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대선에서 패배한 몇 달 뒤인 2003년 3월의 일입니다.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모임이 있었습니다. 한나라당 팀장급 기자 5명이 박근혜(朴槿惠) 의원을 초청하는 형식이었습니다. 기사를 전제로 하지 않은 자리여서 여러 얘기가 오갔습니다. 결국은 한나라당 회생(回生) 대책으로 초점이 모이더군요. 기자들은 “한나라당스러움으론 정권을 되찾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어느 기자는 박 의원에게 “대선에서 진 한나라당이 국민들에게 ‘이렇게 변했으니 지지해 주십시오’라고 할 수 있는 게 뭔가”라고 묻기도 했습니다. 박 의원은 2002년 탈당 당시 이회창(李會昌) 총재에게 요구했던 ‘정당 개혁’을 국민들 피부에 와 닿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2004년으로 예정된 총선 얘기도 화제였습니다. 한 기자가 “총선을 앞둔 전당대회에 대표로 나설 것인가” 물었습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당시로선 세상 물정 모르는 기자들의 상상력쯤이었습니다. 52세의 여성 정치인이 기라성 같은 보수 정치인들의 사령탑에 앉는다는 것을 어느 누구도 인정할 수 없는 분위기였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기자가 ‘예언’을 하더군요. “도저히 질 수 없는 대선을 져 놓고 한나라당이 뭐로 표를 달라고 하겠습니까. ‘변했다’는 주장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국민들이 느끼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건 남자를 여자로 바꾸는 것입니다.”
박 의원은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이후 몇몇 한나라당 의원에게 ‘박근혜 대표’ 가능성을 물어보았습니다. 검증 안된 리더십, 정치인으로서의 경륜, 어린(?) 나이….
그들은 손가락이 모자랄 만큼 결격 사유들을 댔습니다.
경륜과 서열을 중시하던 한나라당은 이듬해 탄핵 파동을 겪고 난파(難破) 위기에 몰렸습니다. 299석 중 100석도 못 건진다는 게 통설이었음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열린우리당의 ‘몽골 기병론’에 주눅 들어 맥없이 무너져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랬던 탓일까요. 한나라당이 ‘진정한 변화’를 보여주는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현직 대통령을 탄핵할 때의 오만한 한나라당이 아니라는 반성이었고, 국민들은 그걸 인정했습니다. 한나라당 121석은 그렇게 탄생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박근혜 대표’가 별로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던 것이지요.
‘정계은퇴’ 약속했던 이광재 의원까지 강원지사에 당선
2007년 대선이 끝난 후 대통합민주신당, 특히 전 정권 주류였던 친노(親盧)의 모습이 그러했습니다. 오죽하면 대표적인 친노인 안희정씨는 대선 직후 “친노라고 표현돼 온 우리는 폐족(廢族·조상이 큰 죄를 지어 벼슬을 할 수 없게 된 자손)”이라고 자책했겠습니까. 실제 의도야 무엇이었든 안씨 발언은 “아, 정말 이 사람들이 이제야 분수를 아는구나”라는 신선한 느낌을 유권자들에게 주었습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더불어 이들은 민주당이란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았지만, 지리멸렬하기는 2003년 한나라당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못하지 않았습니다. 정동영(鄭東泳) 직계, 정세균(丁世均) 대표계에다 손학규(孫鶴圭)계, 구 민주당계, 친노계 등 민주당 내엔 계파도 복잡다단했죠. 광우병 파동 때는 외부 좌파단체가 주도하는 시위의 꽁무니를 대한민국 야당 정치인이라는 사람들이 쫓아다니느라 바빴습니다. 퇴근길에 서울 광화문의 광우병 시위 현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정세균 대표를 보고 어색할 것 같아 그냥 눈길을 돌렸습니다. 평소 반가워했을 그였지만 ‘시위에서 단역(端役)조차 맡지 못한 야당 대표’의 모습이 너무 초라해 보여 그랬습니다.
