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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Geography

알퐁소 도데의 단편 〈마지막 수업〉의 무대 알사스(Alsace)

“이것은 와인이 아니라 향수(香水)네?”

글 :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사진 : 이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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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마르는 수로(水路)와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알록달록한 주택이 조화를 이룬 작은 마을이다.
  ‘소년 프란츠는 공부보다 들판에서 노는 것이 더 즐겁다. 학교에 도착한 그는 평소와 다른 분위기에 놀란다. 아멜 선생님은 오늘이 프랑스어로 하는 마지막 수업이라고 말씀하셨다. 교실 뒤에는 부모님들이 서 계셨다. …’
 
  1871년 발표된 소설이 50대 이상 되신 독자분들께는 낯익을 것이다. 알퐁소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다. 이 단편은 작품집 《월요이야기》에 수록돼 있다. 모국어를 빼앗긴 소년 이야기가 우리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작품의 무대가 된 땅은 알사스 로렌이다.
 
콜마르의 주택 구조는 일본 애니메이션 〈하울의 성〉의 모델이 됐다.
  프랑스 동북부 독일과의 접경지 알사스(Alsace) 로렌(Lorraine)은 한(恨)이 많은 곳이다. 우리는 독일에 병합된 역사만 기억하기 쉽지만 그 연원이 꽤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의 행정구역은 레지옹(region)으로 우리의 도(道)격이다. 본토 22개, 해외에 5개 레지옹이 있다.
 
  레지옹은 101개 데파르트망(Departements)으로, 다시 아롱디스망, 캉통, 코뮌으로 잘게 나뉜다. 레지옹 번호 1번과 15번 알사스 로렌의 불행은 샤를 마뉴 대제(大帝) 때 시작됐다. 그에게는 샤를, 피핀, 루이 세 아들이 있었다.
 
  당시 영역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북부로 교황은 그를 서로마황제로 인정했다. 프랑스 북부·독일 북부, 이탈리아와 독일 남부를 이어받은 샤를과 피핀이 811년과 810년 사망하자 프랑스 남부와 스페인을 다스리던 막내 루이가 대제국의 상속자가 된다. 샤를 마뉴 대제는 814년 사망했다.
 
프티 베니스라는 말처럼 수로 위로 앙증맞은 관광열차가 달리고 있다.
  골육상쟁은 이때 비롯됐다. ‘경건왕(敬虔王)’이란 칭호를 얻은 루이가 카롤링거 왕조의 2대 황제(루트비히 1세라고도 불린다)가 된 후 칙령을 내려 후계자 구도를 만드는데 공교롭게 그에게도 아들이 셋 있었다.
 
  황제의 지위와 프랑크 왕국은 장남 로타르, 아키텐은 둘째 피핀, 셋째 루이에게는 지금의 독일 뮌헨이 속한 바이에른을 나눠주는데 823년 루이 황제가 후비와 사이에 넷째 아들, 훗날 ‘대머리왕’으로 불리는 샤를을 낳은 것이다. 루이 황제의 아들들은 전전긍긍한다.
 
  예상대로 루이 황제는 막내를 유독 귀여워해 장남 로타르의 영토 일부를 떼어 주려 했다. 성인이 된 세 아들은 아버지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게 됐다. 우리 후백제와 비슷하다.
 
  1차 반란은 아버지가 “더 많은 땅을 주겠다”며 둘째, 셋째 아들을 설득해 수습되지만 837년 루이 황제가 당시 상속 영토를 조정하려 하자 2차 반란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루이 황제가 강제 퇴위당하는 사태로 번졌다. 그런데 이번에도 둘째와 셋째 아들은 큰형을 배신한다. 결국 아버지는 다시 복위(復位)했고 장남 로타르의 영지 대부분은 막내 샤를에게 넘어갔다.
 
알사스는 화이트와인의 세계적인 명산지다.
  838년 둘째 아들 피핀이 급사하면서부터 반전은 다시 찾아왔다. 아버지가 영토의 대부분을 막내에게 주겠다고 하자 사망한 피핀의 아들 피핀2세와 셋째 아들 루이가 손을 잡고 3차 반란을 일으키는데 이번에는 아버지 루이 황제와 장남 로타르가 손을 잡은 것이다. 한마디로 ‘막장 드라마’였다.
 
  세 차례나 아들들과 싸우다 기력이 다했는지 샤를 마뉴 대제의 아들이자 카롤링거 왕조 2대 황제 루이는 840년 숨을 거둔다. 그러자 남은 로타르, 피핀2세, 루이, ‘대머리왕’ 샤를이 서로의 욕심 때문에 전쟁을 벌인다.
 
  이후 베르덩 조약(843년), 메르센 조약(870년) 등이 체결되는데 복잡한 흥정마다 도마에 오른 생선 꼴이 된 곳이 알사스 로렌이다. 이렇게 근대 프랑스, 독일의 영역을 가른 두 조약은 두고두고 화근(禍根)이 된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리크위르 마을의 모습이다.
  1559년 프랑스의 프랑수아1세는 북부 이탈리아의 지배권을 놓고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와 일전을 치르지만 패했고, 1570년 다시 문제를 일으켰다. 이 패배로 프랑스는 이탈리아를 내주고 알사스 로렌을 얻었다. 1648년의 베스트팔렌 조약은 종교전쟁 끝에 평화를 찾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때 다시 알사스는 스웨덴령에서 프랑스 땅이 되지만 프리드리히2세 때 프로이센이 알사스를 가져갔다.
 
