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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역사

을사늑약, 베를린장벽 붕괴, 카이로회담, KAL858기 폭파, 연평도 포격…

100년 전 박정희가 태어나고, 러시아혁명이 일어나다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사진 :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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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 앞에서 연설하는 레닌. 1917년 11월 7일 러시아혁명으로 들어선 소련 공산정권은 74년 후 무너졌다.
  1917년 11월 7일 러시아의 수도 페트로그라드에서는 노병(勞兵)소비에트 군사혁명위원회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쿠데타를 진압해야 할 군대는 볼셰비키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었다. 쿠데타를 지휘했던 레프 트로츠키는 말했다. “단 하나의 연대도 러시아 민주주의를 수호하려고 일어나지 않았다.” 볼셰비키의 쿠데타는 서양 그레고리력으로는 11월 7일에 일어났지만, 러시아력으로는 10월 25일의 일이어서 흔히 ‘10월 혁명’이라고 한다.
 
  혁명의 최고 지도자는 블라디미르 레닌이었지만,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를 만들고 군내에 볼셰비키를 침투시켜 쿠데타를 성공으로 이끈 사람은 레프 트로츠키였다. 공교롭게도 11월 7일은 1879년 트로츠키가 태어난 날이었다. 그는 레닌의 후계자로 가장 유력시되었지만, 독선적 성격 때문에 적이 많았다. 혁명 10년 후인 1927년 11월 12일 트로츠키는 스탈린 등에 의해 공산당에서 축출됐다.
 
3만 명의 희생자를 낸 1755년 11월 1일의 리스본대지진은 신(神)의 권위가 실추되는 계기가 됐다.
  1755년 11월 1일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대지진이 일어났다. 3만명이 죽었다. 볼테르의 소설 《캉디드》의 주인공 캉디드는 지진의 공포 속에서 “이게 바로 이 세상 최후의 날이야!”라고 울부짖는다. 계몽주의라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이런 비극에서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 신(神)의 권위는 다시 한 번 땅에 떨어졌다.
 
  1852년 11월 3일 메이지 일본 천황이 태어났다. 그의 치세(1867~1912) 동안 일본은 생존을 걱정해야 했던 약소국에서 세계열강 중 하나로 성장했다. 과거 군국주의 시절에는 이날이 일본의 국가적 축일이었다. 패전 후에는 슬그머니 ‘문화의 날’로 바꾸어서 이날을 기억하고 있다.
 
  1918년 11월 4일 독일 킬 항구에서 수병들의 반란이 일어났다. 안 그래도 궁지에 몰려 있던 독일은 1주일 후인 11월 11일 연합국에 휴전을 제안했다. 영국 등 영연방국가들, 프랑스, 벨기에 등에서는 이날을 현충일로 삼았다.
 
  1995년 11월 4일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가 극우청년 이갈 아미르에게 암살당했다. 1994년 야세르 아라파트 PLO의장과 오슬로협정을 맺은 데 대한 반발이었다. 그의 협상 파트너였던 아라파트는 2004년 11월 11일 사망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그를 독살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1989년 11월 9일 냉전의 상징이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1989년 11월 9일 냉전의 상징이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동서독 국민들은 장벽 위에 올라가 환호했다. 1920년대 초부터 사회주의의 한계를 지적해 온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는 TV를 보던 아들이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어요!”라고 외치자, “거 봐. 내가 뭐랬어!”라고 대꾸했다.
 
  1869년 11월 17일 10년간의 공사 끝에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수에즈 운하가 개통됐다. 프랑스인 페르난 마리 드 레셉스가 주도한 이 운하의 개통으로 런던~싱가포르 간 항로는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을 경유할 경우 2만4500km에서 1만5025km로 줄어들었다.
 
  1307년 11월 18일 오스트리아인 태수의 모자에 경례하기를 거부했던 스위스의 사냥꾼 빌헬름 텔이 아들의 머리 위에 올려놓은 사과에 화살을 적중시켰다. 믿거나 말거나! 19세기 독일의 낭만주의작가 프리드리히 실러는 이 이야기를 희곡으로 세상에 널리 알렸다. 빌헴름 텔은 불굴의 자유정신의 상징이 됐다.
 
1978년 11월 18일 가이아나 존스타운에 있던 사교집단 인민사원 신도 914명이 집단자살했다.
  1978년 11월 18일 가이아나 존스타운에서 미국인 짐 존스가 이끌던 사교(邪敎) 집단 인민사원 신도 914명이 집단자살했다.
 
