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 발발 사흘 후인 1950년 6월 28일 북한군이 서울에 들어오자 숨어 있던 좌익들이 거리로 나와 환영했다.
1886년 6월 2일 제22대 미국 대통령 그로버 클리블랜드가 27세 연하인 프랜시스 폴섬과 백악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신부는 클리블랜드의 절친한 친구의 딸이었다. 클리블랜드는 아직까지도 백악관에서 결혼식을 올린 유일한 대통령으로 기록되어 있다.
1839년 6월 3일 청나라 흠차대신 임칙서(林則徐)가 도광제(道光帝)의 명을 받아 광저우(廣州)에서 영국 상인들로부터 아편 120만kg을 압수, 폐기했다. 영국은 이에 항의, 전쟁을 일으켰다. 1842년 청나라는 홍콩 할양 등 굴욕적 내용을 담은 난징조약에 서명했다. 중국인들에게 150년에 걸친 치욕의 역사가 시작됐다.
1989년 6월 4일 중국 공산당 정권은 베이징 톈안먼(天安門)에 군대를 투입, 두 달 넘게 부패 척결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집회를 벌여온 시민·학생들을 학살했다. 중국 정부는 241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하지만, 1000명, 많게는 1만여 명이 사망했다는 주장도 있다.
1968년 6월 5일 미국 대선(大選) 유력 주자이던 로버트 케네디 미국 상원의원이 피격, 다음날 사망했다. 총성과 함께 존 F.케네디 대통령의 뒤를 이어 또 한 명의 대통령을 배출하려던 케네디 가문의 꿈도 날아갔다.
1944년 6월 6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장군이 지휘하는 15만5000명의 연합군이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했다. 작전 개시 전 아이젠하워는 작전이 실패했을 경우에 대비해 “모든 것은 나의 책임”이라는 성명서를 준비했다. 11개월 후 나치 독일은 패망했다.
1984년 6월 6일 테트리스가 첫선을 보였다. 테트리스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으로 불릴 정도로 히트를 쳤지만 이 게임을 만든 컴퓨터 프로그래머 알렉세이 파지노프는 소련 정부 산하 컴퓨터연구소 소속 직원이어서 별로 돈을 벌지 못했다. 그는 1991년 미국으로 이주, 테트리스사(社)를 세우고 본격적인 돈벌이에 나섰다.
1934년 6월 9일 월트 디즈니사가 만든 〈똑똑한 작은 암탉(The Wise Little Hen)〉이라는 단편 만화에 목소리 크고 성깔 고약한 오리가 등장했다. 그의 이름은 ‘도널드 덕’이었다.
1946년 6월 9일 푸미폰 아둔야뎃(라마 9세)이 태국 국왕으로 즉위했다. 그는 숱한 쿠데타와 정변 속에서도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면서 2016년 10월 13일 사망할 때까지 70년간 왕위를 지켰다.
1987년 6월 9일 연세대학교 학생 이한열이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을 맞고 쓰러져 그해 7월 5일 사망했다. 이한열의 부상과 죽음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들끓던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기름을 부었다.
1926년 6월 10일 순종의 장례식을 기화로 조선 독립을 요구하는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청년 및 사회주의 세력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63년 6월 11일 월남의 승려 틱꽝득이 응오 딘 지엠 정권의 불교 탄압에 항의해 분신(焚身) 자살했다.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지엠 대통령의 제수 마담 누는 이를 두고 ‘인간 바비큐’라고 비아냥거려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2000년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간에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이들은 이틀 후 6·15공동선언을 내놓았다.
1985년 6월 14일 벨기에·프랑스·서독·룩셈부르크·네덜란드 5개국이 국경검사를 철폐하는 솅겐 조약을 맺었다.
1215년 6월 15일 잉글랜드의 존 왕이 마그나 카르타에 서명했다. 당초에는 대귀족들의 이권을 보장하는 문서였으나, 이후 국민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보장서로 그 의미가 확대됐다.
1999년 6월 15일 제1차 연평해전이 일어났다. 북한 어뢰정 1척과 경비정 1척이 격침되고 경비정 3척이 크게 파손됐다. 북한은 3년 후인 2002년 6월 29일 이에 대한 보복으로 제2차 연평해전을 일으켰다. 참수리 357정 정장(艇長) 윤영하 소령, 한상국 상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등이 전사했다.
1953년 6월 16일 동독의 수도 동베를린에서 반공폭동이 발생했다. 공산 정권이 노르마(노동자들의 1일 작업 목표량)를 상향조정한 것이 직접적 계기가 됐다. 소련군 전차가 출동해 폭동을 진압했다.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해결방법〉이라는 시에서 “그렇다면 차라리 정부가 인민을 해산하여 버리고/ 다른 인민을 선출하는 것이 더욱 간단하지 않을까?”라고 야유했다.
