 내팽개친 사람의 두 번째 자기부정은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습니다.
미국의 ‘책임 있는 당국자’들이 이런 것을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러니 민주통합당의 행태를 ‘언제 바꿀지 모를 제스처’로 여기지 않겠습니까. 이런 것에 예민하게 반응했다가는 ‘한국을 다룰 줄 모른다’는 내부 비판에 직면할 것입니다. 그만큼 한국 정치인들, 나아가 그들을 뽑은 한국민들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지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더불어 제가 아쉬워하는 것은 《한겨레》가 줄곧 한미 FTA에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 하더라도, 말 바꾸기나 또는 국가 간 관계를 국내 정치용으로 쓰려는 소아적 행태에 대해서조차 눈을 크게 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안의 본질과 그것을 다루는 잘못된 태도는 구분해서 대응해야 하는데도 말입니다. “요즘 현장 기자들 분위기가 그렇게 많이 변했나”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칩니다.
믿음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만행’은 ‘정봉주법’에서 그대로 나타납니다.
정봉주法 추진은 ‘만행’
간단히 말하면, 정봉주 전 열린우리당 의원은 BBK 사건과 관련해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법원의 판결을 받아 감옥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민주통합당은 현행법을 바꿔 ‘허위임을 알고, 후보자를 비방할 목적이 있어야’ 처벌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걸 정말 법제화한다면 우리 사회가 그동안 믿고 가꿔 왔던 두 가지 중요한 약속을 허무는 것입니다.
하나는 공적(公的) 관심 사항에 대해 “거짓인 줄 몰랐다” “비방할 목적은 없었다”고 하면 상당 부분 면책한다는 것인데, 이건 황당하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된다면 공인(公人)들, 특히 정치인들은 아마도 수백 번 소설 속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것입니다.
민주당 사람들이 앞장서 법을 만들었다고 피해 갈 수가 있겠습니까. 북한을 방문했다 하면 “김정은에게 충성 맹세했다”는 말이 구체적인 허위사실들과 함께 무성할 것이고, 업자만 만났다 하면 “돈 받았다”는 공격에 시달릴 것입니다. 선거 때만 되면 “혼외(婚外) 자식이 있다” “이혼했다” “대학 학력이 허위다”는 소문이 판치는 게 정치판의 현실입니다. 그걸 모두 다 극복하고 배지를 단 분들이 이런 주장을 한다는 점에서 전 감히 ‘만행’이라고 규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봉주 살리자고―그래 봤자 상식이 살아 있는 한 살 수도 없습니다만―흙탕물을 뒤집어쓰자는 것인데, 그럴 수는 없지요.
또 하나는 민주당이 이 법을 만들어 정 전 의원을 소급(遡及)해서 풀어 주자는 것인데, 이것도 헌법에서 명시한 소급입법 금지에 반하는 것입니다. 소급입법 금지는 대학 교양과목 수준에서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법의 일반 원칙입니다.
그런데도 몇몇 신문을 보면 사실보도만 할 뿐 사회적 약속에 대한 배신을 별도로 지적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정말 현장의 기자들도 서로 다른 원칙에 따라 우리 편이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기사를 쓰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합니다. 적어도 2000년 전후, 제가 현장에서 취재할 때 《조선일보》 기자나 《한겨레》 기자나 기자실에서 만나 얘기해 보면 시각차가 별로 없었는데 말입니다.
2월 9일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한 ‘부실 저축은행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조치법’ 역시 상식으로 세상을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믿음을 저버린 전형입니다.
부산저축은행 사건으로 부산 지역 민심이 악화한 건 사실입니다. 평생 모은 재산을 다 넣었다가 잃게 된 안타까운 사연이 많은 것 또한 인정합니다. 저축은행이 문 닫으면 5000만원 이상은 받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고 예금한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행 예금자보호법 체계를 허무는 것은 해법이 아닙니다.
‘학습효과’가 두려운 저축은행 사건
저축은행이 높은 이자를 주는 것은 그만큼 리스크(위험)가 크기 때문입니다. 신용금고가 저축은행으로 간판을 바꿔 달도록 하는 바람에 예금자들을 헷갈리게 한 측면은 있지만, 어쨌든 위험은 기본적으로 예금자가 져야 합니다. 은행 소유자도 책임을 져야 하고요. 그걸 일반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메워 준다는 것은 복지(福祉)도, 상호부조(相互扶助)도 아닙니다.
소급입법의 문제와 함께 경제논리가 아닌 정치논리에 따른 결정이란 것도 문제입니다. 새누리당이 부산 선거에서 지금처럼 어렵지 않아도 이런 결정을 했을까요? 민주통합당이 부산에서 의석을 전혀 얻을 가능성이 없었다면 이런 결정에 동의했을까요?
현실적인 우려는 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2008년 9월 이후 영업정지된 저축은행 18개 외에도 부실 은행이 속출할 것이라고 합니다. 몇천억, 몇조가 들더라도 해 준다고 칩시다. 더 큰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예금자보호법’ ‘소급입법’ 등의 장애를 모두 무너뜨린 것이 이번 사태입니다. 이는 ‘밀어붙이니 되더라’는 학습효과를 낳을 것입니다. 이걸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입니까. 좀 심하게 말하면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안되는 일이란 없게 될 판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건 사리에 맞지 않고…” “이건 법에 안되게 돼 있는데…” 등으로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구분해 왔습니다. 그것이 무너지면 법도, 사리도, 상식도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원시사회나 다름 없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만은 《조선일보》도, 《한겨레》도 시각차가 크지 않아 다행입니다. 그렇지만 파장을 충분히 알 텐데, 다른 기사들 때문인지 생각보다 적게 다룬 듯합니다. 3월입니다. 정치판에도, 언론에도 얼음이 녹아내렸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