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源一
1942년 경남 김해시 진영읍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영남대학교를 졸업했다. 1966년부터 소설을 발표하여 《어둠의 혼》 《미망》 《연》 《마음의 감옥》 《노을》 《마당 깊은 집》 《불의 제전》 등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많은 작품 외에 《김원일의 피카소》 《그림 속 나의 인생》 등을 출간했다. 현대문학상·한국일보문학상·동인문학상·이상문학상·이산문학상·황순원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영진 공업사가 있던 서울 퇴계로 4가 부근, 작가가 고향을 등지고 솔가한 1949년부터 한동안 머물렀던 서울 집이 있었다. 광복 전 일본인 중산층 거주 지역으로 시멘트 담장이 그대로 남아 있다.
“어느 날 문득, 이 나이가 되도록 가물가물한 기억 저편에 있는 아버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당신의 면면을 내 소설 속에 더러 등장시키긴 했으나 내 문학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당신을 올곧게 그려본 적 없었다는 그 어떤 부채 의식을 뒤늦게 깨우쳤다.”
김원일이 쓴 소설 《아들의 아버지》는 여덟 살 이후 만나지 못한 아버지의 흔적을 추적해 가며 쓴 자전적 소설이다. 아버지가 살았던 광복 전후와 작가가 태어난 이후 겪은 한국전쟁 사이의 시대적 공간을 역사적 사실에 따라 르포 식으로 기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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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박홍배씨와 함께 찾은 경남 김해시 진영읍 금병공원에 있는 김원일 선생 문학비. 진영의 흙냄새, 어두운 유년시절, 작가로 활동하는 고뇌하는 시기를 각 면에 담았으며, 작가가 출판한 책들이 꽂힌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좌). “갸름한 얼굴에 콧날이 섰고 눈동자가 갈색으로 꿈을 꾸듯 묽었다. 주제곡이 한동안 유행했던 이태리 영화 ‘부베의 연인’의 남자주인공 조지 채킬리스의 키나 생김새가 당신의 모습과 흡사했다. 내 청소년 때까지만도 여덟 살 때 마지막으로 본 아버지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었으나 햇수가 흐르자 이제 그 기억도 바라져서 남겨진 사진에 더 의탁하게 되었다.” -소설 《아들의 아버지》 중 작가가 아버지를 묘사한 장면(우). |
작가의 아버지 김종표는 일제치하에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사회주의 운동을 펼쳤으며, 광복 후에는 남로당 경남도당 책임지도원으로 활동해 수배자 신세가 되기도 했다. 바깥으로는 민족과 조국을 위해서 일생을 바쳤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유학 중 만난 여성과 딴살림을 차리는 등 가정에서도 존경받지 못한 아버지였다. ‘빨갱이 자식’이었기에 작가는 사람들에게 항상 아버지는 6·25 때 사망했다고 했다. 작가는 칠십이 넘어서야 이상과 혁명을 위해 몸바쳐 투쟁한, 자신에게는 그래도 유일무이한, 아버지를 존경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존경과 원망이 섞인 연민의 감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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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진영역 자리. 진영읍은 당시 교통의 요지였다. 특히 삼랑진으로 가기 위해서는 진영역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이었다. 작가는 자주 집을 비운 아버지를 기다리며 역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
김해 진영이 고향인 작가는 이념주의자였던 아버지로 하여금 외로움·배고픔·무서움이 무엇인지를 일찍이 터득하며 자랐다. 어릴 적 몇 년간 가족과 떨어져서 진영읍내 장터의 국밥집에 얹혀살았던 작가는 그때 겪은 장터 사람들의 인정, 가족과 떨어진 설움과 상처, 서민들의 애옥살이 숨결이 그대로 배인 장날 풍경과 함께 고향 선달바우산에 올라 보았던 진영 들녘의 대자연이 훗날 자신을 문학의 길로 이끌었다고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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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어릴 적 얹혀살았던 진영시장 안 국밥집. 지금은 참기름을 뽑는 방앗간으로 바뀌었다. 이인택씨와 울산댁이 운영한 국밥집은 작가에게 아버지의 부재를 채워줄 만큼 유년시절의 큰 안식처가 됐다. |
김원일의 소설을 읽다 보면 소설과 호흡을 맞추는 그림이 보인다. 소설 《환멸을 찾아서(1984)》의 표지를 시작으로 거의 모든 소설에 삽화나 표지로 쓰인 작품이 있다. ‘예술계의 체 게바라’로 불리는 민중미술의 선구자, 독일작가 케테 콜비츠(Kathe Kollwitz·1867~1945)의 작품이다. 독일 영토 동프로이센에서 태어난 그녀는 사회주의에 관심이 많은 집안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였다. 의사인 칼 콜비츠와 결혼해서 자선 병원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의료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소외된 민중의 소리를 듣게 되었고, 그것을 그림에 그렸다. 전시(戰時)라는 특정한 시기에 받은 경험과 소외된 계층을 통해서 바라보게 된 세상을 표현한 자서전적 작가로, 소설가 김원일의 작품 70% 이상이 자전소설인 점에서 둘이 닮아 있다. 김원일이 소설 《아들의 아버지》에서 묘사한 가난과 고통 속의 전쟁 장면은 그녀의 작품들을 연상시킨다. 작가가 그의 문학에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콜비츠를 뽑는 이유이다. 소설 《아들의 아버지》의 표지에 쓰인 콜비츠의 작품 <어머니들>은 가난하고 힘든 시절 매질로 자식을 다스려야만 했던, 누구보다 강인해야 했던 시대의 희생양, 어머니들을 그린다. 어머니야말로 진정한 ‘소외당한 또 다른 주인공’이 아닌가. 광복 후 민족의 대동을 꿈꾸며 사라져간 열정 가득한 젊은 아버지들 그리고 그 옆에서 새로운 생명의 ‘씨앗들은 짓여겨져서는 안 된다’며 자식들을 감싸 안은 강한 어머니들. 그들은 그렇게 그 시대의 희생이 되었으며 지금 이 시대의 밑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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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선달바우산에 오르자 무한대로 열린 진영 들녘이 한눈에 펼쳐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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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아들의 아버지》의 책 표지에 사용된 독일 화가 케테 콜비츠의 작품 <어머니들>.(사진=문학과지성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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