1998년 6월 15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떼 1001마리를 몰고 방북(訪北)했다. 일각에서는 분단 극복을 위한 장거(壯擧)라고 박수를 보냈지만, 대북사업 및 정치와 연결되면서 현대그룹은 기울기 시작했다.
1940년 6월 17일 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 등 발틱 3국이 소련에 강점(强占)됐다. 이들은 1991년에 이르러서야 자유를 회복했다.
1972년 6월 17일 미국 워싱턴 포토맥 강변에 있는 워터게이트 빌딩에 잠입했던 5명의 괴한이 붙들렸다. 좀도둑으로 보였던 이들은 그 빌딩 내 민주당 당사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던 자들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닉슨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워터게이트 사건이 여기서 시작됐다.
1953년 6월 19일 원자폭탄 관련 기밀을 소련에 넘겨준 로젠버그 부부가 처형됐다. 이들은 한동안 ‘냉전의 무고한 희생자’들로 포장됐다. 소련 붕괴 후 공개된 문서들은 이들이 소련의 간첩이고 유죄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2005년 6월 19일 경기도 연천 28사단 530GP에서 총기난사사건이 벌어졌다. 8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당했다.
1789년 6월 20일 삼부회(三部會) 평민회 소속 의원들이 베르사유궁전의 테니스코트에서 집회를 갖고 “헌법이 제정될 때까지는 해산하지 않겠다”고 결의했다. 삼부회 소속의 진보적인 귀족과 성직자들도 이에 합류했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가는 도화선에 불이 붙었다.
1941년 6월 22일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다. 1939년 8월 독소불가침조약을 맺은 이래 독일과 소련은 밀월관계를 구가하고 있었다. 슐렌부르크 주소 독일대사를 만난 몰로토프 소련 외무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이런 일을 당할 만한 일을 한 적이 있습니까?”
1965년 6월 22일 한일기본조약이 조인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대국민담화에서 “내일의 조국을 위해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려운 일이라고는 하지만 과거의 감정을 참고 씻어버리는 것이 진실로 조국을 사랑하는 길이 아니겠습니까”라고 호소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군이 기습 남침했다. 김일성이 일으킨 3년간의 전쟁으로 30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1991년 6월 25일 유고슬라비아연방을 구성하고 있던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가 독립을 선언했다. 이후 10년 동안 계속되는 유고 내전의 시작이었다.
363년 6월 26일 사산조 페르시아와 전쟁에 나섰던 로마제국 황제 율리아누스가 전사했다. 그는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 진행되어 온 기독교화(化)에 제동을 걸고 다신교(多神敎) 사회로의 복귀를 꿈꾸던 사람이었다. 그가 오래 살아서 자신의 정책을 성공시켰다면 인류의 역사는 지금과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1945년 6월 26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유엔 헌장이 조인됐다.
1949년 6월 26일 백범 김구가 경교장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당했다.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보스니아 사라예보에서 암살됐다. 범인은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인 가브릴로 프린치프였다. 유럽의 변방에서 일어난 이 사건이 2000만명이 죽는 세계대전으로 비화(飛火)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1987년 6월 29일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는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전면 수용하는 6·29선언을 발표했다.
1995년 6월 29일에는 서울 서초동에 있는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502명이 죽고 937명이 부상당했으며, 6명이 실종됐다.
1936년 6월 30일 마거릿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출간됐다.⊙
1839년 6월 3일 청나라 흠차대신 임칙서(林則徐)가 도광제(道光帝)의 명을 받아 광저우(廣州)에서 영국 상인들로부터 아편 120만kg을 압수, 폐기했다. 영국은 이에 항의, 전쟁을 일으켰다. 1842년 청나라는 홍콩 할양 등 굴욕적 내용을 담은 난징조약에 서명했다. 중국인들에게 150년에 걸친 치욕의 역사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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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6월 4일 중국인민해방군은 부패척결과 민주를 외치는 인민들을 유혈진압했다. |
1968년 6월 5일 미국 대선(大選) 유력 주자이던 로버트 케네디 미국 상원의원이 피격, 다음날 사망했다. 총성과 함께 존 F.케네디 대통령의 뒤를 이어 또 한 명의 대통령을 배출하려던 케네디 가문의 꿈도 날아갔다.
1944년 6월 6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장군이 지휘하는 15만5000명의 연합군이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했다. 작전 개시 전 아이젠하워는 작전이 실패했을 경우에 대비해 “모든 것은 나의 책임”이라는 성명서를 준비했다. 11개월 후 나치 독일은 패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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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6월 6일 소련의 한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내놓은 게임 테트리스는 우리나라에서도 수많은 어린이를 전자오락실로 끌어들였다. |
1934년 6월 9일 월트 디즈니사가 만든 〈똑똑한 작은 암탉(The Wise Little Hen)〉이라는 단편 만화에 목소리 크고 성깔 고약한 오리가 등장했다. 그의 이름은 ‘도널드 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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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6월 9일 즉위한 태국의 푸미폰 국왕은 잦은 쿠데타와 정변에도 불구하고 70년간 왕위를 지켰다. |
1987년 6월 9일 연세대학교 학생 이한열이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을 맞고 쓰러져 그해 7월 5일 사망했다. 이한열의 부상과 죽음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들끓던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기름을 부었다.