그뿐입니까. 당내의 암투와 냉소, 당밖의 조롱은 굳이 옮기지 않아도 될 정도입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 각종 부적격 인사, 편중(偏重) 인사가 불거졌을 때도 민주당은 아무런 문제 제기를 하지 못했습니다. 2008년 총선때 ‘비리 전력자 공천 배제’라는 신선한 공천 바람을 불어넣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궤멸 상태를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그랬던 민주당이 올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전열을 가다듬었습니다. 계파를 가리지 않고 당선 위주로 공천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야권 단일후보 협상도 벌였습니다. 변화, 변신 노력이라면 그것이 쇼였든 아니든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어느 곳은 민주당 후보가 야권 단일후보로 뛰었고, 어느 곳은 친노 직계들이 만든 국민참여당 후보가 야권 단일후보가 됐습니다. 그런 ‘노력’이 뭉쳐 민주당은 충청도의 새로운 맹주(盟主)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져도 좋을 만한 성적을 거뒀습니다. 실제 충청도의 한나라당 당원들조차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 젊은 후보들이 좋다”는 반응을 보인 사람이 많았다지 않습니까. 이건 민주당이 국민들의 변화 기대에 융통성 있게 대처했고, 국민들도 그런 노력에 점수를 후하게 줬다는 말이 됩니다. ‘박연차 뇌물 리스트’에 올라 정계를 떠나겠다고 국민 앞에 약속했던 이광재 의원이 스스로의 말을 뒤집고 강원지사에 출마해 당선됐을 정도이니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한나라당은 매번 말로만 환골탈태
그렇다고 우리 정치권에 변신 성공의 추억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전 정권의 집권 여당이란 사람들이 노무현(盧武鉉) 정부 임기말에 벌인 탈당·창당·합당 소동이 대표적입니다. 열린우리당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을 탈색시키기 위해 당을 쪼개고, 만들고, 합쳤습니다. ‘민주’라는 글자를 여기다 붙이고 저기다 붙이고 그러더니 나중에는 ‘대통합’이란 단어까지 붙여 이제 그 이름을 제대로 기억할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포장만 이랬다저랬다 한 것입니다. 국민들은 그것을 변화라고 보지 않았습니다. 그 평가가 2007년 대선에서 500만 표란 압도적 표차로 나타난 것입니다.
변신 실패는 한나라당에서 훨씬 많았습니다. 앞서 말한 박근혜 의원은 2002년 2월 ‘정당 개혁’을 요구하며 탈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 정당 개혁의 요체는 1인 지배 탈피, 상향식 공천 등이었습니다. 그동안 온갖 개혁위원회가 있었습니다. 변한 것 없습니다. 여전히 대표나 실세 중심으로 당이 돌아갑니다. 상향식 공천도 무늬만 남았습니다. 6·2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경선 정도를 빼고 진정한 상향식 공천이 있었습니까.
작년 10·28 재·보선 이후엔 또 어땠습니까. 재·보선 결과는 수원·안산과 충북에서 민주당, 강원 강릉과 경남 양산에서 한나라당 승리였습니다. ‘텃밭’을 빼면 한나라당의 완패입니다. 텃밭이라는 양산에서도 고전했습니다. 선거 후 한나라당 초선 모임인 민본 21은 “이대로 가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구체적 당 쇄신 방안과 정치일정을 조속히 제시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선방했다”고 평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면서 쇄신론은 쏙 들어가 버렸습니다. 재·보선을 지휘한 대표, 사무총장은 제자리를 지켰습니다. 쇄신은커녕 움찔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후 집권당의 오만증(症)은 더 심해진 듯합니다. 제가 통계를 내 본 것은 아니지만 주변에서 인사 편중 얘기가 끊이지 않습니다. “요즘 한자리하는 사람들은 고려대 아니면 TK(대구·경북)다” 이런 수군거림입니다. 신문 인사란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프로필을 살펴보셨습니까. (전 주로 정치권 인사밖에 모릅니다만) 고향이 호남이나 충청이면 고려대를 나왔고, ‘기타대’를 졸업했으면 고향이 대구·경북인 경우가 태반입니다. 많이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정부도 문제지만 정부의 영향력이 미치는 공기업, 협회 등에 투입되는 낙하산 부대는 훨씬 심하다고 하네요.
쇄신과 변화는 타이밍 놓치면 뒷북
이런 일이 타(他)지역의 냉소와 소외감을 부추겼고, 여기에다 세종시, 4대강 반대에 나선 불교계·천주교계의 움직임 등이 겹쳤으니 6·2 선거에서 여당이 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닙니까.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민심(民心)이 어떤 것인지를 확인했으면 그 민심을 받들려는(이 정권 사람들 언어로 ‘섬기려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 집권 세력은 가관입니다. 책임지고 자숙해야 할 사람들이 전당대회 재출마 운운하고, 소장파란 사람들은 선거 후 으레 그랬듯이 ‘쇄신 후렴구’를 읊조리고 있습니다.
더 황당한 것은 청와대 반응입니다. 7·28 재·보선이 끝난 뒤 당정 개편을 얘기하다가 이제 재·보선 전(前)이라도 하겠다고 말을 바꿨습니다. 쇄신과 변화는 타이밍입니다. 국민들 마음속에 응어리가 맺혔을 때 그걸 풀어 주어야지, 암덩어리로 변했을 때는 위험해집니다. 청와대는 재·보선에서도 어차피 진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쇄신과 재·보선을 연결시키는 것은 결국 ‘질 준비’를 마쳤다는 얘기가 됩니다.
