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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로 보는 월간조선 誌齡 500호

‘역사를 기록하고 역사를 만들어온’ 41년 8개월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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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호인 1980년 4월호. ‘서울의 봄’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맞춰 민주주의에 대한 담론을 실었다. 5만 부가 팔렸다.
  《월간조선》이 11월호로 지령(誌齡) 500호를 맞이합니다. 여기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은 41년 8개월. 사람으로 치면 한 생명이 태어나 어린 시절과 청년기를 넘어서 중장년에 이르는 세월입니다.
 

  《월간조선》이 태어날 무렵의 세상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1980년 4월이니 이른바 ‘서울의 봄’ 때였지만, 신군부(新軍部)의 그림자로 인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이 더 가슴에 와닿던 시절이었습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그해의 1인당 국민소득(GNI)은 1645달러였다고 하네요. 섬유제품의 수출이 대종을 이루었고, 국산 전자제품이나 자동차는 해외시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싸구려 취급을 받던 시절이었습니다. 성인 버스요금은 90원이었는데, 성인은 토큰, 학생은 회수권을 사용했습니다.
 
1982년 11월호에 실린 ‘숙명의 라이벌 JP와 HR’은 이후 《월간조선》을 이끈 현대사 秘話 기사들의 元祖가 됐다.
 
1986년 12월호에 실린 조갑제 기자의 ‘KAL007, 최후의 목격자’는 1980년대를 대표하는 심층취재 기사 중 하나였다.
  《월간조선》의 모습도 지금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대한민국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를 제시하는 고급 담론지(談論誌)였습니다. 월간 잡지를 만들겠다는 조선일보사의 오랜 염원 끝에 탄생한 창간호에는 ‘특집:민주의 길’이라는 특집과 함께 허정(許政·1896~1988년) 전 과도내각 수반의 칼럼이 실렸습니다.
 
  그 후 세상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월간조선》도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기자들이 발로 뛰면서 쓴 기사들을 중심으로 하는 시사종합잡지입니다. 1982년 무렵부터 조갑제·오효진 같은 기자들은 역대 정권의 비화(祕話)들을 파헤치고, 심층탐사보도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 시작했습니다.
 
1987년 9월호에 실린 ‘정승화 증언, 10·26에서 12·12’는 제13대 大選을 앞두고 큰 화제가 되었다.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DJ 납치 사건 증언이 실린 1987년 10월호는 안기부의 저지를 뚫고 발간되었다. 40만5000부 발간이라는 잡지사상 최고의 기록을 세웠다.(‘이후락 증언’ 기사는 표지에는 표시되지 않았다.)
  독자들의 호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안기부의 제작 방해를 뚫고 세상에 나온 ‘이후락 증언-김대중 납치 사건의 진상은 이렇다’(1987년 10월호)는 40만5000부를 찍었습니다. ‘거리의 군고구마 장수도 《월간조선》을 읽고 있다’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런 독자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월간조선》은 변화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전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상이 《월간조선》을 바꾸기도 했지만, 《월간조선》이 세상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12·12사태 당시 보안사 통화 내용을 보도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 12·12사태 관련자들을 법정에 세우는 단초를 마련했습니다. 1990년대 이후 탈북자, 납북어부, 강제노동소 등을 다룬 기사들은 북한 인권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8년 7월호에 실린 ‘공수부대의 광주사태’는 5共 청문회 정국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기사였다.
 
‘김현희는 말한다- 500일에 걸친 김현희 인터뷰’가 실린 1989년 5월호.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월간조선》의 기사들은 고비마다 사회와 나라의 흐름을 바꾸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김대중 정권과 김정일 간의 막후 거래를 고발해서 햇볕정책의 민낯을 드러냈고, 김정일의 건강 상태에 대한 보도를 내보내 이명박·박근혜 정권이나 미·일 정부가 신중한 대북(對北) 정책을 펴게 하는 데 이바지했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여당 국회의원이나 청와대 수석비서관 조상들의 실체를 밝히는 기사를 통해 당시 정권이 내세우던 ‘과거사 청산’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선적(僞善的)인지를 폭로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41년의 역사 속에서 《월간조선》에 자랑거리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시류(時流)에 아부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권력에 맞섰던 《월간조선》은 민주화 이후 좌경화(左傾化)의 물결이 우리 사회를 휩쓸던 시기에는 그에 맞섰습니다. 무너져 내리는 대한민국의 정체성(正體性)을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1992년 1월호에 실린 ‘전두환, 역사를 위한 육성 증언’은 6·29선언의 막후 진실을 세상에 알렸다.
 
1994년 3월호에 실린 ‘북한 탈출 벌목공들의 러시아 유랑 25시’는 ‘탈북자’라는 말을 처음으로 등장시켰다.
  특히 손세일 전 의원이 2001년 8월호부터 12년간 연재했던 《이승만과 김구》는 200자 원고지 2만3000여 장에 달하는 대작(大作)으로, 이런 기획연재물은 앞으로 두 번 다시 보기 힘들 것입니다. 조갑제 전 편집장이 《조선일보》에 연재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전기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를 마무리 지은 것도 《월간조선》이었습니다. 《월간조선》은 박근혜 탄핵 사태의 와중에도 ‘태블릿PC의 진실’(2017년 3월호) 등 선동언론의 잘못을 지적하는 기사들을 썼습니다.
 

  이런 《월간조선》을 두고 혹자는 ‘극우(極右)’니 ‘수구꼴통’이니 합니다. 하지만 《월간조선》 기자들은 ‘이념과 사실이 충돌할 때에는 사실의 편에 서야 한다’고 배웠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12·12 사건 장군들의 현장 육성 녹음테이프 발굴’이 실린 1995년 9월호는 30만 부가 발행되었다.
 
세계적인 대특종인 ‘황장엽·김덕홍과의 극비접촉 300일의 드라마’가 실린 1997년 3월호.
  창간호에는 1896년생 허정 선생이 시론을 썼지만, 지령 500호를 앞둔 지난 10월호(499호)에는 1998년생인 대학생 홍태화씨가 글을 썼습니다. 디지털시대의 흐름에 맞게 《월간조선》은 4년 전부터는 ‘데일리 월간조선 뉴스룸’을, 2년 전부터는 유튜브 채널인 ‘월간조선TV’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월간조선》이 지령 1000호를 맞는 2063년에는 세상이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저희는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고 뉴스를 담는 매체의 형태가 바뀌더라도 ‘역사를 기록하고 역사를 만들어가는 국민잡지’ 《월간조선》은 살아남으리라고 믿습니다. 이번 달 화보에서는 《월간조선》의 역사를 빛냈던 주요 특종들이 실렸던 호(號)를 중심으로 표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긴 세월 동안 함께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02년 5월호에 실린 ‘래리 닉시 작성 美의회조사국의 보고서와 금강산 관광’을 비롯한 일련의 기사들은 김대중 정권과 김정일의 뒷거래를 폭로했다.
 
‘한국 정보당국 김정일 뇌 사진 확보, 뇌졸중 확인’ 기사가 실린 2008년 12월호.
 
2017년 3월호에 실린 ‘태블릿PC의 진실’은 ‘박근혜 탄핵’의 시류를 거스르는 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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