1926년 6월 10일 순종의 장례식을 기화로 조선 독립을 요구하는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청년 및 사회주의 세력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63년 6월 11일 월남의 승려 틱꽝득이 응오 딘 지엠 정권의 불교 탄압에 항의해 분신(焚身) 자살했다.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지엠 대통령의 제수 마담 누는 이를 두고 ‘인간 바비큐’라고 비아냥거려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2000년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간에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이들은 이틀 후 6·15공동선언을 내놓았다.
1985년 6월 14일 벨기에·프랑스·서독·룩셈부르크·네덜란드 5개국이 국경검사를 철폐하는 솅겐 조약을 맺었다.
1215년 6월 15일 잉글랜드의 존 왕이 마그나 카르타에 서명했다. 당초에는 대귀족들의 이권을 보장하는 문서였으나, 이후 국민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보장서로 그 의미가 확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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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28일 경기도 평택 제2함대사령부에서 열린 제2연평해전 전사자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고인들의 흉상을 어루만지며 오열하고 있다. |
1953년 6월 16일 동독의 수도 동베를린에서 반공폭동이 발생했다. 공산 정권이 노르마(노동자들의 1일 작업 목표량)를 상향조정한 것이 직접적 계기가 됐다. 소련군 전차가 출동해 폭동을 진압했다.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해결방법〉이라는 시에서 “그렇다면 차라리 정부가 인민을 해산하여 버리고/ 다른 인민을 선출하는 것이 더욱 간단하지 않을까?”라고 야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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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시절 소를 판 돈을 가지고 상경했던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1998년 6월 15일 1001마리의 소떼를 몰고 금의환향했다. |
1940년 6월 17일 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 등 발틱 3국이 소련에 강점(强占)됐다. 이들은 1991년에 이르러서야 자유를 회복했다.
1972년 6월 17일 미국 워싱턴 포토맥 강변에 있는 워터게이트 빌딩에 잠입했던 5명의 괴한이 붙들렸다. 좀도둑으로 보였던 이들은 그 빌딩 내 민주당 당사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던 자들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닉슨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워터게이트 사건이 여기서 시작됐다.
1953년 6월 19일 원자폭탄 관련 기밀을 소련에 넘겨준 로젠버그 부부가 처형됐다. 이들은 한동안 ‘냉전의 무고한 희생자’들로 포장됐다. 소련 붕괴 후 공개된 문서들은 이들이 소련의 간첩이고 유죄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2005년 6월 19일 경기도 연천 28사단 530GP에서 총기난사사건이 벌어졌다. 8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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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6월 20일 삼부회의 평민회 의원들은 헌법제정을 요구하며 베르사유궁 테니스코트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
1941년 6월 22일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다. 1939년 8월 독소불가침조약을 맺은 이래 독일과 소련은 밀월관계를 구가하고 있었다. 슐렌부르크 주소 독일대사를 만난 몰로토프 소련 외무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이런 일을 당할 만한 일을 한 적이 있습니까?”
1965년 6월 22일 한일기본조약이 조인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대국민담화에서 “내일의 조국을 위해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려운 일이라고는 하지만 과거의 감정을 참고 씻어버리는 것이 진실로 조국을 사랑하는 길이 아니겠습니까”라고 호소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군이 기습 남침했다. 김일성이 일으킨 3년간의 전쟁으로 30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1991년 6월 25일 유고슬라비아연방을 구성하고 있던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가 독립을 선언했다. 이후 10년 동안 계속되는 유고 내전의 시작이었다.
363년 6월 26일 사산조 페르시아와 전쟁에 나섰던 로마제국 황제 율리아누스가 전사했다. 그는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 진행되어 온 기독교화(化)에 제동을 걸고 다신교(多神敎) 사회로의 복귀를 꿈꾸던 사람이었다. 그가 오래 살아서 자신의 정책을 성공시켰다면 인류의 역사는 지금과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1945년 6월 26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유엔 헌장이 조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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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김구는 1949년 6월 28일 경교장에서 안두희에게 암살됐다. |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보스니아 사라예보에서 암살됐다. 범인은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인 가브릴로 프린치프였다. 유럽의 변방에서 일어난 이 사건이 2000만명이 죽는 세계대전으로 비화(飛火)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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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6월 29일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를 비롯한 5공화국 집권세력은 6월 민주화운동으로 나타난 민의를 수용해 6·29선언을 발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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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개발연대 ‘빨리빨리’ 정신이 낳은 참극이었다. |
1936년 6월 30일 마거릿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출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