재·보선이 집권 여당의 무덤이라고요? 1998년 서울 종로, 서초갑, 부산 해운대, 대구북갑, 경기 광명, 수원 팔달, 강원 강릉의 7·21 재·보선 때 공동여당은 3곳을 이겼습니다. 야당 텃밭이 포함돼 있는데도요. 그 이듬해 서울 구로을, 경기 시흥 선거도 모두 공동여당이 이겼습니다. 그런데도 질 준비를 마친 집권당이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당시로선 세상 물정 모르는 기자들의 상상력쯤이었습니다. 52세의 여성 정치인이 기라성 같은 보수 정치인들의 사령탑에 앉는다는 것을 어느 누구도 인정할 수 없는 분위기였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기자가 ‘예언’을 하더군요. “도저히 질 수 없는 대선을 져 놓고 한나라당이 뭐로 표를 달라고 하겠습니까. ‘변했다’는 주장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국민들이 느끼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건 남자를 여자로 바꾸는 것입니다.”
박 의원은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이후 몇몇 한나라당 의원에게 ‘박근혜 대표’ 가능성을 물어보았습니다. 검증 안된 리더십, 정치인으로서의 경륜, 어린(?) 나이….
그들은 손가락이 모자랄 만큼 결격 사유들을 댔습니다.
경륜과 서열을 중시하던 한나라당은 이듬해 탄핵 파동을 겪고 난파(難破) 위기에 몰렸습니다. 299석 중 100석도 못 건진다는 게 통설이었음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열린우리당의 ‘몽골 기병론’에 주눅 들어 맥없이 무너져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랬던 탓일까요. 한나라당이 ‘진정한 변화’를 보여주는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현직 대통령을 탄핵할 때의 오만한 한나라당이 아니라는 반성이었고, 국민들은 그걸 인정했습니다. 한나라당 121석은 그렇게 탄생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박근혜 대표’가 별로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던 것이지요.
‘정계은퇴’ 약속했던 이광재 의원까지 강원지사에 당선
2007년 대선이 끝난 후 대통합민주신당, 특히 전 정권 주류였던 친노(親盧)의 모습이 그러했습니다. 오죽하면 대표적인 친노인 안희정씨는 대선 직후 “친노라고 표현돼 온 우리는 폐족(廢族·조상이 큰 죄를 지어 벼슬을 할 수 없게 된 자손)”이라고 자책했겠습니까. 실제 의도야 무엇이었든 안씨 발언은 “아, 정말 이 사람들이 이제야 분수를 아는구나”라는 신선한 느낌을 유권자들에게 주었습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더불어 이들은 민주당이란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았지만, 지리멸렬하기는 2003년 한나라당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못하지 않았습니다. 정동영(鄭東泳) 직계, 정세균(丁世均) 대표계에다 손학규(孫鶴圭)계, 구 민주당계, 친노계 등 민주당 내엔 계파도 복잡다단했죠. 광우병 파동 때는 외부 좌파단체가 주도하는 시위의 꽁무니를 대한민국 야당 정치인이라는 사람들이 쫓아다니느라 바빴습니다. 퇴근길에 서울 광화문의 광우병 시위 현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정세균 대표를 보고 어색할 것 같아 그냥 눈길을 돌렸습니다. 평소 반가워했을 그였지만 ‘시위에서 단역(端役)조차 맡지 못한 야당 대표’의 모습이 너무 초라해 보여 그랬습니다.
그뿐입니까. 당내의 암투와 냉소, 당밖의 조롱은 굳이 옮기지 않아도 될 정도입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 각종 부적격 인사, 편중(偏重) 인사가 불거졌을 때도 민주당은 아무런 문제 제기를 하지 못했습니다. 2008년 총선때 ‘비리 전력자 공천 배제’라는 신선한 공천 바람을 불어넣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궤멸 상태를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그랬던 민주당이 올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전열을 가다듬었습니다. 계파를 가리지 않고 당선 위주로 공천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야권 단일후보 협상도 벌였습니다. 변화, 변신 노력이라면 그것이 쇼였든 아니든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어느 곳은 민주당 후보가 야권 단일후보로 뛰었고, 어느 곳은 친노 직계들이 만든 국민참여당 후보가 야권 단일후보가 됐습니다. 그런 ‘노력’이 뭉쳐 민주당은 충청도의 새로운 맹주(盟主)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져도 좋을 만한 성적을 거뒀습니다. 실제 충청도의 한나라당 당원들조차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 젊은 후보들이 좋다”는 반응을 보인 사람이 많았다지 않습니까. 이건 민주당이 국민들의 변화 기대에 융통성 있게 대처했고, 국민들도 그런 노력에 점수를 후하게 줬다는 말이 됩니다. ‘박연차 뇌물 리스트’에 올라 정계를 떠나겠다고 국민 앞에 약속했던 이광재 의원이 스스로의 말을 뒤집고 강원지사에 출마해 당선됐을 정도이니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한나라당은 매번 말로만 환골탈태
그렇다고 우리 정치권에 변신 성공의 추억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전 정권의 집권 여당이란 사람들이 노무현(盧武鉉) 정부 임기말에 벌인 탈당·창당·합당 소동이 대표적입니다. 열린우리당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을 탈색시키기 위해 당을 쪼개고, 만들고, 합쳤습니다. ‘민주’라는 글자를 여기다 붙이고 저기다 붙이고 그러더니 나중에는 ‘대통합’이란 단어까지 붙여 이제 그 이름을 제대로 기억할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포장만 이랬다저랬다 한 것입니다. 국민들은 그것을 변화라고 보지 않았습니다. 그 평가가 2007년 대선에서 500만 표란 압도적 표차로 나타난 것입니다.