1863년 11월 19일 링컨은 게티즈버그 격전장을 국립묘지로 헌정하면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명연설을 남겼다.
  1863년 11월 19일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은 5만명의 전몰자를 낸 게티즈버그에서 전사자들을 기리는 연설을 했다. 그가 연설 중 언급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말은 민주주의의 핵심을 지적하는 말로 회자(膾炙)되고 있다.
 
  1859년 11월 24일 영국의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했다. 다윈이 주장한 ‘적자생존(適者生存)’의 논리는 생물학뿐 아니라 정치·사회 등 다방면에 영향을 미쳤다.
 
  1975년 11월 20일, 36년간 스페인을 철권통치했던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사망했다. 프랑코가 생전에 후계자로 지명했던 후안 카를로스 2세가 이틀 후 국왕으로 즉위했다. 후안 카를로스 2세는 프랑코의 기대와는 달리 민주화의 길을 밟아 나갔다.
 
의열단을 만든 김원봉.
  1919년 11월 9일 김원봉 등이 의열단을 조직했다. 의열단은, 김익상이 조선총독부에, 김상옥은 종로경찰서에, 김지섭은 일본 황궁 이중교에, 나석주는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을 투척하는 등 일제하에서 가장 가열찬 투쟁을 벌였던 독립운동단체였다.
 
  1980년 11월 9일에는 KBS 제1TV ‘전국노래자랑’이 시작됐다. 지금까지 사회를 맡고 있는 송해는 1988년 5월부터 마이크를 잡았다.
 
1977년 11월 11일 폭발사고 직후 폐허가 된 이리역 주변. 안전불감증이 낳은 참변이었다.
  1977년 11월 11일 이리역 폭발사건이 일어났다. 화약 호송 담당 직원이 켜 놓은 촛불이 화약상자에 옮겨 붙은 것이 사고 원인이었다. 59명이 죽고 1343명이 부상을 당했다. 당시 이리 시내 한 극장에서 가수 하춘화의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사회자 이주일은 하춘화를 업고 병원으로 달렸다.
 
을사늑약 당시 일본 천황의 특사로 방한한 이토 히로부미. 1905년 11월 13일 체결된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은 일제의 보호국으로 전락했다.
  1905년 11월 13일 일제의 강요로 을사늑약이 체결됐다. 대한제국은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했다. 조약에 찬성한 이완용 등 다섯 명의 대신은 만고의 역적이 됐다. 이완용은 그보다 8년 전인 1897년 11월 20일 독립협회가 사대의 상징인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울 때, 독립협회의 회장이었다.
 
  1970년 11월 13일에는 청계천에서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자살했다.
 
1917년 11월 14일 박정희 대통령이 태어났다. 소년 시절의 박정희.
  1917년 11월 14일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에 있는 한 빈농의 집에서 아기가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박정희(朴正熙)였다.
 
1997년 11월 21일 임창열 부총리는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1995년 11월 16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재벌 총수 등으로부터 2358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었다. 김영삼 정권의 ‘역사 바로세우기’의 시작이었다. 과거와의 싸움에 몰두하는 사이에 경제는 망가졌다. 1997년 11월 21일 정부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1943년 카이로에서 회동한 장제스, 루스벨트, 처칠은 한국 독립을 약속했다.
  1943년 11월 22일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장제스 중국 총통은 카이로에서 만나 전후 처리를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한국의 독립이 약속됐다.
 
  1945년 11월 23일 신의주에서 반공학생의거가 일어났다. 23명이 죽고 700여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수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났다.
 
2010년 11월 23일 북한의 기습 포격을 받은 연평도의 해병대원은 불굴의 감투정신을 발휘, 침착하게 대응사격을 가했다.
  2010년 11월 23일에는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했다. 휴전 이후 북한이 우리 영토에 포격을 가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해병대원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이 전사하고 16명의 병사들이 중경상을 입었다. 민간인도 2명 죽고 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1950년 11월 27일 개마고원을 넘어 북진하던 미 해병1사단 병력이 중공군과 만나 전투를 벌였다. 장진호 전투의 시작이었다.
 
  1987년 11월 29일 대한항공 858기가 인도양 상공에서 폭파됐다. 범인은 북한 공작원 김승일과 김현희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자행된 이 폭파사건으로 115명이 희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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