  나폴레옹이 등장하며 상황은 바뀐다. 나폴레옹이 알사스 로렌을 18년간 지배하지만 1871년 보불(普佛)전쟁에서 나폴레옹3세는 프로이센에게 져 이 땅을 잃었다. 이 상황이 제1차 대전까지 지속되지만 전후(戰後) 프랑스는 알사스 로렌을 되찾았다.
 
  2차 세계대전에도 똑같은 상황이 연출되니 누구 말대로 “알사스 로렌 주민들은 200년간 국적이 네 번이나 바뀌었다”는 말이 실감난다. 그런 알사스 로렌에 유명한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가 화이트와인이다. 흔히 레드와인은 프랑스, 화이트와인은 독일이라지만 프랑스인들은 이런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다.
 
광활한 포도밭이 펼쳐져 있다. 그야말로 와인 로드다.
  알사스 로렌에서는 누가 실제로 했는지 모르지만 이런 말이 유명하다. “이것(알사스 와인)은 와인이 아니라 향수네?” 여기서 만들어지는 와인의 90%가 피노블랑, 리즐링 등 화이트와인이다. 샤를 마뉴 대제는 영토 때문이 아니라 알사스 로렌의 맛있는 와인을 마시고 싶어 이 땅을 소유하고 싶어했다고 한다.
 
  두 번째는 무엇일까? 동화 속에 나오는 마을을 연상시킬 법한 아름다운 중세거리다. 알사스 로렌의 주도(州都)는 스트라스부르(Strasbourg)로, 독일 뮌헨에서 승용차로 4시간, 스위스 바젤까지는 1시간반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스트라스부르에서는 국경 특유의 쇠락이 엿보인다. 중심에 ‘프티(Petit) 프랑스’라는 거리가 있는데 나무기둥을 밖으로 노출시키고 위로 갈수록 두툼해지는 건축양식이다. 누군가 “일본만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모티브를 여기서 얻었다”고 한다.
 
  거리에는 활력이 보이지 않고 젊은이들은 보는 외국인마다 “담배 한대만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자존심 강한 프랑스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다. 스트라스부르에서 50분 거리인 콜마르와 위크비르가 더 중요하다.
 
독일과 인접한 알사스는 주민들의 국적이 여러 번 바뀌었다.
  콜마르(Colmar)는 십자군전쟁과 관련이 있는 마을이다. 당시 십자군은 유럽 연합군으로 왕 직속군대뿐 아니라 기사단(騎士團)이 많았다. 소설 《다빈치코드》에 등장하는 템플 기사단 같은 조직들이 수도 없었다. 그중 하나가 생장(Saint Jean) 기사단이다.
 
  예루살렘의 생장 기사단으로 불리는데 단장은 풀크 드 빌라레로 알려져 있다. 1191년부터 1210년 이 기사단이 콜마르에 주둔했으며 1268년 마을 한복판에 채플을 지었다. 지금의 콜마르는 채플보다 ‘프티 베니스’로 더 유명하다.
 
  프티는 프랑스어로 ‘작은’이라는 뜻인데 마을 주변으로 우리 청계천 정도 되는 개천이 흐르고 주변으로 파스텔색처럼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줄지어 있다. 막상 보니 ‘작은 베니스’라는 작명(作名)은 누군가의 허풍인 게 분명하지만 관광객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셔터를 눌러댄다. 도시는 아이디어 하나로 성(盛)하고 쇠(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태양이 사라지면 리크위르의 마을은 동화처럼 변한다.
  일본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이 마을 주택에서 착안했다는데 일본 관광객들이 많고 하필 내가 간 날 콜마르에서는 일본문화제가 열리고 있었다. 프티 베니스 옆 상점가에는 크리스마스 트리 설치가 한창이었다. 유럽에서 크리스마스는 연중 최고의 축제라고 하는데 한국인들에게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보통 10월 중순부터 준비에 들어가 11월이면 크리스마스 마켓이며 상점 장식이 끝나고 11월 말에는 점등식(點燈式)이 열린다.
 
  콜마르에 인접한 리크위르(Riquewihr)는 정말 동화에서 본 것 같은 마을이다. 노란빛으로 물든 거대한 포도밭 사이로 2차선 도로가 나 있고 야트막한 야산 위에 자리 잡은 리크위르는 중세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다. 1600년대에 세워진 어느 골목길 하나 예쁘지 않은 곳이 없으며 분홍색, 파란색, 노란색 벽 사이로 난 창(窓)이 앙증맞기 그지없다.
 
  이방인들은 마을을 구경하며 이곳 산 와인을 즐기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저녁 어스름 무렵부터 불 밝히는 쇼윈도 사이로 산타클로스며 녹색 크리스마스트리, 썰매를 끄는 루돌프사슴 인형을 바라보면 지금은 잃어버린 동심(童心)의 환상 세계로 빠져드는 어른들을 목격할 수 있다. 와인에 크리스마스라는 명절을 엮어 과거의 영토분쟁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는 기적, 그것이 바로 콜마르와 리크위르 마을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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