변신 실패는 한나라당에서 훨씬 많았습니다. 앞서 말한 박근혜 의원은 2002년 2월 ‘정당 개혁’을 요구하며 탈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 정당 개혁의 요체는 1인 지배 탈피, 상향식 공천 등이었습니다. 그동안 온갖 개혁위원회가 있었습니다. 변한 것 없습니다. 여전히 대표나 실세 중심으로 당이 돌아갑니다. 상향식 공천도 무늬만 남았습니다. 6·2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경선 정도를 빼고 진정한 상향식 공천이 있었습니까.
작년 10·28 재·보선 이후엔 또 어땠습니까. 재·보선 결과는 수원·안산과 충북에서 민주당, 강원 강릉과 경남 양산에서 한나라당 승리였습니다. ‘텃밭’을 빼면 한나라당의 완패입니다. 텃밭이라는 양산에서도 고전했습니다. 선거 후 한나라당 초선 모임인 민본 21은 “이대로 가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구체적 당 쇄신 방안과 정치일정을 조속히 제시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선방했다”고 평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면서 쇄신론은 쏙 들어가 버렸습니다. 재·보선을 지휘한 대표, 사무총장은 제자리를 지켰습니다. 쇄신은커녕 움찔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후 집권당의 오만증(症)은 더 심해진 듯합니다. 제가 통계를 내 본 것은 아니지만 주변에서 인사 편중 얘기가 끊이지 않습니다. “요즘 한자리하는 사람들은 고려대 아니면 TK(대구·경북)다” 이런 수군거림입니다. 신문 인사란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프로필을 살펴보셨습니까. (전 주로 정치권 인사밖에 모릅니다만) 고향이 호남이나 충청이면 고려대를 나왔고, ‘기타대’를 졸업했으면 고향이 대구·경북인 경우가 태반입니다. 많이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정부도 문제지만 정부의 영향력이 미치는 공기업, 협회 등에 투입되는 낙하산 부대는 훨씬 심하다고 하네요.
쇄신과 변화는 타이밍 놓치면 뒷북
이런 일이 타(他)지역의 냉소와 소외감을 부추겼고, 여기에다 세종시, 4대강 반대에 나선 불교계·천주교계의 움직임 등이 겹쳤으니 6·2 선거에서 여당이 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닙니까.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민심(民心)이 어떤 것인지를 확인했으면 그 민심을 받들려는(이 정권 사람들 언어로 ‘섬기려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 집권 세력은 가관입니다. 책임지고 자숙해야 할 사람들이 전당대회 재출마 운운하고, 소장파란 사람들은 선거 후 으레 그랬듯이 ‘쇄신 후렴구’를 읊조리고 있습니다.
더 황당한 것은 청와대 반응입니다. 7·28 재·보선이 끝난 뒤 당정 개편을 얘기하다가 이제 재·보선 전(前)이라도 하겠다고 말을 바꿨습니다. 쇄신과 변화는 타이밍입니다. 국민들 마음속에 응어리가 맺혔을 때 그걸 풀어 주어야지, 암덩어리로 변했을 때는 위험해집니다. 청와대는 재·보선에서도 어차피 진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쇄신과 재·보선을 연결시키는 것은 결국 ‘질 준비’를 마쳤다는 얘기가 됩니다.
재·보선이 집권 여당의 무덤이라고요? 1998년 서울 종로, 서초갑, 부산 해운대, 대구북갑, 경기 광명, 수원 팔달, 강원 강릉의 7·21 재·보선 때 공동여당은 3곳을 이겼습니다. 야당 텃밭이 포함돼 있는데도요. 그 이듬해 서울 구로을, 경기 시흥 선거도 모두 공동여당이 이겼습니다. 그런데도 질 준비를 마친 집권당이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